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이다-178화 (178/245)

〈 178화 〉 전초

* * *

이를 드러내며 웃는 샤일록, 민혁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해줄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그는 인벤토리에서 금덩이 몇 개와 보석들을 꺼내 샤일록에게 주었다. 그는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다. 하지만 민혁이 인상을 쓰자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넙죽 받아들였다. 하울도 장난스레 영주에게 받았던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주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티샤는 일행의 일과 상관없이 홍차가 마음에 들었는지 귀를 파닥이며 홀로 차를 홀짝였다.

수도 베르할렌에 사는 평민들은 왕성에서 일하는 것을 간절히 원한다. 급료라던가 복지부분이 좋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 자체를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시녀 맥켈렌은 그런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강압으로 왕궁에서 시녀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수도수비군의 백부장이며, 어머니는 왕성 내 많은 시녀장들 중 한 명이다. 주변의 시녀들은 그녀를 나름 금수저라며 부러워했지만 맥켈렌은 그런 수저 당장 버려버리라며 소리치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비상해 평민들은 다니기 힘들다는 아이지스 국립 학교를 졸업한 맥켈렌은 자신이 고작 시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학교생활을 하며 사귀었던 평민 친구들은 모두 관리직에 앉아 팬대를 굴리고, 간혹 운이 좋은 녀석들은 귀족과 눈이 맞아 결혼에 성공했다. 가끔 왕성에서 마주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속으로는 자신도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고, 귀족들을 몸짓 한 번에 꼬실 수 있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허나 그녀의 어머니가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는 통에 그것도 요원했다.

“하아......”

그녀는 오늘도 한숨을 내쉬며, 고가의 그림들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맥켈렌!”

“왜요 어머니?!”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살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여장부가 그녀와 비슷한 시녀복을 입고 다가왔다. 그녀는 맥켈렌의 모친이었다.

“성 내에서는 시녀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짜악­

등에 스파이크를 맞은 맥켈렌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그녀는 바닥에 먼지털이를 집어던지고 쭈그리고 앉아 불난 듯 뜨거워져 오는 등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어머니이자 시녀장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서 일어나 일이다”

“아이씨 다른 사람한테 시켜요 여기 청소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화를 버럭 냈지만 어머니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모션을 취하자 맥켈렌은 움찔­하고 뒤로 물러났다. 시녀장은 그녀가 흘린 먼지털이를 집어 들어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했던 맥켈렌과 달리 그녀의 동작은 깔끔했고 빨랐다. 금세 청소가 끝났고, 맥켈렌은 힐끔힐끔 어머니의 눈치를 보았다.

“자 이제 다른 일을 시작 하려무나 식재료 창고 쪽에 새로 물건이 들어온다니 그쪽으로 가”

다행히도 2차 스파이크는 없었다. 맥켈렌은 안심하며 재빨리 식재료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시녀장은 그녀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뛰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맥켈렌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멈추지 않았고, 시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재료 창고에는 많은 시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왕성 내부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식재료도 많고, 그걸 정리하는 시녀들도 당연히 많았다. 그녀들은 마차에 실린 식재료를 수레에 담았고, 일꾼들은 수레를 지정된 장소로 옮겼다. 막 창고에 도착한 맥켈렌은 두리번거리며 도울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일꾼 넷이 보였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는 유명인 중 하나인 샤일록이었다. 그는 소리를 버럭버럭 내지르며 빨리 움직이라고 일꾼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맥켈렌은 품삯도 별로 안 주는 자린고비 고블린이라고 중얼거렸다.

“맥켈렌 여기 좀 도와줄래?”

“아 네~”

동료 시녀가 그녀를 불렀고, 그들을 관찰하던 맥켈렌은 시선을 돌렸다.

맥켈렌의 시선을 눈치 채고 있던 민혁은 그녀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대성전 침입 후 정체가 발각된다 해도 무력으로 진압이 가능하고,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고블린에게 피해가 없겠지만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수상하다는 이미지가 박히게 되면 샤일록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그의 생각을 알고 있는지 샤일록은 일꾼들에게 열심히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금세 창고 정리가 끝났다. 일꾼들은 마차에 실어왔던 수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리나와 하울, 티샤도 각자 하나씩 수레를 끌어 마차에 실었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샤일록님”

민혁이 일꾼들을 대표해 샤일록에게로 다가갔다. 모두 그와 짜놓은 일종의 연기였다.

“수고했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허리를 숙여봐라”

작은 키의 샤일록을 위해 민혁은 기꺼이 허리를 숙였다.

“전 여기까지입니다..마...아니 민혁님 꼭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또 다시 민혁을 마왕님이라 부를 뻔한 샤일록은 뒷통수를 긁적이며 작게 속삭였다.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넘칠 정도로 힘을 써주었다. 민혁은 허리를 펴고 일꾼들에게 돌아가자고 소리쳤다. 아리나와 하울 그리고 티샤에게는 따로 눈짓을 주었다.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과 그녀들은 마차에 타는 척 했다.

“인비져블(invisible)”

마법의 대가, 종주(??) 드래곤의 입에서 마법의 언어가 흘러나왔고, 민혁의 주변 대기가 일렁였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마나가 반응한 것이다. 만약 6서클이 넘는 마도사가 보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며 눈을 휘둥그레 뜰 광경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창고 내부에 있는 인원들 중 이 이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실력자는 없었다. 마나는 투명하게 일렁이며 민혁 일행을 감싸고 그들의 모습을 감췄다.

“하울님.....이거 마법이...발동된..거죠?”

하울의 품으로 가까이 다가선 아리나가 그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아리나가 그렇게 물은 까닭은 하울이 인비져블(invisible) 마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의 인비져블(invisible)은 몸을 투명화 시켜 그 누구에 눈에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민혁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샤도 미심쩍은 눈으로 하울을 바라보았다.

“하..뭐야...그 기분 나쁜 눈빛은 마법은 분명 성공 했어”

티샤의 눈빛에 하울은 하­ 하고 짧게 헛웃음을 내뱉으며 마차 밖까지 들릴 정도의 소리로 이야기했다. 민혁은 조용히 하라고 검지손가락을 입술 가까이 가져가 쉿­쉿­ 소리를 냈다.

“떠들어도 돼 크게 소리쳐도 우리끼리만 들려 단순한 인비져블 마법이 아니라 인식자체를 흐릿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아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만들었어 물론 우리는 서로를 볼 수 있지”

“오오 대단해요!”

아리나는 눈을 빛내며 그녀를 칭찬했다. 하울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제 이 몸의 대단함을 깨달았냐며 깔깔 웃었다. 민혁은 피식 웃고 마차에서 내렸다. 일행이 내리자 마차는 지체 없이 왕성을 벗어났다. 샤일록이 아니라곤 했지만 왕성에까지 식재료를 납품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아이지스 왕국을 떠난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민혁은 떠나는 마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앞날에 행운만이 가득하길 기원했다.

“움직이자”

민혁은 샤일록에게 받은 왕성 내부 지도를 꺼내들며 말했다.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일행은 혹시라도 일꾼이나 시녀들과 부딪치지 않게 조심히 걸음을 옮기며, 식재료 칭고를 지나 왕성 내부에 진입했다. 대성전은 귀족들이 회의를 나누는 대회의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회의 일정이 없어 왕궁 내부 복도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간혹 메이드들이 엉덩이를 씰룩이며 지나갈 뿐이었다.

‘소윤이한테 입히면 ..좋을 것 같은데’

프릴이 여기저기 달렸고, 등과 가슴팍이 파여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하얀 스타킹과 순백의 가터벨트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민혁은 메이드복을 보며 소윤에게 입히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쿨하기 그지없는 얼굴과 귀엽지만 폐퇴미 넘치는 메이드복의 조화, 상상만으로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플레이가 생각났다. 물론 아리나에게 입혀 주인어른과 마구 부려지는 메이드 플레이라던가 하울에게 입혀 자존심 높은 메이드 플레이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티샤가 하얀 스타킹과 가터벨트를 한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변태... 여기까지 와서 메이드들한테 발정하는 거야?”

메이드와 자신들을 번갈아보는 민혁의 시선을 읽은 하울이 말했다. 민혁은 아니라고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녀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 별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티샤

“민혁님....”

가슴어림에 두손을 모으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나의 눈빛을 본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야만 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일행은 대성전 근처까지 접근했다. 예상대로 경비가 삼엄했다. 꽤나 많은 수의 기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문은 크기가 4M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내 마법은 여기까지야”

기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커다란 기둥 모퉁이에 몸을 숨긴 일행, 하울은 마법을 풀었다.

“그럼 이제 무 쓸모 드래곤이네”

민혁이 장난스레 히죽이며 말했다.

“나 소드마스터라니까!!!!!”

소리 없는 아우성, 하울은 성전 앞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들릴까봐 크게 소리치지는 못하고 작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리나는 키득키득 웃었고, 티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귀를 파닥파닥 움직였다.

“알았어 그럼 그럼 너 소드마스터지 암~”

민혁은 능글맞게 말하며 하울에게 말했다. 하지만 역효과로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성질을 냈다. 민혁은 히죽웃더니 살살 그녀를 달랬다. 일주일 가까이 같이 지내본 바 그녀는 칭찬에 매우 약했다. 그가 대성전에 오기까지 네 도움이 컸다고 몇 마디 건내자 실실 웃으며 풀렸다. 민혁은 그녀가 단순해서 좋았다.

“......물어볼 게 있다..”

하울과 민혁의 만담이 끝나자 티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구릿빛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응 뭔데?”

민혁이 질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티샤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디라도 아픈걸까 하는 생각에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온도는 정상이었다. 민혁은 그녀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티샤가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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