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전초
* * *
하지만 귀가 잘 발달된 만큼 작은 소음도 그의 귀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괴성으로 들렸다. 쇠창살을 두드리는 큰 소리는 그의 고막을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쇠창살을 두드린 범죄자를 죽지 않을 만큼만 구타했다. 한 놈을 패면 다른 놈은 자연스럽게 조용해지고, 이내 쇠창살을 두드리는 짓을 그만하게 된다. 오늘은 다행히 쇠창살을 두드리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이틀 후 새로운 범죄자들이 들어올 예정이라 이 평화는 얼마 가지 않을 거라 라쿠쉬는 생각했다.
챙
“......”
남아 있는 평화를 만끽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다음번 감옥지기가 오는 것을 기다리던 라쿠쉬는 귀를 긁는 쇠창살 소리에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의 행동에 다른 죄수들은 히죽이죽 웃거나 침을 꿀꺽 삼켰다. 곧 피보라가 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앉아 있던 의자에 얹어두고 쇠창살 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 소리의 진원지는 24번방 끝 방인 26번방 근처였다.
“.....죽고 싶어?”
그는 24번방 쇠창살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이민족 특유의 갈색 피부와 살기를 품은 눈동자가 공포를 자아냈다.
“응? 무슨 소리야?”
그의 살인적인 눈빛을 바라보고도 24번방 죄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쿠쉬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화가 났다. 그는 감옥의 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수감자는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쿠쉬는 소음 문제만 아니면 수감자들에게 관대한 옥지기, 그가 화가 난 이유도 소음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수감자는 자신의 무고함을 알리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몸을 옥죄어 오는 살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땅을 기며 도망치려 애썼지만 사방이 막힌 감옥에서 출구는 오직 한 곳, 라쿠쉬가 서 있는 곳뿐이었다.
“잠깐 대화시간 좀 가지자”
감옥 안으로 들어와 철창을 닫는 라쿠쉬, 그는 솥뚜껑만한 주먹을 으드득소리가 나게 풀며 웃는 얼굴로 수감자에게 다가갔다.
으아아아아악
그 후 24번방에서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옆방에 있던 수감자들은 공포에 떨었고, 멀리 떨어진 자들은 히히덕거리며 웃기 바빴다.
“노린 건 아니지만....미안하네....”
그리고 지하 감옥 잠입을 위해 움직이다 쇠창살을 실수로 건드려 소음을 낸 범인인 민혁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24번방 죄수의 무사함을 마음속으로나마 기원했다. 물론 옆에서 일련의 사건을 지켜본 티샤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혁은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고 멋쩍은 듯 웃었다.
감옥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이 이곳, 라이너 성의 지하감옥에 오게 된 것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틀이나 남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일행 전부에게 같이 가보자 했지만 하울과 아리나는 방에서 쉬는 게 편하다며 거절 했고, 티샤와 리나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물론 리나는 아직 자기 몸을 지키는 것도 버겁기 때문에 방에 남겨두고 티샤와 함께 지하감옥에 숨어들었다.
“여기인가?”
다른 옥과는 달리 마법 무효화의 진이 그려져 있는 방, 바로 26번 방이었다. 민혁은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냈다.
라이너 성 지하감옥 26번방의 열쇠 1/2
본래는 리나의 아버지가 소지하고 있던 것이다. 두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만 있더라도 문을 열 수 있다. 본래 영주성 지하 감옥의 옥지기로 일하던 그는 병사들에게 잡히기 전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열쇠를 리나에게 전해주었다.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당신이 용기 있고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 자라면 라이너 영주성 지하감옥 26번방을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선택은 Y, 그가 아이템을 사용하자 굳게 닫혀있던 쇠창살이 스르륵 열렸다. 감옥 내부는 좁았지만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원룸 형식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감옥들과는 다른 구조였다. 민혁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티샤는 시야를 가리는 어둠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의 뒤를 쫓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현경에 경지에 든 민혁에게 어둠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티샤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평탄치 않은 통로를 걸었다. 중간 중간에는 화살과 칼날이 튀어나와 침입자를 반겼다. 그렇게 걷기를 10분, 마침내 감옥의 끝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장발의 중년인이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붕대 같은 것에 묶여 있었다. 워낙 촘촘히 묶어 놔 밖으로 들어난 것은 머리카락과 눈, 코, 입 뿐이었다. 그는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는데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민혁은 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 가둬 놓은 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Level: 236
이름: 마하자크 라이너(상태이상: 마나고갈, 탈진)
종족: 인간
경지: 워메이지 7서클 비기너
체력: 1690/68881
마나: 0/116980
“어째서 이자가....”
그는 놀랍게도 식물인간이 됐다고 알려진 라이너 영지의 전 영주 마하자크 라이너였다. 민혁은 그의 상태를 살피며 전 영주라는 자가 그것도 7서클의 대마법사가 어째서 붕대 따위에 칭칭 감겨져 자신의 영지였던 곳의 지하 감옥에 갇힌 것인지 생각 보았다. 현 영주의 짓일까. 잘 모르겠다. 혹시 현 영주가 동생이라 지칭했던 자와 연관성이 있을 것일까. 증거가 부족했다. 민혁은 복잡해지는 상황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냐 민혁...”
“라이너 가의 전 영주..”
티샤의 질문에 민혁은 그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에벌레처럼 붕대에 감겨진 그를 동정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우선 이자를 데리고 여길 나가자”
“...알았다..”
민혁은 그녀에게 좀 더 놀랄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26번방 문을 열고 나온 상태, 언제 옥지기에게 발각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마하자크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 순간 그를 견착한 어깨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일어났다. 민혁은 신음을 참기 위해 입을 다물었고, 티샤는 마하자크를 맨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이 되어 몸 여기저기를 훑었다.
피의 맹약에 의해 8서클 저주 마법 Чтo случилoсь이 해제됩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민혁?”
“아니야 괜찮아 빨리 가자”
이어진 시스템음, 그러자 민혁은 거짓말 같이 고통이 없어진 것을 느꼈다. 피의 맹약,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리고 8서클의 저주 마법이라니 혹시 전 영주는 드래곤과 싸움이라도 벌인 것일까. 그는 이어지는 의문을 뒤로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티샤를 안심시켰다. 다행히 문을 열어두었음에도 옥지기들은 민혁과 티샤가 26번방에 침입한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26번방을 다시 잠가두고 천마행공을 펼쳐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방으로 돌아와 보니 하울과 아리나는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들은 푹신푹신한 이불에 몸을 맡긴 채 뒹굴거리고 있었다. 리나 또한 아리나 옆에서 졸고 있었는데 민혁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그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오셨어요?”
“그래”
민혁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간지러운지 몸을 꼬물꼬물 거리면서도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민혁은 어깨를 들쳐 매고 있던 마하자크를 바닥에 살짝 내려놨다. 그는 방의 온기를 느꼈는지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민혁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꿈틀거리고 있는 하울을 깨웠다.
“아응....왜 깨우고 난리야.....”
약간 짜증 섞인 반응에 민혁은 약간 긴장을 했다.
“미안한데 일어나서 이것 좀 봐봐”
“으으....별 거 아니면 너 죽을 줄 알아”
무거운 고개를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다른 여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웃으며 넘겼을 지도 모르지만 하울에 입에서 나오니 정말 살해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감겨오는 눈을 뜨기 위해 눈두덩이를 비비적 거리며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바닥에는 미라처럼 붕대에 뒤덮인 마하자크가 누워있었다.
“누구야 이 거렁뱅이는....아니 잠깐 이게 뭐야”
마하자크의 상태를 살피던 그녀는 손가락으로 쿡쿡 그를 찔러보았다. 그러던 중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표정이 꽤나 심각해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너 얘 어디서 데려왔어?”
하울의 질문에 민혁은 이 남자가 마하자크이며,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붕대를 자르고 그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민혁은 그를 의자에 반듯이 앉히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하울의 앞에 앉았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처음보았기에 호깃 무슨 심각한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저 붕대 같은 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