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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5화 (95/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5화 - >

많은 이들의 이권과 욕심이 얽혀있는 만큼 지금 상황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넉넉한 휴식과 함께 차분히 동력원의 연구에 바탕이 될 자료를 수집하는 건 좋았지만 그 동안 너무 일에만 몰두해서였을까, 계속된 휴식이 오히려 부담스러워질 때,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쁜 사람을 오라해서 미안하군. 경에게 직접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그 어떤 일이 황제 폐하의 명보다 우선시 되겠습니까. 또한 세상천지를 둘러봐도 황제 폐하보다 바쁜 사람은 있을 수 없사오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탕발린 말이라도 듣기는 좋군. 하지만 짐이 듣고 싶은 건 이런 말 따위가 아니네. 경의 솔직한 생각을 말해주면 되네.”

무슨 질문을 할지 대강 예상가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이 시기에 그가 직접 나를 불러서 질문할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 너무 뻔한 탓에 아쉽게도 질문은 내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도 귀가 있다면 알고 있겠지. 새로운 연구소와 공방이 어디에 들어설지, 왈가왈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경 생각에는 어디에 짓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겠는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효율성만 따진다면 말이야.”

효율성만 따지라는 건가.

효율, 내가 참 좋아하고 어지간하면 따르려고 하는 지표였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이상 효율을 따랐을 때,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물론 내 목표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이야기였지만.

“효율성만 따진다면 황도, 그것도 외성 내부가 가장 좋습니다.”

“그런가?”

“예. 이번 일을 위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보안. 무엇보다 우선시해야할 사항입니다. 저희가 몇 년이나 고생해 얻은 자료를 적들이 손쉽게 얻게 놔두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최소한 우리가 실전테스트를 끝마치고 북부의 몬스터의 땅을 토벌하기 전까지 적들은 타이탄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줘야만 했다. 그래야만 제국의 유능한 기사들이 충분한 경험을 쌓고 돌아올 것이 아닌가.

“두 번째로 사람입니다. 연구소와 공방을 돌리기 위해서는 많은 숫자의 마법사들과 장인들이 필요합니다. 우수한 인재를 즉각 활용하기 위해서는 황도보다 나은 곳이 없습니다. 세 번째로는 길입니다. 황도는 제국의 중심. 또한 수많은 상회들이 본진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광산 주변에 공방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황도가 가장 낫습니다.”

안 그래도 비싼 타이탄이다. 운송비용을 생각한다면 광산 근처에 공방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변방. 엉덩이 무거운 마법사들이 싫어하겠지. 어차피 비싼 거, 조금 더 비싸져봤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보안까지 생각한다면 황도가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군.”

“그렇습니다.”

내 말을 들은 황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디까지나 나는 실무자로서 그의 말처럼 ‘효율성’만을 따져 답했을 뿐, 이 말을 듣고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황도가 제일 좋은 선택지라······.”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그쯤하면 됐네. 경이 그런 것들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 말 잘 들었네. 실무자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는데 짐이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줘야지. 좋은 소식이 있을 터이니 이만 물러가도 좋네.”

내가 황궁을 벗어난 직후 황제는 자신이 왜 삼남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는지를, 황제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칼을 뽑아들어 형제를 참살한 과감함과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곧바로 시연회에 참여했던 귀족들을 불러 모으더니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는 회의를 통해 - 차후 형님을 통해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황제가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지지부진하던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뿐이랴, 내가 내심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복합적인 상황 덕분에 미뤄두었던 곳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자료를 보지도 않았으니 그 또한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속도였다.

“날 이용한 건 짜증이 나지만 서로 윈윈이니······.”

황제 또한 연구소와 공방의 위치로 황도 이외의 땅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 내 의사를 확인한 것은 나를 이용해 명분을 다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황제가 먼저 말을 꺼낸다면 다른 이들의 반대를 돌파할 명분이 없겠지만 연구소장인 내가 황도가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다면 반대를 무시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었으니.

그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였다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이 필요 없었겠지만 아직 그는 귀족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예?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했습니다.”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높이나 체크해 봐. 적어도 10m 이상은 되어야 하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딱 봐도 10m는 넘어가지 않습니까.”

이런 발 빠른 행보 덕분에 나와 동료들도 짧은 휴식을 끝마치고 일선으로 복귀했다. 짓고자 하는 공방이 평범한 공방이 아닌 만큼 설계도를 넘긴 뒤에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뿐만 아니라 연구에 참여할 마법사들을 평가하는 틈틈이 동력원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몸이 열 개쯤 있었으면 좋겠는 시간의 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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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희귀한 존재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존재도 흔치 않았으나 비슷한 역할인 기사에 비해서도 마법사의 숫자는 적었다.

마력에 대한 재능이 비교적 부족하더라도 검술이라는 또 다른 요소로 활약할 수 있는 기사들과 달리 마법사의 실력은 극히 예외를 제외한다면 마력에 대한 재능과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또한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그러면서도 똑똑한 이들만이 배우는 것이 가능한 학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희귀한 존재인 마법사가 그리 희귀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오가다보면 발에 치이는 수준이었으니 그 곳의 이름은 바로 마탑. 그러다보니 마법사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도 마탑일 수밖에 없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시켜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 시연회를 벌이기 전에도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아는 소식이었다. 내가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비밀로 부쳤기에 내용까지 알지는 못했으나 무언가 대단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위상 자체가 그 만큼 높았기에. 그런 내가 수면시간까지 아껴가며,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연구에만 집중하니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지, 연구가 끝났을 때 어떤 대단한 발표를 할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시연회를 통해 연구의 내용이 알음알음 퍼지고 황제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말이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내가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연구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법사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중에서 필요한 인재만 쏙쏙 뽑으면 될 정도로.

“먼저 찾아와주어 고맙네. 앞으로 잘 해보자고.”

“미안하네. 다음에 좋은 기회로 만났으면 좋겠군.”

테스트를 봤다. 기준은 여러 가지. 실력, 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신분의 확실함, 연구에 대한 불타오르는 의지와 실적 등등, 합격한 이들도 있었고 탈락한 이들도 있었다.

연구에 참여하기로 한 이들 모두 오랫동안 제국에서 활동하며 여러 연구에 참여한 뛰어난 마법사들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르민처럼 실력은 낮더라도 다른 이들과 다른 곳을 보는 이는 없었다는 것.

동력원의 개발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난제를 해결함에 있어 반드시 도움이 될 요소였기에 신경을 썼지만 오랫동안 주류에 머물렀기 때문일까. 남다른 식견을 보여주는 이는 없었다.

‘나쁘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으리라. 결국 아이디어 자체는 한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테니. 나머지는 그걸 토대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면 충분했다. 실제로 그 동안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어서 꽤나 고생하지 않았던가.

“슬슬 코앞이군.”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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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을 건설함에 있어 나는 크게 네 개의 구획으로 공방을 나누었다. 팔, 다리, 몸통.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조립하고 동기화 작업을 진행할 마무리 장소까지.

각각의 부위에 적용할 마법은 종류가 달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든 마법사들이 알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효율을 위해서도, 보안을 위해서도. 그리한다면 설령 연구에 참여한 마법사들 중 한둘이 당하더라도 알 수 있는 건 일부분밖에 없을 테니까.

‘마법사인 내가 내 손으로 기사들의 시대를 여는 건가?’

타이탄의 양산이 시작되고 그 강함이 입증되면 기사들의 입지는 한층 넓어질 것이다. 특히나 타이탄에 탑승할 만큼의 실력 있는 기사들은 더더욱. 그와 반대로 마법사들의 입지는 줄어들겠지. 미스릴 코팅을 위주로 한 대 마법 대책이 어지간한 위력의 마법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도록 만들 테니까.

그야말로 기사의 시대.

‘······그러면 뭐 어때.’

기사들의 시대가 열리더라도 마법사가 죽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존재는 마법의 파괴력만이 아니었으니까. 평범한 이들은 만 명이 달라붙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있기에 마법사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기사들의 시대를 열개해 준 타이탄의 제작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나타난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한층 더 중요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대제자님, 아니 소장님. 슬슬 나오셔야 합니다!”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보니 어느새 아르민이 방에 들어와 나를 불러냈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이 뒤로 올 사람들은 하나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먼저 나가있을 필요가 있었다.

두둥-

첫 삽을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 실제로도 얼마 지나진 않았다 - 어느새 완성된 연구소와 공방은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계자들이 모여 이 공방이 만들어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축하를 내뱉고 있었다.

“경의 어깨가 무거워.”

“믿어주신 만큼 결과로써 보여드리겠습니다.”

황제를 위시로한 제국의 중추가 대부분 모인 완공식. 그 성대한 행사가 끝이 나고 축하의 장이 아닌 연구의, 작업의 장으로 되돌아온 연구소. 나를 바라보는 수십여 명의 마법사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외쳤다.

“자, 슬슬 시작하죠.”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5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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