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이다-151화 (151/245)

〈 151화 〉 전초

* * *

­퀘스트‘정령기사의 계약자’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스텟에 정령친화력이라는 게 생겼다. 칭호가 늘었고, 스킬 중에 기초정령술이 생겼다. 민혁은 당연히 ‘정령기사의 계약자’ 퀘스트를 수락했다. 도대체 고양이의 호감도를 어떻게 올려야 할까 고민이 생겼지만 일단 기사정령과 계약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냐냥..냐아앙~]

파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려 했건만 녀석은 종이를 꺼냈던 그 검은 공간속으로 다이빙하더니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파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정령계에 보고하고 오겠음’이라고 적혀있었다. 민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보고야 나중에 해도 될 것을 자신의 주변에는 어째서 산만한 녀석들만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라도 그렇고 파이도 그랬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뒤에서 아리나가 그의 팔을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혁님 뭔가 실례되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독심술인가?!’

독심술인가 궁예의 관심법인가 도대체 언제 이런건 어디서 배운거지 민혁은 당황한 나머지 평소처럼 변명을 하지 못했다. 아리나는 생긋 웃더니 허둥지둥하는 그의 머리에 당수를 먹여주었다.

다음 날 일행은 아침 일찍 일어나 톨긴을 나섰다. 민혁은 더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엘프 아가씨가 일찍부터 일어나 칭얼거리는 통에 더 잘 수 없었다. 카샤 영지를 떠나기 전 상회를 찾았다. 무대륙의 금화를 녹이고, 퀘스트를 수행할 동안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여관주인이 소개해준 곳이었는데 톨킨 상회라는 곳이었다. 같은 상호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 여관주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톨킨 여관장의 추천으로 왔습니다.”

“아.. 아내로부터 안내를 받으셨군요 어떤 물건을 찾으시나요?”

얍살 맞게 생긴 중년이 일행을 맞이했다. 여관주인을 아내라 칭하는 것을 보아 부부가 상회와 여관을 같이 운영하는 것 같다.

“달리 찾는 물건이 있는 건 아니고, 금화를 녹여 금괴를 만들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 그거라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녹이려는 금화를 이쪽에 놓아주시겠습니까?”

중년이 손짓한 곳을 보자 청동 저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로기아 대륙에는 이종족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쓰이는 화폐 또한 많다. 하지만 금의 가치는 같다. 그러다보니 금을 녹여 용도에 맞는 화폐로 맞바꾸는 사람이 많다. 민혁은 인벤토리에서 100냥 정도 되는 금화를 꺼내 저울에 올려놓았다. 무게가 달아지고, 상인은 금괴 3개가량이라고 알려주었다. 민혁은 금괴를 대륙통화로 바꾸어 달라 말했다. 대륙통화는 인간이 쓰는 대표적인 공통화폐였다.

“대륙통화로 75금 여기 있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허리 숙여 인사 하는 상인을 뒤로하고, 일행은 상회를 빠져나왔다. 민혁은 곧장 카샤 영지를 빠져나가려 했지만 육포라던가 건량 등 식재료를 사야했기 때문에 약간 시간을 소요했다. 아리나도 어제 먹었던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서 챙겨놓았다. 일행은 수소문해 맛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카샤 영지를 벗어났다. 또 다시 녹색 산림이 이어졌다.

“으윽... 너무 오래했나.. 몸이 비명으을~”

민혁은 캡슐에서 나와 기지개를 폈다. 온 몸이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다. 가상현실공간에 들어가 있는 동안 가수면 모드가 자동적으로 작동되어 사용자를 보호하지만 장기간 굳어 있는 몸까지 케어해줄 수 없다. 이 문제 때문에 가상현실장치 출시 당시 한 동안 민간화 찬반 논란이 있었다. 결국 몸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가상현실장치를 사용할 경우, 자동적으로 이용을 정지하는 프로그램을 장착해야한다는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민간에서 가상현실장치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우선 땀냄새가 베어 있는 옷을 갈아입었다. 세탁물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욕실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머리에 까치집이 지어져있었다. 민혁은 울상을 지으며 샤워를 했다. 말끔해지니 기분도 상쾌했다. 몸에 광내는 것을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침 9시 밖에 안됐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소윤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이삿짐 문제나 오피스텔 문제 때문에 오늘은 만나기 어렵다고 써있었다.

“지금 깨 있으려나?”

현실시간으로는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창혼에서는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곡이 울려퍼졌다.

­......여보세요..

가라앉은 목소리긴 했지만 일어나 있었다. 아침에 약한 그녀가 전화를 받은 것이 의외였다. 30분가량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통화를 했다.

“이삿짐 나를 때 꼭 부르고 알았지?”

­응...알았어...

“밥 꼭 챙겨먹고 아니면 달려가서 입 안에 또 넣어줄테니까”

­아, 안와도 돼!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민혁은 키득키득 웃으며 알았다고 전화를 종료했다. 물론 사랑한다는 마지막말도 잊지 않았다. 소윤도 부끄러워했지만 끝내는 사랑한다 말했다.

“히힛 귀엽기는”

전화를 마친 민혁은 한동안 인터넷 서핑을 하다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1시다. 그는 혀를 차며 옷장을 열고, 꽤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슈트를 꺼냈다. 다행히 드라이크리닝을 하고 넣어둔 상태라서 먼지라던가 구김은 없었다. 민혁의 키가 키인 만큼 진회색의 슈트는 제법 잘 어울렸다. 거울을 보며 역시 남자는 슈트빨이라고 생각했다.

쫘악­ 차려입고 민혁이 향한 곳은 삼성역 부근의 롯테 호텔이었다. 총 3,206개의 객실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고급 호텔이다. 그의 재산이나 재력을 생각하면 못 올 곳도 아니다. 하지만 소윤과 함께라면 모를까 혼자 먹고 자는데 많을 돈을 쓰는 건 과소비라 생각하는 민혁이 이곳에 온 것은 의외였다.

“어서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호텔 프런트 여직원이 그를 반겼다. 그녀는 얼굴을 미세하게 붉히고 있었다.

“오늘 약속이 있어서 왔는데요 여기 온 게 처음이라서요 안내를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찾으시는 투숙객 이름이라던지 객실 호수를 알 수 있을까요?”

프런트 직원은 컴퓨터에 저장된 액셀파일 형식의 장부를 불러왔다. 오늘 투숙을 하고 있는 손님들의 명단이다. 보통 고급 호텔들은 투숙객의 이름을 안다 치더라도 찾아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롯테 호텔 자체가 외국계 방문 손님이 많다보니 정보공개 허용을 한 손님들의 장부를 보관하고 투숙객의 정보를 방문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음...이름은 모르겠고... 에메랄드 2036호라고 하던데요?”

“에메랄드.. 2036호.. 아 머물고 계신 손님이 계시네요 잠시만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대종씨 여기 프런트에요..에메랄드 2036호 손님 방문 예정이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아..네...아 네 고마워요 손님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겠어요?”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직원은 프런트를 나서며 그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본래라면 다른 남자직원들이 맡아야할 업무였지만 흑심이 약간 끼어들다 보니 직접 안내를 해주기로 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는 23층으로 올라갔다.

“2036호면... 여기네요”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방문객에게 방을 안내해야 할 그녀의 업무를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민혁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계속 남아있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이었다. 여직원은 우물쭈물하다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민혁의 번호를 챙기려는 속샘이었다. 그 때 굳게 잠겨 있던 방문이 열렸다.

벌컥­

“......”

“......”

민혁과 여직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방 문을 열고 나온 건 소윤과 비슷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크고 맑은 눈,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흑단처럼 윤기 있는 검정머리가 포니테일 형식으로 묶여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샤워 타월만으로 몸을 가린 상태였다. 풍만한 젖가슴골이 모두 보이는 상태다. 민혁은 얼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 당신 꽤 빨리 찾아왔네요 약속 시간은 12시인데 말이죠”

“네?”

미녀의 말에 민혁은 머리위로 의문부호를 그렸다. 그가 롯테 호텔에 온 이유는 의뢰자를 만나 중간결과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의뢰자는 롯테 호텔 에매랄드홀 2036호로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의뢰자가 있어야 할 방 안에서 눈앞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즉 이 여자가 의뢰자라는 소리였다. 남성향 게임 데이터를 원하는 여성이라 흔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윤세라씨?”

“네 맞아요 거기 서있지만 말고 어서 들어와요 아직 식사전이죠 당신이랑 같이 먹으려고 룸서비스까지 불렀다구요”

의뢰자 윤세라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샤워타월로만 몸을 가린 상태에서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덕분에 그의 팔뚝에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소윤을 생각해서라도 참아냈다. 하지만 무슨 여자가 힘이 이리 쌘지 끌고 들어가는 것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민혁이 2036호로 빨려들어가고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남은 것은 복도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여직원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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