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이다-224화 (224/245)

〈 224화 〉 전초

* * *

지아의 말에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요즘 평판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예약해 둔 호텔로 가서 그녀와 꽁냥꽁냥거리며 화를 풀어줄 생각이었지만 지아가 끼어드는 통에 계획이 일그러졌다. 그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스테이크를 썰어 입 안에 얌전히 넣고 있는 소윤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냉랭했던 그녀의 얼굴이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뭐...좋아하니까 됐어..”

“응 뭐라고?”

“아냐 먹기나해”

지아가 민혁의 중얼거림을 듣고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어서 먹기나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지아는 씨익 웃더니 민혁이 말리기도 전에 웨이터를 불러 음식을 추가 주문했고, 결국 민혁은 지아 덕분에 거금 30만원이라는 돈을 쓰게 되었다. 영수증을 보며 울고 있는 민혁에게 지아는 깐죽거림을 시전하였고, 결국 길거리에서 대판 싸우고 말았다. 덕분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소윤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윤세라의 강의가 있은 후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민혁은 삐져있던 소윤을 달래주기 위해 갖은 재롱을 떨어야만 했고, 게임을 하는 것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윤세라는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조용하자 불안한 것은 민혁이었다.

“잘 다녀와~”

끄덕

그는 강의를 듣기 위해 나가는 소윤을 배웅해주고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둘러 서랍을 열어 그 안에서 휴대전화를 찾았다. 민혁은 전화기 화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

“......”

침묵과 함께 전화 연결음이 이어졌다. 민혁은 긴장이 됐는지 침대에 철퍼덕 주저앉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혁씨?]

“........”

민혁이 전화를 건 상대는 바로 윤세라였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침묵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윤세라가 전화를 했으면 용건을 말하라며 투정을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시간 됩니까 이에 대해서.....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흐음......좋아요....무슨 심경에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민혁씨가 먼저 절 불러주니 좋네요 약속 시간하고 장소는 제가 문자로 보낼게요 이번 주는 제가 해외에 나와 있어서 어렵고 다음 주 중으로 만나죠]

“알겠습니다.”

민혁의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한숨을 너무 내쉬어 혹시 빨리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이 선택은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소윤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는 결심한 것이다. 윤세라를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녀와 수라에 광한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버리기로 말이다. 물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민혁은 더 이상 소윤이 윤세라와 관련해 상처 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능에 관련된 모든 일을 그녀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나중에 들키면 뺨 한 대로는 끝나지 않을거야......”

민혁은 소윤의 손맛을 기억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일은 죽어 무덤에 들어가는 날까지 절대 소윤에게 비밀로 하겠다고 말이다.

코로나 제국의 황성 크렐린, 작은 식기 하나 장식 하나 조차 모두 대륙 제일의 것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최근 들어 암묵적인 법칙이 하나 생겼다. 바로 큰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수로 접시를 깨트려 이를 어긴 시녀 중 한 명은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이 달아났다. 귀족들도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해적들의 대규모 침략을 전하기 위해 뛰어온 사령관은 화형에 처해졌고, 회의 중 고성을 낸 고위 귀족은 사지가 찢어져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법칙을 어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법칙을 만든 이가 바로 황태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황제는 지병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상태이고, 황권이 강하기로 소문난 코로나 제국의 모든 권력은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귀족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목이 달아날까 무서워 몸을 사려야만 했다.

“태자전하!”

그런 코로나 제국의 황성, 황태자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무장 프랑코가 법칙을 잊은 건지 큰소리로 그를 찾고 있었다. 그도 솔직히 말하자면 목이 날아갈까 무섭기는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는 황성 안을 샅샅이 뒤졌다. 지나가는 만나는 시녀들마다 태자가 어디있는지 물었지만 그녀들도 고개를 저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평소에도 혼자 홀연히 사라져 주변의 걱정을 샀지만 오늘 같은 큰 일이 벌어졌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벌일지는 몰랐다.

“.......!”

황궁 정원을 빠르게 달려 지나는 그 때 프랑코는 드디어 태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커다란 고목 나무 밑둥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서류들이 널려 있었고 그 뒤에는 태자의 호위기사인 엔서린 경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프랑코는 그를 발견한 기쁨에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엔서린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란 제스쳐를 취하자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아 흔들었다.

“.....프랑코.....”

태자는 눈을 살며시 떴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졸음이 가득했다. 프랑코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태자를 깨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툰드르 왕국과 아이지스 왕국이?”

“예 그렇습니다...그 쳐죽일 것들이.....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프랑코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황태자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변에 놓여져 있는 서류를 모으기 시작했다. 뒤에 서 있던 엔서린도 그를 도왔다. 서류는 차곡차곡 쌓여 작은 산을 이루었고, 엔서린은 호리호리한 몸으로 그 많은 서류들을 모두 들었다. 태자는 혹시나 빠진 것이 없는지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들은 모두 모은 것 같았다. 그는 엔서린과 함께 정원을 빠져 나가며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프랑코 대신들을 모두 모아라”

“......!”

멍하니 있던 프랑코는 그의 명령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경례를 취했다. 그리고 황태자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도록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대신들을 모으기 위해 궁을 빠져나갔다. 그를 끝까지 지켜본 황태자는 피식 웃더니 엔서린과 함께 천천히 대전으로 향했다. 그가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황궁 복도를 걷자 청소를 하던 메이드들과 시종들은 모두 멈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오?”

“나도 잘 모르겠소....프랑코 장군의 연통을 받고 바로 온 길이라...”

“허허...나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소만...”

갑작스러운 프랑코의 연통에 황궁으로 입궐을 하게된 귀족들은 저마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긴급하게 귀족들을 소집한 이유는 필시 시급을 다투는 위기 상황이 왔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옥좌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란히 늘어서 저마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아직 비워져 있는 옥좌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들을 부른 황태자는 자리에 없는 상황이었다.

“쉿 조용히! 황태자께서 나오십니다.”

그 때 한 귀족이 외쳤다. 그러자 약간이나마 소란스러웠던 대전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장내에 조용해지자 프랑코 장군이 멋들어진 갑옷과 예식용 검을 허리에 꽂고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황태자가 천천히 걸어나와 비어 있는 옥좌에 살포시 걸터 앉았다. 그는 좌중을 한차례 내려다보더니 옥좌 옆에 기립해 있던 프랑코에게 눈짓을 주었다. 황태자의 신호를 알아챈 그는 대신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신들을 모두 모은 이유는 다른 일이 아닌 주변국인 아이지스 왕국과 툰드르 왕국이 저희 제국의 국경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입이 열리자 대신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걱정, 고뇌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쉬이 입을 열거나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황태자의 눈빛이 시리도록 차가웠기 때문이다. 지금 나섰다가는 자칫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대신들을 입을 꽁꽁 싸매었다. 그 때 좌우로 선 대신들 중 가장 옥좌와 가까이 서 있던 남자가 조용히 손을 들어올렸다.

“......드록샤 경 의견이 있다면 말해보라...”

앞으로 나선 사내의 정체는 대외에서는 철혈의 공작으로 잘 알려진 외무대신 드록샤였다. 그는 지금의 제국을 유지하는 기둥 중 하나로 외교, 무역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어 젊은 시절부터 외무대신 자리를 맡아왔다. 드록샤가 얼마나 뛰어난지 다른 나라의 대신들은 그와 협상을 위해 테이블 위에 앉는 것을 마치 전쟁과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제국 안팎의 소문과는 다르게 그는 소심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황제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

“....말해보라....”

그가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자 황태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한 번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드록샤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입을 열었다.

“......툰드르 왕국과 아이지스 왕국이 이유 없이 국경을 넘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혹 그들이 국경을 넘은 이유가 있사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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