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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1화 (9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1화 - >

“솔직히 이걸 입고 실전을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혹평이다. 아쉬운 소리를 들으리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지만 낙제점이라는 평가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부족함이 많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미하일 경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미진한 부분은 개선될 것입니다.”

“그것조차 감안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미하일 경도 저도 아닌 황제 폐하께서 하실 일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다고 하시더니 시작도 하기 전에 사적인 판단을 근거로 황제 폐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결국 결정은 황제가 하는 것이다. 설령 황제의 지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두 기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양산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황제의 지원이, 제국 전체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니까.

미하일 또한 마찬가지다. 그에게 떨어진 명령은 타이탄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 뿐, 활용 여부를 판단하는 임무가 아니었다. 그걸 상기시켜주자 그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아닙니다. 주제넘게 쓸데없는 사견을 넣어 임무를 방해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도대체 어떤 점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렸습니까?”

그러나 어중간한 인물이 올 바에야 차라리 이런 인물이 오는 편이 더 낫다. 괜찮다 혹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보다는 문제점을 확실히 집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확답을 내렸다면 그 근거조차 명확할 터, 만약 그 근거가 빈약하다면 당장 돌려보내고 적합한 인재를 찾아봐야겠지. 한 번 실패한 이상 황제의 눈을 무작정 믿고 있을 수만은 없을 테니까.

“첫 번째로 마력입니다. 드라그닐 경께서도 아시겠지만 기사와 마법사는 마력을 쌓는 방식도, 양도, 활용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다릅니다. 방금 전에도 마찬가지로 마치 사지를 움직이는 방법이 뒤바뀐 듯한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전투는 일이 분에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막대한 마력의 소비는 어떤 기사라고 하더라도 이어갈 수 없을 겁니다.”

충분히 예상한 이유다.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대책도 있었다. 아직까지는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지만 엔진의 존재가 대책이 되어줄 터, 나도 걱정하고 있는 점이 그가 맨 처음에 말한 점이었다.

심장에 서클을 쌓아올리는 마법사.

하복부에 단전을 만들고 채워가는 기사.

짧은 시간에 다량의 마력을 뽑아내는 마법사.

비교적 길게, 그러나 소량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기사.

똑같은 마력을 다루지만 역설적으로 공통점이라고는 마력을 다룬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제아무리 피드백을 받는다지만 과연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기사는 평균적으로 마법사보다 보유한 마력이 적었다. 그 말은 즉, 엔진의 성능이 보다 뛰어날 필요성이 있다는 뜻. 그렇기에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두 번째는 크기입니다. 드라그닐 경께서 타이탄이라 부르시는 이 병기의 크기는 5m 이상. 약 3배에 가까운 크기입니다. 저희들의 검술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크기의 인간을 대상으로 발전해온 것. 평생을 쌓아온 방식을 짧은 시간에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일리가 있다. 초기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형 몬스터를 보다 쉽게 상대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쪽으로만 사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필시 인간을 향한 칼날이 되리라. 그 때쯤에는 다른 국가들도 타이탄을 모방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평범한 기사들에게 약점을 내보인다면 아이러니한 일이 되리라.

“세 번째는······ 개선이 되리라 믿습니다만, 제 움직임을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단순한 동작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과연 제가 움직이고자 하는 타이밍에 이 금속 거체가 제대로 따라올 수 있을지, 설령 따라오더라도 차이가 있다면 큰 빈틈으로 이어질 터, 과연 기사들이 이 골렘을 믿고 목숨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미하일은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들었지만 결국 두 가지로 줄일 수 있었다. 마력과 타이탄의 거체. 다행인 점이라면 둘 모두 개선할 수 있는 방안과 의도가 있다는 점, 불행인 점이라면 두 가지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간다는 점일 것이다.

나도 알고 있었고 아르민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문제를 고칠 수 있냐는 점. 그런 의미에서 미하일의 존재는 후자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그 점들을 해결해 갈 겁니다. 그 해결책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이 미하일 경의 임무이고, 그 해결책을 알맞게 적용하는 게 저와 아르민이 할 일이죠. 한 번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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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무더운 여름이, 선선한 가을이, 추운 겨울이 지나갔으며 나와 아르민, 미하일 경으로 이루어져있던 연구소의 일원 또한 한 명 더 늘어났다.

“내가 너무 늦게 돌아왔나?”

“조조!”

수도에서 벌어질 정쟁을 피해서, 스스로의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제국을 떠나있던 조조가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겠다는 말이 결코 핑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한 단계 성장하여 돌아왔다.

6서클.

마탑에서조차 손에 꼽힐만한 수준의 마법사의 합류는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어찌 보면 반쯤 반칙으로 천재의 길을 걷고 있는 나와 달리 조조는 진짜배기 천재였으니까.

돌아온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이도 있는 법. 내 주변에서 내 수련을 봐주던 세레나,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완벽히 떠난 것이 아닌 볼 일이 생겼다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에 불과했지만 벌써 몇 개월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전에 연구소에 침입해 연구 자료를 빼돌리려 했던 정체불명의 단체는 내 예상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는 없는 법. 아르민을 납치하려했던, 연구소에 침입하려 했던 시도가 종종 생겼다.

물론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정체를 밝히는 것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단순히 범죄자들과는 다른 철저함으로 무장했었기에, 특수한 처리를 거쳤는지 내 실력으로는 그 흔한 잔류사념 하나 건질 수조차 없었다.

황실 정보부 또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제국 전체의 정보를 다루고 있었기에, 인원이 부족한 탓인지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어느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적들과 전체를 보호해야 하는 아군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런 수준의 세작을 계속해서 보낼 수 있는 곳은 얼마 없습니다. 어디서 보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타 왕국 중 한 곳일 겁니다.”

“괘씸한 자들이군. 감히 제국의 지식과 재산을 노리다니.”

어디까지나 예상일뿐이었기에, 목표조차 불분명했기에 방비를 강화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해결책은 있을 수는 없었지만.

“그나저나 짐을 찾아왔군? 분명히 다시 한 번 짐을 찾아올 때는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황제 폐하의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볼 수 있는 건가?”

“예. 황제 폐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신다면 그 동안의 성과를 뽐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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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기는. 오늘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황제 폐하와 중요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타이탄을 선보이기로 했다.”

몇 십 번의 작은 개량과 몇 번의 큰 개량을 거친 끝에 만들어진 타이탄 프로토타입 Mk.IV.

우리는 더 이상 외골격만을 가지고는 손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이상을 위해서는 타이탄 개발의 핵심 중의 핵심. 엔진을 개발하고 장착해봐야 한다고.

“이 정도라면 적응 기간을 거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연구 초반, 부정적이었던 미하일 또한 이리 말할 정도로 더 이상 외골격만을 가지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후하. 후하.”

“뭘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어? 시연회는 한 달 뒤야. 한 달 뒤. 최종 조율은 그 전에 끝낼 거고, 탑승은 미하일 경이 할 텐데.”

“그래도, 그래도 그 동안의 노력이 평가받는 자리지 않습니까.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참관하시다니, 이런 기회를 언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긴장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 타이탄은 미완성에 불과했으니까. 그 동안 수많은 준비를 했고 비밀리에 실전 테스트도 겪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 과연 외골격의 성능만으로 엔진의 개발 필요성을 황제를 비롯한 고위 귀족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딱 한 달만 더 노력하자고.”

시연회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타이탄의 강력함. 시간은 상관없었다. 엔진이라는 개발 예정인 물품이 그것을 해결하리라 설득할 수 있었으니까. 인간은 리스크와 리턴 중 리턴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크다면 더더욱.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한 달은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갔다. 내 생에 이렇게까지 빠르게 시간이 흐른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있었다. 아르민의 말처럼 그 동안의 노력이 평가받는 자리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였기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초대를 하셨는지, 내 동생을 독수공방시킨 물건을 이제야 볼 수 있는 건가?”

“또 뭘 독수공방까지 갑니까.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구는 정말 극비리에 진행이 되었기에 그 정체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시연회에 참석하게 된 이들의 얼굴에서 기대감과 호기심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 몇몇 있군.’

아르센 공작가의 새로운 가주인 마커드 아르센, 제국의 세 자루 칼 중 하나이며 테라 방벽에서 인연이 있었던 퐁크 후작의 얼굴도 보였다. 남부에서 다른 나라의 움직임을 경계하던 또 다른 검인 권터 후작의 모습도 보였으나 안타깝게도 장인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스승님과 유력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얼굴이 몇몇 보이던 와중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군. 모두들 선뜻 내 초대에 응해주어 고맙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모두들 어느 정도는 예상했겠지만 그대들을 불러 모은 것은 비밀리에 연구 중이던 병기를 선보이기 위해서요.”

“······폐하께서 직접 선보이시는 병기라니, 기대를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과거가 떠오른다. 지금도 테라 방벽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테라 방벽을 향해 지원이 출발할 때마다 제작해서 보내는 스콜피온의 시연회를 했던 기억이. 몇 년 전이었을까, 내가 테라 방벽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니 근 십 년에 가까운 일이었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오. 그럼 이제부터 진짜 주인공이 나서야겠군. 드라그닐 경.”

“······여러분을 모시고 타이탄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리를 만들어주신 폐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지금부터 시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1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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