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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208화 (208/245)

〈 208화 〉 전초

* * *

오히려 먼저 달려들었다. 하지만 추풍낙엽처럼 그의 손에 쓰러졌다. 병사들이 쓰러지자 이번에는 마법사들이 덤볐다. 그들은 병사들처럼 무작정 돌진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저주 계열 마법을 먼저 사용 했다.

“발을 묶어라 슬로울리(slowly)”

“천 길 낭떠러지 속 어둠을 맛봐라 다크니스(Darkness)”

“적을 물어 뜯어라 바인드(Bind)”

가지각색의 마법이 민혁에게 적중되었다. 눈이 감기고, 몸이 고정되었다. 체감 속도는 한 없이 낮아진 상태였다. 마법사들은 실없이 웃으며, 자신들에게 스트랭스(strength) 마법을 걸어 근력을 높였다. 그리고 죽은 병사의 창을 들어 그의 목을 치려 했다.

푸확­

“끄으어억!”

높이 올려진 검날과 함께 베어진 것은 마법사의 목이었다. 민혁은 검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자신에게 걸린 저주 마법들을 내공을 이용해 모두 태워버렸다.

“어떻게 된거지 눈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감각은 살아 있다”

화경에 이른 무인들의 상징, 이형환위가 펼쳐졌다. 마법사들은 그가 소드마스터인 것을 깨닫고 혼비백산해 블랭크(blank)마법으로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그의 손속이 더욱 빨랐다. 허공에 빛이 반짝였고, 마법사들의 머리가 후두둑­바닥에 떨어졌다. 민혁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마법사들을 내버려두고,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용병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막아라! 모두 힘을 합친다면 용인족 정도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묘인족 중견 용병 파티 베히모스의 파티장 베드로는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용인족들의 창칼을 막으며,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쉼 없이 소리쳤다. 하지만 하나씩 눈 먼 칼에 맞아 부상을 입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집에는 토끼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었다. 베드로는 앞장 서서 용인족 병사들을 베어냈다. 그것을 본 마법사가 그에게 커다란 불덩이를 던졌다. 몸을 던져 피하려 했지만 베어 넘긴 용인족 하나가 발을 잡고 늘어졌다. 그를 떼어내려 별의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지옥의 악귀라도 되는지 손을 잘라내도 병사는 그를 놓지 않았다. 마침 가지고 있던 베리어 스크롤도 모두 사용한 상태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콰광­

“......!”

최후를 예상하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서쪽 하늘에서 유성과 같은 무언가가 배틀메이지들이 모여 있는 곳을 덮친 것이다. 마법사가 던진 불덩이는 약화되었고, 베드로는 검을 들어 가볍게 날아오는 그것을 베어내버렸다. 그는 기적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 배틀메이지들이 쓰러진 곳을 주시했다. 놀랍게도 젊은 인간 남자가 강기를 잔뜩 머금은 검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기......!”

베드로는 감사인사라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용병들이 싸우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행동에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휘하 용병들을 수습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됐네..후우..”

민혁이 전장을 휘저으며, 용인족들을 베어넘기고 다니자 전장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잔존 병력이 남긴 했지만 용병들이 수습만 잘한다면 금세 해결이 될 수준이었다. 문제는 용병 길드원 쪽이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꽤 많은 수가 죽음을 당한 상태였다. 애초에 그들은 플레티넘 등급의 용병의 보조로 온 것이었기 때문에 무력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루비 괜찮습니까?”

민혁은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루비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냐냥...괜찮다냥...후우...”

입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귀와 꼬리를 추욱­ 쳐져있었다. 민혁은 그녀의 뒤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루비는 냐냥하고 작게 울었다. 이후 그나마 부상이 적은 묘족기사들과 병사들이 필두가 되어 전장을 정리했다. 적군은 약 1천 가량 아군의 피해는 사망한 이가 1200여명 가량이었고, 부상자가 600여명 정도 되었다. 용병 측 총 인원이 3000명 가량인 것을 보자면 반에 달하는 인원이 전투 불능이 된 것이다. 부상자가 많았기에 고급인력인 마법사들도 다음 날 릴리 포베너가 본진을 이끌고 올 때 까지 쉴 틈이 없었고, 화를 피한 길드 직원들도 슬퍼할 겨를 없이 용병들의 상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고맙네..”

침중한 그녀의 말에 민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 포베너는 본진을 끌고 1차 합류지에 도착하자마자 탈리스만의 병사들이 벌인 짓을 보고 분노를 터트렸다. 그녀는 본진의 병사들과 용병들을 시켜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하였고, 직접 야영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투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장내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탈리스만 병사들을 처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민혁을 이렇게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다.

“냐냥...아무래도 세작이 있는거같다냥..”

“그럴 수밖에..이렇게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데 세작 한 두명 없을까...문제는 내가 너무 방심을 했다는 거겠지!”

릴리는 많이 분한 듯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러면 바로 3차 합류지로 향하는거냥?”

“그러는게 좋을 것 같군..2차 합류지를 들렸다가 또 기습을 받으면 일이 곤란해지니 말이야...”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1차 합류지에서 습격을 받았으니 2차 합류지에서도 습격이 있을 수도 있었다. 릴리는 본진에서 합류한 5천명의 병력과 부상자와 사망자를 제외한 1500명의 인원을 합쳐 3차 합류지인 오코도 강으로 향했다. 툰드르 왕국의 젖줄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강줄기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탈리스만 영지였다. 용병들은 동료의 복수를 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병사들도 그에 호응해 진군 속도를 높여 불과 3일 만에 오코도 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민혁은 기감을 넓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적의 기척이나 수면향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떤가 괜찮은가?”

옆에서 말을 타고 있던 릴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물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1차 합류지에서의 활약 후 그녀는 민혁에게 호위기사 역을 맡겼다.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절 했겠지만 미소녀이다 보니 수락을 했다. 릴리는 그의 호위가 마음에 들었는지 실제로 기사가 되는 것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거절하자 그녀는 대놓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민혁이 주변에 있던 묘족 기사들에게 한참 동안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전군 여장을 풀어라! 내일 오만한 탈리스만놈들의 죄를 묻기 위해 진격할 것이다!”

증폭[amplification] 마법이 마법사의 손에 의해 발동되자 릴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병과 병사들에게 자기 딴에는 기백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이 우와아아아­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릴리는 자신의 연설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녀만 모르는 일이지만 주변에 있는 묘족 기사들이나 병사 심지어 용병들까지 그녀의 연설에 함성을 지른 것이 아니라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교화된 것이었다. 그 증거로 묘족 기사들은 릴리를 마치 자기 딸이라도 된 양 흐뭇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흠흠...좋군 좋아..그럼 이제 자네들도 가서 쉬게나 나도 내일을 대비해서 일찍 자야겠으니..”

“간다냥!”

“아...네 알겠습니다..그럼 안녕히..”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살랑거리는 릴리를 뒤로하고, 루비는 길드 직원들이 부상을 치료 받는 곳으로 향했고, 민혁은 아리나와 티샤 하울이 기다리고 있을 천막으로 향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니 아리나가 웃으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티샤도 손을 작게 흔들며 그를 반겼다. 하울은 졸린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민혁은 피식 웃으며 아리나가 준비해놓은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야영지의 불이 하나 둘 꺼지고, 잘 시간이 되자 민혁은 혹시 몰라 기감을 최대한 넓히고, 아리나를 끌어 안은 채 잠에 빠졌다.

사각사각­

새벽녘, 내일을 위해 일찍 자겠다던 릴리는 아직도 병술서를 보며 무언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메모하다 어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포베너가와 탈리스만가는 자주 혼인을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그녀의 어머니만 해도 탈리스만가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가살이를 하던 동생이 죽고, 충실한 기사이던 버팔로 경이 죽으면서 관계가 180도 바뀌었다. 그녀도 동생의 죽음에 분노했지만 왕국을 지탱하는 두 가문이 일을 이렇게까지 큰 전쟁을 벌이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버팔로 경을 사신으로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그의 죽음뿐이었다. 버팔로 경이 죽자 용병왕이 움직였다. 무려 손자의 죽음인 것이다. 결국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도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2년 전만 해도 가주끼리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일이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 릴리는 침침해져오는 눈을 비비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고민해봤자 일은 벌어졌다. 어느 쪽이 지든 한쪽은 무조건 멸문이다. 그녀는 그것이 포베너가가 아니기만을 바라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잠이 오나?”

낮고도 싸늘한 목소리

“누구냐!”

릴리는 벌떡­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경계 했지만 방 내부에는 그녀 혼자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 목소리가 들렸다. 릴리는 침대 맡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애검을 조심스럽게 잡아들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강기를 품은 단검들이 쏟아져 내렸다. 검을 빼들고 대처하기는 늦은 상황, 릴리는 입술을 깨물고 침대에서 구르며, 자신을 노리는 흉기들을 피해냈다.

“엉덩이가 무거워 몸놀림도 무거워졌을 줄 알았더니 아직 제법이군”

다시 한 번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릴리는 억지로 기억을 지어 짜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적어도 포베너가와 관련된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사라진 기억을 찾아내던 중 침대에 박힌 단검의 문양을 봤다. 한 마리 새가 새겨져 있었다.

“네,네놈은 설마?!”

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의 눈을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야 알아챘나보군..”

낮고 삭막한 목소리였지만 분명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릴리는 떨리는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예기가 어둠 속을 비추었고, 어째서인지 잔뜩 흥분한 릴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으아아아­하고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검은 예리하게 허공을 갈랐지만 그녀가 원하던 파육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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