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전초
* * *
그가 화를 내자 뇌전풍신공도 호응하듯 벼락을 내뿜었다. 스토크는 씨익 미소지었다. 공포를 불러오던 저 벼락도 그분의 축복이 더해지자 하찮게만 여겨졌다. 이만한 힘을 얻은 만큼 후유증도 있을테고, 긴 시간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 앞 이교도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짓밟을 수 있다. 스토크는 민혁의 공격을 받아 너덜너덜해진 모닝스타를 버리고, 주먹을 올리고 자세를 취했다. 홀리 마스터란 소드마스터나 보우마스터처럼 특정 무기로 경지에 오른 이들이 아니다. 신성력을 끊임없이 단련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스토크는 모닝스타를 주로 사용하지만 그의 본 실력은 격투술에서 나온다. 그가 바로 악명 높은 튀랑의 몽크 출신이기 때문이다.
튀랑의 몽크들은 이단 재판에만 몸을 드러내며 오러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순수 격투술로 소드 익스퍼트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스토크가 현재 가수식을 취하고 있는 자세도 몽크의 가르침 중 하나였다.
사자(死者)의 자세
수비를 포기하고 오로지 공격만으로 상대를 격살하겠다는 필살(必?)의 의지표현이었다. 하울은 레이피어에 강기를 덧씌웠다. 스토크는 소드마스터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이교도의 편에 섰다는 것에 분노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몸에서 신성력을 줄기줄기 뽑아내며 선공에 나섰다.
콰앙
대포알 터지는 소리가 터지며 대성전 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하울과 민혁 페어와 스토크와 싸움이 시작되자 티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물러나 아리나를 보호했다. 긴장한 것이다. 티샤도 시프마스터였지만 저 셋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였다. 그들의 공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강건하기만 했던 대성전의 벽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칼날처럼 불어오는 충격파에 몸을 가누기도 힘이 들었다. 다행히도 아리나는 티샤의 뒤에 숨어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스토크의 강맹한 기운으 느꼈기에 민혁이 걱정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천사님!”
신계에서 떨어진 신장(??)과도 같은 그들의 난전이 이어지던 중 누군가 아리나를 소리쳐 불렀다.
그는 바로 애드민이었다.
“접근하지 마라!”
애드민은 소변으로 바지를 흠뻑 적신채로 아리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티샤는 단검을 그에게 겨누며 더 이상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단검이 자신에게로 향해지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민혁의 살기에 놀라 부끄럽고 창피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그 또한 전선 최강의 가사라 추앙받던 이였다.
“천사님 어서 제게로 오십시오! 그 간악한 악마가 떠난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는 목이 터질 듯이 소리쳤다. 애드민의 광기에 찬 기세는 티샤도 움찔할 정도였다.
“악, 악마라뇨 민혁님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리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티샤의 뒤에 숨어 있던 것을 관두고 앞에 나서서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리나의 용기 있는 외침에 애드민은 절망 섞인 표정을 내보였다. 그는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검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멈춰 서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티샤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위험하다!”
티샤는 아리나의 허리를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검기 다발이 가득 꽂혔다. 아리나는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고, 티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애드민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우드득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아리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천사님이 아닙니다...그렇군요...넌 천사님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인 거다...그래..그럼 이제 설명이 되는군...그녀가...천사님이.... 날....받아드리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럼!..그렇다면..도대체...그녀를 어디에 숨긴거냐!!!”
붉은 눈, 애드민의 눈은 실핏줄이 모두 터져 붉게 변했다. 그는 광기에 차 검을 들어올리고 아리나에게 돌진해왔다. 티샤도 이를 두고 보지 않고 그에게 맞섰다.
콰앙
“......!”
예상치 못한 강력한 힘에 티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단검과 장검의 무기 특성상 힘에서 밀릴 수 있고, 그녀가 노예 상인에게 잡힌 후 꽤나 오랜만에 무기를 만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티샤는 무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그런데 힘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티샤의 눈빛이 의아하게 물들기 무섭게 애드민이 다음 공격을 해왔다. 사선베기 후 옆구리를 노리는 그의 공격에 티샤는 혀를 차며 아리나를 잡아채서 뒤로 물러났다.
“방해하지 마라!!”
애드민은 검기를 피워 올리며 다시 티샤에게 돌진했다. 그의 공격로를 읽던 티샤는 경악했다. 애드민이 소드마스터로 각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피워 올린 검기에는 어렴풋이 강기의 모습이 보였다.
“..아리나 어디든.... 숨어라”
“아...네..죄송해요 힘이 못되어 드려서..”
“...아니다..빨리 숨어라”
귀찮아질 거라는 예감이 든 티샤는 아리나에게 숨으라고 말했다. 그녀의 지시에 아리나는 흙의 정령을 소환해 흙벽을 반 타원형으로 생성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것은 다행히 민혁 페어와 스토크가 만들어 내는 충격파를 흡수할 정도로 단단했다. 아리나가 흙벽 속으로 사라지자 애드민은 입에 거품을 물며 돌격해왔다. 티샤는 자신의 애검에 강기를 불어넣어 그에게 맞섰다.
챙
애드민의 검과 티샤의 단검이 부딪쳐 맑은 검명이 울려퍼졌다. 그가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형태였고 티샤는 방어하는 자세였다. 광기에 이성을 빼앗긴 상태임에도 단검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힘싸움을 유도한 것이다. 그녀는 당해줄 생각이 없던 터라 발로 그의 복부를 걷어차 힘겨루기 상태를 풀었다.
“이 년이!!”
복부를 가격당한 애드민은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티샤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한 후 옆구리를 베었다. 애드민은 상처가 난 옆구리를 잡았다. 피가 제법 베어나왔다.
“으아아아악!”
그는 이를 갈며 두손으로 검을 잡고 돌격해왔다. 똑같은 패턴의 반복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애드민의 검에서 생성된 검기가 점점 더 강기의 형태로 변해갔다. 티샤는 그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그것을 지켜보았다.
‘완벽한 몸상태라면...이런 자식 정도는...하아...길게 가면 답이 없다..’
애드민은 마치 버서커처럼 상처가 늘어날수록 강해졌다. 티샤는 단시간 내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전수 받은 수인족의 비기(??)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애드민의 세로 베기를 피한 티샤는 품 안에서 단검을 한 자루 더 꺼내 역수로 잡았다. 그리고 강기를 단검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퍼트렸다. 그것은 호신강기와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외관이었다. 티샤가 사용한 수인족의 비기 호랑(??)은 호신강기가 짐승의 모양세를 취하고 있었다.
“혼종년!! 네 핏줄과 똑같이 더럽기 그지 없는 모습이구나!”
애드민은 호랑(??)에 위축되기는커녕 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티샤도 그의 공격을 피하기 않았다.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자세를 낮춘 그녀는 몸을 일으키는 반동을 이용해 역수의 단검을 휘둘렀다.
챙
일격은 그의 검에 떨어져 부러트렸고, 이격은 애드민의 가슴을 갈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힘만을 믿고 덤비던 애드민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부릅뜨며 상처를 지혈했다. 하지만 상처가 워낙 크다보니 지혈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피가 모자라 빈혈이 일어났고, 애드민은 결국 발을 헛딛고 뒤로 발랑 넘어졌다.
챙그랑
“아아..천사님..”
끝까지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벌겋게 변했던 그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지혈하는 것도 멈춘 채 대성전의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비너스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답은 없었다. 애드민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타샤는 뚜벅뚜벅 그에게 걸어왔다. 그가 흘린 피의 양이라면 지금 손을 쓰더라도 죽음이 확정된 게 틀림이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난 더럽지 않다..”
애드민이 지껄인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티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티샤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죽어감에도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쿨럭...하아..하아..더럽지 않아..하아..하지만 잡종이라는 건 변하지 않지..”
“..닥쳐.....”
상처로 인해 조각난 내장조각들이 피와 함께 역류했다. 그는 잘게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티샤를 비난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사납게 구기며 단검을 들어올렸다. 더 이상 그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애드민이 채념한 듯 눈을 감았고, 티샤가 그를 마무리 하려는 찰나 충격파가 둘을 덮쳤다.
그들의 대결은 박빙이었다. 스토크는 넘쳐나는 신성력을 토대로 그들을 압박했고, 민혁과 하울은 호흡을 맞춰 방어 위주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간혹 보여주는 역습은 블레스로 버프를 잔뜩 먹은 스토크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하아..하아..하아..”
하울은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녀는 하얀 피부 여기저기에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민혁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옷은 걸레짝으로 변했고 땀을 물처럼 흘렸다. 반면 스토크는 아직도 여유로웠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육체에도 적응이 끝난 상태였다. 민혁은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소매로 쓰윽닦았다.
“꼴사납군요...하지만 이교도에게 매우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토크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민혁은 열이 받아 뭐라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뗄 힘도 없었다.
“닥쳐 이 멍청아!”
대신 하울이 소리쳤다. 그녀는 레이피어를 세워 그에게 달려들었다. 엄청난 속도의 위협적인 찌르기, 처음에는 애드민도 많이 당황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녀의 검을 요리저리 피했다. 하울은 이를 악물며 검을 빠르게 놀렸다. 애드민은 그녀의 발버둥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손날로 그녀의 손목 관절을 가격했다. 챙그랑 레이피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앗..!”
그리고 우둑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울은 뒤로 물러나며 손목을 부여잡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목, 애드민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그의 공격에 그녀는 피하기에 급급했다. 민혁은 이를 악물며 틈을 찔러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애드민의 손에 의해 막혔다.
“이제 그만 끝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마지막 자비로 편히 보내드리지요!”
천라수라도를 잡은 애드민은 자신의 손에 피가 흐름에도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뜨게 뜨며 소리쳤다.
“헛소리 하지마!”
무기가 그에게 붙잡힌 상태로 민혁은 숨겨왔던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천라수라도의 숨겨진 스킬
멸신(??)
“이게 무슨!”
그가 스킬을 발동하자 천라수라도에서 선홍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심상치 않은 힘에 애드민도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선홍색의 힘은 크기를 점점 부풀려 콰아앙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폭발은 애드민을 집어삼켰다. 민혁도 폭발의 여파로 천라수라도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아..끝난건가.....”
민혁은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애드민을 보고 한숨을 쉬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지켜보고 있던 하울도 지쳤다며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페일이 본다면 내가 알던 단장님은 어디 갔냐며 소리쳤을 게 분명하겠지만 지금 그녀는 너무나 지쳐 그런 생각 따위 할 겨를이 없었다.
“너무 방심한 것 아닙니까?”
공중에 울려퍼지는 애드민의 목소리, 흠칫 놀란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다리에는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기 다발이 박혀있었다.
“...끄윽...젠장..!”
“민혁!”
신음을 흘리는 민혁, 하울은 재빨리 그의 품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애드민은 그것을 막았다. 그는 상처투성이 하울의 몸을 낚아채 바닥에 내리꽂았다.
“꺄악!”
숨을 쉴 수 없는 통증에 하울은 비명을 질렀다.
“하하 비명이 듣기 좋군요..”
순식간에 둘을 리타이어 시킨 애드민은 공중에서 나타났다. 그는 홀리 베리어와 비슷한 신성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민혁은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애드민 그의 눈빛에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내리꽂았다. 콰앙소리가 나며 민혁의 복부에 고통이 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 쳤다.
“아아~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군요...드디어 판결의 때입니다!”
애드민은 자신의 금발을 뒤로 넘기며 온 몸에 흘러넘치는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이내 강기처럼 거대한 덩어리가 그의 손에 뭉쳤고, 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