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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228화 (228/245)

〈 228화 〉 전초

* * *

분노와 흥분으로 점칠된 발길질이 멈춘 것은 리나의 몸이 이미 엉망이 된 이후였다. 병사는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차오르는 숨을 참지 못하고, 격한 호흡을 내뱉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 꿈쩍 안 하는 리나에게 침을 찍 뱉더니 창대를 주워들었다. 아직도 들썩거리는 노예년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하아..하아..뒤져라 개 같은 년아!”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날카로운 창끝이 발굽에 무참하게 밟힌 리나를 향했다.

“큭 무슨...!”

울리는 것은 파육소리가 아닌 병장기가 맞부딪칠 때 나는 굉음뿐이었다. 병사는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사는 힐끗 쓰러져있는 리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함께 탈출한 동료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사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병사는 창대를 허공에 휘둘렀다. 하지만 창끝에는 아무것도 스치지 않았다.

“나, 나와! 누구냐!”

겁에 질린 목소리로 창대를 치켜세우며 소리치는 병사, 그에 대한 대답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불을 끄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료 병사들의 목소리 뿐이었다.

뚜둑­

그의 귓가로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는 서둘러 창대를 돌리려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눈이 빙글빙글 돌며 시야가 이상하게 얽히고 설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땅바닥에 무너지는 자신의 몸뚱아리였다.

“...퉷...”

병사의 목을 그어버린 민혁은 그의 시체에 그가 리나에게 한 것처럼 침을 뱉었다. 그리고 서둘러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내장에는 손상이 없었다. 하지만 갈비뼈나 팔목이 부러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시간을 지체한다면 갈비뼈가 내장을 찔러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리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화가 난 민혁은 어린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병사의 시체를 삼매진화로 불태워 버렸다.

“도망치려면 잘 도망치던가....”

그리고선 투정 섞인 말과 함께 리나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당장 이 야심한 밤에 의원이나 신전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만약 아직도 환자를 보고 있는 성직자나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심한 중상자를 고칠 수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민혁은 잠을 깨우면 흉폭하게 돌변할게 뻔한 레드 드래곤 밖에 리나를 치료할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심히 우울해졌지만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그가 사라진 자리, 리나의 손길을 무시했던 경비대장 제임스가 건물에 붙은 불을 모두 끄고 돌아왔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초기에 불길을 잡을 수 있어 재산 피해가 크지 않았다.

“...바이한...!”

몸뚱이를 잃은 머리와 무언가에 불탄 몸뚱아리, 제임스는 충격을 먹은 듯 무릎을 꿇고 멍한 눈길로 참혹한 살해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병사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있을 리가 만무, 제임스는 엉금엉금 기어가 깔끔하게 절단된 병사의 머리르 끌어안았다. 전 영주님의 은혜로 병사가 되어 기뻐하던 모습, 자신의 뒤를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던 모습, 결혼한지도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몇 달 후면 아이가 태어난다고 좋아하던 놈이었다. 이리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되는 녀석이다.

“그 꼬맹이는....?”

분노가 머리를 뒤집으면 차가운 이성이 눈뜬다 하던가. 제임스는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범인으로 짐작되는 노예 꼬맹이가 사라진 것을 캐치해냈다. 그는 핏줄이 다 터진 눈길로 불에 탄 병사의 몸뚱아리를 쓰윽 훑더니 바이한의 머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그의 눈에는 자신이 과거 저질렀던 잘못과 후회 그리고 리나를 마주쳤을 때 보여주었던 흔들림이 사라진 상태였다.

모두가 잠이 든 여관방 민혁은 미안하지만 하울을 깨우기 위해 불을 켰다. 그러자 귀가 밝은 아리나가 제일 먼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외로 하울은 잠시 찡얼거리긴 했지만 바로 일어났다. 하지만 티샤는 깊히 잠이 든 것인지 죽은 듯 잠에 빠져있었다. 어차피 치료에 필요한 것은 하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게 두기로 했다.

“...이거 상태가 심각한데?”

리나를 침대에 눕히고 상태를 확인한 하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쩜 어린 아이에게 이런......”

아리나는 입이 찢어지고 눈두덩이가 시뻘겋게 부어오른 리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사이 하울은 머리 위 가득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펼쳐낸 마법은 6써클에 이르는 대 마법 리커버리, 죽은 자만 아니라면 살려낼 수 있다는 대 마법의 발현에 리나의 몸에 남겨진 상처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다만 이미 잘라진 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귀는.......”

아리나가 하울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귀는 어쩔 수 없어. 시간이 꽤나 지나서 치료하려면 현신을 해야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하울의 말에 아리나는 조용히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 리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민혁은 그녀가 꺠어난 것일까 싶어 얼굴을 들이밀어 보았지만 반응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일행은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 리나가 다시 탈출할 것을 대비해 환영 마법을 그녀의 주변에 걸어두었다. 만약 그녀가 깨게 된다면 환영마법으로 다시 잠에 빠져들 것이다.

똑똑­

“....계십니까?”

이른 아침 민혁 일행을 깨운 것은 방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였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여관 주인과 어젯밤 동료를 잃었던 사내, 제임스가 서 있었다. 여관 주인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해 바르르 떨고 있었고, 경비대장 제임스는 병사들과 함께 무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민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찾아 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리 빠르게 자신을 찾을 줄은 몰랐던 민혁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짐짓 불쾌한 표정을 내보이며 물었다. 그에 제임스의 얼굴을 붉게 타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 제임스는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탁­

“뭐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민혁은 그걸 막았다. 안에는 아리나와 티샤 그리고 하울이 알몸과 다름없는 상태로 자고 있었다. 외간 남자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 반면 제임스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움직임을 막은 민혁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영지의 고참 기사인 탄포르 경과의 대련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분노로 물들었던 이성이 잠시 깨인 느낌이었다. 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나는 경비대장 제임스, 어젯밤 병사를 살해하고 방화를 저지른 범죄자를 찾고 있소.... 이종족 노예지..그런데 어제 그 범죄자와 같은 용모의 노예를 당신이 삿다고 하는 걸 들었소...”

“......하아.... 그 노예라면 어젯밤 도망을 쳤습니다....여행에 피로에 지쳐 잠이 든 틈에 도망친 터라 저희도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민혁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였다. 제임스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의문점이 남았는지 미간을 좁히고 침음성을 내뱉었다.

“.......미안하지만 방 안을 보여 줄 수 있겠소?”

“....그럼 잠시 기다려주세요 여자 동료들이 아직 잠옷 차림으로 자는 중이라.....”

민혁의 말에 안쪽을 홀깃거리며 살피던 병사는 목을 뒤로 뺏고, 제임스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알겠다며 문을 닫았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민혁이 뒤돌아서자 그를 반긴 것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있는 일행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하울은 이미 옷을 입고 아직도 깨어나질 않고 있는 리나를 향해 환각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고위급 마법사가 직접 와서 디스펠 마법을 펼치지 않는 이상 리나를 정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다 입었어?”

“네”

“..그렇다”

민혁은 티샤와 아리나까지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그럼 실례하겠소...”

제임스는 굳은 얼굴로 방안에 들어와 구석구석 살폈다. 일행의 옷과 배낭은 이미 하울의 아공간 속에 들어가 있었다, 하울과 아리나 티샤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민혁의 뒤에 서 있었는데 제임스를 따라 들어온 병사는 홀린 듯 그녀들의 몸매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다 민혁의 매서운 눈길을 받고 황급히 눈을 돌렸다.

“그런데 이분은.....?”

방안을 살펴보던 제임스는 환영마법이 걸린 리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녀석은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누가 엎어 가도 모릅니다.....”

민혁의 말에 제임스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어 그 주변만 서성일 뿐이었다. 그리고 방 안을 모두 둘러보고 의심 살만한 것이 없자 제임스는 병사들을 물리고 민혁과 일행에게 고개 숙여 사과의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벌벌 떨고 있던 여관 주인도 살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제서야 아리나와 티샤 하울의 얼굴이 조금 풀리는 모양새였다.

“안 들킨 걸까요?”

아리나의 물음에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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