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전초
* * *
앉아 있던 남자는 지루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 흉터가 있었는데 검에 의해 생긴 자상으로 보였다.
“마을 중앙에 톨킨 여관에서 술을 마시다가 백금발을 가진 여자를 봤습니다. 분명히 엘프에요!”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금발은 엘프만이 가질 수 있는 머리색이다. 혹 백금발을 가진 인간이 있더라도 그건 부모 둘 중에 하나가 엘프인 하프엘프다.
“뭐 엘프?!!”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론의 눈은 환희에 젖어들었다. 노예사냥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그는 요 근래 들어 엘프나 이종족을 잡지 못해 주머니에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값도 가장 비싼 엘프가 나타나다니 하늘이 자신을 돕는 거라 생각했다.
“확실한거겠지?”
“그렇다니까요 혹시나 해서 제임스에게도 물어보니 제라르산맥에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제라르산맥에서 내려왔다라... 정황상 확실해졌다. 눈 앞의 녀석이 발견한 것은 엘프가 확실하다. 엘프만 가지고 있는 백금발에 몬스터트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산맥을 출입할 수 있는 건 기사 혹은 엘프 뿐이다. 오랜 사냥꾼의 감이 그를 자극시켰다.
“크크큭 가서 애들을 불러 모아 오랜만에 엘프 사냥에 나선다!”
“알겠습니다 두목!”
남자가 떠나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론의 눈빛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오랜만의 사냥이다. 게다가 목표는 최상의 사냥감이다. 그는 허리춤에 달린 샤브르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식사를 마친 민혁은 방금 전 그 여종업원은 불렀다. 그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소개하고, 카샤 영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녀에게 얻은 중요한 정보는 세 가지 정도였다. 첫 번쨰는 카샤 영지의 기사단에 대한 것이었다. 카샤 기사단이라는 명칭으로 아이지스 왕국 최강은 아니지만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정예 기사단이라고 한다. 기사단의 단장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로 부단장에는 카샤 영지의 후계자가 앉아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몬스터트럼에 대한 것이다. 현재 영지는 몬스터트럼에 대비하기 위해 용병 모집을 하고 있으며 많은 실력자들이 모인다고 한다. 유명한 이로는 푸른 갈기 용병단이 있다고 한다. 단장이 무려 4서클 마법사라고 세 번째는 영지에 떠도는 소문에 관한 것이다. 최근 행방불명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연령층으로는 젊은 여자들이 주로 이룬다고한다. 몬스터들에게 당한 것인지 영지를 떠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로 영주도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젊은 여자들이 사라진다라... 사랑의 도피일까요?”
“아리나 심각한 문제야 로맨틱이 아니라고?!”
식사를 마친 일행은 영지에 열린 시장을 둘러보며 수다를 떨었다. 시장에는 여러 가지 물건을 팔았다. 농기구부터 시작해서 도검류 군것질거리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시장을 돌면서 알아낸 것인데 아리나는 단 것을 매우 좋아했다. 사탕부터 시작해서 케이크까지 바리바리 샀다. 이가 썩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툭
“아...저기요 주머니가 떨어졌어요!”
그녀가 산 군것질거리를 짊어지던 민혁은 앞에서 지나가는 사내가 주머니를 떨어트린 것을 보고 그를 불러세웠다. 하지만 그는 듣지 못한 듯 발걸음을 서둘렀다. 주머니를 들어 흔들어보니 짤랑짤랑 소리가 났다. 제법 많은 돈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우물..우물..민혁님 무슨 일이에요?”
아리나는 씹던 것을 삼키며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꿀에 저린 과일꼬치가 들려있었다.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 2개 째 흡수하고 있다.
“츄릅..분실물인가요?”
그녀는 과일사탕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도대체 가느다란 허리에 저 많은 음식들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음...수상쩍긴 하지만 그런 것 같아 뒤도 구린 것 같으니 쫒아가보자”
주위에서 여러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으로 아리나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일을 벌이기에는 보는 눈이 많다. 분명 식사를 하다 발각된 것이 분명했다. 영지 입구에서부터 로브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걸리지 않았지만 식사를 하며 느낀 시선은 분명 아리나를 향해있었다. 그녀가 답답하다 호소해도 로브를 벗지 못하게 했다. 그는 입술을 꽈악 깨물며 주머니를 떨어트린 사내의 뒤를 쫒아갔다.
사내는 빠르게 걸으며 점점 후미진 곳으로 일행을 유인했다. 뒤쫒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간격유지도 잊지 않았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민혁은 여종업원에게 들은 영지 내 실종사건을 떠올렸다. 추측컨대 범인은 현재 민혁 일행을 몰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이제 그만 서는 게 어때?”
“......”
막다른 골목이다. 일행을 유인하던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식당에서 아리나를 주시하던 남자였다. 민혁은 이를 갈았다. 골목 출구로 여러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길을 막았다. 아리나도 상황이 심각한 것을 눈치 채고 손에 쥐고 있던 과일꼬치를 입안에 마저 집어 넣고 경계태세를 갖췄다.
“크크큭 알아채고 있었나보군?”
골목길을 막고 있던 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왔다. 바로 노예사냥꾼 론이었다. 얼굴에 큰 자상은 그가 웃을 때마다 그 상처가 일그러져 미관상 좋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렇게 티가 나게 유인하는데 다음 번 부터는 방식을 바꿔보는게 어떨까?”
“그래 충고 고마워 하지만 엘프들은 이 방식에 매번 속더라고 떨어진 주머니를 찾아주려고 쫄래쫄래 쫒아와서는 그대로 쓱싹 너무 착한 것도 탈이란 말이야”
론은 노골적으로 아리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들은 흠칫 놀라며 민혁의 옷깃을 부여잡고 뒤로 숨었다.
퀘스트 ‘카샤 영지의 암세포’를 수행하시겠습니까?
‘카샤 영지의 암세포’
왕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카샤 기사단, 기강이 잡힌 정예 병사들 모두 카샤 영지의 자랑거리이자 영지를 운영하는 힘이다. 하지만 카샤 영지에도 어두운 부분은 있다. 이종족들과 인간을 사냥하는 노예사냥꾼들이다. 최근 영지 내 젊은 여자들이 사라지는 것도 이들의 짓이다. 노예사냥꾼 두목 론과 부하들을 포획해 영지로 데려가자
퀘스트 성공: 노예사냥꾼 두목 론의 포획 혹은 죽음
퀘스트 실패: 노예사냥꾼 두목 론의 도주
보상: 카샤 영주의 호감도 상승, 카샤 소영주의 호감도 상승
민혁은 퀘스트를 수락했다. 마침 영주관에 볼일이 있는차였는데 쓰레기 청소는 물론이고 하울을 찾을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일거양득 민혁은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뭐라고 중얼 거리는 거냐 혹시 마법을 믿는 거라면 때려치우는 게 좋을거야!”
론은 품에서 푸른색 구술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던져 구술을 깨버렸다. 구술의 파편 사이에서 푸른 연기가 세어 나와 골목길을 뒤덮고, 이내 사라졌다. 민혁은 주위를 경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혁님 캐스팅이 안돼요..”
뒤에서 아리나가 말했다. 방금 전 구술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었나보다. 사내들은 아리나와 말을 듣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론은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샤브르를 꺼내들었다.
“크하하하 남자는 얼굴도 반반하니 남창으로 써먹으면 되겠고, 엘프년은 한 번씩 맛본 후에 귀족가로 보내주지 맞는 것을 즐긴다면 환영하지만 아니라면 곱게 잡혀라 상품에 상처가 있으면 제 값을 받지 못하거든!”
그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론의 부하들도 포위망을 좁히는 것을 잊지 않고, 일행을 압박했다. 아리나는 언제든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민혁은 다가오는 그들을 경계하며 팔로는 아리나를 뒤로 물러서게 했다.
“아리나 지금부터 좋지 않은 광경이 벌어질테니까 잠깐만 눈과 귀를 막아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나는 그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고는 눈과 귀를 막고 민혁의 뒤로 숨었다. 아니라도 그의 가진바 무력을 알고 있었지만 걱정되었다. 티끌만도 가능성이 없었지만 혹시라도 다칠까봐 싸우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 싸우려고 하고 있다. 아리나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이럴 때 그를 도울 수 없다는 것에 무력감에 젖어든다.
“조용히 기다릴게요..”
하지만 그녀는 민혁을 향해 방긋 웃었다. 민혁은 그녀의 말에 약간이지만 감동 받았다. 아리나의 눈빛에서 말투에서 행동하나 하나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실풋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아리나는 땅의 정령의 도움을 받아 흙벽을 세워 몸을 감췄다. 비명을 질러도 소리가 세어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익... 좀 기다려줬더니 깜찍한 짓거리를..얘들아 덮쳐라!”
론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사내들이 민혁에게 덤벼들었다.
“하아... 정말 귀찮게..너희들 정말 각오해라 한놈도 살려보내지 않을꺼니까”
검을 뽑기도 아까웠다. 그는 제일 먼저 달려든 사내의 얼굴을 주먹으로 날려버렸다. 위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얼굴을 맞은 사내는 이빨이 모두 나가버렸고, 뒤에서 따라오던 이까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내들은 예상 밖의 반항에 움츠러들었다. 민혁은 주먹을 우그득우그득 소리를 내며 풀었다.
“으으...수는 우리가 더 많다 밀어붙여!”
““우오오오오!””
앞장 서 돌격한 사내꼴을 확인한 론은 순간 이대로 퇴각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먹이감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가 명령하자 사내들은 크게 소리치며 다시금 민혁에게 돌진했다.
“크어어억!”
한명
“꾸에에엑!”
두 명
“쿼러러럭”
세 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