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못 말리는 남매(1)
* * *
“이거 우리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어허? 왜 자꾸 이래.”
“엄마가 주라고 한거예요. 엄마가.”
“....?”
“아, 팔 아프다. 안 받으실 거예요?”
쟁반을 받아 판 위에 올려놓고 옆집 아주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여자애의 얼굴과 비교해보며 옆집 아주머니가 누군지를 생각했지만 생김새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난 탓일까. 일단은 이웃 주민이 애써 차려 보낸 걸 거절하기가 애매했기에 받아먹기로 결정했다. 마침 배도 고프던 참이었고.
엉겁결에 저녁을 얻어먹고 바깥을 내다보니 아직 어두워지려면 꽤나 시간이 남은 것 같았다. 지난 동절기에 비해 벌써 낮이 많이 길어졌나 보다. [소형선박조종사면허증]과 [헌터 자격증]과 관련된 책을 보고 있는데, 문틈으로 남자 아이 하나가 보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 하나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힐끔힐끔 이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저놈인가 보네. 방금 그 애 동생이란 놈이.’
신경 쓰인다.
허나 신경쓰지 말자.
아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젠장. 오늘 밤낚시는 종친 것 같은 기분이다.
어둡기 전에 적당한 터를 잡고 준비를 해야되는데. 위험한 곳일수록 지형 파악이 더욱 중요하거늘. 방금 그 여자애와 여자애의 남동생이 자신을 놓아줄 생각을 하질 않는다.
딱 봐도 자신이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낚시로 유명세가 생겨서.
'동생은 또 그렇다고 치고 저 여자 애가 내게 관심이 있나?'
'그렇다면 한번 따 먹고 말까?'
‘끙. 할 수 없다.’
결국 상준은 그들 남매를 떼어 놓는데 실패했다.
오늘은 지형을 잘 아는 진호 해수욕장 끝에 위치한 갯바위 터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이 갯바위는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는 곳이다. 지난 번 해일 때 죽을 뻔한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후.’
음력 날짜를 모르는 상준이지만 달을 쳐다보니 곧 보름달이 되리란 건 알 수 있었다. 갯바위 아래 백사장에 거머리 남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꽤나 독한 녀석들이다. 하긴 자신이 바다를 전세 낸 것도 아니긴 하지만. 멀리서 보니 두 사람이 던진 야광찌의 불빛이 찰랑찰랑 파도를 따라 숨었다 나타났다 춤추고 있었다.
“꺅! 물었다.”
“오? 크냐?”
“에이. 완전 작은데? 네 꼬추처럼.”
“설마. 누나 가슴 크기만하겠지?”
“뒈질래?”
남매의 킬킬거리는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상준의 귓가를 때린다. 괜히 자신이 낚을 고기를 빼앗기고 있는 기분이다. 커다란 상현달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앉아 무작정 기다렸다. 애송이 놈들이 작은 거 몇 마리 잡았다고 좋아하기는. 낚시는 인내심이라고 인내심. 이 형님이 진짜 물고기가 어떤 건지를 보여주마.
휴대폰을 살펴보니 어느 듯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쪽 바다는 항상 이 타이밍이 되면 물고기들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대감을 가지고 미끼통을 뒤져서 노래기를 움켜쥐었다. 징그러운 녀석이지만 장갑을 끼고 있기에 괜찮다. 여태껏 괴물을 낚을 때마다 노래기를 미끼로 썼었다. 바늘에 끼워 그대로 바다로 던졌다.
“오!또 물었어.”
“나도, 나도 물었어.”
남매의 환호를 들어보니 꽤나 많은 고기를 잡은 모양이다. 하지만 상준의 낚싯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잡았던 그 시간대가 훨씬 지났는데도 소식이 오질 않았다. 옘병. 이게 다 옆에서 낚아채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다른 노래기로 미끼를 바꾸어 꿰어 봤으나 계속해서 감감 무소식이다.
‘이게 아닌가? 신종 괴물이 노래기를 잘 노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상준도 아직 괴물을 낚아 올리는 특별한 비법을 알지 못했다. 사실 낚시 자체가 운칠기삼(?七?三)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래기가 제 성과를 내지 못하니 힘이 쭈욱 빠졌다.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연이었던 걸까. 역시 낚시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취업준비나 해야 하나? 역시 받아준다는 회사가 있을 때 들어가는 게 나을려나? 머리가 복잡했다.
“오! 큰데? 이게 뭐지?”
“야 너! 신종 칼복 잡은 것 아냐?”
“....?”
상준은 순간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뭘 잡아? 칼복? 설마 이 녀석들 칼복을 잡아 올린건가? 황급하게 고개를 들어 애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다. 불빛에 비친 것을 보니 칼복이 아니다. 마치 속은 듯한 기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망할 꼬맹이들이 도움이 안된다. 저건 분명 망상어다.
“요런 신종도 있냐?”
“없지. 이건 망상어야.”
확실히 갯가 출신의 아이들이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의 입에서 여러 종의 물고기 이름이 그렇게 쉽게 나올 리가 없다. 다만 칼복이라는 이름을 꺼낸 것 만큼은 의아스러웠다. 이 녀석들이 일부러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려고 했던 걸까.
‘끙. 신경끄자. 제발 신경끄자.’
이제 노래기도 없고 다시 갯지렁이를 바늘에 꿔어 있는 힘을 다해 바다 멀리 던져 넣었다. 그런데 그 때 옆쪽에서 불쑥하고 무언가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집에 산다는 그 아가씨였다. 상준은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눈길을 바다로 보냈다.
“좀 잡았어요. 아저씨?”
“...?”
“고기통 좀 봐도 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벌써 상준의 고기통 뚜껑을 열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말괄량이다. 물론 하는 짓이 그다지 밉지는 않다. 낚시에 따라와서 귀찮게만 안한다면 적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이 바닷가 동네에 지인을 좀 만들어 둔다고 해서 딱히 나쁠 건 없으니까.
“에게게. 한 마리도 없네? 잘 안돼요? 우린 벌써 여러 마리 잡았는데. 에헤헤헤.”
“야. 어른을 놀리냐?”
그때였다. 상준의 낚싯대가 휘청하면서 파란빛 야광찌가 물속 깊숙이 자취를 감추었다. 상준이 신음을 내뱉으며 휘청하는 낚시대를 움켜쥐었다. 왼손으로 대를, 오른 손엔 릴을 쥐고 휘청거리듯이 줄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고기가 좌우로 요동을 친다. 손맛이 끝내준다.
“우와! 큰 것 같은데요?”
탄성을 뱉어내는 여자아이.
상준은 천천히 손맛을 즐기며 멋진 포즈를 취해가며 천천히 줄을 감아 올렸다. 거 봐라. 내가 누군데. 니들은 아직 멀었다. 낚시라는 건 잔챙이 몇 마리 잡고 좋아하는 게 아니란다. 이 오빠가 진짜배기의 맛을 보여주마.
“오, 아저씨. 포스 보니 초보는 아니네요? 헤헤.”
상준이 잡아 올린 고기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자미였다. 괴물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은 실망이 되었으나 뭐 나쁘지는 않다. 여자애가 보는 앞이라 여유를 부리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누가 말했던가. 낚시꾼은 허세를 먹고 산다고.
“에이, 별로 크지도 않네.”
“예? 아저씨, 이 정도면 충분히 대물이죠.”
“글쎄다. 하도 큰 걸 많이 잡아봐서 딱히 감흥이 없네.”
물론 개구라다.
하지만 허세 좀 떨면 뭐 어떤가.
이래봬도 괴물을 낚아 올린 사람인데.
“성민아. 성민아.”
“왜?”
“응, 너 낚싯대 챙겨가지고 이리 올라와.”
엥?
“거기 가도 돼?”
“응, 여기 자리 있어.”
“....?”
잘난 척 좀 했더니 곧바로 발목이 잡힌다. 자신이 낚아 올린 가자미를 보더니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시부럴.
결국엔 이럴 거 같더니만. 결국 두 남매는 상준이 낚시하는 바로 옆에 붙어 앉아 생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끙. 너무 가깝잖아. 이봐요 아가씨. 저쪽으로 조금만 가지?”
“뭐 어때요. 방해만 안하면 되잖아요.”
“응, 방해가 돼서 하는 말이야.”
“우리 누나 아가씨 아닌데. 학생인데?”
“저 아저씨가 늘 나보고 아가씨래. 요즘 시대에 아가씨가 뭐야, 아가씨가.”
‘그래 나 구닥다리다.’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참았다.
어린것들하고 싸우면 골만 아프다.
점잖게 헛기침을 한후 입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말상대나 삼지 뭐.
“동생 이름이 성민이라고 했나? 백사장에서 뭐 좀 잡았어? 아까 칼복 어쩌고 하던데.”
“보리멸 몇마리에 조그마한 성대 한마리. 아참, 망상어도 한마리 잡았죠.”
“커?”
“아뇨. 조그마한 거.”
상준은 속으로 웃었다.
조금 전까지 큰 소리 쳐대더니.
뭘 그까짓 것을 가지고 난리냐.
“낚시는 자주 와?”
“전에는 아버지랑 자주 다녔는데 고등학교 진학하고부터 자주 못 해요. 하필이면 학교가 부산에 가 있거든요.”
“그래? 그럼 공부하러 유학 간 거네. 공부 열심히 해.”
그런데 그때였다. 다시 상준의 낚싯대가 휘청했다.
요동치는 상준의 찌를 보았는지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소리를 질러 댔다. 상준이 태연을 가장하며 떨리는 낚싯대를 진정시키며 노련한 킬러처럼 유유히 고기를 건져 올렸다.
여대생 아이가 달빛을 받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꺄악! 아저씨,멋있어요.”
“흥. 아까는 구닥다리 취급하더니만 뭘.... 어라?”
“어?”
흔들리던 낚싯대가 힘없이 딸려 나온다. 어쩌면 칼복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그만 고기가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오, 시발. 방금 전까지 온갖 똥폼을 다 잡았는데 쪽팔리게. 아니,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세 번째 입질이 왔다. 달빛을 받은 바다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번엔 안 놓친다.”
상준은 다시 힘을 주어 릴을 감아 올렸다. 물고기의 거친 저항에 릴이 순조롭게 감겨지지 못하고 터덕터덕 파열음을 내며 흔들거렸다. 대물이 확실했다. 한손으로 뜰채를 쥐고 다른 손으로 낚싯대를 하늘로 치켜들면서 물고기의 꼬리 부분을 그물망 안으로 집어넣었다. 쾌감이 등줄기를 따라 짜릿하게 전해져 온다. 그래, 이 맛이다.
“오우.”
“우와, 크다.”
두 사람이 흥분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확실히 구경꾼이 있으니 평소와는 달리 이런 재미가 있다. 건져 올린 물고기는 예상했던 대로 역대급 크기의 농어였다. 갯바위에 올렸는데도 여전히 퍼덕이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동생이 두 손으로 농어를 들고 누나 소현에게 보여주자 소현이 휴대폰을 꺼내 그것을 촬영했다. 어두워서 제대로 촬영도 안될텐데.
“야, 누가 이사진 보면 네가 낚은 줄 알겠다.”
“헤헤, 그렇게 보여요? 그럼 오히려 더 좋죠.”
“누나 이 고기 들고 거기 서봐.”
남매는 남이 잡은 고기를 들고 생쇼를 하고 있었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그냥 냅두기로 했다. 어찌됐건 대물을 잡아 올린 탓에 기분도 좋다. 물론 대물이 아니라 괴물을 잡아올렸으면 기분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그건 행운같은 거였으니까.
“이렇게?”
“좀 더 뒤로.”
“꺄악!”
풍덩.
“어? 누, 누나.”
“꺄아악! 살려주세요! 우웁.”
바위에 미끄러져 바다에 빠졌다. 동생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상준이 하는 수 없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이래봬도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갯바위 바로 아래쪽은 해수욕장 옆이라 그리 깊지도 않지만, 어두운 탓인지 허우적대며 물을 먹고 있다. 여학생이 두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댄다.
“조심해! 야! 네 누나 당겨.”
상준이 여학생의 엉덩이를 밀어 갯바위로 던지다시피 밀어 올렸다. 동생이 앞에서 당겨 올리자 어떻게 간신히 해결이 났다.
두 사람 다 정신이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사이에 상준도 물위로 올라왔다. 여자 아이는 창피스러운지 다 젖은 옷을 손으로 쥐어짜며 괜히 더듬거렸다.
“아, 아저씨. 고마워요.”
상준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문지르며 낚시가방을 열었다. 담배 한가치와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가스네가 까불더니 결국 물에 빠져서 사람을 생쥐꼴로 만들다니.
아니, 자신도 어릴 때 물에 빠져봐서 안다.
밤바다에 떨어지는 경험은 꽤나 무서웠을 것이다. 딱히 고의도 아니었으니 이해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이때 피우는 담배 맛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준은 더 이상 낚싯대를 던지지 않고 그냥 바다만 바라보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들갑을 떨며 야단법석을 하던 남매는 창피한 모습을 보인 탓인지 말수가 줄어들어 있었다.
“저기, 아저씨. 춥지 않으세요?”
“난 괜찮으니까 네몸이나 잘 말려.”
“옷도 다 버렸는데. 더 하실 거예요?”
“그만해야겠지.”
상준이 장비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매도 뒤를 따랐다. 뭔가 묘한 인연 하나가 생겨버렸다. 물에 쫄딱 젖은 것 치고는 파도소리가 꽤나 운치가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데 상준의 이러한 일거 수일투족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명의 사내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