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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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내부는 매우 깨끗했다. 잔여물이나 흙이 떠다니는 것이 없어 물빛이 영롱하게 비쳤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성을 내뱉었다. 티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수 속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이미 아리나와 하울은 니드와 함께 저 앞에 있는 상황이라 둘은 서둘러 헤엄을 쳤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세이레네스의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임에도 산호가 있었고, 그것들에 의해 둘러싸인 소라 껍질 모양의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니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집으로 그들은 안내했다. 그녀가 일행을 데리고 가자 매우 늙어 보이는 남자 세이레네스가 그들을 맞이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세이레네스 마을에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는 하울이 이미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니드에게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니돈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와 이름이 비슷해 혹시 관계가 있나 물어보았더니 니돈과 니드는 부녀관계였다. 그는 아직 니드를 도와줘서 고맙다며 민혁에게도 호의 넘치는 시선을 보내 주었다. 일행은 니돈에 의해 소라 모양 집으로 안내 되었다. 다른 집보다 크다 했더니 그곳은 바로 무녀가 기거하는 신전과 비슷한 곳이었다. 내부는 지상의 집과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일행이 집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니드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내왔다.
“이건...?”
“물복숭아라는 거에요!”
니드는 과일을 내왔다. 그것의 겉면에는 물기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고, 복숭아 향기가 났지만 모양새는 사과와 비슷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중에서도 과일 재배가 가능한 것 같았다. 그녀는 물복숭아를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자 과즙이 터져 흘러나왔다. 아리나는 눈을 반짝이며 서둘러 물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장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것의 달달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과나 육지에서 먹던 복숭아보다 훨씬 달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들고 있던 것을 다 먹어치우고 새로운 것을 집었다. 그 쯤 되자 하울도 맛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맛있냐?”
“우물...우물...환상적이에욧!”
하울의 물음에 아리나는 볼이 빵빵해지도록 물복숭아를 베어 물며 말했다. 과즙이 수중에 흩날렸고, 하울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잠시 사과 같이 생긴 그것을 노려보던 그녀는 입을 아앙벌려 작게 베어 물었고, 입 안 가득 과즙이 터져나왔다. 하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이 굉장히 좋았던 것이다. 그녀는 물복숭아를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민혁도 티샤에게 하나를 건내고 자신도 맛을 보았다. 분명 맛있었다. 일행이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보던 니돈과 니드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들은 갈 때 물복숭아를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우물..우물..고맙습니다!”
아리나는 먹이를 저장한 햄스터처럼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힝...벌써 다 먹었어요...”
아리나는 과즙이 흐르고 있는 손을 쪽쪽 빨며 말했다. 니드가 가져왔던 쟁반에 놓여져 있던 수 많은 물복숭아들은 이미 하울과 아리나의 배속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한 눈에 봐도 30개는 되어보였는데 그것들을 전부 먹고도 그녀는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았다. 니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족하면 더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제안에 아리나는 눈을 반짝였지만 순간 자신의 배가 볼록 나온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편히 계시다 가시길......”
니돈은 여성진들이 많다 보니 부담스러웠는지 니드에게 안내를 맡기고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그녀는 일행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아리나는 그녀에게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울은 혹시 물복숭아의 묘목이 있다면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물복숭아의 맛에 푹 빠진 것 같았다. 니드는 그녀들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바깥 구경을 할까요?”
“좋아요!”
니드는 민혁 일행을 데리고 집에서 빠져나왔다. 마을 이곳저곳에는 많은 세이레네스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하울의 정체를 들었는지 그녀가 지나가면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취했다. 세이레네스들은 모두 상반신은 알몸인 상태여서 민혁은 때 아닌 눈호강을 하기도 했다. 니드에게 물어보니 그녀처럼 상반신은 비키니나 옷으로 가리는 것은 육지에서 온 손님을 모시거나 육지로 올라갈 때 뿐이라고 한다. 일행은 니드의 안내에 따라 마을을 구경했다. 생활양식은 다를 게 없었지만 세이레네스들의 건축물이나 식문화는 매우 새로웠다.
“우와 여기 있는 게 전부 물복숭아에요?!”
세이레네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공터, 그곳에는 산호초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이 열을 맞춰 심어져 있었다. 줄기에는 방금 전 맛있게 먹었던 물복숭아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아리나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물복숭아를 입에 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무들을 관리하는 세이레네스들이 있었기에 그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파이난씨!”
“오 무녀님 아니십니까!”
물복숭아 나무를 관리하던 남자 세이레네스는 그녀가 부르자 가지를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니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뒤에 서 있는 하울과 일행들을 소개했다. 하울이 드래곤임을 알게 된 파이난이라는 세이레네스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를 받은 하울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며 여기까지 온 이유를 그에게 말했다. 물복숭아 묘목을 달라는 그녀의 말에 파이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잠시 일행에게 기달려달라 말한 후 함께 일하는 세이레네스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물복숭아 묘목을 다섯 그루나 가져왔다. 하울은 한 그루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사양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그녀에게 다섯 그루를 모두 주었다. 그녀는 못이기는 척 아공간에 묘목들을 집어넣었다.
“잠깐!”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세이레네스, 니드와 닮은 외모에 작은 키 짧게 자른 샤기 컷의 그는 하울이 묘목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니레스 너 뭐하는 거야?!”
니드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소리쳐 외쳤다. 그녀가 보기 드물게 화를 내자 니레스는 멈칫하며 속도를 줄였다.
“누나야 말로 뭐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물복숭아 나무를 외지인 그것도 인간들에게 넘겨주는 거야...!”
그는 니드를 누나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친동생으로 보였다. 니레스라는 네이레네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정말로 분노한 것 같았다. 그는 홀깃 하울을 째려보았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울도 화가 났지만 무언가 일이 있는 것 같으니 니드에게 해결하라는 뜻으로 보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울의 행동을 오해했다. 그녀가 자신의 누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발을 뺀 것처럼 본 것이다.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울그락불그락 했다.
“너야말로 뭐하는 짓이야 이분이 누군지 알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니레스의 행동을 두고 볼 수만은 없던 니드는 동생에게 큰소리를 쳤다. 그는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물러섰다. 누나가 이렇게까지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니레스는 이를 악물더니 하울을 한 번 째려보고 뒤돌아 뛰어갔다. 민혁은 무슨 상황인가 싶어 물복숭아 관리를 맡고 있던 네이레네스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얼굴색을 까맣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그게...”
민혁의 물음에 니드는 답을 하기를 주저했다. 하울은 그녀의 옆구리를 툭치며 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보라고 했다. 그녀의 압박에 니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50여년 전 세이레네스 마을은 호수의 지배권을 두고 님프들과 전쟁을 벌였다. 결사 항전의 기세로 전투를 벌였지만 본래 전투에 능하지 않은 세이레네스들은 패배하고 말았다. 님프들은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5년에 한 번 씩 물복숭아를 대량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뒤가 없던 세이레네스는 그 조건을 수락했고 미묘한 평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5년 전부터 물복숭아 나무의 출하량이 점점 낮아짐에 따라 님프들의 불만이 커졌다. 그들은 나무의 관리가 귀찮아서 세이레네스들에게 맡길 요량으로 그들을 살려두었건만 출하량이 낮아지자 눈이 뒤집혔다. 님프들은 이번에 받칠 물복숭아의 양이 기존보다 적으면 전쟁을 각오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니드의 동생인 니레스가 하울이 묘목을 챙긴 것을 보고 화를 낸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울은 차라리 싸워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건 무리에요...저희의 수는 님프들보다 한참은 적어요 게다가 전투병력도 질의 차이가...”
“데네이루 녀석에게 도와달라고 해봤어?”
“....죄송하잖아요...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고...게다가 님프의 왕은 데네이루님보다 강해요”
“그 녀석 환수 중에서도 꽤 상위종일텐데....?”
그녀의 말에 하울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아마 물복숭아 나무를 가져가는 것이 양심에 찔려 도와줄까 말까 생각 중인 것 같았다. 민혁은 힐끔 아리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안타까운 눈동자로 니드와 물복숭아 나무를 관리하는 네이레네스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데 본 적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동안 그녀는 시무룩해져 있을 것이 분명 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까요?”
“정말요?!!”
니드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물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펄쩍펄쩍 뛰다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님에게 그런 부탁까지 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마음씨 고운 아가씨의 말에 민혁은 그럼 다른 방도가 있냐고 물었다. 니드는 입을 꼬옥 다물었다. 대책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좋은 방도가 생각났다. 민혁은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님프족을 무찔러 줄테니 그들에게 주려고 했던 물복숭아의 반을 달라고 말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분명 세이레네스들에게는 좋은 조건이다. 잠재적 위험 요소 자체가 사라지는 셈이니 말이다.
“그,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니드는 하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조건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과즙이 잔뜩 터져나오는 물복숭아를 생각하면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민혁은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자 퀘스트창에서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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