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전초
* * *
“그 무슨!”
무승이 더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상황이 귀찮아진 민혁이 무무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얼굴이 창백해지며 뒤로 물러섰다.
“잠깐 멈추시오!”
“으응~?”
무승이 물러서자 다른 이가 그의 앞을 막았다. 파랑 영웅건을 둘러매고 의기양양하게 나선 그는 이제 약관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딱 보기에도 좋은집안에서 태어난 후기지수였다. 민혁은 이 상황자체가 짜증이 났지만 의기양양하게 나선 그의 모습에 약간의 호기심을 품었다.
‘뭔가 있는 놈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Level: 41
이름: 남궁건
종족: 인간
성별: 남
경지: 절정
체력: 11801/11801
내공: 102년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의 능력치는 보잘 것 없었다. 남궁이라는 성을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초절정의 경지도 밟은 녀석이 나서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무시하려했다.
“이익! 무시하지말고 나를 보시오!”
남궁건은 그가 자신을 무시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소매자락을 잡았다.
“뭐하냐?”
“......!”
심리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민혁으로써는 좋은 반응을 줄리 만무했고,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끌어 모아 기파를 그에게 보냈다. 남궁건은 그의 막대한 기파를 느껴버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불쌍하게 어버버 하고 입을 벌린 체 굳어버렸다.
“흥!집안만 믿고 나서는 애송이는 구석에 박혀있어!”
콰앙
그의 한심한 꼴을 본 민혁은 그의 복부에 주먹을 내질러 남궁건을 날려버렸다. 주변은 갑작스러운 민혁의 주먹질에 조용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후기지수들 화련용봉단은 중소문파와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을 모아 놓은 이들이다. 즉 문파에서 절기를 의전하기 위해 선택한 최고의 후기지수가 아닌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양새 좋게 모아 놓은 이들이라는 말이다. 앞에서는 무림의 미래라고 지칭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들 중에서도 알게 모르게 리더 역할을 해왔던 남궁건이 주먹 한 방에 날아갔으니 뒤에서 떠들던 이들이 조용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남궁건이 날아간 쪽에서는 구토를 하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지만 민혁은 신경쓰지 않고 연화를 바라보았다.
“연화야 힘들게 해서 미안한데 애들 데리고 정무맹으로 돌아가 있어”
“후냐아~ 오라버니는요?”
연화는 꼬리를 축 내리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어서 가 호령 애들 끌고 가”
“알겠다...그리고 조심해라”
호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친 일행을 다시 이끌었다. 민혁의 예상대로 호령이 일행을 이끌자 어수선함도 사라졌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호령을 따라 나섰다. 무승도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호령의 이름 값 때문인지 민혁의 무력 때문인지 이번에는 군말 없이 일반인들을 챙겼다. 그 와중에 궁서련이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고생을 했다. 하지만 입에 찐하게 도장을 직어주니 스르륵 떨어졌다.
“자 그럼 가볼까?”
일행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던 민혁은 그들이 사라지자 불타버린 소림사를 향해 나아갔다.
소림사는 얼마 전의 방문했던 그 고아했던 광경과는 상반된 풍경을 그에게 선사했다. 세월의 미가 가득했던 전각들은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고, 곳곳에는 일반인과 중들의 시체가 만연했다. 민혁은 그것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그 참혹함은 현실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애써 처참한 광경을 무시하며 빠르게 항마전을 향해갔다.
“...그 땡중도 당한건가?”
멀리서 보자면 그의 움직임은 말을 보태 빛과 같았다. 그는 금세 항마전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저번과는 달리 그를 맡아 주는 이는 없었다. 민혁은 어두운 토굴 안을 기감으로 읽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다행히도 기습은 없었다.
“역시 열려 있네”
토굴 안의 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향하는 길에는 북천의 무사와 중들 그리고 꾀죄죄한 옷을 입은 죄인으로 보이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 수가 꽤나 많은 것으로 보아 저항이 심한 듯 했다.
토굴을 거쳐 똑같은 길을 허리 숙여 걸었다. 전에는 그토록 길게만 느껴졌던 길이지만 아무도 따라오는 이가 없으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좀만 기다려라 아주 박살을 내줄게’
사건의 주범을 잡겠다는 의지로 움직이는 민혁, 토굴은 어느세 그의 뜻에 답하는 거대한 공동으로 향하는 입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민혁의 기대와는 다르게 공동에는 아무도 살아 숨쉬고 있지 않았다.
“튀었나...제기랄”
파직
공동 가운데로 내려온 민혁은 정무맹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리 잡고 있는 빛의 기둥을 쓰다듬었다. 기둥안에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성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정무맹과 똑같이 기둥은 민혁의 손길을 거부하듯 백색 기운을 내뿜었다. 분명 광천신공의 기운이었다.
차라랑
그는 천마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려 단번에 기둥을 깨부쉈다. 저항하려는 듯 천마신공의 기운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힘은 버텨내지 못했다.
털썩
‘미안하지만 남자를 안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 있던 남자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민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여자 였다면 모를까 그리 높은 위치에 떠 있던 것도 아니니 걱정도 되지 않았다. 기둥을 깨부순 민혁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제는.. 당하지 않았나?"
바닥에는 여럿의 무승들과 북천의 무사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 중에는 현안의 얼굴도 보였다. 하지만 검제는 없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피한 것일까 시체도 남지 않고 당한건가 아니면 납치라도 당한걸까 제일 유력한 것은 싸움 도중 패주한 것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봐 애송이”
“......?!”
검제를 찾던 그의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안광이 자리 잡고 있었다. 토굴로 된 감옥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죄수로 보였다.
“하아...심장이야 깜작 놀랬잖아요 아저씨”
그의 기감을 전혀 못 잡고 있던 민혁은 그가 꾀죄죄한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죄수라는 것을 확인하자 안심이 되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뭐 되었다.. 그 보다”
그는 붉은 안광과는 대비되는 말투로 민혁에게 말하며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민혁은 그의 행동에 경계심을 가졌지만 그에게서 내공이 느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민혁은 그에게 다가갔다.
“검제!”
그리고 쇠창살이 달린 석굴 구석에 쓰러진 검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팔 한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팽성도 그렇고 두 명이나 되는 현경의 고수가 당한 건가?’
두 명의 현경의 고수를 상대한 것이 한 명이라는 보장이 없었지만 민혁의 감은 두 사람을 상대한 것이 한 사람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강할까? 그는 한숨을 쉬며 감옥 안으로 서슴 없이 들어가 검제의 몸을 부축했다.
“검제는 무슨 다 죽어가는 늙은이지 뭐... 그래도 살리고 싶으면 빨리 데려가는 게 좋은 거야”
‘얼마나 고수이길래 검제는 늙은이라고 표현하는 거지?’
피에 젖은 몸을 부축하자 붉은 안광의 사내는 현경의 경지에 이른 검제를 고작 늙은이라 표현했다. 민혁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잠시 관찰했다. 역시나 내공은 읽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척을 숨기던 것을 생각하자면 약간 경계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민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검제를 부축해 석굴을 빠져나왔다. 항마전을 감시하던 승려들이 모두 죽었기에 민혁은 그가 탈출 할 줄 알았지만 붉은 안광의 사내는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축객령을 내리듯 손을 휘휘 저었다.
결과적으로 북천의 습격은 성공적이었다. 정무맹의 장로들 과반수가 죽었고, 부맹주였던 이가 죽었다. 무사들의 피해도 심각했으며, 천하무림대전을 구경하러 왔던 일반인, 고위관료 각 무림세력의 요인들이 죽어나가 정무맹의 신뢰나 이미지는 대폭 하락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북천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소림사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문의 어른인 무무대사와 후기지수들은 다행히 몸을 뺏지만 장로들과 백팔나한들은 모두 명을 달리했다. 태산북두라는 그들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북천은 이로써 천하공적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오히려 천하공적이 되지 않았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각 무림의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죽었고 요인들이 죽었고 나라의 관료들이 죽었다. 하지만 북천은 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전쟁을 선포했다. 비단 무림만을 대상으로 한 전쟁 선포가 아니었다. 나라를 대상으로 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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