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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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냐아~ 저렇게 높은데 있는거냐아?!”
호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봉우리를 보며 투정 부리듯 민혁에게 안겨 오는 연화 그녀의 행동에 순간 다시 한 번 여인들의 살기가 그에게 집중되었고 민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호령이 가리킨 방향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물론 호령을 제외한 여인들은 모두 한숨을 쉬며 그의 뒤를 쫒았다.
소림사의 원로원이라 하면 그 무학의 경지가 최소 화경의 경지를 넘어서거나 혹은 부처를 향한 공부가 심경 마음에 경지에 들어야만 등청할 수 있는 곳이다. 최초 원로원이 개설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에 와서는 은퇴를 한 학도승과 무승들이 머무는 곳이 아닌 항마전(??戰)에 잡아들인 마인들을 감시하는 승려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항마전에 머무르려면 최소 마인들의 마기를 버티 수 있는 마음의 공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무공의 경지가 화경에 올라 선 무인들만이 기거 할 수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로원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야했을 노승들이 강제로 항마전에 갇히는 것과도 같았는데 간혹 항마전에서 노후를 보내는 노승들 중에 마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성격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십년 전 세속에 발을 끊은 현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젊었을 적에는 강호에서 제일 잘 나가는 후지기수였으며 나이가 먹어서는 화경의 경지에 올라 무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마의 무리가 눈에 띄기만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비무를 벌였는데 그가 소림사에 들어오게 된 연유를 알게 된다면 누구나 그의 행동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들에게 의해 살해된 현안의 부모 그리고 그 마저 살해 당할 뻔 했을 때 지금은 등선한 현안의 스승이 그 자리를 지나치며 그를 가까스로 구했고 그는 소림사에 제자가 되었다. 무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 소림사에서도 무공 실력이라면 손에 꼽을 만한 고수가 된 그는 은퇴를 한 여타 소림의 고수들과 같이 원로원에 등청하여 항마전에 자리를 잡고 기거했다.
“꺼내줘~ 꺼내달란 말이야! 난 죄가 없어!”
쾅!
“지겹다 이 새끼들아 질리지도 않냐 어떻게 하루 종일 그 말만 하냐 시부럴놈!”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일, 항마전에 기거한 후 10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기품 넘치고 단정하였던 그의 성격은 180도 바뀌어버렸다. 애초에 마인이라는 무리 자체를 싫어하던 그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말투는 폭언에 가까워졌고 마인들에게 주워 들은 욕을 그대로 사용했다. 지금도 그는 어두운 토굴 속에서 마기의 상징은 적광을 내뿜으며 꺼내달라고 아우성 치는 마인의 쇠창살을 큰 소리가 나게 쳤다. 그리고 승려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걸쭉한 욕을 내밷었다.
“......”
“이제야 조용해지는구만 하여튼 욕을 먹어야 조용해지다니 지들이 무슨 새대가리도 아닌데 말이야 시부랄 말년에 운도 없지 하필 사숙들이 한 번에 그렇게 등선을 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아휴 내 신세야!”
현안이 쇠창살을 치자 그제야 조용해진 토굴 그는 억울 하다며 아우성을 치던 토굴의 주인에게 욕을 한바탕 하더니 한참을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그 내용은 주로 원로원에 등청해 있던 소림사 고승들의 등선으로 인한 업무 과다 불만이었다. 그는 근처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 한참을 자신의 신세 한탄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그의 기감에 낯선 이의 기운이 잡혔다. 자신의 경지와 비슷한 경지에 오른 무인들의 기운, 은퇴한 원로들을 제외하고는 발을 들이지 않는 이곳에 발을 들인 이가 누군지 궁금해진 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의 주인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어이쿠 내 눈 오랜만에 보는 빛이라 그런지 눈이 타버릴 것 같구나!”
오랜만의 손님을 맞기 위해 토굴 밖으로 나온 현안은 내리쬐는 햇빛에 두 눈을 꼬옥 감았다. 마치 심봉사처럼 감겨진 그의 눈, 현안은 눈두덩이를 문지르더니 살며시 눈을 떳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산지대에서 주로 피는 나무 몆 그루와 평지로 튀어 나온 기암들 뿐이었다. 현안은 자신이 느낀 기운의 주인을 찾기 시작헸다 하지만 흐릿한 시야 탓인지 연신 눈을 비빌 뿐이었다.
“어르신?”
“으응? 누구냐?”
그렇게 한참 시력을 되찾기 위해 눈을 비비고 있던 현안은 자신을 부르는 듯 한 여인의 목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억지로 눈을 뜨려 했다. 그가 눈을 뜨자 보인 사람은 금발을 한 여인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금선이잖아”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지 내가 원로원에 들어온 후 전혀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여긴 어인 일인고?”
현안과 호령은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던 것인지 사이 좋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손녀와 딸과도 같은 모습에 호령의 뒤에 서 있던 여인들과 민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현안은 호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일행들을 가리키며 무슨 용무로 이 곳을 찾았는지 물었다. 호령은 아무 말 없이 항마전으로 향하기 전 받아 온 열쇠를 그에게 건내 주었다. 그러자 현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항마전으로 향하는 토굴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받아 온 열쇠가 이런 용도 였어?”
“그렇다 이 곳은 항마전 강호에서 죄를 저지른 마인들을 가둬 두는 곳이지 그 중에는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들도 있으니 주의 사항이 있다.”
“뭐야?”
호령은 항마전에 들어가기 전 민혁과 일행에게 주의할 점 등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주로 아무 물건이나 만지지 말라거나 마인들이 대화를 걸어 와도 무시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민혁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신신당부의 말을 건냈다. 물론 그 이유에는 현안의 존재가 컸다. 민혁도 마공 사용자를 배척하는 정파의 특성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령은 민혁의 고갯짓에 미소를 짓더니 토굴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안에게 다가갔다.
“검제님은 올해에도 그를 찾아온 겁니까?”
“그래 그 시부럴 놈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져서 왔더구먼”
“......!”
“......!”
가벼운 대화를 하며 토굴 속으로 들어 가는 호령과 현안 하지만 뒤에서 호령을 따라 가던 여인들은 승려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걸쭉한 욕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져서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 귀가 잘못 된 것이 아니냐 너희도 같은 말을 들었냐는 표정의 여인들, 민혁은 한숨을 쉬며 그녀들을 토굴 속으로 밀어넣었다.
“내 이곳에서 나가면 모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모두!”
“시끄러 염병할 놈아 네가 이곳에서 나갈 일은 평생 없을거다!”
“시끄럽다 땡추 내가 누군지 아느냐.,..!”
쾅!
“아니까 닥쳐 이 빌어먹을 색마놈아!”
여인들과 민혁이 토굴에 들어서자 보이는 광경은 쇠창살로 가로 막힌 어두운 감옥 안에서 손을 밖으로 빼밀고 아우성을 치는 마인과 그를 조용히 시키려 애쓰는 현안의 모습이었다. 결국에는 현안이 쇠창살을 주먹으로 치자 조용해 졌지만 감옥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살기는 일행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기에 여인들은 서로 손을 마주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현안은 그들이 토굴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호령이 가지고 온 열쇠로 구석에 위치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후냐아 오라버니이~ 춥다냐~”
“그러게 들어갈수록 추워지네 이리와”
민혁은 연화와 사윤의 손을 잡고 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보이는 것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들과 끝 없이 이어진 동굴 현안은 거칠 것 없이 나아갔고 민혁 또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신기하게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온도가 내려가는 듯 동굴 여기저기에는 서리가 보였다. 아직 내공 운용이 어색한 연화는 추위를 느끼며 민혁에게 다가왔고 그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사윤은 그것을 부럽다는 식으로 쳐다보았는데 민혁은 그 눈빛을 눈치채고 그녀 또한 품에 안아주었다.
“도착이다.”
“여기에 검제가?”
그렇게 걷게 된 지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선두에 서 있던 호령은 도착했다며 제 자리에 멈춰섰다. 동굴의 끝 그곳에는 커다란 공동이 존재했다 동그란 형태의 공동의 벽에는 토굴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형태의 10개의 감옥이 있었고 정가운데에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검제가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선풍도골의 풍채를 풍기고 있는 그,
“길을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껄걸 감사하기는 그나저나 네가 금선의 요거냐?”
“어르신!”
“알았다 알았어 원 녀석도 성질은 그나저나 너무 잘난 녀석을 고른 것 같구나, 나는 이만 가보마 나오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자꾸나.”
민혁은 지금까지 길을 안내해준 현안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에 현안은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마지막까지 승려 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호령의 얼굴이 빨개진 것은 당연지사 그녀가 화를 내자 현안은 볼을 부풀리며 화가 났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연화와 어딘가 굳어 있는 사윤을 보며 히죽 웃고는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어이 호령.”
“왜,왜 그러나?”
“둘이 무슨 관계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민혁은 불연 듯 호령과 현안의 사이가 궁금해졌다. 그의 질문에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져 있던 호령은 작게 웃으며 강호에서 작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민혁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검제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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