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신종을 잡았다(1)
* * *
상준은 몸에 힘이 풀려 낚시의 의욕을 잃어 버렸다. 방에 드러누워서 허망한 표정으로 천장을 처다보고 있었다.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기회를 이렇게 놓치게 된것 같아 어이가 없고, 답답하고, 자신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아니, 그게 물고기가 아니라 신종 몬스터 중 하나였다고? 30만원을 벌어서 기쁘던 마음도 바닥까지 추락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의 기회는 있다고 하던데. 그걸 이딴식으로 놓치다니.’
배가 고파서 뒈질 지경이더니 식욕이 떨어져 온 몸에 기운이 다한 것 같았다.
땅바닥에 엎드려서 거북이 흉내도 내보고 고양이 흉내도 내보고 개처럼 빌빌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다.
고작 이까짓 일로 좌절하지 말자.
불과 얼마 전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맹세했지 않았던가.
게다가 오늘도 좀 벌지 않았는가?
“하, 인생.”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는 살아야 하겠기에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가니 답답하던 스트레스도 조금씩 옅어졌다. 낚시가 이래서 좋다.
흐르는 해류와 동동 떠있는 찌를 바라보고 있으면 웬만한 짜증 따위는 몽땅 날아가 버리니까.
잡히는 고기는 주로 노래미와 모래무지, 게르치 등이 고작이었다. 이제 낚시를 나갈 때면 밥을 준비하고 초장과 쌈장을 가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바닷가에서 먹는 밥은 맛이 유달리 맛있다.
뭘 먹어도 꿀맛처럼 느껴지는게 일상처럼 되버렸다.
‘그건 그렇고 쓸 만한 놈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작은 물고기는 그렇다 치고.
씨알 굵은 놈이 물 생각을 안한다.
오늘 낮엔 푹 쉬고 저녁쯤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 자갈을 한참동안 파헤쳐서 갯지렁이 몇마리를 겨우 잡았다.
이것 역시 어릴 때 아버지께 배운 것이었다.
‘이정도만 하면 하룻밤은 쓰겠지?’
미끼통을 들고 낚싯대를 들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지네를 닮은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노래기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그 괴물녀석을 잡을 때 사용했던 미끼도 노래기였다.
'그래, 이거다.'
상준은 미끼통에 노래기를 잡아 함께 넣었다.
도구를 챙겨 썰렁한 방으로 되돌아온 후 TV 스위치를 켰다.
몇몇 연예인들과 개그맨들이 나와서 토크쇼를 하고 있었다.
“풉! 큭.”
자신도 모르게 티브이 화면에 몰입되어 따라 웃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화면 아래쪽에 자막 한줄이 흘러 지나갔다.
인산 해양박물관 아쿠아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신종 괴물이 폐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잠시만?
자신이 잡은 괴물 녀석이 그 사이에 죽었다고?
진짜로?
‘아, 진짜 저거 한 마리만 더 잡으면 소원이 없겠네.’
상준은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는 칼복이라고 이름 붙인 괴물고기와 한판 사투를 벌이다 눈을 떴다.
아니, 잠이나 처자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녁 시간이 제법 흘러갔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 라면 하나를 얼른 해치우고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낚시는 시간을 잘 잡아먹는다.
수평선 가까이 여러척의 어선들이 불을 밝힌 채 고기잡이에 한창인 것 같다.
최근들어 낚시꾼들이 늘어난 것 같은데 착각인가?
낚싯배를 빌려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아마추어 낚시꾼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언젠가 자신도 저런 배를 구입하여 낚시를 할 생각을 해본다.
아니, 배 값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론 무리겠지만, 정 안되면 배를 빌려서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자신이라고 맨날 해안 갯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잔챙이 고기만 잡으란 법이 어디에 있겠냐고.
일단 취업한 뒤에 여유가 좀 생기면 소형 선박조종 면허라도 하나 따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갑자기 줄이 휘청하더니 낚시대를 통째로 끌고 간다.
깜짝 놀라 잽싸게 낚싯대를 낚아채고 릴을 감는다.
손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끌려오는 물고기가 어떤 건지는 알수없지만 좌우 10 m정도를 갔다 하면서 상준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하루 종일 허탕을 쳤는데 드디어 대물이 걸려든 것 같다.
악착같이 줄을 감으며 손맛을 음미했다.
‘오! 농어.’
철이른 농어가 걸려들었다.
제법 큰 놈이었다.
여기에 잔챙이 몇 마리만 보태면 오늘 밤낚시는 허탕은 아니다 싶었다.
원래 물이 들어올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급하게 다시 미끼를 끼우려 갯지렁이를 뒤지는데 갑자기 낮에 잡아둔 노래기가 눈에 띄었다.
‘저걸 한번 더 써볼까?’
다시 릴을 바다에 던져두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야광찌의 파란 불빛이 오늘 밤 따라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집중력을 유지한 채 찌를 보고 있는데 신호가 왔다.
깜박, 깜박거리던 찌가 거짓말처럼 꿈틀거렸다.
그 순간 자신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부르르.
드디어 찌가 물속 박히면서 초릿대가 춤을 춘다.
당황하지 않고 왼손으로 낚싯대를 움켜쥐고 낚싯대 손잡이를 자신의 배에 붙인 채 조용히 릴을 감기 시작하였다.
낚싯대를 잡은 왼쪽 손에 진동을 느껴지면서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은 필시 대물을 부른다.
30여분의 사투 끝에 물고기가 끌려올라왔다.
대물과의 사투에서 드디어 승리의 쾌감을 맛보았다.
“어?”
맙소사, 이럴 수가. 이건 그 때 그 녀석이다.
자신이 칼복이라고 이름을 붙인 신종 괴물. 뾰족한 주둥아리와 복어를 연상케 하는 둥근 몸뚱아리.
상준은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바다를 향해 한바탕 소리를 내지른 후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번 것보다도 훨씬 큰 놈이었다.
적어도 3 Kg는 될 것 같다.
심장이 쿵쿵쿵쿵 뛰기 시작한다.
자신의 운발이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고기통에 물을 한가득 채우고 뜰채에 담긴 칼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담고는 장비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잡은 물고기만 들여다보다가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시장에서 팔아? 미친 소리지. 이건 경매를 붙여야 돼.’
이번에도 병신짓을 해버릴 순 없다.
자신이 비록 낚시를 하고 있는 취준생에 불과하지만 머리까지는 멍청하진 않다.
날이 밝자마자 아침을 대충 먹고 생각했던 바를 실천에 옮겼다.
곧바로 방송국에 특종 제보 전화를 때렸다.
“네, KBN 홍보팀장 공정희입니다. 어떻게 전화하셨습니까?”
“특종이 있어서 제보를 하려구요.”
“특종! 무슨 내용인데 특종이라 하세요? 실례지만 성함이?”
“연상준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칼복을 잡은 사람입니다.”
“칼복이요? 그게 뭐죠?”
“아, 칼복은 제가 이름을 붙인건데. 지난번에 방송에 나온 그 괴물을.”
모든 설명을 듣고 난 홍보팀장 공정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설마 그 신종 괴물을 잡아올려 팔아치웠던 당사자가 이 남자라니. 게다가 똑같은 괴물을 한 번 더 잡았다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확실히 특종이다.
커다란 헛숨을 들이키며 곧바로 자신의 전화번호부터 불렀다.
지금 신종 몬스터는 세상의 주요 관심사였다.
“세상에! 정말요? 죄송하지만 인증 샷 좀 보내주실 수 있나요?”
“아, 제가 스마트 폰이 없거든요.”
“예? 그럼 조금 곤란한데.”
자연스럽게 식어버리는 흥분상태.
아니,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도 꽤나 있어 보이는데, 최근 들어 워낙에 거짓 제보가 많다보니 의심부터 하게 된다.
언론사에서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심병이다.
딱히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거다.
아무튼 상준은 여자의 음성에서 묻어나오는 의아함을 알아차리고 심화통이 났다.
“좌우간 오늘 오전 10시, 인산 농수산물센터 어판장에서 경매가 열릴 거예요. 그럼 오시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전 이만.”
“자, 잠깐만요!”
전화를 끊은 상준은 혼자서 한바탕 투덜거렸다.
뭔가 괜히 짜증이 난다.
아, 이건 절대로 스마트 폰이 없어서 투덜거리는 게 아니다. 그냥 기분이 더러워서 투덜거리는 거다.
젠장. 속고만 살았나. 전화 건 사람 무안하게.
해양박물관 몇곳과 아쿠아리움 몇곳에도 똑같이 제보했다.
상준의 생각은 적중했다.
모 방송국 기자가 만반의 준비를 해서 나와 있었고 경매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더구나 신종 괴물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설마 저 사람인가?”
“뭐야. 생각보다 어리잖아.”
“대학생인가?”
“저기. 연상준씨 맞으시죠?”
“KBN의 김진철입니다. 죄송하지만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신종 괴물을 한번 더 잡으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뭐 그런셈이죠. 자세한건 조금 있다가 설명드릴게요.”
일단은 취재에 응하지 않고 가볍게 지나쳤다.
말을 아끼면 아낄수록 경매에서의 주목도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이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어판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도 대거 등장했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다.
자신의 심장 박동소리가 들리는 걸 느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신종 괴물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은 2천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카메라가 도는 가운데 갖가지 수신호가 오고간다.
다행히 사회자가 있어서 상준도 가격을 알 수 있었다.
“자, 5천 나왔습니다. 5천 더 없습니까?”
“6천! 6천이 나왔군요.”
“7천! 저기 8천! 8천 5백! 9천! 9천 5백.”
“1억! 오, 1억 2천! 1억 2천 더 없습니까?”
“1억 3천.”
상준은 심장이 쿵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가격이 순식간에 1억 3천까지 뛴다.
맙소사,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정말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고?
볼을 꼬집었더니 더럽게 아픈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그래, 이건 꿈이 아니다.
그 사이에 1억 5천이 나오더니 결국 낙찰이 됐다.
크으! 돌아버리겠다. 싱글벙글 올라간 입 꼬리가 도저히 주체가 안 된다.
방송국에서 녹화를 하는지 경매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지껄여댔다.
한참만에 자신에게 취재를 요청한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연상준입니다.”
“네, 낚시꾼 연상준씨. 원래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대학교를 졸업했구요. 지금은 취준생입니다.”
“취준생이라면?”
“취업 준비생 말입니다.”
낚시꾼들의 입에서 부러움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고작 이십대 애송이가 낚시로 괴물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의 표정과 시선에 부러움이 한껏 묻어나온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뭉개뭉개 들뜬다.
내일이면 자신이 칼복을 끌어올린 바닷가 전체가 낚시꾼들로 가득 찰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저 고기 이름을 무엇이라 했지요?”
“저는 칼복이라 부르기로 정했습니다.”
“그래요? 칼복이라 부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 머리는 갈치와 비슷하고 몸통은 복어와 비슷하여 갈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갈치를 방언으로 칼치라고 부르기 때문에 칼복이라 정했습니다.”
만인 앞에서 괴물의 이름이 밝힌 순간이었다.
최초 발견자에게는 괴물의 이름을 붙일 권한이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헌터들이 자신이 발견한 괴물에 본인의 이름 혹은, 본인이 붙이고 싶은 이름을 붙이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대로 역사책에 남게 되는 거 아닌가.
“어디서, 어떻게 잡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상세한 건 곤란하구요. 그냥 낚시하다 우연히 잡았습니다. 하도 취업이 안되고 번번히 면접에서 떨어져서 기분도 겸 낚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번 괴물, 아니 저번 칼복도 연상준씨가 잡으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전 낚시 초보라 아무것도 모르고 고작 30만원에 넘겼었죠.”
살짝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당연히 바라보는 대상은 그때 그 아저씨다.
어쩌면 그 사람은 칼복의 진가를 알아봤을지도.
사람이 이토록 간사한 생명체인 모양이다.
그땐 고맙더니 지금은 무척도 얄미운 걸 보면.
“정말 놀랍군요. 신종 괴물을 두번 연속으로 잡아 올리시다니. 이건 서식지가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100만원밖에 못 받으셨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제가 어리석었죠. 하지만 한 번 더 낚았으니 이젠 상관없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신종 물고기를 잡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죠.”
취재진의 요청에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도 취해보였다. 손가락을 들어올리는데 이제야 자신의 인생에서 볕이 드나 싶었다. 굳이 국가에서 공인한 헌터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죽은 괴물의 사체를 발견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 경우 괴물의 뱃속에 내장되어 있는 보석과 괴물의 가죽, 고기, 뼈 등등으로 인해 로또에 당첨된 것과 마찬가지의 수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괴물의 사체를 찾아 헤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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