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전초
* * *
츄릅츄르릅
“....하아....하아....”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의 입술을 받아드리는 궁서련의 모습에 민혁은 기분 좋게 웃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숨을 쉬고 있는 사윤과 호령 ‘허허’하고 웃는 팽성, 기대감에 부풀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연화 그리고... 민혁은 이상함을 발견했다.
“소와 팽소저는?”
“소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지희와 함께 1회전이 끝나자 마자 처소에 돌아갔습니다”
“아 그래요?”
그의 자연스러운 물음과 팽성의 자연스러운 대답 민혁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비무장 위를 주시했다. 8강 2차전 경기는 제법 진행이 되고 있었다. 남궁희는 검기를 사용해서 진무강의 검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고 진무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강기들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진무강의 우위가 당연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곧 끝나겠는데?”
“흥..그렇구나..저 여아가 승부를 보려하는구나 제왕검형이라.. 검제께서 여아에게 가전무공 중 비전을 전수할 줄은 몰랐는데 그 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소리인가?”
“하지만...상대가...”
“좋지 않군요.”
콰아앙
팽성의 단정적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무장 위는 폭음과 함께 먼지에 휩싸였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자 승자가 나왔다. 승자는 소검마 진무강이었다. 남궁희는 비무장 밖으로 튕겨져 나가 쓰러져 있었는데 자잘한 자상을 제외하면 큰 검상이라던지 여타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진무강이 손속에 여유를 둔 것 같았다
“8강 2회전 승자는 천마신교 소속 진무강......!”
콰앙콰앙콰아아아아앙
모두가 바라본 진무강의 승리가 눈 앞에 보이자 청모학사가 승자선언을 하려던 찰나, 비무장과 관중석은 폭음에 휩싸였다. 비무장 위부터 시작된 폭염과 폭음은 청모학사를 덮쳤고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관중석 또한 폭염에 휩싸였다. 무림대전이라고는 하나 관중들은 대부분 일반백성들이 대부분, 민혁은 갑작스럽게 터진 말도 안되는 광경에 일단 강기막을 생성시켰다.
“제길! 무슨 일이야!”
“사,사람들이!”
“보지마!”
정체모를 폭염은 관중석의 일반인들을 삼켰다. 물론 무림인들은 어떻게든 방어를 했지만 일반인의 경우 갑작스러운 혼란에 대피하려다 폭염에 휩싸여 사라지거나 폭사해버렸다. 강기막 넘어를 지켜보던 연화는 당연하게도 이를 볼 수 밖에 없었고 민혁은 연화를 비롯한 여인들을 끌어안아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막았다.
콰아앙콰앙
‘젠장! 분명히 폭탄이야 대체 어떻게 누가 폭탄을 구한거지 폭약의 경우에는 관에서도 소량 밖에 못 만들고 폭탄 같은 건 있지도 않다고 들었는데!’
폭염은 이윽고 민혁이 자리를 잡은 곳까지 왔고 정체모를 불꽃은 마치 잡아먹을 듯 강기막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처음 충격은 가볍게 불꽃들을 막아냈지만 두 번 세 번 충격이 이어지자 강기막에도 균열이 생긴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앙
“후계 괜찮으십니까?!”
“아..예 괜찮아요 끝난 건가?”
마지막 폭염과 함께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폭음에 민혁과 팽성은 유지하고 있던 강기막을 해제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보이는 시야 강기막에 싸여진 시야로 보여지는 것은 검정 재들과 성난 화염 뿐이었다면 강기막이 걷어지고 난 후 보이는 시야에는 사람들의 뼈에 달라붙어 있어야할 살점과 신체 일부분 그리고 매쾌하고도 기분 나쁜 혈향만이 가득했다.
“우웁...우웩!우웨웩!”
“괜찮으십니까? 후계!”
리얼리티 때문일까 0과 1 사이라고는 해도 지저분하고 무참히 살해된 인육들 앞에서 민혁은 밀려오는 구토기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차마 여인들에게 이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보여 줄 수 없었던 그는 그녀들을 안은 체로 견뎌냈다. 그리고는 이 빌어먹을 사태를 파악 하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제기랄...거의 다 죽은 건가”
“천인공노할...!”
경기를 보며 열성적인 환호를 보내주던 일반인들 같은 경우는 모두 다 폭염과 함께 사망한 듯 보이지 않았고,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들 중 일부가 강기막을 펼치고 있었다. 비무장 위의 진무강과 남궁희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연단 위의 정무맹주 또한 민혁과 같은 상황이었다. 현경에 도달한 고수로 알려진 무무대사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주름진 그의 손은 다소곳이 말아쥐어져 있었고 그의 주변으로는 달마신공의 기운인 황금색 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무무대사 꼴이 말이 아니오?!”
그런 그에게 말을 건내는 이가 있었으니 그 자는 검정색 일색의 옷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백발로 희끗거리며 바람에 날려 그의 나이를 짐작캐 하였다. 그의 뒤로는 근 500여 명은 넘어 보이는 숫자의 무인이 저 마다 병기를 뽑은 체 살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민혁은 그들 하나 하나가 최소 초절정인 것을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봐도 적대적인 분위기와 검정색 복면 이 정도라면 계산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들이 이 학살을 벌인 범인이라는 소리다.
“네놈...목소리가 낯이 익구나..”
“으하하하 맹주 꽤나 흥분한 모양이오 옛날 말버릇이 나온 것을 보면”
“닥치거라!”
파사사삭콰아앙
흑색인의 도발에 무무대사는 황금색으로 넘실거리던 기운을 모아 소림사의 절예중 하나인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러자 폭염으로 피해를 입었던 경기장 중 지반이 약해진 곳은 무너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무대사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는지 그는 넘실거리는 황금색 기운을 끌어올리며 흑색인에게 쏘아져나갔다.
“하하하! 구룡복마권이라 폭염을 막는 것만 해도 급급했을 터인데 아직도 힘이 남아계시구려 대단하오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현경에 오른 6명의 고수 중 한 명인 무무대사의 일권을 간단히 막아버리는 흑색인, 무무대사는 놀란 듯 불신의 눈초리로 그를 보다 뒤로 자신의 주먹을 끌어안은 듯한 그를 털어내고 뒤로 물러섰다.
“네놈 정체가 무었이냐..”
“하하하하 아직도 눈치채지 못 한 것이오? 나 화륜이오 화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무무대사는 순간 얼어붙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쯧쯧 충격이 컸나보구만.. 그럴만도 하지 죽은 놈이 살아왔다면 아니 그러할까.. 영조!”
“예 어르신!”
“남은 놈들은 쓸어버리거라 난 무무대사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예!”
그의 명에 그의 뒤에 서 있던 흑색 옷을 입은 자들이 움직이지 시작했다. 흑색옷을 입은 자와 맹주의 말을 듣고 있던 폭염에서 살아 남은 자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소리에 놀라 강기막을 풀고 달아나려 했다. 강기막을 펼칠 수 있는 고수들이라 해도 폭염 속에서 강기막을 유지하느라 힘을 대부분 쓴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강기막을 풀기 무섭게 흑색인들은 살아 남은 자들을 습격했다.
“개자식들이...가만히 있으니까. 보자기로 보이는 거냐...”
“후계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피하십시오!”
“아니에요 어르신은 팽소와 팽지희에게로 가세요 습격 받는 곳은 분명 여기뿐만이 아닐껍니다.”
“하지만...!!”
“빨리가세요 명령입니다!”
그건 민혁도 팽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팽성이 흑색인들을 맡으려 나섰지만 민혁의 말에 갈등을 하다 이형환위의 신위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여전히 떨고 있는 여인들 품속에서 호령이 고개를 들자 민혁은 그녀에게 전음으로 강기막을 펼치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물었다. 아무리 그녀들이 무인이더라도 이런 광경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10분 정도,
민혁은 호령에게 다른 여인들을 부탁하며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된 관중석을 걸었다. 어느새 흑색인들은 그를 둘러쌌고 민혁의 눈에서는 흑광이 비추었다.
“뭘 간 보고 있어 덤벼 자식들아”
슈욱
열 명 정도되는 흑색인들이 던지는 암기 민혁은 허공답보를 사용해 공중으로 잠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가장 근처에 있는 흑색인에게 소매 속의 단검을 던졌다. 평범한 속도의 단검이었기에 흑색인은 단검을 튕겨내려고 했지만 민혁의 손짓 한번에 단검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흑색인의 목을 꿰뚫었다.
“커,커억!”
“자 다음 손님?”
민혁의 말에 흑색인들은 주춤주춤 거리를 벌렸다. 그러더니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아항~ 기동진법이구나~ 하지만!”
민혁은 그들이 행하는 것이 건물이나 위치를 주축삼아 이행을 만드는 진법이 아닌 사람을 주축으로 삼아 이행을 만드는 기동진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허리띠에 품고 있던 100 자루에 달하는 단검을 공중에 뿌렸다. 단검들은 마치 영사처럼 허공을 유영했고, 마치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앙증맞게 자리 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