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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6화 (6/225)

〈 6화 〉 못말리는 남매(2))

* * *

잡은 고기는 수족관에 넣어두고 잠이 올때까지 책을 폈다. 벌써 새벽이 오는데도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몇번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 보다. 꿈인지 뭔지 뒤죽박죽 이야기가 엉키는 것 같더니 때아니게 방패 연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나 생각을 하는데 주인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오셨지요?"

누군가에게 묻는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잠결인지, 꿈결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총각! 총각!”

자신을 찾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상준은 일어나기가 귀찮아 누운 채 방문을 밀어 눈살을 찌푸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단잠이 깨버렸다. 멍한 눈동자로 밖을 내다보니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마당에서 지켜보고 있다.머리를 벅벅긁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입을 여셨다.

“총각 누가 총각 찾아왔는데. 아직 자고 있었나 보네.”

상준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걸치고 문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낯선 신사 외에도 동네 아줌마로 보이는 몇몇이 궁금한 얼굴로 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또 어떤 신문기자거나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기업 사람인 것 같아 보였다.

“연상준씨? 연상준씨 맞으십니까?”

“예. 제가 연상준입니다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이라도.”

“전 방송 출연도 대기업 취업도 원하지 않습니다만.”

딱 잘라 말하며 괜한 배짱을 부려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괴물을 낚아올리고 유명세를 얻으면서 기존의 마인드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필요로 할땐 누구도 손을 잡아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야 자신을 찾는다.

이러는 그들이 이유도 없이 비겁해 보인다.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시큰둥한 자세로 관심을 멀리하자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를 꺼내들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꽤나 영업을 해봤는지 안색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 말이 또박 또박해서 목소리 자체가 귓속에 때려 박히는 느낌이다.

“하하. 저는 사실 [주식회사 블랙월드]에서 나온 양만선이라고 합니다.”

블랙월드?

어머니한테 쇼라이트 컴퍼니에서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번엔 또 블랙월드라고?

이 두 회사 모두 괴물산업 재료를 취급하는 회사다.

일반 회사였다면 관심이 없었겠지만 몬스터 관련 회사라는 걸 알자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명함을 받아들었다.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도직입 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장님께서 연상준씨에게 연봉 2억짜리 계약을 제시하셨습니다.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으로 말이죠.”

“연봉 2억요? 뜬금없이 왜 저한테. 조건은 무엇이죠?”

쇼라이트 컴퍼니에서도 1억을 불렀었다.

“계약은 1년 단위로 하시면 됩니다. 특별한 계약 조건도 없으며 계약 기간 동안 잡는 신종 어류나 보석괴물을 전량 저희 회사로 납품하는 조건입니다.”

“아, 그래요?”

“물론 납품 금액은 그때마다 당연히 별도 지급하게 됩니다.”

사실이라면 딱히 나쁜 조건은 아니다. 시장에 팔려나가기 이전에 물건을 구매하겠다는 거다. 아무리 괴물이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언제나 물량이 넘쳐나는 게 아니다. 이들의 입장에선 경매로 넘겨진 물건을 되사들이는 것보다 경매가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쳐주더라도 낚시꾼에게 직접 구매하는 편이 유리 할 수 있다.

“만약 잡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야 1년 단위계약이니 당연히 계약해지 되겠지요. 계약금은 당사자 본인 수입이고요. 저희는 그저 건진 물품을 전량 본사에서 수매하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성과가 좋으면 재계약도 가능하고요.”

“요즘 괴물 헌터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때는 많은 헌터들이 실적이 좋아 사업도 성황을 이루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점점 그 물량이 감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가.

그 부분에 대해선 금시 초문이다.

며칠 전까진 자신 역시 일반인이었으니까.

아니, 지금도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 그런 헌터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적이 좋을 때는 재계약을 하지만, 실적이 없는 사람을 고액 계약하긴 어렵겠지요. 간혹 실적이 좋아 재계역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든지 재계약이 가능하지요.”

“흠, 알겠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자신은 평범한 일반인이다. 하지만 괴물을 두번이나 낚아 올린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블랙월드에서는 자신을 헌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아무튼 그렇게 블랙월드 쪽과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마당에는 언제 모여들었는지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준이 양만선을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하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총각! 잠깐만.”

“예?”

“총각이 우리 소현이 살려줬다면서?”

아, 맞다.

그 대학생 계집애.

물에 빠진 걸 건져줬었지.

"...?"

“소현이 아버지가 너무 고맙다고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해서 총각 모시러 왔어요.”

“아니에요. 그곳은 물도 별로 깊지 않고.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뭘.”

“우리 애들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요. 총각 아니었으면 우리 소현이 큰일 날뻔 했다고.”

“왜? 소현이가 언제 물에 빠졌어요?”

"예, 이 총각이 건져 줬데요."

“아이구야. 그런 일이 있었어?”

주변 사람들도 수근거렸다.

요즘들어 이 동네에서 자신의 입지가 점점 커졌다.

소문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칭찬이 자자하단다. 주변에 괴물을 낚아보려는 낚시꾼들이 많이 몰려서 장사가 잘 된다나. 하긴 지금 이 순간에도 백사장에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있으니.

“어제 밤에 동생과 같이 낚시 갔다가 빠졌다지 뭐예요. 어휴, 못 말리는 지지배. 저 총각 아니었으면 크게 사단이 났을 거예요.”

“아이구, 그래? 총각 참 대단한 사람이네.”

“같이 가요. 점심이 문제가 아니라 소현이 엄마가 은혜를 톡톡히 갚아야 할 것 같네.”

“정말 고마워요. 같이 가요?”

지나친 사양이 오히려 결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물에 빠진 걸 구해준 것도 사실이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녀의 집은 상준이 기거하는 곳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해안 전원주택이었고 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소현이와 성민의 부친은 본래 지역 출신인데 부산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면서 한번씩 이곳에 들러 텃밭도 가꾸고 낚시도 하며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하였다.

‘헐.’

그녀의 집에 도착한 상준은 몸둘바를 몰랐다.

차려 낸 음식을 보니 그냥 치레상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보답의 마음이 아니면 도저히 이렇게나 많은 음식과 다채로운 음식들을 정성스럽게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환대였고, 소현이의 아버지도 몇번이나 상준의 손을 잡으면서 두고두고 은혜를 갚겠다고 하였다.

그리 깊지도 않은 갯바위였는지라 조금 겸연쩍기도 했다.

딱히 많은 힘이든 것도 아니고 고생을 하며 건진것도 아닌데. 잠깐 뛰어들어 순식간에 건져줬는데 이렇게 보답을 하려고 하니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배가 찢어지게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뭐 남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상준은 계획성 없는 자신의 생활을 좀 더 체계적으로 꾸리기로 결심했다.

종이를 가져다가 나름대로 규칙을 정했다. 이렇게 밤마다 낚시에 시달리다가는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시간도 많이 불규칙하여 고민을 한 끝에 규칙적인 일정을 정하게 되었다.

* 주간 근무 : 화요일 ~ 토요일 까지 : 주 5일 근무.

* 주간 휴일 : 일요일 ~ 월요일 까지 : 주 2일 휴식.

* 출조 시간 : 오후 6시 ~ 다음날 새벽 6시까지(12시간)

참 자신도 낚시꾼이 다됐다.

주말을 휴식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딱히 나태해서가 아니라 신종 물고기를 잡겠다고 바다로 몰려드는 인파가 많아서였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낚시에도 불편이 많다. 그리고 월요일은 공적인 일처리를 위해 비워 두었다.

또한 쉴때는 적당한 운동과 선박 운행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험준비에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었다.

며칠 후.

상준은 보름달이 뜨는 파고가 잔잔한 밤을 택해 출조를 계획하였다.

괴물 어종이 잘잡히는 특별한 미끼가 없을까 고민을 해 봐도 바다낚시란 것이 사실 미끼는 한정되어 있었다. 새우 아니면 갯지렁이. 간혹 작은 물고기를 잡아 미끼로 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상 어류가 보통은 한정되어 있었다.

갯지렁이와 새우를 구입하여 채비를 완료하고 오후 6시가 가까워 오자 해안으로 나갔다. 오늘은 백사장에서 좀 떨어진 산기슭 갯바위로 장소를 정했다. 보통 달빛이 밝으면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소문 때문인지 주위에 밤낚시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유명세를 얻고나니 낚시를 할때 만큼은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오늘은 좀 많이 물어다오.’

상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갯지렁이를 끼운 낚싯대를 바다로 던져 넣었다. 주위엔 작고 큰 바위들이 물위로 많이 돌출되어 있었고 바위틈에는 미역이나 파래등과 바다 해초들이 많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려면 좀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 거짓말처럼 갯장어 한 마리가 힘차게 요동치는 모습이 보였다.

‘왔어? 벌써?’

등 뒤편 산그늘 탓일까. 물색이 제법 짙어서인지 일찌감치 반응이 온다.

다시 미끼를 바꾸어 막 바다로 던지려는데 약 30m 전방에 파도를 때리며 솟구치는 물고기가 상준의 눈에 띄었다. 아주 순간적이긴 했지만 범상치 않은 고기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설마 괴물고기일까?

아니. 바다 속에 괴물이 그렇게까지 많을리가 없잖아.

뛰어노는 물고기들의 생김새를 보고 있자니 가끔씩 아는 녀석이 언뜻언뜻 보였다. 요즘 물고기 관련 괴물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개중 일부가 책속에서 본 사진과 일치했다.

다시 건져 올려 조금 전에 고기가 뛰었던 바로 그곳에 정확히 던져 넣었다.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며 낚싯대를 쥔 상태로 그냥 서서 기다렸다.

‘하나! 둘! 셋! 좀 물어라 잡것들아.’

소식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낚싯대를 바위위에 걸쳐두고 담배 한가치를 빼어 물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는데. 적어도 제대를 할때 까지는. 본격적으로 담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몇번에 걸친 취업에서 낙방을 하면서였다.

군대 입대초기 훈련소에서 너무나 힘들 때 입영 동기의 권유로 몇개비 담배를 얻어 피운 것이 고작이었건만. 취준생이 되면서 이젠 제법 담배 맛을 알 정도로 골초가 되어간다.

낚시는 담배 맛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 같다.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두고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한개비 담배가 낚시의 심오함을 깊게 해준다.

‘어디 가버렸나? 분명히 봤는데?’

멀리 수평선에서는 꽉찬 보름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다시 릴을 거두어 조금 전에 올라왔던 작은 게르치의 몸통을 반으로 잘랐다. 바다에서 낚시를 할때는 갯지렁이 대신 가끔씩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쓰는 것도 괜찮을 때가 있다.

이게 의외로 다른 물고기들의 반응이 좋을 때가 있다.

토막난 게르치를 바늘에 꿰어 바다에 던져 넣었다.

“야! 너네들 다들 어디 갔냐. 제발 한번만 물어줘 좀.”

낚시가 안되서 머리가 미쳐가는 것 같다.

혼자 투덜거리다 중얼중얼 거리면서 두팔을 하늘로 쭉 뻗었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뭔가 물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그 때 기가막히게 반응이 왔다.

"슉."

“오! 왔다.”

잽싸게 챔질하여 릴을 감았다.

드르르륵 소리와 함께 릴이 역 방향으로 실을 죄이면서 풀려나간다.

낚싯대가 요동을 치며 걸린 고기가 물위로 튀면서 발버둥을 쳤다.

상준은 입술을 꽉 다물며 양팔에 힘을 주었다.

놈의 발버둥은 상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달리게 한 후에야 겨우 진압되어 끌려 나왔다.

“어?”

그냥 물고기가 아니었다.

또 괴물고기다. 크기는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신비한 보석을 몸속에 내장하고 있다는 바로 그놈이다.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이 넓은 대해에서 남들은 잘 잡아올리지 못하는 괴물을 세번째 잡아올린다고?

기적같은 상황에 소름이 돋는다.

블랙월드 양만선이란 사람의 명함을 꺼내어 전화를 하려다 그만 뒀다.

채비를 챙겨 자취방으로 철수했다.

‘이건 또 얼마짜리지?’

일단 밝은 곳에서 낚시통 뚜껑을 열었다.

꼭 메기처럼 생긴 것이, 물표면에 뛰어다니던 그 물고기와는 다른 종이었다.

상아와 비슷한 두개의 이빨이 멧돼지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껍질은 우둘투둘 상당히 징그러웠다.

일단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후, 한손에 고기를 쥐고 자신의 얼굴을 담은 셀카를 찍어 인증샷을 박았다.

기분이 째진다.

곧바로 괴물 고기책을 펼쳐 찾아보았다.

바다에 서식중인 몬스터 항목에서 몇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괴물아귀].

큰 놈들은 여러 개의 희귀 원석을 진주처럼 품고 있으며, 고기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효능을 보니 관절염과 혈압에 특효약이라 적혀 있었다. 벌써 학자들 사이에서 꽤나 연구가 진행된 괴물인 모양이었다.

‘나 진짜 미쳤나? 이거 우연 맞나?’

모르겠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 하던데?

정말 자신에게 신기한 힘이 있나 의심하게 된다.

아, 잠시만.

지금은 이런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일단은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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