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전초
* * *
방에 돌아와 보니 티샤와 리나는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만찬에서 먹었던 것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식사였다. 리나는 그가 오자 쪼르르 달려와 수줍게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발그레 얼굴을 붉혔다. 그에 아리나와 하울은 조용히 그의 팔뚝을 꼬집었다. 몸을 움찔하게 만들 정도의 고통에 민혁은 억울해졌다. 잘난 것도 죄란 말인가.
“리나”
“네,넵!”
약간의 소동이 지나가고, 민혁은 자리를 잡고 앉아 리나를 불렀다. 그녀는 아리나의 옆에 붙어 있다가 그가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라 혀를 씹으며 크게 대답을 했다. 민혁은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쪼르르 그에게 다가가 앞에 앉았다. 민혁은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간략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2일이나 더 이곳에 있어야하는 건가요....”
“그래 미안하지만 좀만 참아줘. 이틀이 지나고 라이너 영주성을 빠져나가면 틈을 봐서 널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줄게.”
“네?!!”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민혁의 말에 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이상한 반응이었다. 자유를 주겠다. 했지만 그녀는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버림 받은 강아지 마냥 민혁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는 어느새 울먹거리고 있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날 따라가고 싶니?”
“.....”
민혁의 물음에도 리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제서야 리나는 말문을 열었다.
“.....네...염치 없다는 거 알아요...하지만! 저에게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집도 부모님도 그리고 형제까지 모조리....모조리...!”
눈물 어린 절규, 그에 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안아줄 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울음이 진정되고 민혁은 자신들이 현재 무슨 일을 할지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리나는 민혁과 함께 하고 싶다 말했다. 그녀의 대답에 민혁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고, 티샤와 아리나 그리고 하울은 긴 한숨을 쉬었다. 아마 여자가 늘어나는 것이 탐탁치 않은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넌 우리 일행이야.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자고...내일부터 네가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
아무리 불쌍하다 하여도 공짜로 먹고 재울 수는 없는 법이다. 민혁은 일행 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그건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의 호의에 기대 게을러진다면 점차 꼴 보기 싫은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외면으로 이어져 결국 그에게서 버림받을 것이다. 그건 싫었다. 리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야무진 다짐을 했다.
“네! 저 힘낼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혁의 무릎 위에서 힘차게 대답했다. 그는 흐믓하게 웃으며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손을 넣어 그녀를 안아올렸다. 리나가 꺄악하고 소녀 같은 비명성을 내질렀지만 민혁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몸에 안쓰러움을 느끼며 리나를 침대에 눕혀주었다.
“잘 자렴”
끄덕
이불을 덮어주자 그녀는 마치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민혁은 그 모습을 보다 식은땀을 흘렸다. 왜냐하면 등 뒤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혁은 방 안에 암살자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확률은 0에 가까웠다.
“....민혁...”
지저 깊은 곳에서 사는 망자 부르는 듯한 소리에 민혁은 부르르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웃고 있지만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여자 셋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혁은 슬금슬금 침대 쪽으로 물러났다. 어서 이불 안으로 들어가 그녀들의 잔소리 폭격을 피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티샤가 순식간에 뒤를 잡아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자 어쩔 수 없이 대화의 장이 열리고 말았다.
“민혁님 다음부터는 좀 더 대화를 나누고.....”
“맞아 너는 다른 때도 멍청한데 이런 때도 멍청하네?”
“......전적으로 동의한다....민혁 너는 좀 더 일행과 소통할 필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잔소리, 평소에는 마음대로 하라며 나몰라라하면서 이럴 때만 의견 좀 물으라 한다. 민혁은 문득 소윤과의 데이트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실이나 가상세계나 여자의 마음은 무척이나 알기 어려웠다.
한편 문을 박차고 나간 필라스크는 한바탕 휘젓고도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영주성 복도에 장식된 그림이나 꽃병들을 무차별적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메이드나 시종인들은 그를 말리기는커녕 혹여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고만 있었다. 망나니 같은 그의 행동은 소란을 들은 기사들이 달려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기사들에 의해 제지된 필라스크는 거센 콧바람을 뿜어내며 라이너 영주성을 빠져나가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필라스크님 가셨던 일은......?”
필라스크를 반기는 기사 한명, 그는 특이하게도 라이너 영주성의 문양이 아닌 황가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필라스크는 그의 물음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렸다. 그리곤 품 안에서 연초잎을 여러 장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폐부를 찌르는 연기, 기사는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담배만 뻑뻑 피워대는 필라스크를 보고 미간에 고랑이 패였지만 혹여 그가 눈치 챌 새라 얼른 얼굴을 고쳤다.
“별 볼일 없는 녀석들이었다. 비루먹은 이민족 한 놈에 꽤...흠....아니지....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년들이 있더군...”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 하나만으로 필라스크는 마치 영혼이 불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눈 앞에 라이너 영주만 없었다면 당장 그녀들의 옷을 찢어발기고 자신의 건실한 하물을 음부에 밀어넣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영주성에서 보았던 여자들은 미인이었다. 비루한 이민족 옆에 있기에는 아까운 여자들이었다.
“다행이군요...그런데... 그 정도로 미인이 있었습니까?”
이종족인 엘프를 사냥하고 관리하는 만큼 필라스크의 눈은 높았다. 그런 그가 칭찬을 할 정도라면 대체 어느 정도 미인이란 말인가. 기사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필라스크는 성욕이 일어났는지 밖에 대기 하고 있던 집사에게 첩들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오라 지시했다. 집사는 곧장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따운 미인들이 란제리 차림을 한 채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들은 저마다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귀 끝이 무언가에 의해 잘린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녀들이 이종족이라는 증표였다.
“이리와라”
필라스크의 손짓에 이종족 여인들의 얼굴에는 수치심과 분노가 깊이 베여있었다. 그녀들은 분한 듯 주먹을 말아 쥐면서도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움직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필라스크는 그녀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가까이 있는 다크엘프의 엉덩이를 찰싹 하고 때렸다.
“꺄...꺄읏....”
이미 그의 조교로 인해 온 몸이 성감대로 변한 다크엘프는 찌르르 울리는 엉덩이 통증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신음을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필라스크는 씨익 웃더니 이번에는 우유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엘프의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꺄앙.....!”
그러자 푸릉하면서 그녀의 젖가슴의 흔들렸고, 신음이 터져나왔다. 필라스크는 엘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본격적인 애무를 시작했다. 보기 좋은 모양의 젖가슴을 이리저리 주무르고, 음부에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물론 입은 키스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로의 채액이 오고갔다. 필라스크는 자연스레 자신의 바지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발딱 솟은 물건을 꺼내 엘프의 음부에 비볐다.
찔꺽
“아앙~!”
거침없는 돌진, 그의 물건은 엘프의 질벽을 긁으며 음부 안으로 전부 들어갔다. 엘프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의 물건이 주는 쾌락에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변해갔다. 필라스크는 그녀의 반응에 만족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또한 손을 쉬게 두지 않고 멀뚱히 서 있던 다크 엘프의 젖가슴과 음부를 희롱했다.
“같이 즐기겠나?”
고대 성경 속 타락의 한 장면과 같은 모습, 필라스크의 제안에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습니다...그보다....집사가 정보를 물어왔습니다. 영주가 이틀 후 영지를 떠나 황성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틀이라.......”
의자에 앉아 허리를 놀리던 필라스크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쥐가 돌아다니고 축축한 습기와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곳, 바로 감옥이다. 쇠창살 안에는 여러 범죄자들이 나라 잃은 표정을 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은 쇠창살에 들러붙어 꺼내달라며 소리를 치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라이너성 지하 감옥을 관리하는 감옥지기 라쿠쉬가 소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민족 출신인 그는 귀가 잘 발달되어 작은 소리도 잘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혹시나 밀담을 나눌 때 그의 능력이 발휘 되고는 했다.
하지만 귀가 잘 발달된 만큼 작은 소음도 그의 귀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괴성으로 들렸다. 쇠창살을 두드리는 큰 소리는 그의 고막을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쇠창살을 두드린 범죄자를 죽지 않을 만큼만 구타했다. 한 놈을 패면 다른 놈은 자연스럽게 조용해지고, 이내 쇠창살을 두드리는 짓을 그만하게 된다. 오늘은 다행히 쇠창살을 두드리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이틀 후 새로운 범죄자들이 들어올 예정이라 이 평화는 얼마 가지 않을 거라 라쿠쉬는 생각했다.
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