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전초
* * *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고소한 기름 맛에 중독되어 놓칠 수가 없었다. 민혁은 어느새 쟁반 가득 이었던 튀김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아쉬움에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빨던 그는 아리나와 일행들이 생각나 10인분이나 되는 많은 양을 포장했다. 그 외에도 많은 간식거리를 샀다.
“나 왔어!”
양 손 무겁게 먹을 거리를 들고 여관에 도착한 민혁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어서 와요!”
“....기다렸다...”
“아 미안 미안 꽤 골치 아픈 일이 있었어.”
그는 그녀들의 마중에 일일이 대꾸해주며 사온 먹거리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울은 여전히 자는 중이었다. 민혁은 하수도를 뒤지고, 보지 않아도 됐을 역한 구경거리를 보게 해준 하울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바퀴벌레 모양 초콜릿을 얼굴 옆에 놓고,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으응...졸려..”
하울은 몸을 비틀며, 가슴께 까지 내려갔던 이불을 올려서 머리 위까지 덮었다.
“일어나 먹을꺼 사왔어”
하지만 민혁이 튀긴 게를 침대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며 말하자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민혁은 히죽 웃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앙벌려 게 튀김을 씹어먹었다. 하울은 입 안에 남아 있는 게 튀김의 여운을 느끼며 입맛을 쩝쩝다셨다. 그리고 민혁을 올려다보았다. 더 없냐는 눈빛이었다. 그는 음식들이 벌려져 있는 테이블을 손짓했다. 하울은 이불을 옆으로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던 중 침대 맡에 놓여져 있는 바퀴벌레의 형상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오 바퀴...!”
예상 외의 좋은 반응에 민혁은 싱긋 웃으며 그 물체가 바퀴벌레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려 했다.
“꺄아아아아아악!!”
방이 떠나갈 정도로 큰 비명, 음식을 먹으며 민혁의 행동을 지켜보던 아리나와 티샤는 재빨리 귀를 막았고, 민혁은 그녀의 비명만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울은 자지러지게 놀라며, 침대 위로 올라섰고, 빨리 바퀴벌레 초콜릿을 치우라며 소리쳤다.
“빨리 치워 멍청아!”
“크크크큭...하하하핳...뭐 이거?”
“빨리!!!!”
민혁은 바퀴벌레를 들어올려 하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홱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키득키득거리며 바퀴벌레 초콜렛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힐끗거리며 지켜보던 하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했다. 아드득 초콜릿 씹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하울은 그제서야 침대에 놓여져 있던 것이 진짜 바퀴벌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익....!”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상태로 그를 노려보았다. 민혁은 하울의 눈물을 보고 장난이 지나쳤음을 깨닫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쓱쓱닦고, 침대에서 내려와 쿵쿵소리를 내며 음식이 놓여져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와직
하울은 닭다리 하나를 들어 맛깔나게 살을 뜯어먹었다. 민혁도 눈치를 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가 앉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째려보았다.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미안해”
“흥..앞으론 조심해 벌레는 정말 싫단 말이야!”
아량 넘치는 그녀의 용서에 민혁은 그제서야 음식에 손을 댈 수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리나와 티샤는 킥킥거렸다. 배를 채운 일행에게 민혁은 미노타우로스 실종 사건에 대한 것과 마차 구매에 관한 것을 이야기했다. 특히 여성진들은 케달락의 범행을 듣고 매우 분노했다. 하울이 언데드로 만들어 영원히 고통 받게 하겠다는 것을 민혁이 겨우겨우 말렸을 정도였다.
“하루 정도라...그냥 방에서 뒹굴거리자”
“흠... 그건 저녁에 해도 되잖아요... 영지를 구경하는 건 어때요?”
“.....나는 아리나의 의견에 찬성한다...”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하울은 움직이기 귀찮은지 뒹굴거리고 싶어했고, 아리나는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했다. 티샤는 눈치를 보더니 아리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럼 하울 넌 남아 있을래? 우리끼리 구경 갔다가 올게”
“그래 나갔다와 난 좀 더 자야겠어..하암~”
결국 하울은 침대로 기어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고, 민혁과 아리나, 티샤는 시간을 떼우기 위해 영지 구경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종족의 왕국답게 아이지스 왕국 수도에서도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개중에는 민혁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도 있었다. 바로 피임약이었다. 무대륙에선 그녀들이 피임을 신경썼지만 이곳에선 임신을 신성한 것이라고 여기며 피임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신족의 강림 퀘스트를 깨기 전에는 곤란했다.
“아저씨 이거 얼마입니까?”
그는 티샤와 아리나가 다른 물건들을 살피고 있는 틈을 타 피임약을 팔고 있는 상인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민혁을 보더니 손가락을 펼쳐 숫자 3을 표시했다.
“3골드요?”
“..3골드나 필요없수다..30실버만 주쇼”
꽤나 저렴했다. 민혁은 인벤토리에서 90실버를 꺼내 그에게 건내고, 피임약을 세 개 받았다. 그는 민혁에게 약의 효과는 두 달 정도 지속되니 이 점에 유의하라고 당부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많이 파세요”
“가쇼”
쌀쌀한 상인의 대답에도 민혁은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아리나와 티샤를 찾아 나섰다. 그녀들은 호빗 세공사가 파는 유리 반지에 시선을 빼앗겨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민혁은 기척을 지우고, 그녀들의 뒤로가 반지들을 살펴보았다. 제법 예쁜 것들이 많았다.
“아저씨 이거하고 이거 주세요.”
“아 옙!”
“민혁님!”
그의 지목에 세공사는 신이 나서 반지를 꺼냈고, 아리나는 갑자기 그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티샤는 왠지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는데 반지를 고르던 것을 들켜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민혁은 싱긋 웃는 아리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호빗 세공사에게 반지를 받아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아리나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유리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폴짝뛰어 민혁에게 안겨들었다. 티샤는 그것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자 여기 티샤꺼”
“...내,내것도?!”
“그럼 당연하지!”
민혁은 티샤에게도 아리나와 마찬가지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녀는 말까지 더듬으며 반지가 끼워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민혁은 환하게 웃으며 아리나와 티샤를 양 품에 안고,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이후 일행은 1시간 정도 더 영지를 둘러보다가 하울이 기다리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너희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실실 웃냐...”
이어진 저녁 시간, 하울은 반대쪽에 위치한 아리나와 티샤가 밥은 먹지 않고, 실실 웃자 얼굴을 왈칵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짠것처럼 동시에 손을 들어 보였다.
“뭐하는......”
짜증을 내려던 하울은 아리나와 티샤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얼음조각처럼 쩌적하고 얼어붙어버렸다. 그리고는 옆에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잘라먹고 있는 민혁을 노려보았다.
“야...”
시공간이 얼어 버릴 만큼 싸늘한 목소리
“엉? 불렀냐?”
하지만 민혁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입 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하울의 눈빛이 자신을 천 갈레 만 갈레로 쪼개버릴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아리나와 티샤는 한창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나한테는 줄 거 없냐?”
“아..아니..그게 있잖아..우리가 반지를 나눌 정도로...”
그녀의 말에 민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하울은 한숨을 포옥 쉬더니 이내 됐으니 밥이나 먹으라고 그에게 말했다. 민혁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며 포크로 스테이크 접시를 콰악하고 찌르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호감도 올릴만한 행동을 하지 않음에도 그녀는 전부터 계속 자신에게 아리나나 티샤와 같은 대우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이 어떤 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일지 민혁은 잠시 고민했다.
“이봐 들었어?”
“뭘 말인가?”
“포베너가에서 용병을 대규모로 고용한다더군...길드에서도 이미 의뢰를 받고 있고...소문으로는 탈리스만가와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뭐 그게 정말인가? 정말 큰일이군...!”
이후 평탄한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민혁은 여전히 하울의 눈치를 살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꽤 재밌을 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차 없이도 편하게 탈리스만가에 침투해 비보를 훔칠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음 날, 민혁은 일행에게 자신의 계획을 대충 이야기 했다. 그녀들도 동의했다. 하울은 귀찮게 걸어갈 일이 없다는 점에 동의했고, 아리나는 석연치 않아했지만 일단 민혁이 하는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티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동의를 얻은 민혁은 홀로 용병 길드로 향했다.
“어서오라냥! 은패를 받으러 온거냐앙~?”
“아..네 그것도 있지만 다른 일도 있습니다.”
루비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혹시..의뢰중에 포베너가와 관련된 의뢰가 있습니까?”
“많다냥 어제 해결한 것도 있고...그리고 대규모로 전투인원을 뽑는 것도 있다냥 하지만 이건 금패 이상만 가능하다 냥!”
“...대규모 전투인원이라.......포베너가가 용병을 고용하는 이유가 탈리스만가와의 전쟁 때문입니까?”
민혁의 작전은 바로 실력을 드러내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루비에게 포베너가가 용병을 모집하는 이유가 탈리스만가와의 전쟁 때문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민혁은 흠칫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후우....누구한테 들었냥..”
“밖에 나가면 용병들이 전부 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루비는 그의 말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분명 의뢰를 받는 용병들에게 이번 의뢰는 비밀을 엄수해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결과가 이랬다. 루비는 추후에 혹시라도 일이 틀어진다면 포베너가에 어찌 말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녀는 죄 없는 민혁을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네가 그걸 왜 물어 보는 거냥”
“저도 그 의뢰를 수행하고 싶어서요”
“무리다냥 아까도 말했지만 금패 이상만 받고 있다냥 물론 너 정도의 실력자라면 금패가 되는 것은 쉽겠지만 포베너가에서는 의뢰 완수가 많은 용병이 아니면 받아주질 않는다냐앙”
“그렇군요..으음...전에 용병패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을 때 플레티넘 용병패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하셨죠?”
귀찮을 것이 분명함에도 루비는 웃으며, 플레티넘 등급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을 가져야만 하며, 길드에 등록된 의뢰 200개 이상을 완수해야만 한다. 또한 길드 자체 내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봐서 고득점을 맞아야 플레티넘 등급의 용병이 될 수 있었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나요?”
“냐냥...포기를 모르는 남자다냥...”
연이은 질문에 루비는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진지했기에 따져 묻지 않고 일단 특별 승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검의 끝을 보았다는 자, 일인군대 바로 소드마스터가 되거나 혹은 길드가 지정한 S등급의 의뢰를 완수하면 패가 없더라도 플레티넘 등급의 용병이 될 수 있었다.
“흠...그렇군요..”
“원하는 답변을 얻었다면 여기 받으라냥”
민혁은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S등급의 의뢰를 완수하는 것은 절차가 복잡했다. 그냥 무위를 살짝 들어내기로 했다. 그의 생각을 모르는 루비는 그가 의뢰를 받지 못해 상심했다고 생각해 얼른 그를 위해 준비한 은패를 건내주었다. 민혁은 그것을 받아들어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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