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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212화 (212/245)

〈 212화 〉 전초

* * *

민혁이 어찌 행동하던 둘은 끝장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로건의 아크 스톰(Arc strom)에 의해 블리자드 세이버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트리거는 크게 놀랐다. 설마 블리자드 세이버가 밀릴 것이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입을 앙 다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블리자드 세이버에 마나가 모여들어 깨진 곳을 수습했지만 이미 균형추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용병왕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블리자드 세이버를 깨트려버렸다. 얼음 결정이 하늘에 흩날렸고, 깨진 조각들은 트리거에게로 날아갔다. 이미 마나가 많이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막을 힘이 없었다.

“이러면 곤란해”

그 때 민혁이 등장했다. 그는 트리거에게 튄 얼음조각들을 모두 막아주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방해에 용병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날리려 했지만 마나 소모와 체력 소모가 커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릴리는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주위의 용병들과 병사들도 아군으로 생각했던 그의 배신과도 같은 행동에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민혁은 무시하고, 뒤를 돌아 놀란 표정의 트리거를 쳐다보았다.

“탈리스만의 반지는 어디 있지?”

그는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탈리스만의 반지라..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민혁의 말에 트리거는 눈을 부릅뜨더니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반응에 민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트리거의 정신 상태가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 몇 대 때리고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노인공경이라는 생각은 저 멀리 던져두고 주먹을 들어 올려 그의 복부를 내리쳤다. 탄탄한 육체가 그의 공격을 버티는가 싶었지만 이내 기절해버렸다. 민혁은 트리거를 어깨에 매고, 용병왕에게 다가갔다.

“목적이 뭐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에도 사납게 소리치는 용병왕, 민혁은 이대로 죽여 경험치를 얻을까 생각해보았지만 공략대상인 릴리의 앞에서 죽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트리거에게 손을 내밀었다. 용병왕은 잠시 고민하다 민혁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전, 전쟁이 끝났다!”

민혁의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던 전장은 묘족기사의 외침에 기쁨의 도가니로 변했다. 묘족기사들과 병사들은 아군들을 부축하며 전쟁이 끝났다는 생각에 웃었고, 용병들은 추후에 있을 보상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병장기를 챙겼다. 반면 주인을 잃은 배틀메이지들과 병사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민혁에게 붙들린 트리거를 바라봤다. 개중에는 포기하지 못하고 덤벼드는 자도 있었지만 티샤가 가볍게 손을 쓰자 썩은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묘족 기사들과 병사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성 내부를 장악했다. 다행히 탈리스만 영지의 주민들도 트리거가 전쟁을 일으킨 것에 반감을 품고 있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난 자네가 정말 배신하는 줄 알았네!”

피로 점칠 되어 있는 탈리스만 영주성 트리거의 집무실, 릴리는 소파에서 살짝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소리쳤다. 민혁은 집무실 벽면에 기절한 트리거를 눕혀두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용병왕은 그가 고용된 용병이라는 사실을 릴리에게 듣자 쉽게 적개심을 풀고 웃는 낯으로 그를 대했다. 아리나는 다친 병사들을 봐주러 갔고, 티샤는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갔다. 하울만 그의 옆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탈리스만의 반지를 찾고 있다고?”

민혁이 방금 전 트리거의 목숨을 구한 것에 대한 답변을 하던 도중 로건이 물었다. 용병왕의 물음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는 탈리스만의 반지를 찾는 이유를 교묘하게 거짓을 섞어서 말했다. 또한 탈리스만의 반지를 찾기 위해 숨어들었던 영주성 최상층에서 클레드의 시체를 발견한 것도 알려주었다. 릴리는 그가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물론 자신의 손으로 죽였어야 한다고 말하며 말이다. 용병왕은 릴리가 분해하자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흠.....뭐 릴리에게 들어보니 내가 없는 동안 큰 공을 세운 듯하니 탈리스만의 반지정도야 가져가도 좋네 어차피 그건 탈리스만의 선조가 썼다는 것 빼고는 아무 기능이 없으니까 말이야”

용병왕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는 릴리에게 묻지도 않고, 탈리스만가의 비보를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민혁은 힐끗 릴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스승과 제자, 사촌 사이라도 공을 나누는 것은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을 있다. 괜히 논공행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용병왕은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그에게 탈리스만의 반지를 찾는다면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릴리도 갑작스런 그의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동의했다.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싸인 걸 것이다.

“그럼 이제 탈리스만의 반지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불게 만들도록 하세나!”

릴리는 안절부절 참지 못하고, 쇼파에서 일어났다. 민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일어났다. 그녀는 필시 빨리 원하는 정보를 찾고 트리거 탈리스만을 죽이고 싶을 것이다. 방금 전에도 목숨이 위험한 트리거의 앞을 막아섰을 때 가장 많이 화를 낸 사람은 그녀였으니 말이다. 릴리가 일어나자 용병왕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벽에 기대어 기절해 있는 트리거에게 다가갔다. 민혁은 그의 표정을 힐끔­하고 살폈다. 적의 수괴를 잡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로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친한 사이셨습니까?”

“...흐음...뭐 그렇다네...몇 백년...동안이나 함께 했으니 안 친해질 수가 없었지...아마 이 노인네가 미친짓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예년처럼 지금도 같이 낚시터에서 낚시나 하고 있었을텐데......”

그의 질문에 용병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담겨있었고, 회한이 담겨있었으며 애증이 담겨있었다. 손자를 죽임에 분노했고,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을까 회한이 들었다. 또한 손자의 죽음에도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마음이 미워졌다. 용병왕은 머리 속을 가득 채우는 온갖 상념들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웃으며 기절한 트리거를 깨우기 위해 그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있는 릴리를 말렸다.

“이봐 늙은이 일어나보쇼!”

“......”

정신을 잃었던 트리거는 로건이 마나로 신체를 활성화 시켜주자 금세 눈을 떴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릴리는 누가 말릴 세도 없이 트리거에게 달려들어 펀치를 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맞은 그도 놀랐고, 평소 그녀의 얌전한 모습만 보던 로건도 많이 놀랐다. 릴리의 분노가 클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 인줄은 몰랐던 로건은 그녀를 달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릴리는 주먹을 날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다가 옆에 놓여져 있던 화분을 그를 향해 던져버렸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어졌고, 개중에는 트리거를 향해 날아든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막지 않았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튀어 그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로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릴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리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그녀가 저렇게 괴로워 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들 때문인데요.”

민혁의 말에 트리거는 마치 기계처럼 자신의 표정을 지워버렸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트리거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조종당하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민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눈앞에 손을 흔들어도 뺨을 가볍게 때려도 그는 반응이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릴리를 말리던 로건도 성을 내며 날뛰던 그녀도 시선이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클레드의 릴리 강간미수, 그녀 동생의 사망, 이유 없는 전쟁의 시작,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클레드, 황태자의 편지, 사라진 탈리스만의 반지까지 단서를 모두 취합해본 민혁은 혹시 트리거가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곤히 자고 있는 하울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옷소매로 쓰윽 닦더니 왜 깨웠냐며 화를 냈다. 민혁은 하울을 어루고 달래며 여전히 멍해져 있는 트리거의 앞으로 끌고 왔다.

“뭐야 이거”

그녀는 단번에 트리거의 상태를 알아봤다. 하울은 가자미눈을 뜨고 그를 살피더니 오른손으로 트리거의 이마를 툭­쳤다. 그러자 그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았고, 정신이 맑아졌다. 트리거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울의 얼굴을 확인하고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위, 위대하신......!”

“입 다물어”

트리거는 그녀와의 접촉만으로 하울이 드래곤임을 알아채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 예를 취하려 했지만 싸늘한 하울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로건과 릴리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민혁은 그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이 사람 세뇌 당했던거야?”

“흠...세뇌라기 보다는...조종이야..저주의 한 종류인데...비슷해 그런데 좀 특이하네 일단 마법은 아닌 것 같아 아티팩트 종류인가...?”

트리거가 조종당했다는 말에 제일 놀란 사람은 릴리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트리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멱살을 들어올리며 정말이냐고 물었다. 트리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를 잡아챘던 손을 스르르 놓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의지대로 동생을 죽이고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민혁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릴리의 눈가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왔다. 그는 릴리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붉게 물든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트리거를 잠시 노려보다 방문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후우...그래서 탈리스만의 반지는 어딨지?”

그녀가 뛰쳐나가자 용병왕도 뒤따라나갔다. 민혁은 한숨을 쉬고, 트리거에게 물었다.

“네 목적도 탈리스만의 반지냐...?”

그의 말에 민혁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너도라면 다른 누군가가 그에게 탈리스만의 반지를 요구했다는 소리다. 분명 제국의 황태자가 그에게 탈리스만의 반지를 보내라는 편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 민혁은 그를 노려보며 코로나 제국의 황태자에게 탈리스만의 반지를 넘겼냐고 물어보았다. 트리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나를 조종한건 황태자다..난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모든 게 황태자의 짓인가? 릴리의 동생을 죽인것도.. 클레드가 그녀를 강간하려 한것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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