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전초
* * *
어두운 회의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빔프로젝터로 인해 스크린에 띄어진 온갖자료들 그리고 크게 확대 된 한 사람의 사진과 그걸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인형이 전부였다 한 명은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상석에 앉은 사람의 뒤에 시립해 서 있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부하와 상사 같아 보였다.
“보고하세요.”
“네 이름 민혁 현재 한국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가상현실......”
“간략하게 하세요.”
어두운 회의실을 울리는 아름다운 미성 하지만 그 목소리는 그 어떤 얼음보다 차가웠으며 날을 세운 칼 보다 날카로웠다 그에 음성이 굵어 남자로 보이는 자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말을 이어갔다
“현재 저희가 영입하려는 상대는 민혁 현재 한국대학교에서 가상현실학을 전공 중이며 비밀리에 팀 서클에서 에디터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총 36번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료했고 그 중에서는 저희 ‘수라’의 작품들도 6가지 정도 있습니다 또한 해킹 실력을 인정 받아 세계 각지에서 게임을 제외한 다른 프로그램, 군사정보, 인공위성 등 많은 분야에서 해킹을 의뢰한 적이 많지만 현재로써는 한 번도 제안을 수락한 적이 없고 단지 게임 에디터만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이 사항으로는 이미 양친이 돌아가신 점, 그리고 미국의 나이어틀의 영입 제안을 거절한 이력 등이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영입대상 1순위로써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이나 해킹 실력은 세계 제일은 아니더라도 세계 2,3위 수준의 실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신중함을 기하기 위해 ‘창혼’에 대한 의뢰를 맡겨 놓은 상태입니다”
“‘창혼’을 말입니까?”
보고하는 남자의 말에 놀란 듯 되물어오는 미성의 주인공
“예.”
“알겠어요 나가보세요.”
한 장 한 장 자료들이 넘어가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는 남자 상석에 앉아 있는 자는 그의 설명이 끝나자 손을 흔들어 그를 물러나게 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남자 그가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어둠으로 싸인 회의실에 빛줄기가 들어와 잠시 제 모습을 드러냈고 남자의 얼굴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그는 봉국이었다 아르헨티나에 있다던 그는 조십스럽게 문을 닫고 회의실을 나갔고 상석에 앉아 있던 자는 스크린에 띄어진 민혁의 사진을 보며 나지막히 뇌까렸다.
“민혁......”
“휴우...... 겨우...끝났다.”
한숨을 몰아내쉬며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캡슐 의자에 등을 기대는 민혁 그의 앞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가 제 각각 다른 화면을 떠올린 체 복잡하게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민혁은 느릿하게 마우스를 붙잡더니 한 쪽 모니터에 채팅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고민 끝에 의뢰를 수락하고 작업에 착수한 후 시간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했다 머리는 감지 않아 간지러웠고 배는 꼬르륵 진동을 했다 그만큼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시 ‘수라’에서 만든 게임답게 수 많은 트리거와 복잡한 수식들 머리가 부셔지는 줄 알았다
띵!
나는 봉이야 님이 팀 서클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오덕임다! 님이 팀 서클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얼음 땡 님이 팀 서클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혼혈왕자 님이 팀 서클 방에 입장 하셨습니다
[나는 봉이야: 들어온 걸 보니까 끝났나보네? 오올~ 3일 밖에 안 걸렸네 끝내주는데]
[오덕임다!: 뭐가 3일 밖에 안 걸렸다능?!]
민혁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던 도중 모니터에서 알림음이 나자 그는 화면의 채팅프로그램의 메시지를 보았다 화면에 뜬 해괴한 채팅 닉네임들에 민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혼혈왕자: 두 사람 아이디 좀 어떻게 바꾸면 안되냐?]
[나는 봉이야: 너나 잘하시지 혼혈왕자래애애애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덕임다!: 맞다능! 자기는 해리포터도 아니고 우리한테 그러지 말라능! 아 혹시 오드아이에 남장 미소녀 성향이라면 대환영이라능!!!]
[혼혈왕자: 됐다 말을 말자 말을 말아. 그리고 봉씨 의뢰 끝냈어 파일 보낼테니까 확인 부탁해]
채팅 창에 떠오른 그들에 말에 민혁의 한숨을 푹 쉬더니 다른 한 쪽의 모니터로 그 동안 작업했던 파일의 데이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용량은 꽤나 컸지만 전송 프로그램에 남은 시간은 불과 00:32를 가리키고 있었고 민혁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혼혈왕자: 이번에 작업한 에디터 파일하고 서비스로 공략집 보냈으니까 돈은 맨날 넣던 통장으로 넣어]
[나는 봉이야: 알았어 오! 지금 왔네 입금은 내일쯤 해줄께!]
[오덕임다!: 저기 나 무시 하지 말라능 무슨 일인지 알려달라능!]
[나는 봉이야: 있었어?]
[혼혈왕자: 있었냐?]
[오덕임다!: 너무하다느으으응~!!!]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던 민혁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히죽 웃었다 정말 유쾌한 친구들 비록 얼굴을 아는 건 봉국이형 정도 밖에 없지만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소윤이와는 다른 안정감을 찾게 된다 마치 친구들과 노는 느낌이랄까 대학을 검정고시를 보고 어린 나이에 들어와서인지 대학생 친구는 없고 주위에는 죄다 선배 누나 형 밖에 없는 민혁에게는 지금으로써는 둘도 없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라서 그렇지 본성적으로는 착한사람들일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부으으응~부으으응~
“누구지?”
진동음 소리에 채팅화면을 지켜보던 민혁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스마트폰 분명히 들어올 때는 들고 들어왔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한참을 캡슐 안을 뒤지던 민혁은 간신히 의자 틈 사이에서 울리고 있는 스마트폰을 찾을 수 있었다 화면을 보자 뜬 전화 번호는 소윤의 것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쌀쌀하지만 아름다운 미성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자마자 통화버튼을 터치한 민혁은 스마트폰을 얼굴에 대고 히죽이죽 웃었다 비록 남들이 듣는다면 차갑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가 듣기에는 그저 주인이 그리워 안절부절 못하는 아기 고양이의 목소리정도 였다
“응 여보 나왔다 오버”
(......)
장난기가 한가득 실린 민혁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 그녀는 당황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 그런 소윤의 태도에 민혁은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수화기 너머로 얼굴을 붉히고 어찌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하는 그녀의 모습이 연상된다 민혁은 ‘이게 가학심리라는 걸까 으음...S는 좋지 못한데 아! 어쩌면 소윤이가 M일지도?‘ 라고 생각하며 당황 하고 있을 그녀를 위해 입을 열었다
“당황했어?”
(응......)
“미안 흐흣.. 그나저나 보고 싶은데 소윤이가 당황한 모습?”
(...장난치지마 나 화났으니까...)
민혁은 순간 놀랐다 그녀에게는 이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다 화났다 연애를 할 동안 그녀에게 받은 감정이라고는 사랑 애정 그리고 집착 뿐 처음으로 그녀가 화를 냈다는 사실에 그는 약간 쇼크를 먹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화...몆번이나 했어)
그런 그의 귀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민혁은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사용해서 대기상태로 바뀐 스마트폰의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86통...’ 부재중 통화를 표시하는 아이콘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진동음이라 작업 중이라 몰랐다..모두 핑계다 그는 실망했다 이런 자신에게 사랑한다 했으면서 나는 그녀를 약간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나만을 바라봐 주었고 나에게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그물에 잡아 놓은 물고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순간 모멸감이 몸을 덮쳐온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나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최악이다.
“미안해...”
지금 할 말이라고는 이 말 한 마디 뿐이다.
(......걱정시키지마)
그럼에도 안도 걱정 그리고 기쁨이라는 감정을 나에게 보여주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다짐과도 같은 미소 다시는 무관심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의 미소를 그리고 얼마 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부족한 애정을 채우려는 듯 적극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민혁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작은 변화에 기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