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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9화 (99/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9화 - >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동력원의 장착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미하일이 탑승한 테스트에서도 기존의 목표였던 두 시간 동안 활약했음에도 그는 조금 지쳤을 뿐, 탈진한다거나 마력의 부족으로 허덕이지 않았다.

그 뿐이랴, 동력원의 마력 또한 바닥을 보였으나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며 하루가 지났을 때, 실험을 하기 전의 마력량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주변에 마정석을 두었을 때, 더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혁명입니다!”

“도대체 이런 물건이 어떻게!”

“마력 소모를 줄인다면 사실상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주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게다가 이 동력원은 굳이 타이탄에만 장착할 이유는 없었다. 적합한 술식만 만들어진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쓰일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동력원의 존재를 확인한 수많은 마법사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름은 무엇으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그냥 동력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런 세기의 발명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고 있군. 그래도 이름을 붙이자면······인피니티, 인피니티 코어가 낫겠군.”

인피니티 코어, 속칭 코어라고 불리는 동력원의 개발은 앞으로 벌어질 타이탄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

우리는 그 즉시 타이탄의 제작에 들어갔다. 동시에 기사 한 명을 더 초청해 타이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고 얼마 뒤, 황제와 제국의 중진들, 그들을 호위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계 최초로 타이탄끼리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 광경은 타이탄을 제작했던 우리들도, 그것을 지켜보던 황제와 중진들, 무엇보다 기사들에게 있어 충격과도 같았다.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압도적인 힘과 마력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충격파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으며 거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체와 별다를 바 없는 날렵한 몸놀림은 육중하리라는 편견을 깨부수기 부족함이 없었다.

“오오오! 오오오오오!”

특히나 처음부터 나를 따랐던 아르민의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것도 모른 채, 울부짖고 있었으나 모두들 타이탄이 보여주는 광경에 눈이 팔려 그 누구도 아르민을 신경 쓰지 못했다.

짝짝짝짝짝-

“좋아! 아주 좋아! 내 기대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는, 아니 내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었어! 훌륭해!”

“폐하께서 믿고 맡겨주시지 않으셨다면 오늘 이 성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만큼은 그 말이 전혀 듣기 싫지가 않군. 그런 만큼 내가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괜찮겠나?”

“가문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자네 가문의 영광이 될 것처럼 타이탄 또한 제국에 영광을 가져다주겠지. 그러니 글로리, 글로리가 좋겠군.”

글로리.

앞으로 제작하게 될 수많은 타이탄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황제는 그 즉시 글로리의 1차 양산을 명했다. 그 수량은 삼십여 대. 일개 기사단을 무장시키기에도 부족한 수량이었지만 연구소와 공방의 그 누구도 실망하지 않았다.

타이탄 한 대를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 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황제가 직접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명예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공방이 쉴 세 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나와 일부 마법사들은 또 다른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동기화.

타이탄은 결국 인간의 몸이 아니었기에 코어만큼이나 핵심 중의 핵심이 동기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력에 차이가 있으며 똑같은 성능의 타이탄에 탑승했다고 하더라도 동기율에 따라 승패는 뒤바뀔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연구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가 같은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동기율을 지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애초에 높인 동기율을 가진 사람을 선별하는 방법이었다. 직접 타이탄에 탑승하여 동기율을 확인하면 된다지만 그렇게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타이탄은 너무나 귀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차 생산분인 서른 대의 글로리가 완성되었으며 그에 탑승할 인원까지 선별이 완료되었다. 남은 것은 실전에서의 테스트 뿐.

모두의 부러움 속에 타이탄에 대한 적응 훈련을 모두 끝마친 기사들은 그 힘을 발휘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렸으나 그들이 움직일만한 곳에서는 적당한 상대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알릴 필요가 있었던 황제의 처지가 맞물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테라 방벽으로의 출진.

그 어떤 곳보다도 실전에 적합한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

테라 방벽으로 향하는 서른 대의 타이탄은 훈련을 겸해 기사들이 탑승한 채, 테라 방벽으로 움직였다. 기존의 목표였던 두 시간은 어디까지나 전투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기에 평범하게 움직이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없었기에.

쿵- 쿵-

뒤를 따르는 지원부대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눈으로 타이탄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테라 방벽으로 향하며 거칠 수밖에 없는 제국 북부, 황도 주변에 비해 치안이 불안정한 만큼 일정 수 이상의 몬스터를 마주했었으나 타이탄의 위세 덕분인지 그 흔한 오크 한 마리도 마주하지 않은 채, 테라 방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탈하셨습니까. 장인어른.”

“······요란하게도 등장했군.”

어색하다. 조금 오래 떨어져있었다지만 그래도 몇 년씩이나 얼굴을 마주하며 생과 사가 오가는 전장을 함께했는데, 그 때는 이런 관계로 마주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으로 마주한 장인어른과 사위라는 관계는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소식은 들었네. 저게 소문이 자자하던 타이탄이라는 병기인가보군.”

“그렇습니다. 저 개체에 대한 명칭은 글로리. 황제 폐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으음, 어디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한 번 봐볼까.”

서른 명의 기사들 중 서로가 장인어른의 상대가 되겠다며 나섰지만 내 추천으로 미하일 경이 낙점되었다. 퐁크 후작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는 점, 순수 실력만으로는 특출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동기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리의 성능을 누구보다도 잘 보여줄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맨 처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미하일과 검을 나눈 장인어른의 대답이

“평범하군.”

에서

“나쁘지 않군.”

으로 바뀌기까지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별 차이가 없는 말이었으나 실제로 큰 차이가 있는 대답이었다. 첫 번째의 평범하다는 대답의 기준은 대부분의 기사들을 기준으로 평범하다는 것이었지만 두 번째의 나쁘지 않다는 대답은 마스터인 장인어른의 기준에서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으니.

“이 정도면 어리바리하다가 몬스터 따위에게 비명횡사하지는 않겠어. 그래서 뭘 할 생각이지? 통상적인 상황의 방어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가을 원정을 부활시켜주십시오.”

스콜피온의 제작과 함께 가을 원정은 사장되었다. 평소에도 충분한 숫자의 상위종을 격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글로리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선 가을 원정과 같은 야전이 필요했다. 타이탄이 아무리 거대하다한들 방벽 너머를 공격할 수는 없었고 방벽 위가 아무리 넓다한들 타이탄이 올라갈 순 없었으니까.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하지만 방벽 너머로는 어떻게 갈 생각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성문을 통해 나갈 수는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그게 문제가 될 것이었다면 황도 내부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연구소와 공방은 외성 내부에 지어져있다. 만약 그 정도도 극복하지 못할 것이었다면 황도를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곤욕이었겠지. 동시에 타이탄에 대한 평가도 조금은 절하되었을 것이고.

“미하일 경.”

“예.”

동기율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또 하나 중요하게 떠오른 문제점이 있었으니 보관과 이동 방법이었다. 보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동이 문제였는데 평상시야 테라 방벽에 올 때처럼 직접 이동하면 된다지만 몬스터의 대지 혹은 전쟁터처럼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타이탄의 마력을, 탑승자의 기력을 소모한다는 건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소와 말을 이용하자니 거대한 몸을 이루고 있는 재질이 재질이니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는 쉬이 감당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방법들이 동원되었는데 최종적인 선택은 아공간을 이용하는 일이었다. 대략 5m 크기의 아공간을 만드는 건 일정 경지 이상의 마법사들에겐 귀찮을 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별 문제 없겠어. 폐하의 명도 있으니 거부할 수도 없고 테라 방벽의 방어에도 도움이 되니 거부할 이유도 없군. 조금만 기다리도록. 준비를 해줄 테니.”

#

오랜만에 재개된 가을 원정. 우리들은 조를 이루어 뿔뿔이 흩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몇 명이서 달라붙어야 승산이 있는 상위종을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르르 몰려다녀봐야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특히나 [목숨을 걸어야 실전이라고 할 수 있다.] 며 위기에 빠져도 동료들이 도와주겠지라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유 또한 있었다. 제아무리 몬스터의 대지라고 하더라도 상위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은 쉬이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바실리스크로군.”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아직 스무 살 조차 되지 않았을 무렵, 테라 방벽에 도착한 첫 해에 가을 원정을 떠나게 되었고 가을 원정에서 처음으로 죽였던 상위종이 바실리스크였다.

그 때, 마주했던 바실리스크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 당시 나의 실력으로는 상대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으며 경험이 쌓인 기사들조차도 조금만 방심해도 그대로 죽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내가 발사한 고(固 - 굳을 고) 탄환이 아니었다면 위습 경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지.

‘결국 죽으셨지만.’

그래도 원수는 갚았으니 편하게 눈을 감으셨으리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기는. 적을 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것도 아니고. 처음이니만큼 두 명이 나서보는 게 어떻겠나?”

바실리스크의 최후의 무기라 할 수 있는 분독은 글로리에 탑승한 이상 더 이상 두려워할 바가 되지 못했다. 통상의 오러로는 베기 어려운 가죽도,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막강한 힘도, 자연스레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석화의 마안도 마찬가지.

더 이상 몬스터는 인류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상위종과의 전투 또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방심할 수 없는 힘겨운 전투 또한 아니었다. 오늘 이 전투를 시작으로 인류가 몬스터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생각이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9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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