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이다-238화 (238/245)

〈 238화 〉 전초

* * *

맥컬킨의 말에도 남자는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유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젖꼭지 부근을 지분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벌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던 라이너 영주의 양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남자는 얼른 그녀의 목을 틀어버리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빛은 시릴 것만 같은 한기를 뿌리며 남자를 꽁꽁 얼리고 말았다.

“영,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일련의 사태에 멍해져 있던 기사들 중 맥컬킨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달려왔다. 라이너 영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하게 달려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얼려버리고도 분이 안풀렸는지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그의 언 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남자의 팔은 새하얀 눈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Level: 106

이름: 샤샤 라이너

종족: 인간

경지: 4서클 익스퍼트

체력: 11554/11554

마나: 48891/48891

그 광경을 성의 촉루에 앉아 지켜보던 민혁도 한숨을 돌렸다. 그도 라이너 영주 뒤에서 정체 모를 남자의 손이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식은땀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할 채비까지 했다. 하지만 라이너 영주의 상태창을 보고 나서 떼었던 엉덩이를 다시 바닥에 붙였다. 사실 어느 정도 그녀가 마법사일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아버지는 무려 7서클에 오른 초인이다. 그 아래서 마법을 배우지 않은 자식이 있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리라.

“이걸로 한 건 끝난건가....그런데 황가에선 왜 라이너가를 건든거지.. ”

풀리지 않는 의문들, 그 뒤에는 한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황태자였다. 민혁은 게임 진행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그의 상판떼기를 보고 싶어졌다.

“어이 거기 빨리 움직여!”

필라스크의 반란의 파괴된 영지, 영주민들은 전투로 인해 부서진 상가와 건물을 고치기 위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병사들도 훈련을 뒤로하고 건설현장에 나가 한 손을 걷어붙였다. 수리와 복구를 진행하는 동안 영지의 분위기는 밝았다. 왜냐하면 전 영주이자 제국의 수호신인 마하자크가 깨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홀쭉해진 몸을 이끌고 영지를 복구하는 이들을 치하하기 위해 직접 행차했다. 영주민들과 병사들은 환호를 질렀고, 공사의 속도는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또한 칼립소가 죽으면서 뒷골목의 세력이 거의 전멸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그들은 노름과 짜여진 도박을 통해 불법적인 자금을 유통하고 고리대금까지 영주민들에게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세력이 사라지자 빚으로 고통 받던 이들이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칼 못 좀 던져줘.”

마리오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으로 나름 잘 나가는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도박을 하다 칼립소에게 고리대금을 빌리는 바람에 인생이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공사판에 나가 일급을 받으면 저녁 식사 값을 제외하고 전부 빚을 갚는데 썼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그는 공사판에 나갔던 경험을 토대로 영지 복구에 앞장섰다. 지금도 지붕에 올라가 홀로 못질을 하고 있었다.

“자 여기 근데 오늘 영주님이 중대발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칼은 친구인 마리오의 바뀐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못이 담긴 가죽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혹시 결혼 발표를 하시려고 그러는건가?”

“음.....하긴 영주님도 올해 벌써 27이니까 말이야. 부디 좋은 남자를 만나셔야 할텐데.”

잡담은 여기까지였다. 영주의 중대발표를 직접 귀로 듣기 위해서는 작업 속도를 맞춰야 했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영지 내 밝은 분위기와 달리 영주가 머무는 관저의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영주성의 주인인 샤샤 또한 창백한 얼굴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신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옛날 마하자크에게 마법을 배울 때 성취가 늘지 않아 고민 했을 때와 비슷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니 많이 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에게 걸어가 어깨를 잡았다.

“아가씨 진정십시오.”

“아....집사....”

그의 손길에 샤샤는 우뚝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 보았던 핸섬했던 얼굴은 없어졌지만 그 주름과 백발은 지금도 매우 멋졌다. 그녀는 강아지가 어리광을 부리듯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살포시 기대었다. 집사는 다 큰 처자가 이러면 안 된다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가슴을 적셔오는 촉촉한 물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어렸을 적처럼 쓰다듬어주었다.

“나 불안해....혹시라도 내 백성들이 진실을 알고 날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볼까봐... 그리고 무서워 아버지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녀가 고백한 솔직한 마음, 집사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가씨....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이죠... 만약... 영주민들이 아가씨를 냉혈한으로 보더라도 저는 웃어드리겠습니다. 기사들이 당신에게 적의를 뿜더라도 이 집사 언제나 당신의 편이 되겠습니다...아가씨 그것만 알아주세요.”

“흑...흑..집사 아저씨...흐윽..”

집사의 말에 샤샤 라이너는 그의 품에 얼굴을 푸욱 묻었다. 곧 앓는 듯한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집사는 두 눈을 감고 그녀의 떨리는 몸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이내 샤샤는 집사에게 떨어졌다. 그녀의 눈가는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샤샤는 집사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의자에 걸어 놓은 겉 외투를 집어 들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 나갔다.

“어른이 다 되셨군요... 이 집사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샤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집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사라지고 집사는 마지막으로 샤샤가 어질러 놓은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중대발표를 위해 고르고 고른 옷들이 침대와 바닥에 널려있었고, 헛기침이 나올만큼 민망한 속옷들도 있었다. 집사는 다시 한 번 그녀가 많이 자랐고, 자신이 늙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거겠지....”

“그러게 말일세. 자네의 선택은 아쉬웠어. 나이가 들어서 그런겐가?”

집사는 등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놀라지 않고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그곳에는 마하자크가 한껏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집사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스스로가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배신해버린 옛 주인에게 인사를 하다니 혹시 우롱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여전히 잘생겨서 재수 없는 상판이군 그래”

“과찬이십니다.”

다행히 마하자크는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농담까지 곁들여 말이다. 집사는 그를 테이블에 앉게 하고 홍차 잎을 준비했다. 아마 이생에서의 마지막 집사 업무가 될 것이다. 그는 물의 양, 홍차 잎의 개수 하나 하나 꼼꼼히 정성을 들여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려진 차, 마하자크는 마음속을 파고드는 홍차 향에 미소를 지었다.

“그 날과 같군. 그 날도 이런 차를 대접 받았었지.”

마하자크의 말에 집사는 찻잔에 홍차를 따르던 그 모습 그대로 순간 얼어버리고 말았다. 마하자크는 피식 웃더니 그가 준비해준 홍차를 마셨다. 첫 맛은 달달하지만 뒷맛이 쌉싸름한 것이 잘 우려진 것 같았다.

“다행히 오늘은 독이 들어 있지 않나보군.”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그 날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런 선택을 할 겁니다!”

집사는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다짐을 하듯 소리쳤다. 마하자크는 가만히 집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의 선택을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그저 샤샤가 걱정되어 그런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의 입장이 된다면 자신 또한 그런 선택을 하리라. 마하자크는 찻잔에 남아 있던 홍차를 단번에 마셔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마셨네. 그리고 잘 가게나.”

자신을 배신했던 집사를 용서하고 좀 더 샤샤의 곁에 남아 있어 달라 말하려고 했던 마하자크 였지만 그의 눈을 보고 포기해버렸다. 방금 전까지 샤샤를 포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의 눈은 이미 죽은 사람의 것 이었다. 마하자크는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그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지자 집사는 조용히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샤샤에게 남길 편지를 작성했다. 자신은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가 없으니 은퇴하고 싶다는 내용이 주가 된 편지였다. 마지막에는 여행을 떠날 예정이니 당분간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아가씨가 걱정을 하지 않겠지.”

끝마무리를 모두 마친 집사는 서둘러 영주성을 나섰다. 때 마침 성벽에서 샤샤가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서나마 보는 그녀의 마지막 얼굴, 하얀 볼 살이 미소를 지을 때 보이는 가지런한 치열이 모두 아름다웠다. 마치 그녀의 친모이자 지금은 죽은 자신의 누이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괜스레 미묘해졌다. 그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샤샤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강가로 향했다. 그리고 품 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윽....”

온 몸을 태우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는 입을 꽉 깨물고, 천천히 강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물과 닿은 그의 몸이 부글부글 기포로 변하기 시작했다. 플래시봄의 체액, 그가 방금 전 마신 약의 정체였다. 슬라임 퇴치에 많이 쓰이는 것으로 물에 닿으면 산화 작용을 일으키는 약이었다. 집사는 온 몸이 녹는 고통 속에서도 웃었다. 샤샤가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혹은 시체를 찾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 볼 수 없기를 바랬다. 그래야 그녀가 덜 슬퍼할 테니까.

“아가씨..샤샤...나의 귀여운 아기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인어 공주처럼 기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강가에 둥둥 떠 있는 뼈와 주인 잃은 옷 조각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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