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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23화 (완결) (123/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3화(完) - >

“길을 열 테니 목숨을 앗아가시면 됩니다. 정신 간섭 외에도 어떤 능력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하십시오.”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것이냐? 저따위 몬스터들을 상대로? 내가 나이를 먹긴 했지만 아직 너 같은 애송이에게 걱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제 나이도 몇 년 만 더 지나면 마흔인데 애송이라니요. 게다가 이해해주십시오. 장인어른이 다치면 제게 뭐라 할 사람들이 고향에 있는지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잖습니까.”

“그런 걸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는 거다. 그럴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게다.”

진지하지 않은 대화 내용과 다르게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백여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한꺼번에 타이탄을 꺼내 탑승에 시작했으니 그 과정에서 거대한 마력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

크기는 마법으로 어찌할 수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본능과 마력 반응을 아예 없는 것처럼 감출 수는 없었고 녀석들이 한 발짝 앞서서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쿵-

수십만의 몬스터가 움직이는 소리는 지금껏 내가 느낀 어떤 소리보다도 거대하며 웅장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대지와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치는 듯한 기세는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짓밟아버릴 듯했고 그에 맞서 돌격할 준비를 끝낸 기사들의 기세 또한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극소수의 정예병과 물밀 듯 밀려오는 적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전생의 한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그들 위로 겹쳐보였다.

“무운을 비네. 제군들. 조금 있다가 웃는 얼굴로 보지.”

“언제나처럼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주십시오. 각하!”

그 말을 끝으로 아흔여 대의 타이탄이 돌격해오는 몬스터를 맞이하러 떠났다. 일개 영지 따위는 개미를 밟아죽이듯 없애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지만 상대해야하는 적들에 비하면 빛이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희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지.”

아흔 명을 보낸 뒤, 남은 열 명 또한 준비를 끝냈다. 이들이야말로 뽑고 뽑은 정예 중의 정예. 원정군 내 실력으로 양손에 꼽히는 기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남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이들이야말로 적의 심장을 관통할 비수이기 때문.

굳이 말하자면 저들은 모루였다. 저 수많은 몬스터의 관심과 시선을 감당해줄 모루. 쇳덩어리에 비해 모루가 너무 작아 보이기는 했으나 망치가 쇳덩어리를 내려칠 때까지 버텨주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이 곳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들 또한 본인들이 버티는 동안 우리라는 망치가 쇳덩어리를 부셔버릴 거라 의심하지 않았고.

‘마치 인간끼리의 전쟁을 보는 듯해.’

녀석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내가 본인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몸을 숨긴 행동은 보통의 몬스터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달려들면 달려들었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 이런 느낌이 들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두둥실-

그리고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타이탄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떠오른 것도 아닌 10m, 20m를 훌쩍 뛰어넘어 떠올랐으니 미리 말을 해두지 않았다면 당사들도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으리라. 그러나 사전에 세워두었던 계획인 만큼 모두들 균형을 잡으며 잠시 뒤에 벌어질 일전을 준비할 뿐이었다.

‘생각보다는 버틸만하네.’

단순한 경량화 마법만으로는 아무리 나와 조조라고 하더라도 수십 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타이탄을, 그것도 열 대를 단 둘이서 공중을 유영하게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띄워 올리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의미가 없었으니. 그러나 마법이라는 경계를 한참 뛰어넘은 각인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리기에 충분했다.

‘저기로군.’

아니나 다를까, ‘트리’들은 남아있는 몬스터들의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타이탄이 시선을 집중시켜주지 않았다면, 마력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면 들켜도 진작 들켰겠지만 아직 이 쪽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우리를 피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제아무리 타이탄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화살도 천을 수십, 수백 겹 겹치면 막을 수 있는 것처럼 타이탄이라는 화살도 어느 순간 막혀 돈좌될 수밖에 없었다. 그 지점이 ‘트리’의 앞이라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결과가 될 터, 그렇기에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미끼를 보내어 시선을 끄는 동안, 한눈 팔린 상대를 단번에 낚아채는 것. 물론 지금처럼 완전히 무방비할 리가 없기에 규모가 적은 만큼 막힐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우회가 아닌 낙하를 선택했다.

공중에도 몬스터는 많았으나 지상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고 그 정도는 내 선에서 처리가 가능했으니. 게다가 오래 머물 필요도 없었다. 근접하기만 하면 낙하의 충격과 함께 길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었으니까.

“지금! 충격에 대비하도록!”

제아무리 경량화 시켰다지만 애초에 수십 톤의 무게의 타이탄이 상공 수십 미터에서 낙하하는 충격이 결코 가벼울 리 없었다. 타이탄은 무사할 지라도 내부의 탑승자는 그대로 짓눌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기사들의 내구도를 믿은 작전이었다. 그 판단이 결코 오판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들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쿵-

땅에 닿기 직전 경량화(輕量化)를 풀었고 그 결과는 타이탄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웠다. 직접적으로 짓눌린 몬스터가 종류불문 즉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여파만으로도 비교적 가벼운 몬스터는 하늘을 날아다녔다.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충격을 버텨낸 몬스터들 또한 타이탄이 검을 뽑아 휘두르자 더 이상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주변이 비게 됨으로서 확보된 시야, 낙하가 잘못 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트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을 대처하는 기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두 마스터가 아무런 방해 없이, 최대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기사들과 그것조차 느리다는 듯 거대한 동체로 움직인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두 마스터들.

그러나 녀석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해주지만은 않겠다는 듯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빠르며 집단행동이었으니 ‘트리’가 지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키잉-

그 순간, 트리의 몸으로부터 시작된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전 방위적으로 뿜어져 나왔기에, 물체에 상관없이 뚫고 지나왔기에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던 공격. 동시에 이성을 갉아먹는 듯한 어두운 속삭임과 함께 낯설지 않은 두통이 덮쳐왔다.

‘역시나.’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무의식적으로는 다룰 줄 아는데 의식해서 컨트롤하려면 못하는 경우가. 그러나 트리의 이능력은 그런 경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지금 증명했다. 확실히 의식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뿜어낼 때와는 달랐다. 미리 준비를 해놓지 않았다면 꽤나 당황해 했을 정도로. 내가 이 정도이니

움찔-

다른 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타이탄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예상 범위 내인만큼 충분한 대비를 해두었으며 이능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마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상 타이탄의 강력한 항마력을 뚫고 탑승자에게까지 영향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촥촥-

예상외의 광경이었는지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모루는 최대한 분전하며 발을 붙잡아주고 있었고 장인어른과 퐁크 후작은 어느새 트리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두 마스터가 나아갈 길을 유지하는데만 노력을 기울였다. 트리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인 기사들과 달리 나는 이들을 무사히 후방으로 이송해야 했으므로. 여분의 마력을 남겨두어야만 했기에. 그러는 사이 말 그대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거리가 좁혀졌고

검은 나무에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

새근새근-

넓고 화려한, 호화로운 방 안에 배치된 거대한 침대에 두 소년소녀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한 권의 책을 손에 놓고 소리 내어 읽어주던 시그니는 아이들이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자 책을 덮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사락-

잠을 자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앞머리를 정리해주던 그녀는 이내 방의 불을 완전히 끄고 바깥으로 나오더니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을 이끌며 또 다른 방으로 향했다.

덜컥-

도착한 방에는 이미 레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한 권의 책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그 책이야?”

“아이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평소에는 그렇게 활발하던 아이들이 당신 이야기만 해주면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집중하는데, 안 읽어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좋아한다지만 한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으면 질리지도 않나?”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제 앞에 있는 누군가가 젊은 시절, 가족을 내팽개쳐두고 너무 많은 일을 한 탓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너무 많으니 말이죠.”

“······매번 말하지만 그 때의 일은······.”

“알아요. 그 일은 당신에게 절대 놓을 수 없었던, 내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반드시 끝을 봐야만 했던, 신념과 관련된 일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딸이 아빠 얼굴을 기억을 못할 정도로 얼굴을 안 비춘 건 너무하지 않았어요?”

“그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

“알면 앞으로 애들한테 조금 더 잘해줘요. 애들이 아빠랑 얼마나 놀고 싶어 하는지 알아요? 방금 전처럼 직접 말해도주고, 즉석에서 궁금증도 해결하고.”

“······노력해볼게.”

가족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부부는 자연스럽게 한 침대에 누웠다. 어느덧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지만 시그니는 세월이 빗겨나가기라도 한 듯 이십 대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레닐은 손을 올려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되물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노력하기 전에 당신에게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난 건 뻔뻔함밖에 없다니까.”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딱히 레닐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서도 원하면 원했지, 거부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기에. 그렇게 휴즈 영지의 밤이 깊어져 갔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3화(完) - > 끝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마을사람입니다.

먼저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23화, 글자 수로는 650,000자를 근 7달 동안 연재했으니, 게다가 3월부터 5월 중순이 되는 지금까지 고작해야 15화 정도를 연재했으니 꾸준히 따라와 주시던 독자님들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쉬이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프로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프로라고 하기에는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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