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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3화 (93/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3화 - >

“먼저 진귀한 광경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 싶군. 늙어서 머리가 굳은 나로서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네.”

“과찬이십니다. 후작 각하.”

권터 후작.

이 곳에 모인 귀족들 사이에서도 쟁쟁하기로는 한 손에 꼽히는 인물임과 동시에 기사들의 구심점이자 대표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무위로만 따진다면 지크 후작도 퐁크 후작도 전혀 밀릴 것이 없었으나 지크 후작은 선대 황제인 다리우스 3세의 부탁으로 반평생을 변경 중의 변경이라 할 수 있는 테라 방벽에서 보냈으며 퐁크 후작은 그 자신의 성격 상 홀로 독주할 뿐,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반대한다는 한 마디만으로도 타이탄의 양산은 수 년, 어쩌면 수십 년이 미뤄질지도 모를 만큼 혹은 그가 찬성한다는 한 마디만으로 기사들이 앞 다퉈 타이탄을 탑승하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권터 후작이었으니, 그가 무슨 질문을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꿀꺽-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몸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 곳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오직 나와 권터 후작에게 쏠려 있었기에. 무엇보다 평범한 어조임에도 불구하고 권터 후작의 존재감이 이 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에.

그러나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고민할 것도 없이 그의 입에서 내가 그토록 고민했던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일세. 실전에서의 사용이 가능한 지. 나는 일평생 검만을 잡아왔기에 자세한 것은 모르겠네만, 저 녀석을 움직이기 위해 마력을 보통 많이 잡아먹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더군. 뛰어난 기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긴 시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며 권터 후작은 슬쩍 내 옆에 있던 미하일을 쳐다봤다.

“미하일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훌륭한 검무였네. 자네가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검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알겠더군.”

그 말에 미하일은 꽤나 감동받은 듯했다. 물론 황제에게 칭찬을 받을 때만큼은 아니었으나, 기사들의 우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에게 그 동안의 노력이 인정받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자네가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력의 양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 몇 미터를 넘어가는 오러를 뽑아낸 것뿐만 아니라 저 거대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제식 검술을 끝까지 펼친 뒤에도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레닐, 자네가 모종의 대책을 세워놓았기 때문일 게야.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네. 실전이란 오늘 벌어진 것처럼 쉽고 빠르게 끝나는 것이 아니야. 어떤 변수가 벌어질 지도 모르고 몇 시간이 넘도록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검을 휘둘러야 할 수도 있지.

타이탄이라고 했나? 이 병기의 위력은 잘 알겠지만 과연 실전에서도 제 위력을 내보일 수 있겠나? 이대로라면 보기에만 좋은 장식용 검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보기에만 좋은 장식용 검.

직관적인 비유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보기에는 좋지만 정작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그야말로 장식용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예상했던 내용이다.’

이번 시연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두 가지 전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마력의 소모. 그렇기에 권터 후작의 질문은 가장 깊이 있는 질문이었으나 치명적인 질문은 아니었다. 어디가 급소인 줄 아는데 방비를 해두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멍청이일 뿐이었으니까.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어차피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해결하는 편이 낫다. 게다가 질문을 한 이가 권터 후작이 아닌가. 기사들의 정점에 있는 그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이 주제를 또 다시 언급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먼저 말씀드릴 점은 타이탄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지금 보시는 외형은 개발 완료 직전입니다만, 후작 각하의 지적대로 타이탄을 움직이기 위한 동력원이 없는 상황입니다.”

“동력원이 없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물론 오늘 시연회를 위해 급조한 동력원이 장착되어 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문답이었음에도 여기에 있는 모두는 나와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시연회를 열었는지 파악한 듯싶었다. 하긴 이 정도 대화를 듣고서도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겠지만.

“제대로 된 동력원을 개발만 할 수 있다면······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시연회의 목적이 그러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줌으로서 타이탄과 동력원의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얼마의 손해가 생기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보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가능하겠나?”

“제국의 마법사들이 한 마음으로 연구에 참여한다면, 그에 대한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면 몇 년 내로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빈약하기 짝이 없는 설득력이었다. 향후 개발 계획이라던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시제품 혹은 최소한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증거 정도는 가져왔어야 설득력이 올라갈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위와 같은 요소들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건 시간이 없어서도, 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준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다분히 황제를 믿고서, 나의 이름값을 믿고서 던져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잘 통했다. 내가 뒷배로 삼은 것들이 보통 가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잠시 좌중이 침묵에 빠져들었을 때,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재밌겠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어조의 말을 꺼낸 이는 순식간에 앉아있던 자리를 벗어나 타이탄이 있는 자리까지 도달했다.

“이거, 나도 타볼 수 있나?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데.”

그 사람은 권터 후작, 지크 후작과 함께 제국의 세 자루 검을 이루고 있는 퐁크 후작이었다.

#

“너, 낯이 익은데? 우리 어디서 보았던가?”

“오래 전, 테라 방벽에 지휘관으로 오셨을 때 뵌 적이 있습니다.”

“아아, 그 때?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좋게 말하면 파천황적인 성격,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 만약 그에게 무시무시한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기껏해야 길거리의 양아치나 되어 불쌍한 양민들을 수탈하고 다녔을까. 그러나 그런 성격을 가지고도 이 곳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대귀족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내가 탑승해 봐도 되겠지? 아니면 주인이 정해져있어서 저 녀석이 죽기 전까지는 이 타이탄에는 못 타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후작 각하와 같은 마스터의 탑승을 감안하지 않고 만들었기에 섣불리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내가 아는, 세간에 알려진 그의 성격대로라면 내가 에둘러 안 된다고 말했더라도 막무가내로 타보겠다며 밀어붙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에게 유일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황제, 다리우스 3세는 옛적에 땅에 묻혔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보다 한참이나 어린 새로운 황제였으니.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다고 이렇게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는 뭣하니, 미하일이라고 했나? 다시 탑승해 봐. 한 번 검을 맞대보고 싶으니까. 직접 못 타면 그렇게라도 체감해봐야지.”

이 정도라면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손속을 나눈 직후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멈춰있던 분위기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결정 날 테니까. 그리고 퐁크 후작은 적어도 검에서만큼은 거짓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하일 경, 가능하시겠습니까? 힘드시다면······.”

“할 수 있습니다.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회복이 되었으니, 오늘 시연회는 끝까지 제가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차피 미하일 경이 아니면 지금 당장 타이탄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숨을 가다듬으며 타이탄을 움직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퐁크 후작에게 다가갔다.

“손속에 사정을 두셔야 합니다.”

제아무리 크기가 거대해지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이 실리더라도 결국 오러의 질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애써 만든 타이탄을 시연회에서 선보이자마자 망가트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신신당부를 해야만 했다.

“알겠다니까. 그보다 저쪽도 준비가 끝난 것 같은데, 휘말리고 싶지 않으면 너도 물러나있어.”

그렇게 성사된 인간과 타이탄의 대결.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공간을 울리는 굉음이 퍼져나갔고 이 곳에 있는 이들은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나와 아르민조차도.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네요. 적당히 조절을 하고 있음에도 밀리기는커녕 밀어붙이고 있으니.”

“마스터의 힘은 단순히 오러 블레이드의 존재만이 아니니까. 당연한 결과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타이탄을 탄 미하일 경이 오러와 오러의 대결이라지만 퐁크 후작을 상대로 유리한 싸움을 이끌어갔다면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몰아쳤을 것이다.

마스터가 괜히 일인군단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병기의 힘을 빌렸다지만, 마스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없다지만 검술, 경험 등의 격차를 힘으로 억누른 결과일 테니까.

그러나 그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던 결과였기에 실망감도 없었으며 몇 합이 지난 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히려 쾌재를 부르기에 충분했다.

“생각보다 묵직한데? 동등한 상대였다면 몇 합 지나지도 않아 검을 놓쳤을 거야.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나도 한 번 타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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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크 후작의 도움 아닌 도움을 통해 고비를 넘긴 내게 닥쳐온 두 번째 고비. 동시에 마력처럼 예상했던 두 번째 전제. 그건 바로

“타이탄이라고 했나? 타이탄의 양산을 위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하겠나?”

예산이었다.

“대략 [······] 정도입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에 또 다시 좌중이 들썩거린다. 감당 못할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만 만들고 말 것도 아니지 않는가. 황실기사단의 숫자만 하더라도 백 단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급이 될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체계가 잡히고 숙련도가 늘어날수록 조금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불어 겉면에 마법을 방어하기 위해 미스릴을 코팅할 계획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어디까지나 예상 금액입니다. 또한 타이탄이 가져다줄 메리트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비싼 금액은 아닐 것입니다.”

군사력의 상승.

타이탄을 관상용으로 둘 것이 아니라면 필연적으로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가져다 줄 것은 더 많은 땅과 재물. 그제야 그들은 타이탄이 보여준 충격에서 벗어나 더 먼 곳을 보기 시작했다.

“제국의 영광스러운 행보에 동참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3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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