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0화 - >
싸늘하게 식어버린 침입자들의 흔적을 중앙에 놓고 마법을 전개했다. 사전에 예상했던 대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녀석은 얼마 없었다. 이런 부류의 마법에 기본적인 소양은 있었지만 전공이 아닌 탓도 있었고 애초에 성공 확률이 낮은 탓도 있었다.
더군다나 대상의 영혼이 아닌 잔류 사념을 끌어올리는 일이었기에 시체에 내가 원하는 잔류 사념이 없다면 소용이 없었다. 죽은 지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잔류 사념을 끌어올리는 것 자체도 무리가 있었고. 그래도 연구소 가장 깊숙한 곳에 죽어 있었던 한 침입자로부터 유의미한 잔류 사념을 끌어낼 수 있었다.
“······?”
“정신이 드나?”
“죽지 않았던 건가? 분명히 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마지막 기억에서 죽은 줄 알았다고는 해도 다시 눈을 떴다면 백에 백은 어떻게든 산 모양이라고 생각할 터, 그러나 쓸데없는 희망을 길게 이어줄 생각은 없었다.
“죽었지. 기억 안 나나? 대충 흔적을 보아하니 정수리가 꿰뚫린 것 같던데.”
“······!”
“쓸데없는 한탄이나 들어줄 생각은 없고, 왜지? 무엇을 노리고 이 곳에 침입 한 거지?”
“흐흐. 내가 쉽게 알려줄 것 같······.”
“아, 뭐 그럴 줄 알았어. 괜히 대문짝만하게 대처법을 서술해놓은 것도 아니고. 제발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다.”
“무슨 개소, 끄아아악!”
처음 느껴보는 고통일 거다. 이 마법이 개발된 목적을 가장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고통을 주는 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들은 많았지만 지금까지 녀석들이 해온 짓들을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끄아아아!”
“자자, 피차 바쁜 몸인데 빨리빨리 하자고. 죽어서도 고통을 감내할 만큼 너희들한테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미 죽은 주제에 보복이 두려운 것도 아닐 테고.”
“하아. 하아.”
“자, 이제 말할 생각이 들었나?”
녀석의 입을 통해 얻은 정보는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건질 수 있었으니
“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건물 내에 존재하는 자료를 가져오기만 하면 큰돈을 주겠다는 의뢰가 들어왔을 뿐이라고!”
“의뢰? 누가 그런 의뢰를 했는데?”
“그건 나도 몰라!”
검은 달의 자체적인 행동이 아닌 누군가가 의뢰를 맡겼다는 것.
‘누구지?’
알고 있는데 그것만큼은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건지, 알고 있었지만 잔류 사념에는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몰랐던 것인지, 진실은 모른다. 결과는 의뢰주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과 추리를 하려고 해도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 뿐.
‘제국 내부에서부터 다른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집히는 곳이 너무 많아서 문제군.’
다음 날, 혹시나 기대를 해봤지만 황실기사단에 맡긴 두 생존자로부터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들 또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꼬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연구소 초입에서 붙잡힐 만큼 실력적으로 형편없는 놈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침입자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짚이는 곳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했다가 날벼락이 떨어진 아르민에게도 대책을 만들어놔야 했다. 중요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킬 힘은 턱없이 부족한 녀석이었으니 정체모를 이들이 조금만 눈을 돌려도 언제 어디서 납치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한동안 거처를 옮겨. 음······적어도 시연회를 통해 프로토타입을 선보이고 물적, 인적으로 추가적인 지원이 들어올 때까지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추가적으로 한 사람을 더 만나야겠다.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고 조금 과한 대처이기는 하겠으나 그 사람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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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우리 제국의 비밀 병기가 벌써부터 바깥에 드러나서야 쓰나. 그래서 배후는 알아냈나?”
“짚이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실마리는 잡았으니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알아내고자 한다면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황제를 만났다. 지금 이 사태의 원인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솔직히 현명한 대책이라고는 생각 안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악행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황제들과 영주들이 두고만 봤을까. 그 때마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침입 한 번 당했다고 뿌리를 뽑자니, 평소 내가 중요시하던 효율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은 효율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때도 있는 법. 게다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효율이 아예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일차적인 목적은 이런 의뢰를 맡긴 의뢰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지만 녀석들을 소탕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았으니까. 대표적으로 민심이라던가, 치안이라던가. 막 제위에 올라 본인의 위치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는 황제에게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덩치가 큰 놈들이라면 직접 움직이겠지.’
의뢰인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해도 좋다. 그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구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하청이 사라진 이상,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오히려 이 쪽에 더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그 놈들도 생각이란 것을 한다면 정체를 드러내놓고 행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녀석들을 한 번 손봐주기는 해야 했지. 걱정 말게.”
“더불어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해보게.”
“실력 있는 기사 한 명을 파견해주셨으면 합니다.”
타이탄은 결국 기사들을 위한 병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법사들이라고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나 기사들이 탑승하는 것만큼 큰 이득을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시제품을 제작함에 있어 기사들의 생각은 반드시 들어놔야만 했다.
또한 아직까지도 엔진의 제작은 멀고도 멀었기에, 타이탄에 한 번 탑승하고 나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기에 이후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체자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어느 기사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제국에 대한 충심이 깊고 입이 무거운 자였으면 합니다.”
“······음. 그건 내가 알아보고 보내주지. 다른 필요한 것은 없나?”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에는 지원해주신 것에 대한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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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가 하나 더 늘었군.”
녀석들이 연구소를 침입할 때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말뚝 모양의 아티팩트. 자세히 뜯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미스릴 코팅이라도 해야 하나.”
그럴 기술이 있는지는 둘째 치고 대책을 세우기는 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엄청난 돈을 잡아먹은 신병기가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으니. 목적은 간단하니 대책도 금방 세울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 안된다면 항마의 성질을 담고 있는 광물, 미스릴을 겉에 코팅하는 방법도 있었고. 돈이야 많이 들겠지만 이미 집이 물에 잠겼는데 물 한 바가지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제국에는 그만한 여력이 있었고 없다고 하더라도 날 잡고 제국 전체를 돌아다니다보면 광산 한두 개쯤은 발견할 수 있겠지.
“대제자님! 이것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일들이 산재해있었다. 완성된 다음에 생각해도 되는 것이라면 급한 일들은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었으니, 그러나 곧 시선을 다시 되돌려야만 했다.
똑똑-
“드라그닐 경 되십니까?”
“당신이?”
“황실기사단 소속 평기사 미하일이라고 합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미하일 경은 내가 원했던 최고의 인재였다. 황실기사단 소속답게 실력은 두말할 것이 없었으며 적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을 충심도 강해보였다. 필요한 말을 제외하면 묵묵한 태도도 마찬가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실지 들으셨습니까?”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의 명은 드라그닐 경의 연구에 적극 협조하라는 것. 필요하다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든든합니다. 하지만 너무 각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직접 한 번 보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연구실과 가까이 붙어있는 연구소 내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심처 중 한 곳. 들어가는 데에만 세 개의 문에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어지간한 기사들도 살아남기 힘든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내부에 잠들어있는 프로토타입 Mk.I.
“저건······?”
“제가,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시고 계신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정식명칭은 타이탄, 일차적인 용도는 대 몬스터 결전병기입니다. 아직은 시제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조건만 맞춰진다면 실전에 나서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간단하게 엔진의 설계만 끝난다면, 설계도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엔진의 제작만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실전에서 써먹을 순 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약점이 수도 없이 드러나겠지만.
“저건 골렘이 아닙니까. 제가 할 일이 골렘의 상대를 하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도 구상된 적 없는, 누군가는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진전된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미하일 경께서는 타이탄에 탑승해주셔야 합니다.”
“······예?”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따라오십시오.”
타이탄에 탑승하는 건 어렵지 않다. 동기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 어려운 건 아무리 동기화를 했다지만 인간의 적은 마력으로 거대한 동체를 자랑하는 타이탄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엔진이 장착된다면 문제가 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어지간한 마력량으로는 간단한 움직임조차 버거울 터, 그러나 제국 제일을 자랑하는 황실기사단의 이름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들리십니까?”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군요.”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지금부터 제 말에 따라 움직여주시면 됩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사와 마법사의 차이. 그 결과가 제발 좋은 쪽으로 나오기를 바라며 타이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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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음······.”
가벼운 테스트가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 거의 탈진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깥으로 나온 미하일을 부축해 휴게실로 돌아왔다.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소감을 들으려할 때, 이어진 그의 말은 내 예상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말이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미하일 경을 파견받은 것이니까요.”
“솔직히 이걸 입고 실전을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90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