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전초
* * *
“......”
서로에게 일격을 겨눈 후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민혁과 궁서련, 그는 자신의 기운과 궁서련의 기운이 부딪쳐 생긴 기운을 막아낸 진법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마치 동의를 구하는 듯 궁서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순백의 냉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남녀 간의 대화가 아닌 무인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강해’
서로의 경지를 재는 일격 중 궁서련이 느낀 점 이었다. 분명히 자신보다 강한 그이지만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맞붙을 상대가 나타난 것에 기뻐했다. 그녀는 천하무림대전에 참가한 후 뽑은 적 없는 허리춤의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70cm정도의 짧은 검대를 만지던 그녀는 손잡이를 끌어올렸다.
샤르르르
그리고 그녀가 검의 손잡이를 잡고 뺀 순간 비무장의 온도는 점점 내려가 서리가 낄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순백색의 냉기가 삐져나와 비무장을 얼려갔고, 그와 그녀가 선 공간은 빙하기가 온 듯 변해갔다. 관중들은 이 모습에 놀라 자신의 눈을 비볐는데 일반인들이 아닌 무인들은 비무장에서 느껴지는 살을 에일듯한 냉기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는 비무장 위에 선 민혁도 마찬가지였다.
“크윽...이게 무슨!”
뇌전풍신공을 끌어올림에도 불구하고 뇌기를 뚫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냉기들, 민혁은 침음성을 내뱉으며 지금까지 대회중 써왔던 5성의 공력이 아닌 10성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파지지지직
그러자 지면 위로부터 허공에까지 줄기치듯 생성되는 뇌기들은 민혁을 감싸던 냉기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를 주변으로 하여 원으로 된 공간이 뇌기에 녹았고 뇌기들은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하며 냉기를 녹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쉽게 지지 않을거야..”
“.....그래 쉽지 않을 것 같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냉기를 녹이려 뇌전풍신공을 조절하던 민혁의 앞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을 든 궁서련이 나타났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손에는 손잡이만 들려 있었고 검날은 빙결로 이루어져 있었다. 민혁은 검날에 집중된 무식할 정도의 냉기에 혀를 내두르며 뇌령을 사용하였다. 그의 전신으로 퍼지는 짜릿한 기운
그리고 광포한 기운 비로소 열리는 전투의 시작이니, 민혁도 허리춤에 메어진 검을 발도했다. 50cm에 이르는 검의 손잡이가 그 특이성을 나타냈고 1m에 이르는 검날은 자신의 예리함을 증명하는 듯 시퍼렇게 빛났다. 그리고 검이 뽑히자 궁서련의 검과 민혁의 검은 검명을 터트리며 비무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후츠노미타마 신살검(???) 이라는 별칭에도 알맞게 그 어떤 사상도 관제도 베어내겠다는 듯 검명을 토해냈고 민혁은 예상 밖의 난적을 만났음에도 호기로운 미소를 지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앗!”
먼저 움직인 것은 궁서련이었다. 그녀는 횡으로 검을 들고 베어내며 민혁에게 돌진했다. 물론 민혁은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지만 쉴 새도 없이 그녀의 공격은 짖쳐들어왔다. 그가 그녀의 공격을 허공을 박차며 피하자 그를 감싸고 있던 냉기가 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냉기들은 결정을 이루며 공격을 가해왔고 그것은 거대한 고드름이 비무장에서 피어나는 것과도 같아 보였다.
“웃차! 하~ 위험했다 위험했어~ 그럼 내 차례지! 받아보라고!”
민혁은 자신을 꼬챙이에 꿰인 육전처럼 꿰려고 하는 고드름에 놀라며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찼다. 허공답보의 경지를 선보인 민혁은 제 2격을 준비 중인 궁서련의 모습에 혀를 차며 허공에서 강하하며 뇌령을 후츠노미타마에 둘렀다. 검날은 비무장을 향했으며 그는 마치 운석처럼 낙하했다.
콰아아앙
정말 운석이 낙하한 것처럼 소리를 비무장을 울렸고 관중들은 너무나도 거대해진 스케일의 비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승자는 나오지 않았다.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민혁의 공격을 궁서련이 막은 것이다.
“제법인데?”
“.....시끄러..”
그녀는 결정화된 수 많은 냉기들을 끌어모아 여러겹의 방패를 둘렀는데 민혁의 검은 아쉽게도 궁서련의 결정화를 뚫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결정화된 방패위에 꽂힌 후츠노미타마를 얼리려 드는 그녀의 냉기에 민혁은 휘파람을 불며 뒤로 물러섰다.
다시 대치 상태에 놓인 두 사람. 이번에 먼저 움직인 것은 민혁이었다. 마치 자신의 차례라는 듯 대놓고 뇌전풍신공의 기운을 끌어 모으는 그, 궁서련은 긴장하면서도 쥐고 있는 검의 손잡이를 더욱 더 꽈악 쥐고 냉기들을 끌어 모았다. 그녀가 끌어 모은 그것들은 거대한 검날로 결정화되기 시작했다. 70cm 가량 되던 그녀의 검날은 1m, 2m, 3m 몸체를 불렸고 결국에는 4m가량의 검날을 형성했다. 인세의 것과는 거리가 먼 것만 같은 그녀의 검
‘버,버버버버버버!’
‘말도 안돼 저게 무슨!’
관중석에서는 그녀의 검날이 주는 통제할 수 없는 공포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와 상관 없이 궁서련의 얼굴에는 냉막한 무표정 대신 흉포한 야수가 존재했다. 4m에 이르는 검을 들고 민혁을 잡아 먹을 듯 가수식을 취하는 그녀는 허공에 검을 가볍게 휘두른 후 그에게 돌진했다. 그녀의 자세는 들짐승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뭐!”
하지만 모든 것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약자에 불구하다.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무었이든지 이룰 수 있다. 당연히 민혁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후츠노미타마에 12성 모든 내공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후츠노미타마의 스킬인 신살(??)을 발동했다. 사상도 관념도 관제도 어김 없이 베어내는 신살검의 위용을 드러내는 신검 후츠노미타마를 든 민혁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궁서련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4m에 이르는 서리거인의 검은 인간을 벌하려 했고 뇌광을 머금은 신살검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서리거인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서리검과 신살검은 종과 횡으로 부딪쳤다.
“......”
승자가 없는 싸움, 천하무림대전이 끝난 후 관중들은 마치 신들의 전쟁과도 같은 민혁과 궁서련의 비무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떤 싸움이라도 제 3자가 될지라도 승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궁서련과의 비무에서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민혁이었다. 신살검은 서리검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고 비무장은 그 여파로 산산조각이 나서 부숴졌다. 그리고 궁서련은 폐허처럼 변한 비무장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에 반해 민혁은 여유롭게 후츠노미타마를 검집에 넣고서 쓰러져 있는 궁서련을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우,우와아~ 멋지다!’
‘승자! 남궁세가의 민혁!’
그러자 관중석은 환호로 가득 들어찼다. 할 말을 잃고 비무를 지켜보던 무림의 명숙들도 체면을 차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진고수들의 미래를 응원하였고 정무맹주인 무무대사 또한 연단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일반인들은 뻐금대던 입술을 모아 둘의 실력에 어김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쓰러진 궁서련을 안고 민혁이 비무장을 빠져나간 후에야 그의 승리가 선언되었다.
“어이~ 일어나~ 일어나라고~”
“......”
궁서련은 편안한 잠으로부터 자신을 깨우려 드는 흔들림에 기분이 나빳다. 태어나고서 처음인 듯한 숙면, 그녀는 자신의 수면욕을 저해하려는 자를 찾으려 눈을 떳다. 그녀가 눈을 뜨자 보이는 얼굴은 민혁이었다. 궁서련은 자신의 비무 상대인 그가 어째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지 의아해 하다가 마지막 순간을 기억해냈다.
‘...졌어...’
천하제일이라고 여기던 빙백신공은 터무니 없는 뇌전에 녹아 없어졌고 그의 검은 그녀의 검을 갈랐다. 그리고 자신은 패배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패배는 그녀에게 색다른 느낌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이긴 그의 경지가 질투가 나기도 하였고, 그가 이룬 경지가 수 많은 고련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을 알기에 동경이라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들기도 하였다. 하여튼 복잡 미묘한 느낌이었다.
“눈만 뜨고 보고 있을래? 계속 안 일어나면 키스한다?”
“...키스...?”
그렇게 자신이 그에게 느끼고 있던 감정을 생각하던 궁서련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민혁을 보고 남들이 보자면 무표정이겠지만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키스 몰라? 아... 그러면 이건 알고 있어? 입맞춤?”
“...이,입맞춤!...츄릅..”
그의 입에서 입맞춤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마자 그녀는 키스라는 단어의 뜻을 파악하고 민혁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손 안에 놓인 먹이는 놓치지 않는 것이 사냥꾼, 민혁은 무표정한 얼굴을 새빨갛게 물을인체 몸부림치는 궁서련의 두 볼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이어진 잠시의 반항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푸하..”
“어때 기분 좋았어?”
“...전혀...하지만 책임...져야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