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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이다-155화 (155/245)

〈 155화 〉 전초

* * *

루지는 빈 접시들을 가지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민혁은 그녀가 말해준 후보들을 두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일단 로코라는 자가 만나보기로 했다. 1년 이상 영지를 비웠다 근래 돌아왔다. 뭔가 배운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급 로라는 솔직히 말해 기대 하지는 않았다. 성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장장이는 여성이 하기는 어려운 직업이니 말이다. 경비대장이라는 하칸도 기대되었다. 물론 기사단장 하울은 제외다. 그는 지금 만날 수 없는 상태니 말이다.

“일단 로코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볼까요?”

“네 그러는게 좋겠어요”

“그럼 제가 루지님에게 로코라는 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묻고 올게요!”

“부탁해요”

아리나는 음식을 나르고 있는 루지에게 쪼르르 다가가 로코라는 행상인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퓨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로코라는 행상인은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고 있다고한다. 일행은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의외로 로코라는 행상인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시장입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찾으시나요?”

과일을 살피고 있던 적발의 청년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영업용 미소로 무장하고 있었다.

“실례지만 로코씨 맞으십니까?”

“네 제 이름이 로코지만.. 무슨 일 있습니까?”

로코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민혁은 금화 하나를 좌판 위에 올려 놓고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다. 아리나도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베어 물었다. 과즙이 입안을 가득채웠고, 아리나는 이것저것 맛을 보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민혁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방어구 주문을 맡기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방어구 이야기를 꺼내자 로코가 경계를 풀었다. 어느새 장바구니를 꺼내들어 이것저것 과일을 주섬주섬 담고 있는 아리나를 두고 자리를 옮겼다.

“어떤 방어구를 원하시는 겁니까?”

“레더 갑옷 상의”

민혁의 말에 로코는 종이를 꺼내들고 이것저것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슬쩍 보니 어느새 민혁의 치수라던지 특징에 관한 것이 적혀 있었다.

“혹시 원하시는 재질이 있으신지..”

“이걸로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인벤토리에서 가죽 덩어리 하나를 건내주었다. 그것은 오우거 가죽이었다. 제라르 산맥에서 오우거를 해치우고 드랍된 아이템이었다. 로코는 가죽을 살펴보더니 눈을 빛냈다. 상등품이었다. 오우거 가죽은 질기기도 질기지만 해체 작업을 할 때 필연적으로 손상이 되지만 민혁이 건내준 것은 손상이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오랜만에 장인의 혼이 불타는 것 같았다. 로코는 작업을 받아들였다.

“꼭 제가 하겠습니다! 최고의 작품을 보여드리지요!”

“아...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혹시 몇 일이나 걸릴지”

로코의 빛나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민혁은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로코는 민혁에게 일주일 정도가 걸리니 후에 찾아오라고 말했고 민혁은 아직도 과일을 담고 있는 아리나를 챙겼다. 바로 베르히 여관으로 가려고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민혁은 로라를 찾는 것을 관두고 오늘 하루 쉬자고 아리나에게 제안했다.

“좋아요!”

그녀는 찬성했다. 아리나와 함께 강변을 돌며, 로코의 가게에서 가져온 과일을 먹고, 저녁에는 맛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가벼운 키스를 서로의 볼에 주고 받기도 했다. 꽤나 큰 진전이었다. 다음 날 일행은 베르히 여관을 찾았다.

“로라씨?”

“네?!”

민혁이 로라로 의심되는 여자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청소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브론드 헤어가 잘 어울리는 푸른 눈동자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청소도구를 옆에 세워두고 자신을 찾는 손님에게 다가왔다.

“무언가 필요하신게 있으신가요?”

“아 다름이 아니라 방어구 주문을 맡기러 왔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방어구..말인가요?”

방어구 주문을 맡기러 왔다는 민혁의 말에 로라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일행을 테이블에 앉히고 차를 내왔다. 쟈스민차였다. 아리나는 차의 향기를 맡고 너무나 행복해했다. 민혁은 근래 먹을 복이 터진 그녀를 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로라도 아리나의 표정을 보고는 민혁과 똑같이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금새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그게..사실은...저 죄송하지만 전 방어구 주문을 더 이상 받고 있지 않아요 보나마나 루지에게 추천을 받으셨겠지만 몸 상태가 이런지라..”

로라는 긴 소매를 살며시 걷었다. 대장장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여리여리한 팔, 원래라면 뽀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겠지만 그녀의 피부는 욹그락 붉그락 기포가 끓듯이 딱지가 앉아 있었다. 팔 전체를 감싸는 큰 화상이었다. 민혁은 침음성을 내뱉었고, 아리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라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보기 흉했죠?”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숙녀분께 왠지 실례를 한 것 같아서...그런데 치료는?”

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화(1000~1300도 사이의 불)를 피우다 화상을 입어서 일반적인 치료로는 소용이 없었어요.. 마법사님들께 치료를 받기에는 가진 돈이 없어서...”

그녀의 안타까운 말에 민혁은 아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똑같은 마음이었는지 민혁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나는 물의 정령을 소환해 로라의 팔에 가져갔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상처를 만지려고 하는 아리나의 행동에 놀라 팔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팔을 잡힌 상태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붉게 물든 화상은 아리나의 손이 닿자 신기루처럼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럴수가...상처가...!”

잠시 멍하니 그 이적을 바라보던 로라는 아리나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건냈다. 로라도 대장장이이기 이전에 여자인 만큼 많이 속상했고, 슬펐다. 그것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결국 로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꽤나 많은 시간이 소모됐고 오후가 돼서야 민혁은 그녀에게 레더 하의 주문을 맡길 수 있었다.

그날 밤 베르히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한 일행은 로라에게 점심식사까지 대접받았다. 민혁은 약간 부담스러워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가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테이블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경비대장님은 팔츠씨의 의원에 계실거에요 이번에 몬스터토벌을 하면서 좀 다치셨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런가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두 분 께서 제게 해 주신 게 더 많으신걸요”

로라의 인사를 뒤로하고, 베르히 여관을 나와 팔츠라는 자의 의원을 찾았다. 천막을 여러 개 붙여 만든 조잡한 시설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병원 특유의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과 더불어 땀냄새와 혈향이 섞여 공기중에 돌아다녔다. 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민혁님 저, 저 밖에서 기다릴게요!”

감각이 예민한 아리나는 약품냄새가 참지 못할 정도로 역했는지 코를 막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민혁은 피식웃으며 의원을 둘러보았다. 마침 환자를 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팔츠라는 자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오게 어딜 다친겐가?”

환자를 보고 있던 백발의 의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아닙니다.. 병문안을 좀 왔습니다.. 하칸님은 어디계신가요?”

“하칸 말인가 그라면 저 뒤쪽 천막으로 가보게 붕대를 감고 자고 있을게야”

민혁은 팔츠의 안내에 따라 따로 분리된 천막으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천막안에는 험상궃게 생긴 검정 머리의 사내가 코를 골며 누워 있었다. 민혁은 그를 툭툭 건들였다. 그가 자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칸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눈알만을 이리저리 굴렸다. 누군가를 찾는 눈치였다.

“음...소영주님인줄 알았더니 아니군 자네는 누군가?”

하칸이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소영주 몰래 농땡이를 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루지양의 추천으로 방어구 주문을 맡기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방어구 주문이라... 쉬고 싶긴 하지만 오랜만의 고객을 내쫒을 수는 없지 어떤 방어구를 원하시나?”

“각반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칸은 민혁의 주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필요한 재료를 말해주었다. 트롤 가죽과 오크의 엄니 몇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 인벤토리에 쌓여있던 재료라 굳이 다시 사냥을 할 필요는 없었다. 민혁은 재료를 하칸에게 건내주었고, 그는 이주일 후에나 찾으러 오라고 말했다. 용건을 마치고 막사를 빠져나왔다.

“민혁님 어떻게 됐어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리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아직도 약품 냄새에 머리가 아픈지 귀가 추욱­ 늘어져 있었다. 민혁은 애써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대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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