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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211화 (211/245)

〈 211화 〉 전초

* * *

릴리는 민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적을 베어 넘기고 주위를 살피지 않고 바로 달려올 정도로 매우 반겼다. 그가 아리나와 하울을 보내준 덕분에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나와 티샤의 눈치가 이상했다. 눈빛이 묘한 것이 민혁은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고, 양 팔에 찰싹­달라붙었다. 그녀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은 것은 릴리였다. 그녀는 그에게서 약간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트리거는?”

민혁이 본론을 꺼냈다. 릴리는 고개를 한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묘족 기사의 기준으로 봤을 때 괴물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두 사람 격돌 중이었다. 한 쪽은 포베너 가문의 가주인 트리거 탈리스만이었고, 다른 한 쪽은 처음 본 늙은이였다. 온 몸이 하얀 털로 덮혀 있었고, 꼬리와 귀가 쫑긋 서 있는 것이 꽤나 특이한 차림새였다. 릴리는 그가 트리거와 싸우는 사람을 모르는 눈치이자 그의 정체를 가르쳐주었다. 불세출의 전쟁왕, 전장의 사자, 검만으로 환수를 잡은 초인, 온갖 수식어를 다 가지고 있는 남자, 용병왕 로건 포베너였다.

Level: 220

이름: 로건 포베너

종족: 묘인

경지: 그랜드 마스터

체력: 59666/59666

마나: 25116/25116

“저분이 바로 내 스승이자 포베너의 수호신 용병왕 로건님일세!”

릴리는 가뜩이나 모자란 가슴을 끌어 모아 보란 듯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민혁은 둘의 싸움을 구경하느라 보지 못했지만 하울은 그녀의 가슴을 보고 이겼다며 키득거렸다.

“......대단하다..”

티샤의 말대로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수준의 생사결이었다. 트리거는 3중첩이나 되는 마법진을 만들어 로건을 압박했고, 용병왕은 맨몸으로 그것을 막으며 우격다짐식으로 주먹을 뻗으며 트리거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답게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궁극의 육체, 트리거도 저서클 마법으로 그를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기에 중첩마법을 거두고,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6서클 마법을 하나 풀어놨다. 뇌전계 최강이라고도 불리는 라이하덴이었다. 하늘에서 큰 줄기의 벼락이 내리꽂혔고, 번개는 땅을 타고 들어가 수백의 작은 줄기로 변했다.

“이 늙은이가!”

용병왕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저릿저릿해진 땅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허공답보와 비슷한 무예를 선보였다. 그가 땅을 디딜 수 없게 되자 트리거는 호탕하게 웃더니 기후 변화마법을 사용해 로건의 근처를 습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뇌운이 만들어진 것이다. 트리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스콜드 마법을 사용했다.

우드드드­

“이런 젠장!”

로건의 머리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땅의 전류와 뇌운이 상호 반응을 일으켜 벼락폭풍을 발생시켰다. 용병왕은 혀를 차더니 오른손에 기를 끌어 모아 하늘 높이 올려쳤다. 그와 동시에 뇌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단순한 그의 주먹질만으로도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식한 새끼...”

그의 무식한 파훼법에 트리거는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렸다.

“뭐라는거요 미친 노인네가!”

저승 빼고는 모두 굴러보았다는 용병왕도지지 않고 상욕을 퍼부었다. 각자 노리던 수가 하나씩 사라지자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실력이 비슷한 둘이라서 먼저 누군가가 덤벼든다면 상대에게 틈을 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간의 눈치싸움이 이어졌고, 먼저 움직인 것은 트리거였다. 그는 소환마법을 펼쳤다. 손 위에서 마나가 요동쳤고, 그 위에서 기하학적인 문양의 마법진 여러 개가 생겨났다. 그것은 곧 하늘로 뻗어나갔고, 아공간과도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크롸아아아아­

그리고 그 안에서 펜서 드래곤(Panther Dragon)이 소환되었다. 녀석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겠다는 듯 아가리를 크게 벌려 하늘이 떠내려가라 피어를 내뿜었다. 용병왕은 욕이 입 밖까지 튀어나왔다. 펜서 드래곤은 이름처럼 진짜 드래곤은 아니다. 하지만 크기만 작을 뿐 드래곤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환수이며, 육체 능력도 비슷하다. 게다가 브레스까지 쏠 수 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사역하고 싶어 하는 녀석이지만 드래곤이나 마족을 제외하고 펜서 드래곤과 계약 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트리거가 최초일 것이다. 그는 계약에 성공했고, 이 중요한 상황에 비장의 수를 꺼내든 것이다.

크롸아아아­

한 번 더 피어가 뿌려졌고, 포베너가의 군사들과 탈리스만가의 군사들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서 있는 자들이라고는 탈리스만의 호위 기사단과 민혁 일행, 릴리 정도였다. 용병들 중에서도 몇몇이 꿋꿋이 서 있었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좀 거슬리네...?”

웅장한 펜서스의 드래곤의 등장을 보고 있던 민혁은 귓가에 울리는 하울의 싸늘한 말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에 사거리 마크를 달고 있었고 몸 주변에서는 마나가 너울처럼 일렁거렸다. 아마 피어를 여기저기에 무작위로 쏘는 바람에 그녀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 민혁은 그녀를 달랠까 아니면 풀어둘까 고민하다가 그냥 냅두자고 결정했다. 애초에 한쪽이 불리해지면 나서서 탈리스만의 반지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을 트리거를 납치할 요량이었다. 계획이 앞당겨져 하울이 지금 날뛴다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죽여버려”

“정말...?!”

그의 말에 하울은 칭찬 받은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며 정말이냐고 물었다. 민혁은 히죽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신이 나서 플라이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는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펜서 드래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저건......!”

갑작스러운 하울의 난입에 릴리는 놀라서 민혁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냅둬도 괜찮냐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의 표정에 신뢰감이 묻어나고 있었기에 릴리도 다시 상황을 지켜보았다. 놀란 건 릴리뿐만이 아니었다. 용병왕과 트리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용병왕은 단순히 가녀린 처자가 겁도 없이 펜서 드래곤의 아가리 앞에 나선다는 것에 놀랐고, 트리거는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펜서 드래곤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랐다. 그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추가적인 버프 마법을 녀석에게 걸어주려 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따악­

“눈 안 깔아?!”

하울이 펜서 드래곤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친 것이다. 그녀의 황당한 행동에 트리거와 로건이 동시에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더 웃긴 것은 그 다음 상황에 벌어졌다. 그녀의 말따마나 펜서 드래곤이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마치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주인에게 혼나는 애완견 같은 모습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제 눈을 의심했고, 릴리는 생전처음으로 입을 떠억­하고 벌렸다. 그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

“왜 부끄러움은 저희 몫 인걸까요...”

“......”

아리나는 창피함에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고, 티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면 민혁은 키득키득 웃었다. 트리거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펜서 드래곤을 더 소환하고 있다가는 자신의 마나만 더 소모될 것임을 깨닫고 녀석의 소환을 취소했다. 펜서 드래곤은 폴리곤 입자처럼 변해 마법진 안으로 사라졌고, 하울은 길들여놓은 녀석을 사라지게 만든 그를 한 차례 노려보고, 제 자리인 민혁의 곁으로 돌아갔다. 트리거는 순간 온 몸을 감싸는 오싹함에 체면을 잊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로건이 달려들었다.

콰앙­

“...이 치사한 새끼가!”

“목숨 걸고 싸우는데 치사고 자시고가 어딨소!”

로건이 주먹을 날렸고, 트리거는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해냈다. 용병왕의 주먹이 땅에 닿자 족히 10m는 되보이는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트리거는 그것을 보고 안색을 하얗게 물들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용병왕은 그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도 부웅­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트리거는 그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메모라이즈 해놓았던 블링크 마법을 사용했다.

“노인 공경은 어디다가 팔아먹은 게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개소리 말고 빨리 덤비쇼!”

또 다시 난전이 이어졌고, 민혁은 살기 가득한 공격을 서로에게 날림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안 좋은 것은 아님을 눈치 챘다. 말투로 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악우 같아보였다. 그의 고민이 깊어져가는 가운데 로건과 트리거의 싸움도 막바지로 치달았다. 용병왕은 거듭되는 전투에 상처는 크게 입은 곳이 없었지만 체력적인 문제에 시달렸고, 트리거는 마나 부족 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고위급 마법을 준비했다. 얼음 알갱이들이 그의 주위를 배회했고, 곧이어 거대한 빙정을 만들어냈다. 그 거대한 크기에 로건의 눈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블리자드 세이버(blizzard saber)!”

6서클 빙계 최고 마법 블리자드 세이버가 그의 손에서 발현됐다. 로건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5년 전에 비무를 했을 때에도 저런 마법은 보지 못했다. 자신이 더 성숙해졌듯 그도 더욱 강해진 것이다.

“아크 스톰(Arc strom)!”

로건도 그에 대응해 비기를 펼쳤다. 릴리가 성문을 향해 화살을 발사 했을 때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활이라는 촉매가 없는 용병왕은 자신의 몸을 화살로 바람과 뇌기를 끌어모았다. 초자연적인 그것들은 회오리 모양을 이루며, 그의 몸을 감쌌다. 로건은 몸을 때리는 풍압과 뇌기에 입술을 꽉 깨물며 버텼다. 그리고 트리거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돌진했다. 로건은 표범이 먹이를 노리기 위해 도약 자세를 준비하는 것처럼 몸을 굽혔다가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고, 트리거는 그에 맞게 블리자드 세이버를 쏘아보냈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돌음과 비산하는 먼지들, 릴리는 풍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며 충돌현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로건의 주먹은 블리자드 세이버를 깨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의 무식한 힘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트리거도 있는 대로 마나를 쏟아 붙어야만 했다. 뇌기와 빙정이 만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겼고, 돌풍이 불었다. 민혁은 아리나와 티샤의 앞에서 그녀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게 기막을 펼치며, 슬슬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인네!!”

“......!”

민혁이 어찌 행동하던 둘은 끝장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로건의 아크 스톰(Arc strom)에 의해 블리자드 세이버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트리거는 크게 놀랐다. 설마 블리자드 세이버가 밀릴 것이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입을 앙 다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블리자드 세이버에 마나가 모여들어 깨진 곳을 수습했지만 이미 균형추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용병왕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블리자드 세이버를 깨트려버렸다. 얼음 결정이 하늘에 흩날렸고, 깨진 조각들은 트리거에게로 날아갔다. 이미 마나가 많이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막을 힘이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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