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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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질문에 민혁은 이 남자가 마하자크이며,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붕대를 자르고 그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민혁은 그를 의자에 반듯이 앉히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하울의 앞에 앉았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처음보았기에 호깃 무슨 심각한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저 붕대 같은 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
하울은 아무 말 없이 민혁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하울의 기세에 민혁은 꼼짝 않고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하울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한차례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민혁은 그녀가 쓰다듬은 볼을 매만지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하울을 쳐다보았다.
“너 솔직히 말해봐 저 인간을 데려올 때 무슨 일 없었어?”
자신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민혁에게 묻는 하울,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어야하나 고민했다.
“음.....무슨 마법 같은 게 몸을 속박시키려고 했어...그런데 곧 풀리던데?”
약간의 거짓말을 섞은 민혁, 하울은 한쪽 눈 꼬리를 살짝 올리며 무언 중 거짓은 없는 것이냐며 물었다. 그는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그럼 됐어... 저 녀석 아무래도 드래곤이나 아니면 마족에게 저주를 받은 것 같으니까.. 주변에 접근하지 말고..깨어나면 바로 나한테 말해 알겠지?”
“아.. 응 알았어”
자기 말은 다한 하울은 민혁의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아픈 것인지 이마를 마사지하다 침대로 뛰어 들어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민혁은 의자에 반듯이 앉아 있는 마하자크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문 앞에 서 있는 시종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혹시 영주님을 뵐 수 있을까요? 반지에 대해 더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말인데요...”
그의 부탁에 시종은 물어보고 오겠다며 황급히 영주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시종은 라이너 영주의 대답을 들고 왔다. 그녀는 민혁을 자신의 집무실로 흔쾌히 초대했다.
“아..어서오세요...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일이 많아서...”
“아닙니다. 이렇게 독대를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류의 산에 묻혀 그를 맞이했다. 민혁은 집무실 중앙에 배치된 쇼파에 살짝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흐르고 라이너 영주가 서류로부터 벗어났다. 그녀는 기지개를 펴며 서류로부터 해방된 것에 기쁨을 표했다. 민혁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이너 영주의 흉부로 향했다. 셔츠를 입고 있음에도 파괴적인 그 모양과 부피가 드러났다. 민혁은 침을 꿀꺽 삼키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어머...음흉하셔라...킥킥..”
민혁은 화들짝 놀라 눈을 돌렸고, 라이너 영주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하얀색 셔츠에 빨간색 위즈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겉에는 얇은 검정색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하의는 남색 플랫 치마를 입고 있었다. 포인트로 검정색 니삭스를 하고 있었는데 허벅지의 통통함을 잘 살려주는 멋이 아주 좋았다.
“너무 대놓고 보시면....부끄러운데요.....”
“크흠...”
그의 노골적인 시선에 라이너 영주도 얼굴을 살짝 붉혔다. 민혁은 그녀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여전히 시선은 마의 구간, 니삭스와 치마 사이의 허벅지에 향해 있었다. 라이너 영주는 옆에 있던 쿠션을 들어 살포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얹었다. 그제서야 그의 시선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 라이너 영주는 살짝 열이 나는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메이드를 불렀다. 그녀는 홍차와 다과를 트레일에 끌고 와 민혁과 라이너 영주 앞에 놓아주었다.
“드시면서 이야기 하실까요?”
“음..그러죠...”
홍차의 그윽한 향기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민혁은 함께 나온 쿠키와 함께 홍차를 홀짝였다. 혀 안을 맴도는 맛은 예상대로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민혁은 자신이 만들었던 어색했던 공기도 풀 겸 홍차에 대한 칭찬을 하기 위해 라이너 영주를 봤다. 그녀는 입 안 가득 쿠키를 밀어 넣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혁은 실례되는 걸 알고 있지만 참을 수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음...꿀꺽...안 좋은 모습을 보였네요..”
“큭큭...아닙니다. 복 있게 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제껏 봐왔던 능글맞은 모습과는 다르게 사르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하는 라이너 영주의 모습에 어색한 공기는 금세 풀렸다. 민혁은 이제 본론을 꺼낼 준비가 되었다고 여기고 입을 열었다.
“라이너 영주님.. 오늘 온 것은 반지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반지에 대한 거라면 저희 가문이 더 잘 아는 이야기, 아마 따로 하실 말이 있으신 거겠죠.”
역시 그녀는 영특했다. 민혁은 마음 놓고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례되는 말일수도 있지만....혹시 전 영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영지에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소문이 난 전 영주, 하지만 실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민혁이 찾아냈다. 과연 전 영주를 구금한 것은 라이너 영주일까. 아니면 뒷 사정이 있는 것일까 민혁은 궁금했다. 반면 민혁의 질문에 라이너 영주의 얼굴을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마시던 홍차도 내려놓고 민혁을 노려보았다. 마주치는 시선, 그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하 감옥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그 누구도 풀을 수 없는 마법을 뚫고 말이에요. 혹시 그게 당신인가요?”
방금 전 일어난 일을 그녀는 벌써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만큼 지하 감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전 영주를 가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뒷사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혁은 그녀의 질문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너 영주는 찰나지만 눈을 반짝였다.
“도대체...... 그 마법을 어떻게 풀으셨는지...하아...이렇게 된 이상 편하게 이야기 할게요...1년 전 쯤 이었어요. 갑자기 황궁에서 사람이 나왔죠.”
‘또 황가와 연결되는 문제인가?’
민혁은 또 다시 황가에서 손을 쓴 것 같은 증언이 나오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이상했어요. 저희 영지는 황궁에서도 별로 터치를 하지 않은 편이거든요.. 어쨌건 황궁에서 나온 사람은 엔서린이라는 기사였는데....굉장한 미인이었어요. 여자인 제가 봐도 반할 정도였죠...하지만 그게 화근이 되었어요. 전 영주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는...으음...영지나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지만..호색한 이시거든요....첩도 둘이나 되셨구요...애인은 셀 수도 없었어요...”
“으음...”
민혁은 라이너 영주가 자신을 보며 그런 말을 하자 약간 찔리는게 있는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이래서 남자들이란...’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여자를 함부로 건들거나.. 하는 분은 절대 아니에요.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남녀 관계에는 사랑이 있어야지만 정을 나눌 수 있다고 말버릇처럼 하셨거든요...저희 어머니나 작은 어머니들도 그걸 알고 계셨기에 투기 없이 결혼 생활을 평탄하게 이어갈 수 있었구요..그런데...어느 날인가 엔서린과 그의 휘하 기사들이 저희 아버지를 제압했어요. 그것도 7서클의 대마법사를요....엔서린은 저에게 아버지가 자신을 강간하려했다고 주장했고, 증거는 확실했어요.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고, 붙잡힌 아버지는 거의 알몸에 가까웠으니까요.”
“저는 선택을 해야만했죠. 거기서 엔서린은 제안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아요....하지만 당시에는 믿었던 아버지의 추행에 정신이 없었어요...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거죠...아무튼 그녀는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자신의 말대로 하자고 했어요. 그게 지금 영지에 퍼진 소문이죠.”
“이종족들이 전 영주님을 습격했다는....?”
라이너 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렸다. 라이너 영주는 고개를 숙이며 사냥 당하고 고통 받았을 이종족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속죄하고 싶다는 대답이 있을 리 만무한 사과를 했다.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흉한 꼴을 보여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이유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그렇다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위로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의 위로에 라이너 영주는 눈물을 찍어 훔치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손쓸 틈도 없이 마법에 당해 지하 감옥에 유폐되었어요. 저는 영지의 마법사들을 불러 26번방 그 저주스러운 방에 걸린 저주를 풀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특급용병이자 6서클에 오른 대마법사 퀘이백도 마찬가지였죠. 단 그는 작은 힌트를 주었어요. 26번방에 걸린 건 마법이 아니라 저주계열이라고 했죠.”
저주, 민혁은 자신의 몸을 파고들었던 마법이 지금 라이너 영주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 그럼 그 엔서린이라는 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어요. 그 많던 기사들도 함께 말이죠.....그리고 전 포기했어요... 7서클의 초인이라고 해도... 감옥에 갇혀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지 벌써 6개월째에요....흐윽...지금 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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