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전초
* * *
10명 정도의 인원이 그의 손에 간단하게 쓰러졌다. 무언가 특별한 수를 쓴 것도 아니다. 전부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민혁은 아직 분이 안 풀린 듯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화를 냈다. 론은 손에 쥔 샤브르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팔뿐만 아니었다. 다리도 덜덜 떨려 차마 도망가지도 못했다. 식은땀이 등 뒤를 흥건하게 적셨다. 경비대장에게 까불다 당한 후 이렇게 공포가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검을 쓰기도 아까워 하지만 청소기 사용하기가 아까워서 청소를 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민혁은 허리춤에 꼽혀있던 천마신검을 뽑았다.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론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다리가 풀려 전혀 도망갈 수 없었다. 그건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민혁이 다가옴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는 그들, 그는 검을 들어 맨 처음 달려들었던 왈패의 머리를 베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맥카시!”
사방으로 피가 튀었고, 골목에는 왈패들의 비명성이 난무했다. 하지만 민혁의 몸에는 피 한방울도 튀기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왈패 중 하나가 악마라고 작게 말했다. 민혁의 다음 타겟은 그가 되었다. 다시 한 번 머리가 날아가고, 왈패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자비는 없었다. 그렇게 9명의 목을 모조리 벤 민혁은 주저 앉은 채 오줌을 지리고 있는 론을 바라보았다.
“야 너 이리와봐”
공포의 사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그를 불렀다.
“......!”
론은 그의 지명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의 부하들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았다. 론은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네발로 기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아주 설설기네?”
“죄,죄송합니다 방금 전에는 제가 돌았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자존심 따위 이미 갖다 버린지 오래다. 론은 살기 위해 넓적 바닥에 엎드렸다. 부하들은 이지 죽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민혁은 하늘을 쳐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론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민혁은 주먹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콰앙 소리가 나며 론의 머리가 땅바닥에 부딪쳤다. 그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민혁은 이런 놈들에게 어째서 엘프들이 사냥당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법을 봉인한다 해도 정령만 활용한다면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는 론의 부하들의 머리를 인벤토리에 집어 넣고 기절한 론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똑똑
“이제 끝났어 아리나 나와도 좋아”
바닥에 기절한 론을 잡은 채로 흙벽을 두드렸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흙벽이 스르르 무너지며 아리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손을 올려 민혁의 뺨에 묻은 핏방울 닦아주었다. 호신강기까지 써가며 막았는데 마지막에 약간 묻은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손짓에 싱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기다렸지?”
“아니요 전혀요”
아리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혁은 혹시라도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을까 물었지만 아리나는 고개를 흔들며 민혁의 품에 꼬옥 안겼다. 다행히도 아리나는 민혁의 뒤로 펼쳐진 지옥도를 보았음에도 정신적인 데미지는 없어보였다. 천사표 마음씨의 그녀도 악한들에게까지 마음을 써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것이다.
“아리나 미안하지만 시장구경은 내일 계속 하도록하자 이 녀석들 뿌리를 뽑아 놔야 할 것 같아”
끄덕
“전 괜찮아요 그리고 방금 전에 이 남자가 한 말을 들어보니까 이런 방식으로 엘프들을 잡은 게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아서... 혹시라도 아직 붙잡혀 있는 엘프가 있다면 구해주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물론!”
그녀의 말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분명 전문노예 사냥꾼처럼 보였다. 영주관에 데려가기 전에 본거지를 털어 혹시라도 잡혀 있는 엘프가 있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론을 데려가 영주가 그의 본거지를 소탕을 하더라도 엘프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딜 가나 엘프는 귀했고, 권력자들은 비슷하니 말이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역시 아리나님 정말 천사!
철썩
민혁은 골목의 목 잃은 시체들을 삼매진화로 모두 태워버리고 기절한 론의 얼굴에 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그는 활어처럼 펄떡거리긴 했지만 깨어나지는 않았다. 괜히 기절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연달아 두 세 번 정도 물을 더 끼얹어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혹시 기절한 척을 하나 싶어 여러 가지 확인해봤지만 정말로 기절한 상태였다.
“민혁님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흠.. 그러자 영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네”
기절한 론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일행은 먼저 톨킨에 가서 여급에게 론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 나쁜 놈 유명해요!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희롱하고 다닌다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푸른 갈기 용병단의 단장님이 잔뜩 화가 나서 론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요?”
“4서클 마법사가 이 녀석을..... 흠 뭐 됐고 혹시 이 녀석들 부하들이 본거지로 사용하는 곳을 알아?”
주근깨 여급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민혁은 혀를 찼다. 그는 여관방에 론을 결박한 채 던져놓고 여급에게 용병 길드의 위치를 묻고 발길을 돌렸다. 정보가 가장 많이 움직이는 곳은 용병 길드, 푸른 갈기 용병단장이 론에게 화가 났다는 정보도 입수한 터라 한 번 들려보기로 했다. 용병 길드는 꽤나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3층 건물에 꽤나 연식이 되어 보였다.
“으하하하하 커티 그 자식 어제 또 당했다며?”
“프람 오늘 밤 같이 어때?”
“혹시 놀 가죽이 있다면 비싼 값에 사지”
“엘프의 잎사귀라.. 이 재료를 사는 미친놈이 아직도 있네 게다가 의뢰비가..으엑 겨우 금화 3개”
내부로 들어서자 여러 군상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용병 길드라해서 땀내 나는 남자들만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남녀 성비가 비슷해보였다는 것이다. 떠들썩한 내부를 둘러본 민혁과 아리나는 사무원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었을 도와드릴까요?”
블론드 헤어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물었다.
“간단한 정보 하나를 찾고 있습니다.”
“아..용병 길드가 처음이신 모양이군요 정보 관련 퀘스트나 문건은 2층 모험가 길드에서 문의해주세요”
‘용병 길드와 모험가 길드가 함께 있는 구조인가 신기하네’
그녀의 안내 민혁은 고맙다며 싱긋 웃어주었다. 사무원의 얼굴이 사르르 붉어졌고,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리나가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푸릉푸릉한 감촉이 팔에 그대로 전달 되었다. 민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리나는 볼에 바람을 넣은 채 사무원을 경계하고 있었다. 민혁은 피식 웃고 사무원에 안내에 따라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모험가 길드에 어서오세요”
2층 모험가 길드는 매우 차분한 분위기 였고, 인원도 몇 명 없었다. 그 사람들도 대부분 길드원으로 보였다.
“정보를 하나 찾고 싶습니다.”
“아..네 이리 오시겠어요?”
아리나와 민혁은 길드원의 안내에 따라 한쪽 방으로 이동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나요?”
“노예사냥꾼 론이라는 자의 본거지 그리고 그가 매매했던 노예의 종류와 수”
민혁의 말에 사무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무원을 노려보았다. 뒷수작이 있는 것 같아보였다. 민혁은 허리춤의 천마신검을 풀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검날을 뽑지 않음에도 검집 밖까지 세어나오는 예기를 느낀 사무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 정보는 현재 열람이 어렵습니다만..”
“어째서지?”
“푸른 갈기 용병단의 단장이 비공개 열람 신청을 했습니다. 그가 걸어 놓은 돈 이상을 내셔야만..”
“이정도면 되나?”
민혁은 인벤토리에서 주먹만한 금덩이 두 개와 금강석 세 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사무원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민혁이 꺼내 놓은 금강석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이내 진짜 금강석이라는 걸 깨달은 사무원은 서둘러 금덩이와 금강석을 챙겼다. 그러고는 종이 몇장을 민혁의 앞에 내밀었다. 종이에는 론에 대한 간단한 신상명세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민혁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사무원에게 종이를 다시 건내주었다.
“이 내용 사실이 틀림 없겠지?”
“물, 물론입니다”
사무원은 고개를 재빨리 끄덕였다. 민혁은 흡족한 미소를 띄우고 모험가 길드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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