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전초
* * *
“..북천의 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허허 팽성 선배께서 북천에게?”
“현경의 고수라도 온 것인가?”
노룡전의 고수들은 저마다 안타까운 듯 한마디 씩 말을 보탰다.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정무맹의 무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죽은 자를 위로 했다. 민혁은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품에 안긴 팽소를 유자인에게 건냈다. 유자인은 ‘이게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팽소입니다.”
“으응? 이 아이가 팽소란 말인가 그 아이는 남자아이 였는데?!”
“별 일 아닌 것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유자인의 질문에 민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팽성을 받아든 그의 표정에는 아직도 의문이 가득했다.
“연화와 다른 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런 그를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민혁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위험하니 구원요청을 위해 일반인들과 봉황대 그리고 화련용봉단(花???)의 후기지수들과 함께 소림사로 보냈다네 방금 전에 호령 소저도 그쪽으로 갔지”
“예?”
유자인의 대답에 민혁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팽소가 노려진 것은 아무래도 무신이 나눠준 무공들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증거로 팽소가 벽력신공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고 습격을 당한 팽지희가 죽고 팽성도 죽었다. 그리고 소림사에는 검제가 있다. 민혁이 모른 척을 하기는 했지만 항마전에는 광천신공을 익힌 자 또한 함께 있었다. 평소의 그라면 북천이 이런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지 먼저 생각했겠지만 그는 연화가 다시 한 번 위험에 쳐했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봐 사위 어디 가나?!!”
“소림사로 갑니다. 이곳의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젠장! 이번엔 절대 늦지 않는다!’
뇌전풍신보를 사용하는 그의 뒤로 들리는 유자인의 목소리에 민혁은 대충 소리치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소림사
천하무림의 심처이자 단일세력 중 천마신교와 함께 제일을 이루는 정파의 기둥 그 이름으로 하여 태산북두라고도 칭하고는 한다. 매일 부처에게 치성을 드리려 오는 백성들만 하여도 십만 명에 이른다 한다. 평소에는 정각의 시진을 가리키는 종소리와 무승들의 기합성만이 울리는 그곳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곳곳에 비명성이 난무했고, 죽은 시체들이 만연했다. 침입자들은 거침 없이 성지를 유린했고 무승들과 백성들은 도륙당했다. 소림사의 자랑이라 하던 백팔나한들도 격파당했으며 장로들 또한 명을 달리했다.
“정무맹의 장치는 누군가에게 해체 당한 모양이군”
또한 소림사의 금지이자 은거한 고수들이 모여 있는 항마전에서는 지금 때 아닌 살육이 일어났다. 살육을 일으킨 범인은 널따란 동공을 사악 살피더니 정확히 정무맹이 있는 방향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크윽 설마 정무맹에도 이 역거운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냐 이 썩을 놈아!”
그의 발아래서 내상을 당한 현안이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그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소림의 고수들이 피를 흘리고 널부러져 있었다.
“썩을 이라니 중치고는 입이 걸군 그래”
“크아아악!”
그가 발에 힘을 주자 현안은 몰려오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이미 그는 사지의 힘줄이 잘렸고, 단전은 파괴당한 상태였다. 이미 무림인으로써의 생명은 끝난 셈, 일반인으로써도 살기가 힘들었다. 그가 흘린 피는 이미 바닥을 가득 적셨으니 그가 죽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지금 겨우 말을 꺼낸 것도 정신력의 힘이었다.
“...크으윽...퉷! 네놈은 지옥에서도..용서..으아악...받지..못할...!”
현안은 몸이 억눌린 상태에서 자신을 밟고 있는 영문 모를 청년에게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흐음 죽었나.. 마지막은 네놈다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나를 못 알아볼 줄은 몰랐다. 아쉽군 아쉬워 네가 내 정체를 알아체릴 때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 했는데 말이야 땡중”
청년은 싸늘히 식은 현안대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그의 말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는 현안대사의 시체에서 발을 치우고 항마전 공동의 한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백색의 기둥을 쓰다듬었다. 그 기둥의 가운데에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너무나 길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성이 알몸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주군 정무맹의 장치가 부숴졌습니다.”
시체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기둥을 쓰다듬던 그의 뒤로 먹을 칠해 놓은 듯한 남자가 나타났다.
“알고 있다. 그래도 벽력신공의 힘은 일부라도 흡수를 했으니 되었다. 그나저나 검제가 자기 아들을 버리고 도망갈 줄이야... 말세로군”
“......”
청년은 독백적인 말에 흑색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팔 한짝을 바라보았다.
“이 고개만 넘어가면 소림사가 보입니다. 힘들 내십시오.”
선두에 선 무승의 말에 일반인들과 그들을 호위하고 또 병력요청을 하기 위해 온 화련용봉단과 봉황대의 일원들을 합친 500여명은 짜기라도 했는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 중에는 연화와 사윤 그리고 궁서련과 호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꽤나 지친상태였다. 계속해서 무리해서 경신술을 사용한 것도 이유였지만 일반인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그들을 업어서 이동하다 보니 더 치진 것이다.
“오라버니는 괜찮을까냐아?”
연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위에 동의를 구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윤도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걱정하는 어투로 말했다.
“흥! 괜찬을껄 그 얼굴에 철판을 깐 남자라면!”
제갈령은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지 코웃음을 치며 말하기는 했지만 그녀 자신도 걱정이 되는지 얼굴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일행들도 제갈령의 표정을 보고 있었기에 그녀를 탓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화의 꼬리와 귀가 추욱 처졌을 뿐이다.
“허허 제갈소저 말이 너무 험하오 유소저, 사소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화경의 고수가 아니오?”
“...맞아 무사히 돌아올꺼야.”
“그렇겠지냐아~?”
하지만 청수진인과 궁서련의 확신 서린 말에 연화는 다시 꼬리를 다시 살랑살랑 거리며 길을 걸었다.
‘그래 민혁은 괜찮을 거다 걱정이라면...’
호령은 그리 생각하며 말의 어미를 흐렸다. 그녀도 금색의 기둥을 보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그것을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일행이 함께한 자칭 정무맹의 미래는 소림사가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위치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림사의 모습은 처참했다. 소림사의 자랑인 현문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고아한 멋을 자랑하던 건물은 불에 타다 남아 그 모습이 흉했다. 또한 현문을 지키는 무승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행들은 이끌던 무승은 처참하게 변한 소림사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일행들도 충격이 컸다. 그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멍하니 소림사의 참상을 바라보았다.
“어이! 거기 잠깐 스톱!”
그 때 그들의 뒤로 그들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5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은 모두 홀린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숨을 헐떡이는 미모의 청년이 서 있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그를 몰랐지만 무인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 그를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이~!”
제일 먼저 그에게 달려간 것은 연화였다. 그녀의 뒤로 사윤 궁서련 그리고 호령까지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은 땀냄새가 났지만 그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닥다닥 그에게 달라붙었다.
“어엇 어어 넘어져!”
그는 갑작스럽게 달려든 그녀들을 안으며 균형을 잃어 넘어질뻔 했지만 히죽히죽 웃으며 그녀들을 전부 안아주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와 그녀들의 귀에는 안들렸다. 특히 민혁에게 지금의 포근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비와도 같았다.
“헛헛 민혁소협 이제 그만하시는게...?”
“아...너도 있엇냐?”
다가오며 말한 청수진인을 보며 그는 그리 말했다. 청수진인의 말에 여인들은 그의 품에서 허둥지둥 빠져나왔다. 궁서련과 연화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남아있었지만 나머지는 얼굴을 붉힌체 쭈뼛쭈뼛 서 있었다. 그는 뭔가 허전한 품 안에 느낌에 입맛을 다셨지만 일단 상황이 상황이기에 여전히 안겨있는 궁서련과 연화를 품에 안고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소림사로 들어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대부분 일반인이었지만 무인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이야기 하기는 귀찮으니까 한 마디만 하지 노룡전에서 말하길 소림사는 위험하니 정무맹으로 당장 돌아와라 라고 했다. 번거롭겠지만 빨리빨리 움직여서 정무맹으로 돌아가”
민혁은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
“시주 소림사가 위험하다니요?!”
일행을 이끌던 무승이 민혁의 말에 반발하듯 앞으로 나왔다. 그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있었는데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듯 했다.
“현문 꼴을 보면 모르나 소림사도 습격당했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정무맹으로 돌아가”
“그 무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