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2화 - >
내가 기괴하다 평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껏 마주했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외형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마주했던 수많은 몬스터들 - 오크, 가고일, 오우거, 바실리스크 등등 - 은 최소한 납득할만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닮았건, 파충류를 닮았건, 짐승을 닮았건 비교적 익숙한 외형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는 달랐다.
우선 거대한 나무처럼 생긴 몸에 짐승의 발을 닮은 다리가 몇 개씩 달려있었으며 몸에는 입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달려 초록색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땅에 닿자마자 연기를 내뿜는 것이 독과 산성을 포함하고 있는 듯했다. 눈은 달려있지도 않았으며 머리가 위치해야할 곳에는 나뭇가지마냥 셀 수 없는 숫자의 촉수가 휘날리고 있었으니 어지간히 대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낮에 보더라도 기겁할 수밖에 없는 외형이었다.
“저런 건 난생 처음 보는데······.”
지금까지 적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저런 녀석은 난생 처음이었다. 닮은 녀석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필요할 때는 없단 말이지.’
유일하게 물어볼 수 있는 이인 세레나도 어느 순간 말도 없이 사라져 저것의 정체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절대로 얕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저것을 본 순간부터 내 몸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했다.
‘그래도 이렇게 물러나기엔 아쉽지.’
녀석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분명한 성과였으나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쏟아 부은 시간이 아까웠다. 적어도 녀석이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지, 정신 간섭 이외에도 다른 능력의 여부 정도는 확인해야 차후 계획을 설립함에 있어 빈틈이 생기지 않으리라.
‘우선 방어력부터 확인해볼까.’
겉모습은 움직이는 나무처럼 생겼다. 나무치고는 많이 기괴하긴 했지만 어쨌든 불에 무척이나 잘 탈 것 같은 외형. 그러나 실상이 어떨지는 지켜봐야 했다.
상위 몬스터일수록 기본 방어력과 항마력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특히나 저런 이능력을 가진 몬스터의 항마력은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잦았다. 불이 약점일 것 같은 외형이나 실제로는 물이 약점인 경우도 있었고.
[이빨]을 꺼내들었다. 이걸 제작한 뒤로 몇 년이 지났는지, 그 동안 수천 발이 넘는 탄환을 발사했음에도 미스릴이라는 기적의 물질은 별 무리 없이 부하를 견뎌주고 있었다.
쏘아낼 탄환은 기본적인 것으로 골랐다. 평균 수준의 관통력과 평균 수준의 폭발력을 지닌, 어지간한 상위종도 한 발에 격살시킬 수 있는 공격력을 가진 탄환.
흐읍-
숨을 멈추고 한쪽 눈을 감은 채, 녀석을 조준했다. 목표는 저 휘날리는 촉수들. 본체를 노렸으면 좋겠지만 촉수가 휘날리는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몸을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는 건 촉수가 보다 단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어차피 촉수를 돌파하지 않으면 몸에는 손도 대기 어려울 것 같은 모양새였기에 미련 없이 몸을 포기했다.
텅- 팅-
“?!”
그러나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광경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녀석에게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느냐 였지 아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탄환을 튕겨내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미친, 어떻게 생겨먹은 강도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러와 다르지 않은 파괴력이었다. 물론 관통력과 절삭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러로 벨 수 있는 건 탄환으로도 충분히 관통이 가능했다.
‘최악의 결과다.’
지금껏 오러로 베지 못한 몬스터는 없었다. 기사들이 상위종을 상대할 수 있는 이유가 오러였으며 동시에 고전을 하는 이유 또한 상위종의 크기 덕분에 어지간히 베어서는 결정타를 날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타이탄으로 비로소 상위종과 동등해졌을 때, 허수아비마냥 쓸려나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부우우-
저것들은 몸에 달린 몇 개의 입으로 알 수 없는 괴성을 내뿜어내더니 몬스터 무리 안으로 숨어버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처럼, 게다가 덩치가 거대한 녀석들로 벽을 세우는 모습이 마치 저격에 대비하기 위해 방패 뒤로 숨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지능도 뛰어난 것 같고.’
조금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미 녀석들을 저격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쿵쿵-
또 다시 울려 퍼지는 괴성과 함께 내가 있는 장소를 향해 뛰어오는 몬스터들.
‘감지 능력도 대단하고.’
그리 많은 양을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내가 있는 장소를 파악한 뒤, 휘하 몬스터를 보내는 모습이 여타 다른 몬스터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여러모로 까다로운 적임이 확실했다.
‘일단은 여기까지.’
충분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는 어느 정도 모았다. 이 이상 힘을 쏟아봤자 큰 의미는 없을 터, 안 그래도 똑똑해 보이는 저것들에게 내 정보를 더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기에 달려오는 몬스터를 굳이 상대하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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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냥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상세한 규모와 예상 진격로까지 파악한 뒤, 본진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열린 회의장에 하나의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새로 나타난 몬스터들만 제거한다면 나머지 몬스터는 뿔뿔이 흩어질 거라는 거군. 맞나?”
“예. 보고 받으신 것처럼 개체 ‘트리’는 상당한 수준의 정신계 능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례없을 정도로 막대한 병력이 한 번에 밀고 내려오는 것도 이와 무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허, 일개 몬스터 따위가 수십만의 몬스터를 조종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계획은 간단했다. 정예 중의 정예만을 모아 녀석들만 제거한 뒤 빠져나오는 것.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위기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이 될 것 같습니다. 녀석들도 자신의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일단 숨고 보더군요. 어떻게 해서라도 길을 막으려 들 테니 길을 뚫는 것만으로도 많은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래도 자네의 보고대로라면 그리할 수밖에 없겠어. 일류 기사들도 대비를 하지 않으면 당해버릴 정도의 정신 간섭이라, 내가 수십 년을 이 곳에 있었지만 이런 녀석들은 처음이로군.”
그 즉시 원정군은 준비에 들어갔다. 타이탄 탑승자들 중에서도 상위 백 명을 뽑았고 장인어른과 퐁크 후작은 당연히 참여했다. 나와 조조 또한 당연지사. 그와 별개로 정신 간섭에 대항하는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를 급하게 만들어 별동대 개개인에게 뿌렸다.
내가 마주한 건 어디까지나 ‘트리’가 평상시에 자연스럽게 내뿜는 정신 간섭이었다. 그것들이 우리를 의식하고 전력으로 간섭을 시도했을 때, 기사들이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였으니까.
그렇게 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가 7구역이라 불렀던 지역은 완전히 몬스터들의 땅으로 되돌아갔다. 작전이 성공하더라도 되찾기는 어려울 터였다. ‘트리’가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원래 있던 몬스터들은 통제가 사라질 뿐,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서로 먹고 먹히다보면 숫자야 조금 줄어들겠지만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겠지.
대신 다른 곳에서 7구역, 8구역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그만한 숫자가 한 곳에 몰려있다는 것은 다른 지역은 비교적 여유롭다는 뜻일 테니까.
물론 기존의 7구역을 분배받아 개발하려던 귀족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후퇴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빠르게 7구역을 수복하라며 난리를 치고 있겠지만 원정대의 성과와 타이탄의 약진으로 황제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황제가 뒤를 봐주고 있는 이상 그런 자잘한 불만은 가볍게 무시해주면 그만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계획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별동대를 위해 모인 백 명의 기사들, 두 명의 마스터들이 모인 이 장소에서 오직 나만이 입을 열고 있었다.
딱-
“눈앞에 보시는 이 개체가 저희가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할 ‘트리’입니다.”
웅성웅성-
‘트리’의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회의장. 그럴 만도 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저 모습은 이 세계의 생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능력은 상당한 수준의 정신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머리 부분에 있는 수 가닥의 촉수는 오러 수준의 강도를 지니고 있으며 저걸 휘둘러 공방을 겸하고 있습니다.”
“오러 수준이라 하심은?”
“말 그대로. 여기 계신 두 각하가 아닌 이상 베고 지나갈 수는 없을 거네.”
내 말에 웅성거림이 한층 더 심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 있어 오러란 그들이 지닌 최강의 무기이지 자존심이었다. 실제로 몇몇 몬스터의 특정 부위가 아닌 이상 오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당황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네들이 할 일은 간단하네. 두 각하께서 ‘트리’에게 접근 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것. 그리고 통제하던 이가 사라져 혼란스러워하는 몬스터 무리를 최소한의 손실로 빠져나오는 것.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작전 실행일은 언제 입니까?”
“마법사들이 사역마를 보내 녀석들의 위치를 찾고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위치가 밝혀지는 대로 출발할 예정이니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줬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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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진격로에 빈틈없이 사역마를 보낸 덕분일까, 녀석들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수많은 몬스터들이 들이닥쳤지만 몬스터 토벌의 중심을 잡아주던 타이탄의 반절이 본진에 뭉쳐있으니 제대로 된 방어가 될 리가 없었고 천천히 방어선을 뒤로 물리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안 별동대만이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예상 규모는?”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가까이 접근하면 사역마라 하더라도 연결이 끊겨버리는 탓에, 위치 정도밖에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엄청난 규모인 것은 확실합니다.”
“······계속해서 연결을 유지하도록.”
고작 백 명으로 수십만의 몬스터 무리를 향해 덤비는 것치고 별동대의 분위기는 밝았다. 전원이 타이탄 탑승자인 만큼 충분히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 마스터가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었다.
“저기 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우리들은 녀석들을 마주했다. 들키지 않는 거리에서, 기척을 차단한 채 녀석들의 규모를 살폈지만 근처의 무리가 합류한 것인지 내가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더 큰 규모처럼 보였다.
“저기, 목표물이 보이십니까?”
“보인다. 봤던 것처럼 기괴하게도 생겼군.”
“길을 열 테니 목숨을 앗아가시면 됩니다. 정신 간섭 외에도 어떤 능력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하십시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2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