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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183화 (183/245)

〈 183화 〉 전초

* * *

완제품을 판매하는 코너, 민혁은 직원에게 침대 코너가 있는 곳을 안내 받고 소윤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녀는 귀까지 빨갛게 만든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직원이 잘 어울리는 부부라고 말했다. 소윤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변해 마치 토마토 같이 변했다. 민혁은 싱긋 웃으며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했다.

‘퀸 보다는 킹이 좋지 않아?“

“...너무...커..!”

소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혁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큰 침대를 사면 이것저것 여러 플레이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다. 민혁의 검은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소윤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킹 사이즈의 침대를 주문했다. 직원은 다행히 매장내에 물건이 남아 있어 4일 정도만 기다리면 배송이 된다고 말했다.

“내가 낼게”

“..아냐...내가...”

대망의 결제 시간, 민혁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갑을 꺼내려했지만 소윤이 이를 막았다. 그는 이런 건 원래 남자가 하는거라며 그녀를 비키게 하려 했지만 소윤의 고집도 대단했다. 민혁은 계산대에 먼저 카드를 들이밀었고, 둘이 서로 계산하겠다며 알콩달콩하던 모습을 보던 캐셔는 얼른 그의 카드를 받아 들어 리더기에 긁었다. 마음 같아서는 염장질 그만하고 꺼지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등록금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하려고 했는데..”

계산된 금액은 백만원 돈 가량 영수증을 본 소윤이 중얼거렸다. 민혁은 카트에 계산된 조립가구들을 집어넣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봉국에게 빌린 차량은 다행히도 해치백이어서 공간이 넉넉했다. 민혁은 소윤의 벨트를 매주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보기 드문 시무룩한 그녀의 표정, 민혁은 싱긋 웃더니 소윤의 볼을 잡아 좌우로 늘렸다.

“...무하눈 고야....”

“너무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기운내라고!”

그의 말에 소윤은 살짝 미소지었다. 민혁은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다 쪽­하고 입을 맞춰주었다. 다시금 사르르 붉어지는 얼굴,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는 차를 몰아 외곽으로 향했다.

“.. 집으로 안가..?”

소윤은 점점 회색 숲이 없어지는 창 밖을 보며 물었다.

“응 외식하고 들어가자”

민혁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소윤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교외의 멋들어진 산장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민혁은 팔을 걷어붙이고 가구조립을 시작했다. 소윤은 이삿짐을 정리하고 먼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수납장의 조립을 끝마쳤을 때 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민혁과 소윤은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민혁은 그녀와의 이런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민혁은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소윤을 찾기 위해 그녀가 누워있을 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민혁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일어났어...?”

때 마침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소윤의 눈 아래에는 짙은 다크써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민혁은 왠지 소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어디 안좋아?”

“...아니...”

그의 물음에 소윤은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민혁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윤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무언가 있다 판단한 민혁은 소윤을 안아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그녀를 덮쳤다.

“..학교가야해!”

핑계를 대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넉넉해 맞지?”

끄덕

강렬한 그의 눈빛에 소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 있어?”

민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소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사실..임신했어....”

“뭐?!”

민혁은 그녀의 말에 뇌가 정지 한 것처럼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녀가 뭐라고 한거지? 임신 누구의 아이를? 어리석었다 내 아이, 바로 내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뭔가 의심스러운 태도로 민혁의 눈치를 살피던 소윤은 그가 갑자기 일어나자 깜짝 놀랐다. 민혁은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미안하다며 그녀의 배를 쓸어내리고 침대 옆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소윤은 그가 아이를 지우고 싶어 병원을 알고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됐고, 속이 상했다.

“여보세요! 거기 한국대 사무처 맞죠? 다름이 아니라 휴학계를 내려고요 이소윤 2학년이요 2년정도.. 아 맞다 소윤아 장인어른한테 전화해서 오늘 밤에 찾아 간다고 해 아 죄송해요 사유요? 임신...!”

민혁은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10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말을 뱉었다. 풀죽은 채로 그의 전화를 엿 듣던 소윤은 민혁이 전화한 곳이 병원 아니라 다행이라 여겼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 민혁의 전화기를 뺏었다.

“왜그래?!”

“..바보..거짓말이란 말야...!”

오랜만에 듣는 소윤의 호통, 민혁은 멍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간혹 여자친구들이 이런 거짓말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았지만 막상 당해보니 혼이 빠지는 것 같았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벗어난 그는 화가 나서 그녀를 꾸짖었다. 소윤은 자신이 임신 했다는 말을 듣고 신나하는 그의 모습에 기뻣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혼나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결국 소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힐 때 쯤 되서야 민혁은 화내는 것을 멈췄다.

“반성했어?”

“...훌쩍..응..”

민혁의 물음에 소윤은 콧물을 훌쩍이며 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할 말이 있지?”

고양이처럼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는 소윤, 민혁은 가슴어림이 축축해짐에도 그녀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자상한 목소리에 그녀는 눈가를 비비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확실히 생명을 두고 거짓말을 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다시 가슴팍에 파묻고 꼬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비비적거리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

소윤은 작게 중얼거렸다.

“제대로!”

“..미안합니다!”

소윤은 눈을 꼬옥 감으며 크게 소리질렀다. 민혁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소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다크써클을 흉내 내기 위해 그려놨던 아이라이너가 같이 흘러내렸다. 민혁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가를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에 소윤은 훌쩍거리며 연신 미안하다 중얼거렸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한거야?”

소윤의 울음이 멈추고, 민혁이 물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아가...한 번 해보라고...만우절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오늘이 바로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민혁은 순하디 순한 소윤이 혼자 이런 장난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심했고, 지금 쯤 그와 소윤의 시츄에이션을 상상하며 낄낄거리고 있을 지아를 생각하며 속히 말해 깊은 빡침을 느꼈다. 지아라는 여자는 소윤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민혁과도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장난기가 많아 곤란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무리 만우절이라고 해도 생명을 두고 거짓말을 해선 안됐다. 그는 이를 갈며 반드시 복수하겠다 다짐했다.

두 사람은 아침의 사건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학교에 나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소윤은 아침식사를 준비했고, 민혁은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그가 씻고 나와 부엌 테이블에 앉자 그녀가 준비한 반찬과 밥을 올려놓았다. 소윤은 민혁의 눈치를 살피며 의자에 살포시 엉덩이를 갖다 붙였다. 정적이 이어지는 식사 시간, 들리는 것이라고는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 뿐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응....”

민혁은 식사를 먼저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윤은 아직 반 밖에 밥을 먹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낯설었다. 소윤이 밥 먹는 속도가 느린 터라 언제나 그는 그녀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봐주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린 일상이었다. 그녀는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지만 꾸욱­ 참았다.

“아직도 안 먹었어?”

민혁이 가방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그는 학교 갈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응....”

소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어쩔 수 없다니까”

민혁은 의자에 다시 앉아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반찬을 잡아 그녀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소윤은 멍하니 숟가락 위에 놓인 밥과 반찬을 바라보았다. 민혁은 어서 먹으라고 말하며 물을 한 잔 떠다 주고 그녀에 앞에 앉아 따뜻한 눈빛으로 소윤을 보았다. 그녀의 눈가에서 왈칵­ 눈물이 흘렀다. 민혁은 갑작스런 그녀의 눈물에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가 달래주었다. 결국 민혁은 그녀의 옆에서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반찬을 놓아주어야만 했고, 소윤은 마치 아이처럼 그가 떠먹여주는 반찬을 모두 받아먹고서야 아침 식사가 끝났다. 현관 소윤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민혁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는 밖에서는 별로 하지 않는 그녀의 스킨쉽에 입꼬리를 올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월요일 아침, 프리랜서나 백수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교통체증, 주말에 밀린 업무, 전날 달렸던 후유증에 온 몸이 나른해지고 피곤이 배가된다. 지식인들도 이것을 월요병이라 칭하며 현대사회의 정신적 질환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한국대학교 학생들도 전날 퍼마셨던 술에 고통 받고 천국의 언덕이라 칭해지는 학교 앞 경사로에서 좌절한다. 민혁은 봄 햇살을 맞으며 등산을 하고 있는 학우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와 소윤은 가구를 사기 위해 빌렸던 봉국의 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어차피 봉국은 외국에 나가 있는 관계로 천천히 돌려주어도 괜찮았다.

“먼저 들어가 있을래?”

학교 정문, 오늘 수업을 듣는 정보관과 주차장 걸이가 꽤 되기 때문에 민혁은 소윤을 먼저 내려주려고 했다.

“....아니..같이가...”

하지만 그녀는 민혁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학생전용 주차장으로 몰았다.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민혁은 남은 자리를 확인하고 주차를 했다. 옆 차가 많이 낯익은 차였다 . 차량번호를 살펴보니 그녀의 차였다. 이지아!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삭히고 소윤의 손을 잡고 정보관으로 향했다. 캠퍼스에는 이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민혁과 소윤은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길을 걸었다.

“주말에 벚꽃 구경 갈까?”

끄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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