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1화 - >
“급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선두에 서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체는 확인했습니까?”
어쩌면 몬스터의 규모를 확정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었다.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한 몬스터는 대책 마련이 가능했다. 결국 숫자 싸움이었으니까. 그러나 미확인 몬스터는 달랐다.
변수.
정체불명의 몬스터는 내가 그토록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던 변수였다. 외형은 어떤지, 크기는 어떤지, 강함은 어느 정도인지,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아무도 없는 만큼 대책 또한 세울 수 없었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지휘관의 입에서 모른다라는 말이 나와도, 녀석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나와도 어차피 녀석들을 확인하러 가야 했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것은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평범한 정찰에서도, 갑자기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도 천지차이였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본 것도 아니고 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잘 모르겠다니, 예상했던 곳보다도 최악의 대답이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모르겠다니,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닙니다.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이 돌아와 보고와 함께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더니 곧바로 기절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한 말?”
“예.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은 건드렸다나, 불러내서는 안 될 것을 불러냈다나. 그것들이 몰려온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건드려서는 안 될 것? 불러내서는 안 될 것? 그것들?
도움이 되는 정보는 하나도 없군. 그나마 정신 쪽에 영향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의심해 볼만 했다. 그것도 꽤나 높은 수준으로.
“그 기사들은 어디 있습니까?”
“따라오십시오.”
지휘관의 안내를 받아 마주하게 된 기사들, 지휘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처럼 살아는 있으되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말을 하면 듣고 그에 따라 행동은 하는 것 같지만 이래서야······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격이었다.
“기절한 뒤부터 계속 이 모양입니다. 기절 이전에 말하는 걸로 봐서는 무언가 본 것은 확실한데 말이 없으니······.”
“여기에 있는 이들 뿐입니까.”
“예. 추가로 정찰을 나갔던 이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종군마법사들이 치료를 시도해보긴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확실히 이 상태로는 무슨 말을 하건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시에 다른 마법사들이 두 손을 든 이유까지도. 그러나 나를 평범한 마법사들과 동일시한다면 섭섭했다.
회복(回復)
영롱한 초록빛이 기사들을 감싸자 초점 없던 눈에 점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성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신이 드나?”
“······이 곳은?”
“이름, 이름을 말해보게.”
“루난, 루난입니다.”
“좋아. 루난 경,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나?”
“그러니까······. 저와 동료들은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몬스터의 진공을 포착했고······크윽!”
이 이상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머리를 부여잡는 루난 경을 바라보며 나 또한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증세가 심각했다. 물론 억지로 기억을 일깨울 수는, 되살릴 수는 있겠으나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대상에게 영구적인 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었기에.
“그만하면 됐네. 억지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면 더욱 힘들겠지. 자네들은 계속 움직여 본진과 합류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백작님께서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갈 것이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후퇴하게.”
“위험합니다! 부대에 타이탄 탑승자들이 있으니 데려가십시오.”
“그럴 생각이었다면 출발할 때, 그리 했겠지. 게다가 나쯤 되면 차라리 혼자가 더 편해. 조만간 결전이 있을 예정이니 돌아가 정비를 할 수 있도록.”
“······그럼 꼭 무사귀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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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려서는 안 될 것? 불러내서는 안 될 것? 그것들?’
기사가 중얼거렸다는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중얼거림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내 감각이 그 읊조림을 그냥 넘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위험했다.
‘도대체 뭐지?’
그렇기에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원정군에 소속된 일원으로서도, 마법사 개인으로서도.
‘단순히 힘과 덩치만 앞세우는 허접한 상위종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데.’
단순히 힘과 덩치만 앞세우는 상위종은 같은 상위종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하는 몬스터들이었다. 오래 전, 아직 미숙했던 나의 목숨을 앗아갈 뻔 했던 베히모스처럼 특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녀석들은 중위권에 가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녀석들 중에서도 모습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아니면 기사들이 몬스터에게 잡히지 않을 짧은 순간 만에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신 간섭을 할 수 있는 몬스터. 여러 후보군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이거다하는 녀석은 없었다.
‘아직 세상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증거겠지.’
그 미지를 확인하러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해와 달이 몇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몬스터 무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건 또 처음이군.’
과연 지금까지 반복된 보고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몬스터 무리가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들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본가에 있는 대연무장을 훌쩍 뛰어넘는 너비로 쭉 이어진, 몬스터가 진격했으리라 추정되는 진격로에는 풀 한 포기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한 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길’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
기껏해야 일이십만? 결코 무시할만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백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 규모라면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닌 부대를 나누었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차라리 이게 낫다.’
백만이라면 어떤 수를 써도 부담이었겠지만 십만, 이십만 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원정 초기, 일곱 부대로 나뉜 상황에서도 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를 큰 피해 없이 잡아내지 않았던가. 이번엔 힘을 집중하여 움직일 테니 그 때보다 상황이 훨씬 나았다. 막말로 십만을 열 번, 이십만을 다섯 번 잡아내면 되는 일 아닌가.
각개격파.
약한 군대가 강한 군대를 이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을 자기들이 알아서 만들어준 격이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게다가 변수도 남아있고.’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져간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정체불명의 피스 몇 조각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만 알아내면 제법 그럴 듯한 계획이 나올 것도 같은데, 그걸 모르겠다.
‘일단은 쫓아가볼까.’
어쨌건 처음으로 발견한 흔적이다. 이 끝에 내가 찾고자 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흔적을 쫓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흔적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녀석이 있을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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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군.’
흔적의 근원지를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흔적이 워낙 선명하게 남아있던 덕도 있었고 내가 서둘러 움직인 덕도 있었으며 지도(地圖)의 힘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한 광경은 참혹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참혹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붉은 피와 떨어진 살점, 시체와 같이 흔히 있을 만한 장치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그러나 그 이유를 깨닫는다면 내가 어째서 참혹하다 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우걱우걱-
시체가 없는 이유?
간단했다. 더 강한 몬스터의 뱃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한 몸이 되었으니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더라면 우리 병사들의 처지도 똑같았으리라.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동족이 삼켜지고 있음에도 몬스터들에게 동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동족 의식이 희미한 몬스터들이라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명확한 만큼 뿔뿔이 흩어지는 광경이 정상이었다.
‘그 놈들의 짓인가?’
정신 간섭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새로운 몬스터들의 짓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 내 예상이 맞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단순히 능력의 강함뿐만 아니라 범위마저도 넓다는 것을 증명했으니까. 단순히 저렇게 멍하게 하는 것이 전부인지, 아니면 세세한 조종까지도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 병사들끼리 죽고 죽여 자멸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별동대로 녀석들만을 먼저 죽여야만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딱히 눈에 띄는 녀석은 없는데.’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을 거리에서 녀석들의 규모와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 지긋이 둘러봤다. 예상대로 거대한 규모이기는 했으나 여러 갈래로 흩어진 것처럼 비교적 적었으며 구성도 익숙한 녀석들과 낯선 녀석들이 공존하고 있었으되 특별한 느낌을 주는 녀석은 없었다.
‘이 무리에는 없는 건가? 아니면 흩어지지 않은 채, 뭉쳐있는 것일 수도.’
군세로 보았을 때, 녀석‘들’이 확실하다면 한 마리도 보내지 않았을 확률은 적었다. 아예 흩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쪽이 옳겠지.
푸드덕-
우선 이 무리에 대한 정보를 사역마에 담아 본진으로 보냈다. ‘그 녀석’이 없다지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가기 전에······.”
이대로 그냥 보내기에는 아쉽다. 이전처럼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도망치기에는 충분할 터, 녀석들이 눈치를 채고 달려올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면 마법을 쏟아 붓고 물러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쿠르릉-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을 아는가.
전생에 뜻밖에 당한 재난을 일컫는 속담이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에게는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것을 원했으니까.
“식량만 늘려주는 꼴 아닌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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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계속해서 녀석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흩어지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첫 번째 무리를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줄줄이 녀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이로군.”
나는 확신했다. 기사들이 말했던 건드려서는 안 될 것, 불러내서는 안 될 것, 그것들은 저 녀석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이유는 간단했다. 책에서도, 내 눈으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형 그리고 그 모습을 눈에 담자마자 머리에서 느껴지는 두통. 급작스럽게 병에라도 걸린 것이 아니라면 두통을 느낄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정신계 마법에 저항했기 때문에. 두통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비만 하고 있다면 충분히 대처 가능할 듯싶었다. 기사들이 무력하게 당한 것은 방심하고 있던 탓이겠지.
“그나저나 기괴하게도 생겼군.”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1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