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2화 (2/225)

〈 2화 〉 처음 보는 어류(1)

* * *

봄이라지만 해변은 아직 쌀쌀했다.

"젠장."

추워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왕 깬거 아주머니가 일러주신 해수욕장을 지나서 갯바위에 올랐다.

일단은 갯지렁이를 꿰어 바다로 던졌다.

낚시를 할 때는 잡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좋다.

취업 고민도, 연희와의 이별도, 당장에 먹고사는 걱정도.

물론 어디까지나 현실도피다.

얼마가지 않아 신호가 왔다.

‘그렇지, 드디어 올게 왔구만?’

릴을 감는 손이 짜릿하다.

아니, 일을 감았으나 의외로 별다른 감각이 없었다.

쬐그만한 고기 한 마리가 걸려 올라온다.

보리멸이란 물고기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동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해를 보며 스스로 기분을 조절해 본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출의 광경은 언제봐도 기가 막힌다.

자신도 모르게 긷ㅎ를 해 본다.

제발, 취업 좀 하게 해달라고.

'시발.'

'그래. 태양은 매일 뜨고 있잖아? 어차피 인생도 칠전팔기 아니겠어?'

물론 이대로면 여덟번이 아니라 팔십번이라도 도전해야 될 것 같다.

이래서 낚시를 좋아한다.

시원하게 부는 바닷 바람이 좋다.

고민조차 잊어 먹게하는 파도 소리도 너무나 좋다.

마치 바다가 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좋다.

그때 다시 거짓말처럼 입질이 왔다.

이번엔 고삐리였다.

반들거리는 것이 제법 예쁘다.

연거푸 몇마리를 낚아 올렸다.

‘아, 배고파. 내가 밥을 언제 먹었지?’

어제 저녁은 확실히 굶었다.

자신이 언제 식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보라의 집에 가려던 그날 낮에는 뭘 좀 먹긴했는데?

엄청나게 허기가 진다.

잡아 놓은 물고기를 보니 입에 군침이 돈다.

일단 잡은 놈을 씻어 살점을 대충 발라냈다.

크진 않지만 몇점 정도는 나올 것 같다.

먹으려니 초장이 없다.

‘바닷물에 씻었으니 간은 되겠지 뭐.’

혓바닥에 놓고 음미하듯이 삼켰더니 꿀맛이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것 같다.

먹는 김에 남은 물고기를 모두 다 회를 쳐서 모처럼 식사를 즐긴 셈이다.

밥하고 초장만 있으면 딱인데.

그래도 파도 소리를 즐기며 생선의 육질을 마음껏 즐겼다.

혓바닥을 밀어내는 감칠맛이 좋다.

누가 대체 회맛을 초장맛이라고 했던가?

다음 날도 큰고기는 잡지 못했지만 도다리 몇 마리와 우럭 몇마리, 그리고 아주머니가 말했던 감성돔 몇 마리를 건져 올렸다.

이게 원래 손쉽게 잡히는 녀석들이 아닌데, 지자체에서 치어를 방류한 탓인지 간혹 한 마리씩 올라온다.

그런 것 치고는 자신의 주변에 다른 낚시꾼이 없어서 좋았다.

애써 살려뒀더니 횟집에 넘겨 약간의 현금이 들어오게 되었다.

스트레스도 풀고 돈도 벌고 나쁘지 않다.

일단 낚는 데는 소질이 있어서 넙죽넙죽 잘 잡았다.

손아귀에 현금이 들어오니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모처럼 식당에 들러 뜨뜻한 국물이 있는 저녁을 먹고 밤 낚시에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다.

밤 낚시에는 운이 좀 좋았다.

제법 큰 장어 두마리와 광어를 낚아 올렸다.

자정이 지나가자 어느 때부터 소식이 없어 칠흙 같은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거린다.

엄청나게 큰 불덩어리.

‘어? 설마 저거? 유성?’

유성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마치 불꽃놀이처럼 섬광이 폭발한다.

하늘이 통째로 쏟아져 내리며 번쩍하는 섬광이 해수욕장 앞 바다를 내리친 것 같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간이 철렁한다.

간 떨어진다는 말이 이런 거였다.

대지가 진동한다.

자세히 보니 산더미 같은 거대한 파도가 자신이 앉아 있는 진호 해수욕장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쓰, 쓰나미!? 씨바아아알!’

상준은 낚싯대와 낚시통을 부둥켜안고 갯바위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건 놓칠 수 없다.

짧은 순간 거대한 파도가 상준을 덮쳤다.

기겁을 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대로 파도에 휩쓸렸다.

이게 뭔 미친.

머리속엔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갔고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도 잠시 떠올랐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친 연희의 얼굴도 희미하게 보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시발.'

그대로 의식을 잃어 버렸다.

*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눈을 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골이 띵하고 전신이 통증으로 움찔거린다.

정신을 추스르고 주변을 살펴보니 해수욕장에서 100미터 가량 밀려난 언덕배기였다.

어이가 없었다.

설마 여기까지 떠밀려 온 건가?

날은 점차 밝아오는데 해수욕장 주변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스쳐간 해일에 모든 것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참! 내 낚싯대? 낚시통?’

다행이었다.

그것만 꼭 끌어안고 있었는지 바로 자신의 앞에 둥그러니 놓여 있다.

낚시통을 끌어안고 있었던 덕분에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마을로 돌아오니 해일로 인해 동네가 꽤나 시끄러웠다.

방송국 카메라도 몇대나 보이고. 그 와중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반색을 하며 반겨주었다.

그때 만났던 그 아주머니다.

“총각! 난 총각이 큰일을 당했나 했네. 어디에 있었어? 밤낚시 안했어?”

“예, 밤낚시 하다가 쓰나미에 휩쓸렸는데, 용케 살았어요.”

“진짜로? 아이구, 다행이네 정말. 총각 걱정되서 방금전까지 걱정을 많이 했거든.”

본인이 해수욕장과 갯바위를 소개시켜줬으니.

괜히 휩쓸리지 않았는지 걱정하셨던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주머니 방 있어요?”

“방? 갑자기 왠 방? 방 잡으려구?”

“밖에서 잤더니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요. 하루에 얼마에요?”

“하루에 2만원. 한달 쓰면 20만원이야. 아니, 총각한텐 더 싸게 해줄게. 하루에 만원, 한달에 10만원 어때?”

엄청나게 싸다. 이 정도면 거의 거저먹기다.

그렇다고 해도 돈이 조금 들어왔는데 방잡자고 몽땅 다 써버리긴 좀 그랬다.

조만간에 취업을 하러 자취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아직은 며칠 정도 더 낚시를 하며 즐기고 싶었다.

쓰나미에 휩쓸렸지만 그게 딱히 지진으로 인한거도 아니고. 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긴 단발성 해일이 아닌가.

“음, 그러면 일단 일주일만 쓸게요. 방값은 후불로 할게요.”

“후불? 간혹 방세 떼먹고 도망치는 놈들이 있어서 선불을 받아야 하지만. 뭐 총각 인물 보니 그럴것 같지도 않고. 파도에 휩쓸렸다고 하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방으로 들어와보니 TV에서는 종일 진호해수욕장 쓰나미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기 힘든 꽤나 거대한 쓰나미. 사망자는 없었지만 다친 사람은 꽤나 있었다.

주변의 가옥 몇채도 쓰나미에 밀려 파손되었다고 한다.

뉴스의 내용 대부분이 해수욕장 주변에서 일어난 피해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원인은 리히터 규모 2.2 정도의 약진이라고 설명중이었다.

해안과의 거리가 가깝고 지표면 얕은 곳에서 발생되어 해일의 피해가 크다고 하였다.

‘지진은 무슨. 운석이 대놓고 떨어지던데?’

그 거대한 걸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못 봤다고?

신기한 기분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누가봐도 볼만한 상황이었는데. 모두가 이번 쓰나미를 지진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뭐 자신과는 별 상관없다.

그나저나 최근에 운석 가격이 그렇게 비싸게 측정되던데. 진짜 장비만 있으면 꺼내오고 싶다.

뭐 물속에서 그걸 찾아내려면 개고생을 하겠지만.

다음 날 상준은 질리지도 않고 해수욕장에서 좀 멀리 떨어진 바닷가로 나갔다.

해수욕장 주변은 사고 난 이후 복구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낚싯대를 담궈서 광어 몇 마리를 잡아놓고 더 이상 입질을 하지 않아 멍하니 담배만 피고 있는데 갯바위 아래 꼬물꼬물 노래기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지네랑 비슷하게 생긴 절지동물인데 습한 곳에 많이 보이는 녀석이다.

‘저놈을 잡아다 미끼로 써볼까?’

물고기들은 보통 벌레라면 환장을 하지 않는가?

장갑을 끼고 노래기를 잡아다가 낚시 바늘에 끼워 바다로 던졌다.

준비한 갯지렁이에 더 이상 소식이 없자 엉뚱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낚싯대가 크게 요동치면서 무엇인가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낚싯대를 낚아채자 손맛을 느낄 정도로 요동을 쳤다.

종전 광어를 올릴 때 하고는 무엇인가 손맛이 달랐다.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부지런히 끌어 올렸다.

묵직한데도 오늘 따라 희한하게 팔에서 힘이 넘친다.

노숙을 하다가 방을 잡고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고기야?’

뜰채에 잡힌 물고기는 상준이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희귀한 물고기였다.

크기는 꽤나 괜찮은데 생전 처음보는 녀석이었다.

'아, 감성돔이면 좋았을텐데?'

재수가 더럽게도 없다.

모처럼 손맛다운 손맛에 잠시 흥분을 했었는데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 탓에 적잖이 실망했다.

주둥이는 꼭 갈치같이 생겼는데 몸통과 꼬리는 복어 모양이다.

번들거리는 피부가 괘상하게 생겨 먹었다.

‘돌연변이??'

'버릴까?'

'아니지. 그래도 물고기인데.’

더 이상 소식도 없고해서 낚시대를 접고는 버스에 올랐다.

횟집에서는 사줄 것 같지가 않아서 조금 멀리 가보기로 했다.

잡은 고기를 어판장에 넘기고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의 정체도 알아보고 싶다.

하지만 막상 어판장에 도착해서 물어 보았더니 고기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무슨 고기야?”

“처음보는 건데?”

“아따, 그거 희한하게 생겼네.”

“심해어 아녀?"

"심해어?”

“쓰나미에 떠내려 온거 아닌가?”

잡은 광어는 죽어버려서 헐값에 장사꾼에게 넘겼지만, 이 괴상한 고기는 구경만 할 뿐 도무지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막상 먹으려고 하니 복어를 닮은 것이 독이 있을까 신경도 쓰이고. 이대로 가면 버리게 생겼다.

갑갑함을 느끼면서 낚시통 뚜껑을 막 닫으려고 하는데 오랫동안 말없이 지켜만 보던 중년 신사 하나가 자신의 고기를 사겠다고 했다.

“이 고기 무슨 고기인지 아세요?”

“모릅니다. 나도 처음 보는 고기라서. 얼마 드릴까요?”

버려야하나 싶은 상황에서 임자를 만났다.

상준은 그 사실만으로도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럴 땐 상대에게 가격을 제시하도록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알아서 주세요.”

“20만원이면 되겠소?”

“...예?”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들었나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좋다고 받으면 안되겠지?'

"30만원은 주셔야죠."

"예, 그럼 그렇게 합시다."

중년 신사는 아무도 사지 않은 괴상한 물고기를 30만원이나 비싸게 사서는 비닐봉지에 담아 사라졌다.

대박이었다.

기분이 날아 갈 것만 같았다.

이 돈이면 당장에 방세도 낼 수 있고 갯지렁이 미끼도 살 수 있다.

“크으! 대박! 대박! 개대박이잖아!?”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오늘도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상준이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TV 뉴스에서 깜짝 놀랄만한 소식 하나가 흘러나왔다.

밥을 먹고 있던 상준은 넋이 나가서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툭하고 떨어뜨렸다.

'시발! 이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정해경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현장에 직접 나와 깜짝 뉴스를 전하겠습니다. 불과 2킬로그램 밖에 안 나가는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가 경매가 5,000만원에 낙찰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저는 현재 인산 해양박물관 아쿠아리움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물고기는 입은 꼭 갈치처럼 생겼는데, 몸통은 복어와 비슷하게 생겼고 자세히 보시면 작은 다리가 달려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물고기를 게이트에서 넘어온 괴물(Monster)의 한 종류로 짐작중입니다. 다만, 여태껏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괴물이기에 뱃속에 있을 의 가치 여부를 떠나서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이 물고기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고 있고, 해외에서도 관심 많은 학자들과 몬스터 연구진, 희귀 물고기 수집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괴물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 된다면 최소 10억의 가치를 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준은 아연 실색했다.

저건 분명 자신이 어판장에서 30만원을 받고 팔아치운 바로 그 물고기였다.

설마 저게 물고기가 아니라 게이트를 넘어온 다른 세계의 괴물이었다고? 게다가 아쿠아리움에 오천만원에 낙찰됐다고? 연구하기에 따라서 10억원의 가치? 미친!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 잘 먹던 밥알이 목구멍에 걸렸다. 체할 것 같아서 가슴을 두드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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