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0화 - >
“공세의 선두에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몬스터무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미확인 몬스터?”
“예.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으나 기존의 몬스터와는 외형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더 이상 방어선을 버리고 후퇴한 병력들에 대한 성토는 사라졌다.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봤자 후퇴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대신 회의장을 가득 메운 소리는 일곱 자리에 달하는 몬스터를 막을 대책과 정체불명의 새로운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히 병력을 동원해 막아야지요! 그 땅이 어떻게 얻은 땅입니까!”
“말은 쉽지요. 백만이에요. 백만! 어중간한 숫자로는 밀려들어오기만 해도 짓밟힐 겁니다!”
“지금까지 도대체 뭘 본겁니까? 글로리 앞에 몬스터는 길가의 돌멩이였고 상위종이라고 해도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은데, 그깟 몬스터가 두렵다는 겁니까?”
“누가 두렵다고 했습니까! 초유의 사태이니만큼 이성적으로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돌멩이라도 백만 개면 당신 한 명 정도는 가볍게 묻고도 남아요!”
“지금 말 다했습니까!”
“그만! 거기까지만 하지.”
귀족들이라고 하여, 고등 교육을 받았다고 하여 모두가 똑똑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특히나 원정군의 대부분은 일선에서 검을 휘두르는 이들이 많았기에 성격 또한 불같은 이들이 많았다. 덕분에 회의만 열렸다하면 약간의 반목 끝에 금세 분위기가 뜨거워졌고 항상 장인어른이 중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곤 했다.
“우선은······상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장은 없는지, 사실이라면 이동 경로는 어디로 향하는지, 미확인 몬스터의 정체는 무엇인지, 대책을 논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회의장이 조용해지면 내가 지금까지의 회의록과 고민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으로 회의가 끝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다른 해결책이랄 것이 없었다. 사실 내가 말했던 정보들이 들어오더라도 기막힌 대책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계책도 주변 환경과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허울 좋은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었다. 화공계는 불에 탈 장작이 없다면, 미인계는 미인이 없다면, 수공은 주변에 물이 없다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것처럼.
문제는 이 곳, 몬스터의 대지는 계책에 이용해 먹을 만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지형이라고는 낮은 구릉 정도밖에는 없었으며 화공에 써먹을 장작은 있었으나 주변이 탁 트인 탓에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본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빈집털이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만한 숫자를 상대로 포위나 양동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 계획을 세움에 있어 막막할 수밖에. 막말로 정면 힘 싸움 외에는 꼼수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 몬스터의 대지였다.
“우선 다른 방어선의 병력을 6지역으로 모아주십시오. 7지역을 넘겨주었으나 6지역은 지켜내야지 않겠습니까.”
7지역은 내어줘도 된다. 어차피 확보한 지 일 년도 채 안 된 땅. 방어선도 빈약했고 개발은 논의 중일 뿐,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 땅을 얻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은 아깝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6지역부터는 달랐다. 내어주는 순간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정군이 쌓아올리고 있는 업적도, 전설도. 북부로부터 들려오는 황금빛 소식만을 듣고 재산을 쏟아 붓기를 멈추지 않는 귀족들의 태도까지.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병력은 어느 정도로······.”
“보고가 사실이라면 다른 쪽도 평상시와 같지는 않을 겁니다. 최소한의 방어병력만 남겨두십시오. 허락하시겠습니까? 각하.”
“그렇게 하도록. 그렇다면 정찰은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나.”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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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 존 전 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타이탄과 기사, 마법사 그리고 일반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방어선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 숫자를 제외하고 전 병력이 6지역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얼마 전, 저항하지도 못하는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재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름 잘 지켜오던 약속을 버리고 세이프티 존 내부로 들어온, 하는 일이라고는 대련밖에는 없는 퐁크 후작도 속해 있었다.
“백만? 칼에 피맛을 보게 해주기에는 충분하군.”
루인의 제작을 대가로 그가 레닐에게 약속했던 한 가지는 누구보다 앞장서 몬스터를 베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유효기간은 고작 몇 년 뿐, 사실 레닐이라고 그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 상 지금까지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만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레닐이 그에게 루인을 제작해준 것은 그 약속이 아니었더라도 마스터의 전용기를 제작할 필요가 있었기에, 원정 초기에만 움직여주더라도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크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내이니만큼 그가 최전선을 이탈에 비교적 후방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음에도 레닐은 별다른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퐁크 후작이 먼저 약속을 어긴 만큼 루인을 돌려받아도 무방했지만 퐁크 후작도 그것을 의식했기에 아예 본토로 돌아가는 행동만큼은 하지 않았다.
강자와의 대결은 언제나 환영이었지만 마법사와의 대결은 손맛이 없어 그가 기피하는 대결 중 하나였고 결과가 어찌 나오건 두 번 다시 루인에 탑승하지 못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기에.
그런 퐁크 후작을 최전선으로 이동시키는 한 편, 레닐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알아봐야 할 정보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 방어군이 손에 쥐고 있는 정보라고는 적의 숫자 뿐. 적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등등 그 외에 놀랍도록 무지했다.
‘힘 싸움은 하수다.’
원정군을 최대한 끌어 모은다고 하더라도 이십만에 불과할 터였다. 기사들은 천오백, 타이탄은 이백여 대 정도 일까. 적어도 레닐이 파악하고 있는 한에서 최대한으로 끌어 모아도 이 이상은 힘들었다. 제국의 남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삼국과 전쟁을 벌여도 충분한 숫자. 그럼에도 힘 싸움은 하수 중의 하수였다.
‘백만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1:5라는 비율은 집어치우자. 병사들과 숫자만을 앞세우는 몬스터들은 전투의 종지부를 찍을 수는 있으나 향방을 가를 수는 없었다. 숫자로는 결국 기사들과 타이탄, 상위종을 이겨낼 수 없었으니. 그렇다면 상위종과 기사들의 싸움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 결과를 레닐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최소 1%라고만 쳐도 일 만이다. 그에 반해 원정군 측 전력은 천오백. 이백의 타이탄은 적 수 체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겠지만 천 삼백의 기사들 또한 무리를 이루어 상위종을 상대해야만 했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마력.
인간이 몬스터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이자 최악의 약점. 마력이 있으므로 몬스터에 대적할 수 있다는 뜻은 곧 마력이 없다면 무력하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 타이탄이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은 제아무리 길어봤자 반나절이 채 안 될 터, 그 안에 전투를 끝마치지 못하면 그 때까지의 전황에 상관없이 전투는 패배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단순히 머리수로만 백이십만이 넘는 군세의 전투가 반나절 안에 끝난다? 제아무리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정면 힘 승부에서는 가능성이 없는데 주변 상황은 힘 싸움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그 누가 레닐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부분은 몬스터가 인간과 같이 조직적인 지휘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라는 점.
‘몬스터들이 생각보다도 더 멍청하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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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럽습니다. 휴즈 백작님.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를 결정한 것에 대한 처벌은······.”
“아닙니다. 보고가 사실이라면 승산 없는 싸움에 제국의 병사를 밀어 넣지 않은 것이야말로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7구역 방어선의 군세는 생각 이상으로 멀쩡했다. 평소 정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적의 동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고 빠르고 현명한 판단으로 손실을 최소화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급보를 받았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어땠는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 눈앞의 지휘관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다. 기사에게 있어 적에게 등을 보이는 일은 수치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급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진정으로 훌륭한 지휘관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그보다, 급보의 내용이 사실입니까?”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친 비겁자의 변명이라고 판단하셔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눈속임이거나 현혹당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습니까?”
몬스터라고 하여 전부 오우거나 트롤처럼 비이성적인 개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웨어울프와 뱀파이어와 같은 종족들 중 일부 개체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뛰어난 몬스터들도 존재했다. 특히나 뱀파이어와 같은 종족은 전투는 비교적 약할지 몰라도 사람의 눈을 현혹하거나 고유한 능력을 사용하는 등 비전투 계열에서 더한 능력을 보여주기에 까다로운 적 중 하나였다. 내 물음은 그런 꾀임에 넘어간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제 실력이 비록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런 요사한 사술에 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더불어 7구역의 방어선에는 마스터의 벽에 부딪친 기사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속았을 리 없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경지가 높다는 것 곧 항마력이 높다는 뜻, 어지간한 수준의 마법가지고는 그들의 감각을 속일 수 없었으니까. 만약 그 정도 수준의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적이 등장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백만에 달하는 적만큼이나 위협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혹시나 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급보의 내용이 거짓이었다면 까짓 거, 잃어버린 7구역을 재확보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직접 확인을 하러 올라가봐야하긴 하겠으나 이 정도까지 말한다면 설마는 설마로 미뤄두는 것이 옳으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백 번을 더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급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선두에 서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체는 확인했습니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20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