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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4화 (94/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4화 - >

“제국의 영광스러운 행보에 동참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곳에 있는 그 누구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이상하다면 이상한 결과.

황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돈에 눈이 멀어 제국의 성장에 반대할 수 없었기에, 다른 이들이 침묵하는 와중에 먼저 나서서 반대하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로 눈치를 보며 대략적인 판단을 내렸음에도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타이탄의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큰 이득을 가져다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보다 적은 이득을, 누군가에는 손해가 될 지도 모를 일.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이득을 가져갈 사람이 황제라는 건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가장 많이 투자한 이가 가장 많은 것을 가져간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아닌가. 일찍부터 나와 협력하여 타이탄의 연구를 후원한 황제이니만큼 타이탄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그 이득을 누릴 사람 또한 황제였다.

지방을 앞서게 된 중앙의 성장. 정통성이 떨어지는,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만큼 황권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양보한 황제였으나 그 손에 힘이 주어졌을 때에도 양보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

“······.”

그럼에도 누구하나 선뜻 반대할 수 없는 이유.

타이탄은 고작 페이퍼플랜, 즉 계획 정도만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미 동체는 개발이 완료되었으며 동력원만 준비된다면 당장에라도 실전에 투입될 수 있다지 않는가.

그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만큼 반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황제가 직접 시연회를 열었을 만큼 타이탄의 개발에 대한 황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황에서 전체가 반대하는 수준이 아닌 이상 황제는 개발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런데 개발을 반대한다는 건 곧 경쟁에서 뒤쳐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나 뒤처지는 부분이 군사력이라면 더더욱.

“황제 폐하께서 이런 길을 준비해놓으셨다니, 제국의 앞길이 참으로 밝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걷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일찌감치 나선다면 황제 다음으로 많은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기회를, 미리 말을 해놓았던 윌랜드가 가져갔다.

가진 힘은 충분하나 역사와 전통이 부족한, 이 곳에 있는 다른 이들보다 2% 부족한 크라머 백작가로서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있는,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이니만큼 거절할 이유 또한 없었다. 마침 타이탄의 개발에 필요한 것 또한 그들에게 있어 넘치는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자자, 장소를 옮겨서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지. 고생한 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할 테니, 강요는 하지 않겠네. 나와 같은 뜻을 품은 이들을 나를 따라와 줬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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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회의를 길게 끌지 않았다.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콩고물도 얻어먹을 생각하지 말라는 전재 하에 따르는 이들만은 이끌고 같이 나아가겠다는 황제의 행동에 뒤따르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한 마음 한 뜻으로서 단체 행동에 나선다면 모를까, 필요할 땐 힘을 합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로가 필요 이상으로 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입장이다보니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더불어 나라는 존재도 한 몫 했고.

드라그닐 자작가, 지크 후작가.

내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었으며 동시에 제국에 끼치는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 고향이야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지방의 남작 가문에 사지 중의 사지라는 테라 방벽으로 차남을 보내야 했을 만큼 약소한 곳이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예전과 비교하면 괄목상대라지만 영향력이 강하다 할 수는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크 후작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만 하다. 제국에도 세 명밖에 없는 - 그 숫자를 늘리려하는 인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 마스터가 소속되어 있으며 영지의 크기도, 인구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지크 후작가의 영향력이 왜 부족하다 말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뭐 있겠나.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지크 후작이 변방 중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테라 방벽에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최근에 황제가 바뀌며 황실과의 연결고리마저 사라졌고. 여전히 강성한 가문이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그러다보니 타이탄의 연구소장으로서 많은 것을 가져갈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그래봤자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라도 선 듯 3인자가 아닌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열과 성을 올렸기에.

“뭐, 나야 지원만 빵빵하게 들어오면 될 일이지.”

권력 따위는 관심도 없다. 기사는 검에만, 마법사는 마법에만 집중하면 될 일. 괜한 곳에 눈을 돌리고 싶지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큰 고비를 하나 넘겼지만 그것에 만족하며 안주하기에는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내 나이도 벌써 서른하나. 적어도 마흔이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을 마무리를 짓고 싶었으니까.

“그 외에도 할 일이 많고.”

이런 말이 평소에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괜히 한 번 한 마디 해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내게는 할 일이 많았다. 연구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대세가 흘러가면서 타이탄의 개발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이 확정되었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연구소를 마련하고 타이탄을 양산화할 공장 부지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 뿐일까, 제아무리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었으니 요청할 자원의 리스트도 뽑아야 했고 마법사들의 교육도 담당해야 했다.

시그니와 스승님, 조조와 아르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도와줄 것이며, 실제로도 돕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에 눈을 돌렸다.

“황도가 가장 좋긴 할 텐데······.”

황도가 괜히 제국의 중심이라고 불리겠는가. 위치상으로는 중심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해있지만 행정과 물류, 힘 등등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중심인 것이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연구소와 공장은 황도에 자리 잡는 것이 맞았다. 실제로 그리 될 확률도 무척이나 높았고.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효율만을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제국 전체의 관심이 쏠리는 대형 프로젝트.

그리고 그 중심이 될 연구소와 공장.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이익들이 쏟아질 거라는 건 세 살 배기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무형이든 유형의 이득이건 간에. 이미 많은 것을 가져갈 황제에게 이것마저 내주고 싶은 귀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래도 황도가 최선이야.”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똑똑-

“들어와.”

“알아보라고 하신 내용입니다.”

두툼한 서류를 건네받았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어떤 장소에 어떤 건물이 올라와있는지, 주인은 누구인지, 용도는 무엇인지, 가격을 얼마가 들며 주변에는 어떤 건물이 세워져 있는지 등등 땅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앞세우면 문제는 없겠지만 좋은 방법은 아닐 겁니다.”

바로 땅이 없었다.

제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수도로서의 역할을 해왔으니 그 역사만 수백 년,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때로 돌아가면 천 단위로 넘어가리라. 그런 만큼 외성 내각은 물론이거니와 외각까지도 빈 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더욱이 빈 땅이 있다고해서 무작정 세울 수만도 없었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필요한 물품들도 편하게 수송할 수 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보안에 최적화가 되어있어야만 했다.

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는 곳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한두 가지는 감수하거나 차후 용도에 걸맞게 개발을 하려고 하여도 그 정도 수준의 땅을 확보하는 일조차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나. 기다리는 수밖에. 내가 원한다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큰일에는 이런저런 사정이 따르기 마련이니 천천히 기다려보는 수밖에.

#

시연회의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던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고 몇 명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십 명이 알게 되었는데 비밀유지가 될 리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군.’

주요 공정에서 수백 명의 마법사가 투입될 수도 있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마 지금쯤 수도 없이 세작들을 보내며 연구 자료를 빼돌리려한 정체불명의 단체도 대략적인 윤곽은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주요 정보가 없다면 타이탄은 그저 골렘과 비슷한 병기일 뿐이며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이 없다면 보기 좋은 장식용 검에 불과하니.

내부의 배신자가 작정하고 정보만 빼돌리지 않는다면 적들이 뒤늦게 따라붙는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 세대 이상의 차이는 벌릴 수 있으리라. 물론 그 뿐만은 아니었다.

“디그럴 자작께서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고맙지만 바쁘니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답장을 해주게.”

내가 연구소에 틀어박히며 한동안 잠잠했었던 청탁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 한 명을 들어주면 두 명을 들어줘야 되고, 그러다보면 제대로 된 인재를 뽑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안적인 측면에서도 구멍이 뚫릴 수 있으니 오는 족족 거절하고 있었지만.

덕분에 그 누구의 만남도 허용하지 않은 채, 오래간만의 휴식을 홀로 여유롭게 누리고 있었다. 넘어야할 고비가 한참이나 남아있었지만 먼 길을 걷기 위해선 적절한 휴식이 필요했고 동력원의 개발은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연구소와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과정이 필요한 법. 지금은 그 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러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워둬.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제발 쉬게 해 달라고 빌게 될 테니까.”

“이젠 그런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론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을 정도인데, 마음만으로 될 일은 아니니까요.”

“그 시간에 수련에 조금 더 열중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면서. 수석 연구원이라는 녀석이 아직도 3서클에 머물러 있어서야 쓰나.”

내 말에 아르민이 멋쩍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숙원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탄의 개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다른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는 조금 더 성장해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하니까. 100%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노력하겠습니다.”

“정말로 얼마 안 남았어. 동력원만 개발하면 곧바로 실전 테스트로 넘어가도 될 정도로.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4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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