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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03화 (103/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3화 - >

“아버지!”

“······네 아비, 귀 안 먹었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거라.”

“아니, 어떻게 말씀 한 마디 없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멀리 있는 네 녀석을 불러?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병 한두 가지는 앓는 법이야. 호들갑 떨 것 없다.”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받으며 요양 중이라는 대답에 꽤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소식이 없었기에, 황도와 드라그닐 영지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편지 한 장을 보내는 것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가문의 중대사에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었다니, 물론 엄밀히 말해 내가 황제에게 새로운 성을 하사받으며 가문의 방계라고 하기에는 살짝 미묘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부모와 아들의 관계가 언제부터 이리 매정해졌던가.

“너무 호들갑 떨지 마. 네가 그렇게 호들갑 떨 만큼 큰일은 아니었어. 사제님도 충분히 휴식만 취하면 괜찮다고 했고, 네가 괜한 걱정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뜻이었으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마.”

“아니, 어떻게 호들갑을 안 떨어? 게다가 아들이 전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마법사인데 어떻게 말 한 마디를······.”

“어차피 마법사는 외상 전문이잖아. 네가 왔다고 크게 달라지진······.”

“거기까지만 하거라.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결혼까지 한 놈들이 웬 말싸움이냐.”

확실히 아버지와 형의 말처럼 별 일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내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여동생의 결혼식 때 나는 여동생의 선물을 준비하며 아버지께 건강을 보조하는 효과를 가진 장신구를 선물했었다. 그 때의 내가 세레나를 만나기 이전이었기에 각인을 다루는 능력이 지금보다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신구의 효력이 뛰어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말 큰 병이 아니고서야 잔병치레 정도는 앓을 리가 없으실 텐데, 혹시나 싶어 아티팩트를 돌려받아 검사해보았지만 기능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나마 이게 있어서 병의 증세가 약화된 건가?’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여러 각인을 새겨 넣은 탓에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으니. 애초에 큰 병이 아니었던지, 아티팩트의 효과로 큰 병이 작은 병이 되었던지 어느 쪽이건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이 곳에는 무슨 일이야? 제수씨까지 데리고.”

“내가 못 올 곳 왔나.”

“딱히 용건이 없으면 오지 않았던 건 사실이니까.”

그랬던가? 형의 대답에 잠시 생각을 기울이자 내가 고향에 내려온 것도 매우 드물며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용건 없이 내려온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위험한 건 아니야. 그냥 오랜만에 한 번 와봐야겠다 싶은 김에 해야 할 일까지 겹친 거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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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은 오랜만에 일가족 전체가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부모님, 형과 형수, 여동생과 매제. 루키우스와 이제야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여동생의 딸까지. 총 열 명이 모인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나와 형은 잠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용건이기에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위험한 일은 아니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위험한 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테니까, 무슨 일이야?”

“별 건 아니고 우리 영지에 광산 있나?”

“광산?”

내 물음에 형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사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기는 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는 광산이 있냐고 묻다니, 그러나 내가 허투루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형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남쪽에 하나 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사실상 폐광이지. 너도 알잖아. 우리 영지에 그런 형편 좋은 건 없다는 걸.”

혹시나 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영지를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런만큼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십 년 전에도 평화로운 농촌이었던 이 곳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의 변화조차 없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광산? 용건이 광산이었냐?”

“타이탄 알지?”

“어. 영상으로 봤지. 대단하더라.”

형도 나름대로 검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아무리 탑승자가 황실기사단이었다지만 타이탄 본연의 위력을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여유 있으면 우리 영지에도 몇 개 줘봐. 많이는 필요도 없으니까 두 대 정도만.”

“얼씨구. 돈은 그렇다 치고 쓸 곳도 없으면서?”

“돈은 왜 그렇다 치고야? 너 덕분에 돈은 많아. 우리 가족이 돈 생겼다고 사치부리는 성격도 아니고, 게다가 쓸 곳이 왜 없어? 훈련장에 하나 세워두면 기사들 사기 올리기에도 좋고, 영지 중앙에 또 하나 세워두면 영지민들도 좋아라 하겠더구만.”

“뒤의 말은 다 집어치우고 돈이 많다는 건 다행이네.”

“왜, 돈 필요해?”

“제국 전체가 달라붙고 있는 일에 돈이 부족할 리가 있나. 문제는 철이지. 철이 워낙 많이 필요해서 이번 기회에 제국 남부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광산을 찾을 계획이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여기부터 찾아온 거고. 그러니 혹시나 광산이 발견되면 개발할 초기 자금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우리 영지에 광산이 있다고?”

“어디까지나 혹시나. 정말로 있을지 없을지는 내일부터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봐야지.”

광산이라는 이야기에 잠깐 고민하던 형은 이내 위험한 일은 아니라는 것에, 어찌 되건 리스크가 주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얼굴을 풀었다.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거의 홀몸이나 다름없는 나와 다르게 형은 한 영지의 영주로서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네 생각은 고마운데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개발하지 않았을까?”

“없어도 큰 상관은 없어. 온 김에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고, 없어도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되니까.”

나는 그 다음 날부터 영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광산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아쉽게도 아내에게 말했던 관광은 이 곳에서는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영지답게 아름다운 자연 광경도, 꼭 봐야하는 기념물도 없었으니.

“괜찮아요. 대신에 오슬론에 한 번 들렸으면 해요.”

“오슬론?”

“네. ······부끄럽지만 바다라는 걸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꼭 한 번 두 눈으로 보고 싶어요.”

어려서는 지크 영지에, 자라서는 황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터, 지크 영지와는 멀리 떨어져있는 바다를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겠지.

이런 사연을 가지고 안 되냐고 물어오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할까. 나는 조금 더 시일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슬론에 들리자고 말해준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역시 과한 기대였나?”

우선 형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지금은 폐광이나 다름없다는 광산에 들러 매장량을 알아보았다. 혹시나 매장량이 한참이나 남아있는데 섣부르게 손을 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 폐광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듯 철광석으로 추정되는 광물의 매장량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기대가 적었던 만큼 실망감도 크진 않았다. 그 뒤로 책과 숙련된 광부들에게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돌아다녔지만 유의마한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슬슬 떠날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 들 때

“어?”

내가 원하던 철광산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히 가치만을 두고 봤을 때는 몇 십, 몇 백 배의 가치를 가진 광물.

“노, 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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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79번, 고체의 물질로 녹는점은 1060도, 끓는점은 2970도. 표면이 노란빛으로 반짝거리는 금속. 예로부터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이 금속.

금.

철광을 찾으려다 금광을 찾은 내 기분은 소위 대박을 터트린 기분이었다. 물론 질 좋은 철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지만 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곧 그 좋았던 기분은 바닥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힘들겠는데.’

금의 매장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문제는 수직으로 5km는 파고들어가야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깊게 묻혀있다는 것.

이 곳이 현대 지구였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제아무리 마법이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뭐, 금?!”

아니나 다를까, 이 소식을 전해주자 형은 팔짝 뛸 정도로 놀라워했다. 농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지방의 작은 영지에, 지금까지 별다른 특징조차 없었던 영지에 금광이라니, 그러나 수직으로 5km는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일단 그냥 내비 둬.”

“내버려둔다고? 그렇기에는 너무 아깝······.”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는데, 일단 형만 알고 있어. 괜히 구설수에 휘말릴라.”

금광인 이상 비리가 끼어드는 수준이 아니라면 무조건 이득이겠지만 당장 급한 일도 아니고, 조금 더 기술의 발전이 있을 때까지 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금에 발이 달려 도망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전투 쪽만으로 생각할 게 아니야.’

타이탄이 굳이 전쟁에서만 활용될 필요는 없다. 모습은 달라도, 역할은 달라도 코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무인, 유인 병기라면 타이탄이라 부르게 될 테니까. 사람이 하기 힘든, 가축이 하기 힘든 일이라도 타이탄이라면 한결 수월하지 않겠는가.

‘북쪽에서의 일이 끝나면······.’

게다가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외골격에는 나 혼자만이 사용가능한 각인이 단 한 차례도 쓰이지 않았다.

연구 자료만 남겨둔다면 다른 이들도 충분히 파생형을 만들 수 있을 터, 물론 그에 필요한 코어의 숫자는 마법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한 내가 조금 더 고생을 해야겠지만 글로리만큼의 성능은 필요하지 않을 테니 몇 배, 몇 십 배의 양을 생산할 수 있으리라.

“이제 다 둘러본 거냐?”

“어. 솔직히 별 기대 안하고 왔는데 하나, 그것도 대어를 건졌으니 슬슬 움직여야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부터 경로를 동남쪽으로 틀어 시계반대방향으로 제국 남부를 경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수정된 계획에서는 동남쪽이 아닌 남서쪽. 제국 최대의 항구도시 오슬론. 정말 오래간만에, 생애 두 번째 방문을 할 생각이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3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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