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전초
* * *
민혁은 베르할렌을 자세히 관찰하며 물었다. 하울은 작게 웃더니 아공간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거침 없이 찢었다. 그러자 스크롤에서는 빛이 세어나왔고, 그 빛은 베르할렌에 흡수되었다.
“이제 됐어 기다리기만 하면 돼”
잠시 시간이 지나고 반응이 나타났다.
<내 잠을="" 깨운="" 게="" 누구냐=""/>
베르할렌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하울을 제외한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르비뉴 오랜만이네 나야”
하울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이 목소리는...코찔찔이="" 하울이구나..=""/>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이마에 사거리 마크를 만들며, 베르할렌의 검신을 주먹으로 세게내려쳤다. 뎅하는 소리와 함께 고르비뉴, 성각검에 깃든 마룡의 영혼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만하라고 말했다. 하울은 흥하고 콧바람을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예비용 드래곤 로어의 위치 알고 있지?”
<물론이다..그렇군..날 깨운="" 것은="" 그걸="" 묻기="" 위함인가?=""/>
“그래...잘나신 드래곤 로드께서는 그 위치를 까먹은 거 같아서 말이야..”
하울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르비뉴는 유쾌하게 웃으며 그녀를 달래주었다. 민혁은 오묘한 그들의 사이에 의문을 표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르비뉴를 죽였고, 하울은 그런 자의 딸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친딸 혹은 여동생을 대하듯 그녀를 상대해주었다. 게다가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래 그래="" 그="" 늙은이가="" 로드가="" 된="" 뒤부터는="" 건망증이="" 심했지="" 아무렴..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이해해주는구나! 다른 드래곤들한테 말하면 로드한테 무례하다고 찡찡거린다니까!”
죽이 잘맞는 둘, 민혁은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의문을 뒤로하고 하울에게 신호를 보냈다. 빨리 드래곤 로어의 위치를 물어보란 그의 눈짓을 하울도 보았는지 잡담은 그만두고, 고르비뉴에게 예비용 드래곤 로어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예비용 드래곤="" 로어는...저주="" 받은="" 땅="" 세헬렘에="" 있다.=""/>
에픽 퀘스트 ‘마신족(???) 강림’
획득조건: 퀘스트 ‘흑관의 조각’ 해결, 퀘스트 ‘음양오행신공’ 소유, 칭호 천마의 후계자 소유, 신녀의 호감도 일정 수치 이상 충족
위 네 조건을 모두 충족할 경우 자동 발생되는 퀘스트로 플레이어와 신녀가 제물로 받쳐졌을 경우 발동하게된다. 제물로 받쳐진 플레이어는 천마신교의 땅에 소환된 마신족 대신 무대륙에서 로기아 대륙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주술진이 불안정해 마신족은 천마신교에 소환된 후 1년 간 천마신교 밖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드래곤들과 협력을 통해 무대륙으로 돌아가 마신족을 섬멸할지 로기아 대륙에서 일반 플레이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1. 레드 드래곤 하울을 찾아라.
2. 드래곤 로어
1.저주 받은 땅 세헬렘을 찾아라.
3. ?????????????????????
성공조건: 무대륙으로 귀환, 마신족을 섬멸
실패조건: 플레이어의 죽음
드래곤 로어 연계퀘스트 저주 받은 땅 세헬렘이 활성화됩니다.
퀘스트 tip 세헬렘,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컸다. 아이지스 왕국을 넘어 북방민족이 사는 땅의 끝, 그곳은 추방된 자들의 도시이며, 현세의 지옥이었다. 한 때는 신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었으나 배덕자들의 타락행위로 인해 신의 저주가 내렸다. 그곳에는 풀 한포기도 나지 않았고, 강물은 독과도 같았으며 수많은 마물과 마수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고위 모험가들이 이따금 발을 들이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어째서 세헬렘 같은 곳에 드래곤 로어를 설치 해놓은 거야 이 바보야!”
“민혁님...”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아리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혁의 소매를 잡아왔다. 그는 괜찮다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흐음...저주 받기="" 전에는="" 괜찮은="" 땅이었다..=""/>
하울의 외침에 고르비뉴는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꺼내 놓았다. 아리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혁을 쳐다보았고, 티샤는 왠지 모르지만 불안에 떨었다. 민혁은 노발대발하는 하울을 말렸다. 그리고 고르비뉴에게 세헬렘에 가면 드래곤 로어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넌....그리운 느낌이="" 드는군...흠...뭐="" 되었다..세헬렘에="" 가면="" 다크엘프="" 라거를="" 찾아라="" 그는="" 나와="" 계약해="" 늙지="" 않는="" 몸을="" 얻었으니=""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길은="" 라거가="" 안내해="" 줄=""/>
그리운 느낌이 든다는 고르비뉴의 말에 민혁은 의문을 표하려 했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집중하느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말이 끝나고 ‘저주 받은 땅 세헬렘을 찾아라.’ 라는 퀘스트는 ‘세헬렘에서 라거를 찾아라’로 변경되었다. 일행이 고르비뉴와의 대화에 집중해 있는 사이 ‘라거’라는 이름을 듣게 된 티샤는 쇼크에 빠졌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사정없이 떨었고, 구릿빛의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녀는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어져 아리나에게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티샤는 아리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민혁은 집을 나선 그녀를 힐끗 보고,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후우..후우..”
거친 숨소리, 티샤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라거’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악몽과 같은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되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무릎에 고개를 쳐박았다.
“고르비뉴 네가 직접 안내해주면 안돼?”
<불가능하다...날 깨운="" 그="" 스크롤은="" 일회용이다..곧="" 있으면="" 나는="" 다시="" 잠에="" 빠질="" 것이다.=""/>
그의 말에 하울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하울을 달랬다. 이내 베르할렌에서 세어나오던 고르비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베르할렌을 다시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었다.
“꽤나 친했었나봐?”
민혁이 묻자 하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르비뉴가 타락 그러니까 마룡이 되고나서 연락이 뜸해지긴 했지만 꽤나 친했어 그는 바쁜 아빠 대신 어릴 적에 나를 봐준 적도 있으니까..인간적 관점으로 보면 그래 삼촌이라고 해야 하나...음 뭐 그런 사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은 혹시 드래곤 로드를 원망하냐고 물었다. 하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왜 아빠를 원망하냐며 의아해했다. 그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드래곤 로드가 고르비뉴를 죽인 것에 대해 말했다. 하울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죽을 만 했어 고르비뉴 자식 드래곤이면서 흑 마법을 연구해 마왕을 소환하려고 했다니까! 그것도 단지 마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하울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며 말했다. 젠틀한 목소리의 그가 그런 괴짜였다니 민혁은 질린 얼굴을 내보이며 다시금 사람이건 이종족이건 첫인상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다짐했다.
“그나저나 티샤 그 녀석 괜찮을까?”
하울이 비어 있는 티샤의 자리를 보며 말했다.
“걔가 왜?”
“응? 너 몰랐어 저주 받은 땅 세헬렘은 다크엘프들의 영지기도 해”
민혁은 그제서야 티샤의 상태가 이상했는지 이해했다. 확실히 다크엘프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그녀가 같이 가기에는 옛 트라우마를 자극해 힘든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억지로 데려가는 방법도 있었고, 그녀를 이곳에 두고 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는 우선 티샤의 선택을 들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때 마침 그녀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괜찮아요?”
그녀는 아리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그녀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티샤는 걱정하는 그녀의 눈빛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지금은 그저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누워 있고 싶었다. 하지만 민혁이 그녀를 잡았다.
“앉아봐 할 얘기가 있어”
비어 있던 그녀의 자리에 눈짓을 하며 말했다. 티샤는 나중에 하면 안되겠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의 눈빛이 진지하자 입을 다물었다.
“.....알겠다...”
티샤는 창백한 얼굴을 유지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착석하자 민혁은 본론을 꺼내들었다. 이제부터 일행은 세헬렘으로 향할 것이며 우리는 네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했다. 티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민혁의 말이 기쁘기도 했고, 짐이 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말이 없는 그녀, 민혁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첫 번째는 얌전히 엘프마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 두 번째는 일행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래드 드래곤, 2690살 하울은 여행을 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걷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카샤 영지의 기사단장으로 유희를 즐길 때에도 월급을 모아 소영주도 사용하지 않는 마차를 사서 타고 다니기도 했다. 페일은 움직이기를 극히 귀찮아하는 그녀를 보고 어떻게 소드마스터가 된건지 의문이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걷고 있다. 그것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말이다.
“..추,추워!”
아이지스 왕국의 북방, 이민족들이 거주하는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아센시오 영지에 하울과 민혁, 아리나 그리고 티샤가 나타났다. 8서클 마법인 매스 텔레포트라면 바로 세헬렘으로 이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7서클 마법인 텔레포트는 자신이 직접 가본 곳만 이동이 가능했고, 재사용 대기시간이 5일이나 되었다. 이민족의 땅이나 저주 받은 땅 세헬렘에 가본 적 없는 하울은 가장 가까운 이곳 아센시오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센시오 영주성에는 방문한 적이 없고, 국경에만 들린 적이 있던 터라 영주성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굳이 영주성으로 향하는 이유는 마차를 사기 위함이다.
“그러게 그냥 국경을 넘어가자니까..”
민혁은 앞장 서서 걷는 하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시끄러워! 어차피 춥고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마차라도 타고 편하게 가야겠어!”
땡깡이었다. 2690살이나 먹은 여자가 저렇게 유치하게 굴다니 민혁을 혀를 찼다. 순간 하울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흡사 도깨비와 같았다. 그 기백에 민혁은 제 발이 저려 고개를 돌려 하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민혁을 노려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나 춥지 않아?”
그녀의 시선이 비켜나가자 민혁은 아리나의 손을 꼬옥움켜쥐며 물었다.
“호오..호오..전 따뜻해요..민혁님은요?”
아리나는 민혁이 잡아준 손을 얼굴에 가져가 입으로 따뜻한 바람을 불었다. 상점에서 산 토끼모양 귀마개를 하고, 볼을 발그레 붉힌 그녀,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 그는 그녀의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 티샤는 그 간질간질한 모습을 참지 못하고 하울의 옆에 서서 함께 걸어갔다. 꽁냥꽁냥거리는 커플을 등 뒤에 두고, 일행은 금세 아센시오 영주성에 도착했다. 성문 입구에는 털옷을 껴입은 병사가 검문을 하고 있었다. 일행은 줄 서 있는 사람들 뒤로 가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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