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전초
* * *
그녀가 살고 있던 집에 도착한 민혁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홱하니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민혁은 화가 났지만 꾸욱 참고 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한 집안 풍경, 칸머스와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미노타우로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따라 들어오라는 말은 없었을텐데..”
남자는 으르릉거리며 사납게 그를 노려보았다.
“이야기만 좀 여쭙겠습니다.”
하지만 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그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그는 품안에 있던 용병패를 보여주며 자신이 실종 사건을 해결하러 온 용병이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남자는 경계를 조금 누그러트렸다. 민혁은 그녀가 사라진 시기, 가해자로 의심되는 자가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칸머스의 남편은 자리를 불편해하면서도 착실히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간단한 조사를 마친 민혁은 집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칸머스의 남편이 아내를 꼭 찾아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음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피해자는 식료품점 사장 라디언이었다. 그는 독신주의자로 손위 가족도 없는 상태였다. 민혁은 그녀의 가게를 수소문해서 찾았다. 주인이 없는 가게는 그녀가 사라진 그 당시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 민혁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종이 울렸고,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깨끗한 모양새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단지 가게 바닥에 유리조각으로 보이는 물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민혁은 그것을 들어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설탕으로 이루어진 사탕이 깨진 조각이었다. 그는 손을 털며 가게를 나갔다. 세 번 째 피해자는 8살의 어린 미노타우로스 남자아이였다. 펠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로 단서를 얻기 위해서는 그의 부모를 만나야했지만 꺼려졌다. 왜냐하면 대게 부모의 반응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눈물로 아들을 찾아달라고 호소 할 것이다. 그는 정말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옮겨야만했다.
와장창창
“무슨 소리야?”
펠킨의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민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잽싸게 걸었다. 그는 창문으로 집아 내부를 살폈다. 그곳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집기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져 있었고, 가구들은 대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암컷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져 있었고, 남자 미노타우로스가 술병을 한 손에 든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등을 돌리고 펠킨의 집을 벗어났다.
마지막 다섯 번째 피해자는 마을 내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여자아이였다. 민혁은 고아원에서 일하는 선생들의 증언을 듣고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 옆 의자에 앉아 상황을 종합해보았다.
“...단서가 부족해...피해자들 간에 공통점이라면...모두 여자라는 건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 때 민혁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미노타우로스 마을 내에서 인간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다면 시선이 몰리긴 하겠지만 그것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끈적끈적한 살기였다. 민혁은 자신에게 살기를 내뿜은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는 미노타우로스였다. 그것도 방금 전 까지 민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였다. 그는 민혁의 시선을 눈치채고 흠칫 놀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설마......”
민혁은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그의 뒤를 몰래 쫒았다. 점점 골목으로 숨어들어가던 그는 하수도 안으로 모습을 숨겼다. 민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척을 숨기고 그를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수도에 들어서자 썩고 고인 물이 그를 반겼다. 민혁은 코를 막고 물길을 따라 그의 뒤를 쫒았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척에 민혁은 소리를 최대한 숨기고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와 실종된 피해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앙..하앙...하앙..”
“아저씨..제발!”
“꺄앙...살려주세요..!”
“......여보..흐윽......”
그는 흥분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허리를 놀리고 있었고, 쇠사슬에 묶인 세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그의 성난 물건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하나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정액 같은 것이 몸에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도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 같았다. 민혁은 이를 갈았다.
“......!”
극한에 달한 이형환위(????)가 펼쳐졌고, 그의 모습은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민혁이 다시 나타난 자리는 허리를 열심히 흔들고 있는 그의 뒤였다. 민혁은 손날로 가볍게 그의 뒷목을 가격했다.
“......!”
그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허리를 놀리던 상대의 몸 위로 쓰러졌다. 갑자기 나타난 민혁을 본 여자들을 당황했지만 이내 그가 사정을 설명하자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민혁은 사건의 주범인 컨머스의 남편을 들쳐매고, 나신인 그녀들을 수습해 지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많은 미노타우로스들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여자들은 능욕을 당한 것에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민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컨머스의 남편, 케달락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끄아아악!”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느껴진 고통에 케달락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민혁은 안색을 굳히고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그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이유 모를 폭력에 미노타우로스들이 그를 말리려는 찰나 소란을 듣고 촌장이 달려왔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혁의 뒤에 서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민혁에 발아래 꿈틀거리는 케달락을 보고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
“네 이놈 케달락!!”
평소 인자하기만 했던 촌장의 불호령에 민혁을 붙잡으려 했던 미노타우로스들은 길을 비켜주었다.
“내가 생각한 바가 맞소?!”
끄덕
화가 머리끝까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촌장은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했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민혁의 뒤에 서 있던 여자들에게도 눈짓을 통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했다. 그녀들은 눈물을 머금고 작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제서야 미노타우로스들도 그녀들이 실종되었던 여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싸늘한 눈으로 케달락을 노려보았다.
“개만도 못한 놈!”
먼저 달려든 것은 촌장이었다. 그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케달락의 얼굴을 후려쳤다. 뒤이어 마을의 미노타우로스가 주먹을 풀며 그에게 다가갔다. 케달락은 덜덜떨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는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케달락은 이후 그녀들과 아이들의 가족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모두가 같은 피해자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녀의 아내이자 동시에 그동안 학대를 당한 컨머스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고, 촌장은 그녀가 몸을 회복할 때까지 돌보기로 했다.
“정말 고맙네!”
“고맙습니다!!”
촌장과 피해자 가족들의 인사에 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노타우로스들의 환대에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용병 길드로 향했다. 1층에는 여전히 루비가 버티고 서 있었다. 민혁은 그녀가 거북했지만 의뢰 완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프론트로 걸어갔다.
“냐냥 오랜만이다냥!”
그를 발견한 루비가 반갑게 소리쳤다. 누가 본다면 오랜만에 만난 절친이라고 착각할만 했다.
“겨우 2시간만입니다만...”
“뭐 그런 건 됐다냥~ 그보다 발걸음이 가벼운 걸로봐서는 성공한 것 같은데 맞냐냥?”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매 속에 안직하고 있던 의뢰서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촌장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루비는 흡족하게 웃더니 고생했다며 그를 칭찬했다. 민혁은 그런건 필요 없고 어서 용병패를 은패를 승급 시켜줄 것을 부탁했다.
“냐냥...냉정하다냐앙~”
“하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얼른 승급 부탁드려요.”
그는 주머니에서 동패를 꺼내 루비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민혁에게 마법 각인을 해야 하니 하루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정도 영지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냐냥..내 정신 좀 봐...포베너가에서 지명이 왔다냥”
“포베너가에서요?”
용병 길드를 나서려고 등을 돌린 민혁은 루비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루비는 프론트 아래서 의뢰지 하나를 꺼냈다. 민혁은 프론트로 다가와 그곳에 적힌 글을 천천히 읽었다. 요약하자면 네가 구한 아티팩트가 마음에 든다. 혹시 직접 제작한 것이라면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 유적이나 따로 구매를 한 것이라면 출처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곤란하네요 이건 오우거를 잡고 한 자루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서 말이에요”
“냐냥~ 그럼 어쩔 수 없지 포베너가에는 길드 차원에서 답변 하겠다냥”
“고맙습니다.”
민혁은 용병 길드에 와서 처음으로 루비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길드를 나와 일행들이 지내고 있을 여관으로 가기 위해 번화가를 지나갔다. 그러던 중 후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에 이끌려 어떤 식당에 들어가게 됐다. 아직 점심식사를 하지 못해 출출하던 차에 좋은 식당을 발견한 것이다. 레이비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메인 메뉴는 튀긴 가지와 꽃게 튀김이었다. 주문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던 그는 종업원이 세팅을 하기 무섭게 김이 펄펄 나는 튀김을 두 손으로 물고 뜯기 시작했다.
“하흐...”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고소한 기름 맛에 중독되어 놓칠 수가 없었다. 민혁은 어느새 쟁반 가득 이었던 튀김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아쉬움에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빨던 그는 아리나와 일행들이 생각나 10인분이나 되는 많은 양을 포장했다. 그 외에도 많은 간식거리를 샀다.
“나 왔어!”
양 손 무겁게 먹을 거리를 들고 여관에 도착한 민혁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어서 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