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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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말에 없던 체력까지 생긴 소윤과 갈증이 풀리지 않았던 민혁은 결국 그 날 저녁 항문으로 두 번의 거사를 더 치루고서야 잠에 들었다.
애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음날부터 살림을 합칠 준비를 했다. 소윤의 오피스텔은 세를 놓기로 했고, 그녀는 좀 더 넓은 민혁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짐 준비나 기타 준비로 같이 살게 되는 건 보름 후에나 가능하겠지만 마음은 이미 신혼이었다. 소윤이 자신의 오피스텔을 정리하기 위해 집을 비웠을 때 이범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분한 얼굴을 하면서도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남자 츤데레는 사도인데..’
이범의 허락 아래 차려지는 사실상 신혼집, 그의 성격상 동거를 허락했다는 것은 결혼을 허락한 것과도 같다 보아도 무관했다. 이번 소윤의 가출사건으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만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민혁은 신나서 장인어른 이라 외치고 얻어 맞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기존 캐릭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어서 플레이 하시겠습니까 새로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아니 기존 캐릭터”
환영합니다. 『 창혼 』 에 오신 것을
숲의 수호자, 정령의 친구, 드래곤의 대변인, 빛의 종족 이 단어들은 모두 엘프를 지칭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숲을 사랑하는 조화의 종족이며, 타고난 사냥꾼들이다. 간혹 육식을 하지 않는 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엘프학자이자 대마법사 그리고 인간 중 유일하게 순종 엘프와 결혼한 사나이 알 홀킨스의 논문에 따르면 엘프 또한 인간과 다를 것 없이 육식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종족이라 불리는 그들은 인간과 비슷한 체형에 가느다란 몸매, 하얀 피부와 더불어 순종에 가까울수록 금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인간과 겉모습이 비슷하다 여길 수 있겠지만 그들의 귀는 인간과 다르게 뾰족하다. 또한 높은 지능과 마나의 축복으로 엘프라면 누구나 마법과 정령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성격마저도 이상적이다. 현명하고 차분하며 웬만한 일에는 흥분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때때로 그 모습을 차갑고 냉정해 보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한 없이 따뜻한 종족이다.
숲에서 길을 잃은 방랑자들을 알게 모르게 인도해주기도 하며, 상처 압은 여행객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 아름답기로 소문난 엘프들의 희소성을 노린 노예사냥꾼들이 기승을 부려 쉽게 마주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아리나 어서 가봐!”
“잠깐 밀지 마 테르겐”
녹색 우거진 살림 두 소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들은 엘프였다.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그녀들이 주시하고 있는 곳에는 한 사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알겠어 가면 되잖아 그만 밀어..”
잠시간의 말다툼 끝에 결국 아리나는 자신의 등을 떠미는 테르겐의 등쌀에 이기지 못해 사내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움찔
둘 사이의 거리가 1m 정도 남았을까 사내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히익!”
아리나는 상당히 놀란 듯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남자는 그녀를 위협할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서 피를 한 사발 울컥하고 토해냈다. 그 양이 꽤나 상당했는데 아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뒤에서 추이를 살피던 테르겐도 놀라 달려왔다.
“상태가 심각해..”
그의 몸상태를 살핀 아리나가 말했다.
“치료마법으로도 어려울까?”
테르겐의 물음에 아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내 둘 다 무엇인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나가 나서서 사내의 몸에 부유마법을 걸었다. 두둥실 사내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상처를 입은 사내를 데리고 엘프 소녀들은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엘프학자 홀킨스의 말에 따르면 엘프들은 보통 100여명 이내의 인원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고 한다. 가장 나이 많은 연장자가 마을의 대표, 장로 역활을 맡고 그 외에는 모두 지위가 동등하다.
“아리나 무슨 생각으로 인간을 데려온 것이냐?”
아리나가 살고 있는 마을의 장로는 순찰을 나갔다 들어온 그녀와 테르겐이 인간을 데려온 것을 보고 그녀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일단 남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아리나를 따로 불러내 인간을 마을로 데려온 이유를 물었다.
“그 인간 남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었어요...”
비 맞은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아리나의 모습에 장로는 혀를 찼다. 마을의 엘프들이 모두 순하고 착하지만 아리나는 그 정도가 심했다. 저번에는 오크의 상처까지 치료를 해주었다. 치료를 해주는 거야 상관이 없지만 몸이 다 나은 그 오크에게 습격을 당했다. 다행히 마을 안에서 일이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아니라면 생각만 해도 끔직했다. 이번에도 그런 맥락이 분명했다. 인간의 상처를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단지 그 이유뿐이라면 혼나 마땅하다.. 최근 인간들의 습격으로 납치 당하는 엘프가 늘어나고 있다. 마을의 경계가 삼엄해지고, 마을 주민들도 인간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판국이다. 그런데 정체도 모르는 남자를 마을로 데려오다니...”
장로는 이번 기회에 그녀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쓴소리를 잔뜩 내뱉었다.
“죄송해요..”
아리나는 큰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되었다 이미 데려온 것을.. 그 남자가 일어나면 바로 내보내거라”
장로도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말을 끊고 그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아리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의 집을 나섰다.
“아리나 괜찮아..?”
“난 괜찮아”
“뭐가 괜찮아! 눈가가 시뻘건게... 너 울었어?!”
집을 나서자 테르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리나의 눈가가 시뻘겋게 물든 것을 보고, 장로에게 한 소리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리나의 제지에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 남자를 마을로 데려오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혼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사람의 상태는 어때?”
“어휴... 그렇게 혼나고도 걱정이 되나 보구나?”
테르겐은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응....”
“하여간 착해빠졌다니까... 그 남자라면 괜찮아 라돈 아저씨에게 부탁해 말끔하게 치료했어 다만...”
“다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아저씨 말로는 정신적 문제라고 하던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둘은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아리나는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 남자의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테르겐은 헤어지면서 그 남자가 아리나와 같은 공간에 둘만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지만 마을에는 전문적인 의료기관도 없었고, 빈 집도 없다. 그리고 아리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착한 심성을 가진 인간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고, 아리나는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곧장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녀의 침대에는 상처가 모두 말끔히 치료된 상태의 인간 남자가 누워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숨소리만이 공간을 매웠다.
아리나는 침대에 딸려 있는 보조 의자에 앉아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을의 엘프 남성들과는 다른 굵은 선이 매력적이었다.
‘나도 참.. 환자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한거람...’
자신도 모르게 인간 남자에게 호감을 품었다. 아리나는 자신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이제껏 보았던 인간들과는 다르게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언뜻 보면 외려 엘프 남자들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빛이 나는 묵색 머리카락 이라던가 빛난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반짝이는 검정 눈동자가 그러했다.
‘검정 눈동자...?’
잠을 청하고 있던 그의 눈동자 색을 어떻게 안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인간 남자가 눈을 뜬 것이다. 그는 아리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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