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7화 - >
‘이걸 잊고 있었다니?’
드래곤하트.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최고의 가치를 자랑하는 보물. 어째서 이 존재를 잊어먹고 있었을까.
‘그야 꺼내보질 않았으니까.’
이걸 얻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걸 연구해 지금껏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무언가를, 그 동안 한계로 생각되었던 지점을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의욕에 불타올랐었다. 그러나 이걸 얻었을 때, 내 몸 상태는 최악을 간신히 면한 상태였으며 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 뒤로 타이탄에 대한 생각으로 한창 바쁠 때쯤 또 다른 드래곤, 세레나와 만났고 그 뒤로 드래곤하트는 바깥공기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가 그 녀석을 죽인 것에 대해 별다른 복수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 오히려 통쾌하게 여겼을 지라도 - 그 시체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까지 아무렇지 않아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사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싫어하거나, 안면이 없는 이가 죽었을 때 통쾌하게 여기거나 아무렇지 않더라도 그 시체를 토막 내는 등 소위 시체능욕을 하는 것까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우우웅-
언제 보더라도 경외감까지 드는 마나량이다. 죽은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조금의 쇠약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걸 잘못 조작해서 마력폭발이라도 일어나는 순간에는 황도의 절반 정도는 폐허가 되어버리겠지.
‘그래도 보검은 적을 베어야 보검인거다. 가만히 관상용으로 놔두기에는 너무 아깝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리스크가 내 목숨이 되는 것은 어떨까 싶지만 드래곤하트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일단 조조에게는 말을 해둬야겠군.’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설령 스승님이나 조조가 되었더라도. 어차피 동력원의 개발 자체는 내가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으니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상관없으리라.
“아니, 이 때 네가 없으면 어떡하라고?”
“미안해. 연구소장이라는 녀석이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자리를 비우냐만은, 그래도 이 때가 아니면 시간이 없어. 부탁할게.”
이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조조에게 내 몫의 짐까지 얹혀주어 미안할 뿐이었지만 성공만 한다면 훨씬 빠르게 짐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없어 설득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 계속된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조는 내 짐을 건네받았다.
황제에게도 보고를 끝냈고 스승님께도 시간이 나실 때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뒤, 마지막으로 아내와 사랑을 나눈 뒤에야 나는 정들었던 황도를 떠나 길을 걸었다. 목적지는 어떤 곳이건 상관이 없었으나 근방에 사람이 없는 곳이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따뜻한 남쪽보다는 척박한 북쪽에 알맞은 장소가 더 많으리라. 차라리 몬스터의 대지로 넘어갈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너무 먼 탓에 보류. 결국 나는 북쪽 어딘가에 위치한, 마을 혹은 영지와 동떨어져있는 이름 없는 산 속에 자리를 잡았다.
“나쁘지 않은데?”
주변의 재료를 활용하여 임시로나마 머물 집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연구소와 공방의 설계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깨로나마 장인들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작은 오두막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혹시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도록 각종 보안 작업을 거치고 아공간 내에 넣어두었던 가구와 자료들을 꺼내자 제법 서재와 같은 느낌의 집이 탄생했다. 이 곳에서 얼마나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마음 편히 있을 정도는 되리라.
“어디 한 번 해볼까.”
그러나 기세 좋게 나선 것치고는 나는 한동안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너무나 막대한 크기의 마력이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기에, 작은 변화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뜻 나섰으나 나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 길 낭떠러지를 가로지르듯 아주 조심스럽게,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으니 반대로 시간이 늘어난 건 당연한 이치였다. 또한
“이해가 안 되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대한 드래곤의 심장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심장. 물론 어지간한 마정석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을 품고 있다고 하기에는 작은 크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조금의 손실도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 드래곤이라는 건가.’
인간이 제아무리 마력을 심장에, 단전에 쌓아봤자 죽음과 동시에 마력은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양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영원하지는 - 단지 한없이 긴 것뿐일지라도 - 못했다.
드래곤하트라는 기물이기에 가능한 현상인지 혹은 단순히 막대한 마력이 모이면 되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흥미로운 주제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연구는 아니었기에 잠시 미뤄둘 뿐.
그렇게 외딴 곳의 오두막에 박혀 드래곤하트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던 어느 날, 나는 낯익은 침입자의 모습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너, 여기서 뭐하냐?”
#
조조는 제국에서의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있었으며 그보다 뛰어난 선구자도, 열정 있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제국 출신이 아닌 아우베스 왕국 출신이라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별 볼일 없는 자였다면 모를까,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고향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애초에 부모님이 모두 죽고 스승님에게 구해진 목숨, 스승님이 돌아가신 이상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미련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제국은 그에게 기회를 준 땅이었다. 만약 그가 계속해서 아우베스 왕국에 남아있었다면 스승님의 명예는 아직까지도 땅바닥에 처박혀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물론 자신의 짐을 그에게 떠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친구 덕분에 최근의 일상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그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구 자체가 꽤나 흥미롭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 그에게 한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음······.”
그의 집, 대문 앞에 끼워져 있던 한 장의 편지. 보낸 사람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조조에게’ 라는 말 덕분에 그에게 보낸 것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부스럭-
편지에 아무런 함정도, 마법도 걸려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곳에는 낯익은 글씨들, 고향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나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던가?’
사실상 고향과는 인연이 끊겨 있었다. 더욱이 그에게 편지를 보낼 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고향에 되돌아갔을 때에도 스승님과의 추억이 잠들어있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곧 편지의 내용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의 지인이라고?’
자신을 조조의 스승의 지인이라고 소개한 정체불명의 발신인, 스승님의 명예를 회복한 그가 자랑스럽다며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시간이 괜찮다면 만나볼 수 있겠냐는, 이 때를 위해 스승님께서 남긴 물건을 건네주겠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럴 리가.’
스승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그가 제일 잘 알았다.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어 장례식조차 그 혼자 마무리 짓지 않았던가. 평소에 한 번이라도 찾아왔다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인이라며 만나자고 하다니.
수상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필시 어쭙잖은 말로 그를 속여 이득을 취하려는 이의 수작이리라.
‘어쩌면 나를 노리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레닐의 당부가 떠올랐다. 정체모를 단체가 연구 자료를 빼내려고 한다고. 연구 자료뿐만 아니라 연구원 또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선뜻 편지를 불태울 수가 없었다. 이깟 얇은 종이, 숨 쉬는 것보다 쉽게 없애버릴 수 있으면서도.
‘하지만 정말로 스승님의 지인이라면? 정말로 유품이 존재한다면?’
결국 조조는 편지를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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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리에 몸을 옮겼다. 그의 출생과 현재 맡고 있는 위치 등등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외부에 어떻게 비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혼자만의 문제라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를 믿어준 다른 이들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전에 정해둔 장소에 도착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풀었던 기대는 역시나라는 실망감에 집어삼켜졌다. 눈앞에 서있는 남자는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 스승님의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었기에.
“당신이 이 편지를 보냈습니까?”
“와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의 언어. 그러나 경계심이 풀어지기는커녕 더 곤두세워질 뿐,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이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다른 마력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이외에 다른 이들은 없으니, 저는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면 남의 스승님의 이름을 들먹이면 안 됐지.”
“그러지 않고서는 당신을 이 자리에 불러낼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조조는 자리를 벗어나려다가 이내 자리에 앉았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 정도는 들어보기 위해서, 잘만 하면 유용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국을 도와주십시오.”
“일 없습니다.”
조국을 도와달라니, 이제 와서?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의 조국은 무엇 하나 해주지 않았다.
그가 주린 배를 부여잡을 때, 그의 조국은 빵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그의 스승님의 업적 또한 무시 받았을 뿐, 노력에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제국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 주제에 배신을 종용하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나를 저버린 건 조국입니다. 그런 주제에 제가 성공하니 도와 달라 말하는 건 너무 양심 없지 않습니까? 돌아가십시오. 제국이 저를 버리지 않는 한 제가 먼저 제국을 등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스승님께서!”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돌아가려던 찰나, 상대방이 외치는 한 순간의 외침이 조조의 발걸음을 잠시나마 멈춰 세웠다.
“자신의 업적이 조국의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이 애제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당신을 용서하진 않을 겁니다.”
“······스승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들이, 스승님의 업적을 무시하기만 했던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현재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가 결국 전쟁의 시발점이 되리라는 것,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알겠지만 불쌍한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도와주십시오. 제국에 망설임을 심어줄 수 있는 수준만 되더라도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7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