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전초
* * *
“잠깐만 소윤아 나 전화 좀 할게”
끄덕
앙증맞게 그의 품에 볼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윤, 민혁은 소리 없이 빵 하고 터져버렸다.
“......”
끅끅 거리며 웃는 민혁을 째려보는 소윤, 민혁은 그녀의 눈빛에 히죽히죽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휴대폰에 ‘봉국이형 친구’ 라고 표시된 전화번호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 예 저에요 예 오랜만이네요 실례지만 문제가 좀 생겨서요 아니에요 저번일은 별다르게 처리할 것도 없었는걸요 고생은요 제가 할 일 한건데요.. 예...아 네 시비가 좀 붙어서요 이런 일로 오랜만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술이요? 그럼요 살게요 아..네 감사합니다..네에~ 네에~ 그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네에~ 아 여기 위치가...한국대학교역 3번 출구 앞 카페요 네에 감사합니다. 끝나고 전화할게요”
“누구야?”
민혁이 전화를 끊자 묻는 소윤에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주었다. 알려줄 수 없다는 표시, 그럼에도 소윤은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숨긴 일이라면 내가 알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리라 지금은 그저 조금 더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굳이 알 필요 없지 우리 소윤이는’
품에 더욱 더 붙어오는 그녀를 보며 민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전화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굳이 소윤이 그 사람과 안면을 익히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는 그녀가 자신과는 다르게 깨끗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시발 재미 좀 그만 보고 이쪽 좀 보지 년놈들아”
그와 그녀가 서로 안고 있는 것을 본 남자의 친구들은 남자를 부축하며, 성이 잔뜩 난 상태로 험한 말투로 시비를 걸었다.
“입에 걸래를 물었냐?”
남자의 친구들의 시비에 민혁은 조소했다. 그리고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뵈는 게 없나!”
“여자 앞이라고 꼴값 떨다가 훅간다 개새끼야”
“그냥 쳐 시발!”
효과는 굉장했다. 남자의 친구 3명은 욕설을 내뱉으며 돌진해왔다. 민혁은 멍하니 수라장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 사장을 내버려두고 소윤을 안고 카페에서 도망쳤다. 혼자라면 충분히 상대하겠지만 품 안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그녀가 있기에 무리였다.
남자의 친구들은 그가 도망칠지는 예상 못했는지 카페에서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보다 아직도 쓰러져 있는 남자를 부축해 그들의 뒤를 쫓았다.
“뛸만해?”
끄덕
민혁은 품 안에 안긴 소윤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 였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유니폼만을 입고 뛰는 바람에 그녀의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숨도 많이 거칠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100% 몇일을 앓아 누울 것이다.
‘스테미너 하나는 끝내주네’
아직도 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는 네 남자들을 보며 민혁은 소윤의 몸을 더욱 꼬옥 끌어당겼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미묘한 거리, 그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발을 놀리면서도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다시 카페로 가자!”
“...하아...하아...방법...하아...있어?”
“물론!”
그렇게 3분여 정도가 지났고, 민혁은 소윤을 이끌고 다시 카페로 향했다. 둘을 쫓던 남자들도 그들이 다시 카페로 향하는 것을 보고 따라붙었다.
카페 안은 난장판이었다. 의자는 여기저기 넘어져 있고,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음료들은 바닥에 엎질러져 있다. 그리고 민혁이 카페를 나서기 전에는 없던 험상궂은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그나마 멀쩡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덩치가 우락부락 했으나 정장 너머로도 섬세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덩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 앞에 사장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왔군”
민혁과 소윤이 카페 내부로 들어서자 그 사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올빽머리에 까만색 선글라스를 멋있게 매치했다. 2m에 가까워 보이는 그는 성큼성큼 걸어 민혁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민혁군”
손을 먼저 내미는 그
“오랜만이네요 동혁아저씨 귀찮게 불러서 죄송해요”
민혁은 사내를 동혁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혁이 내민 손을 마주 잡고 손을 흔들었다. 둘이 악수하던 것을 보던 소윤은 험상궂은 동혁의 얼굴을 보더니 무서웠는지 그의 품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안겨왔는데 그 감촉이 꽤나 좋았다.
“아니다 조만간 형님께서도 안부 여쭈라고 하셔서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얼굴을 보아하니 잘 지낸 것 같군 그런데 그쪽은?”
동혁은 자신을 보더니 민혁에게 꼬옥 안기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민혁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절래절래저었다. 동혁은 민혁의 고갯짓이 무었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문제아들은 어디있지?”
대신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인을 찾았다.
“아마 곧 이쪽으로 올거에요”
민혁의 말이 신호탄이 된 것일까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카페 안으로 4명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그들을 유심히 보던 동혁은 자신과 같이 온 4명 정도 되는 부하들에게 눈치를 줬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쪽쪽 빨다가 자신의 상관의 눈치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페 입구로 향했다.
민혁을 쫒아 다시 카페로 들어온 네 명의 남자들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네 명의 떡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저마다 얼굴에 칼자국 하나쯤은 평범하게 가지고 있는 그들을 보며 네 남자들은 서로에게 달라붙었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오,오지마!!!”
떡대형님들이 다가가자 발악하듯 소리치는 남자들, 형님들은 신경쓰지 않고 되려 씨익 웃고 저마다 한명씩 남자들을 어깨에 매고 카페 밖으로 향했다.
“너무 심하지는 않게 부탁해요”
떡대 형님들에게 붙잡혀 가며 절규하는 남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본 민혁의 짧은 감상평이었다.
“뭐 스트레스 해소만 하도록 하지..그리고 의뢰가 한 건 있는데 시간 좀 있나 민혁군?”
절래절래
이미 받아 둔 의뢰가 있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지갑에서 봉국의 연락처를 찾아 그의 손에 건내주었다. 손가락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고 딸랑딸랑 흔든 그는 여전히 품 속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는 소윤을 데리고 카페를 나섰다.
불안에 떨고 있는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그녀의 집
“집에 들어가서 이불 푹 덮고 자 알겠지?”
끄덕
그녀의 집 문 앞에 선 두 사람간의 대화, 민혁은 달리느라 식은땀이 잔뜩 흐른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소윤은 그에 호응하듯 눈을 감고 자신을 쓰다듬는 민혁의 손을 어루만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민혁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녀의 몸상태를 걱정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돌아섰다.
꽉
그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힘에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그의 옷을 잡아챈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소윤이었다. 민혁은 벌게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 음란한 여친!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돼”
“...그런 거 아냐!”
보기 드물게 박력있게 소리치는 그녀, 민혁은 소윤의 외침에 일단 그녀를 품에 안고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츄릅츄르릅!
오피스텔 내부로 들어서자 마자 소윤은 민혁을 덮쳤다. 키스는 일방적이었다. 갑자기 덮쳐진 바람에 민혁은 바닥에 등을 부딪치며 쓰러졌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키스하기 편해진 자세 때문인지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하아..하아..굉장히 적극적이네 오늘..”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떨어지는 남녀의 입술, 민혁은 숨을 몰아쉬며 능글맞게 말을 꺼냈지만 자신의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소윤의 얼굴을 보며 끝까지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나란 놈도...글러먹었구나’
감정표현이 서툴고, 여장부 같다고 해도 그녀도 결국에는 연약한 여자, 그는 그녀가 느꼈을 공포와 수치심을 생각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조금 더 빨리 그녀를 구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스러웠다. 아직도 눈물자국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팍에 묻었다.
“...아르바이트 사실 우리...... 커플링 하려고 그랬어...”
“......!”
자신의 가슴팍에 안겨 작게 읊조리는 그녀의 말에 민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그녀와 만난지 1년이 되어간다. 자신은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는데 그녀는 못난 자신과 사귄 이후로 날짜 세는 걸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그는 쓸데없이 그녀의 오른손으로 만지작 거렸다. 두 사람 모두 다 악세사리는 착용하지 있지 않다. 악세사리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고, 굳이 반지를 끼지 않아도 그녀와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녀의 표현 방법은 자신과 약간 달랐나 보다. 그는 웃는 듯 우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었다.
“...나도 갈래...”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잠옷을 입고 문 앞에 선 소윤
“안돼 어제는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오늘은 내가 멋지게 해결 짓고 올게”
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소윤이 억지로 이끌려 들어가자 민혁은 홀로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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