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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81화 (8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81화 - >

책이 쌓이고 쌓여 천장에 닿을 정도, 그런 더미가 책상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퀴퀴한 종이 냄새로 가득할 것 같은 그 곳에 내가 있었다. 보존 마법이 걸려있었기에 냄새 따위가 날리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허탕이네.”

골렘.

흙과 돌을 비롯한 각종 광물을 바탕으로 한 인형에 핵을 중심으로 마력을 부여하고, 역할에 걸맞은 명령을 입력시킨 또 다른 의미의 아티팩트였다.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면 골렘을 강화하고 사람을 탑승시키면 타이탄이 되는 격이라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몰두하고 있는 학문이기도 했다.

다행히 골렘은 무척이나 메이저한 학문이었기에 자료를 구하는 일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기초에서부터 심화과정까지, 마탑의 서고를 잘 뒤지다보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마법사 개인의 비기를 찾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쓸모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No라고 말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똑똑-

“조금 쉬었다가 하세요.”

“아, 고마워.”

그 날 이후, 나는 거처를 옮겼다. 물론 마탑에서 아예 방을 뺀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 내내 연구실 겸 침실에서 머물렀던 것과 달리 어지간하면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혼이었기에. 서약서에 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신랑 되는 사람이 일을 이유로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근무지에서 시간을 보내면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와 그녀의 불화에서부터 가문끼리 사이가 틀어졌다드니, 그 정도면 다행이지 사람의 상상력은 끝이 없는 법이라 입에 담기 어려운 낭설들이 난무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녀가 지게 되겠지. 어쨌거나 남성의 위상이 더 높은 시대이니까.

그리고 주변의 시선은 둘째치더라도 그녀부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관계로서 보내게 될 텐데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오해를 불어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게다가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 곳이 더 편했다. 물론 식사를 제외한 어지간한 일들은 마법으로 처리가 가능했고 끼니 또한 마탑 내부의 식당에 가면 될 일이었기에 마탑에서의 생활이 불편한 적은 없었지만 나를 챙겨주려는 이들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컸다.

“잠깐 밖에 다녀올게.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올 거야.”

단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실험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점. 장소가 좁은 문제야 공간을 확장하면 된다지만 공간 확장 마법은 정말 단순하게 공간을 확장할 뿐, 그 내부 물질까지 확장시켜주지는 않는다.

방의 크기를 두 배로 늘린다고 침대의, 책상의 크기까지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즉 실험에 필요한 물건들은 외부에서 공수를 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야 외부로 나가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간편했으니까.

“어디 보자. 시작해볼까?”

그렇게 도착한 수도 인근의 야산. 재료도 충분하고 공간도 충분하니 지금까지 자료를 수집한 것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적절한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일어나라!”

골렘을 제작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준비물은 골렘의 핵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무언가. 이 무언가의 조건은 단 하나뿐이다. 마력을 지니고 있을 것. 이론상으로는 나뭇가지라도 골렘의 모습을 유지하고 움직일 마력만 보유하고 있다면 핵으로서 작동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골렘의 신체가 되어줄 재료들. 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골렘의 이름이 바뀐다. 흙이면 머드 골렘, 돌이면 스톤 골렘, 강철이면 아이언 골렘 등등. 당연히 원 재료가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골렘 또한 강해지지만 무거울수록 같은 마력일 때, 움직이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 두 재료가 갖춰졌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핵을 재료와 같이 놔두고 미리 짜놓은 술식대로 마력을 쏟아 부으면 완성. 핵이 부서지지 않는 한, 마력이 전부 소진되지 않는 한 지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충실한 병사의 탄생이다.

쿵-

대략 크기는 5m 정도 되어 보이는 머드 골렘.

우지끈-

도처에 널려있는 흙을 재료로 삼았음에도 어지간한 나무 정도는 이쑤시개마냥 부러트릴 수 있는 괴력과 어지간한 무기로는 흠집 내는 것이 고작인 방어력까지. 전쟁에 투입된다면 병사들에게 있어 공포로 군림하리라.

“하지만 그러기엔 많이 아쉽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크기와 무게에서부터 나오는 육중한 파괴력은 엄지를 치켜들 만 했으나 그에 반비례하는 속도는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기사들에겐 덩치 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으니,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활용하는 것이 아님에야 실전에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몬스터에게 활용하자니 이 정도 괴력과 덩치는 상위종 몬스터들에게는 별 것 아니기도 했고. 한 마디로 효율이 좋지 않은 병기였다. 그럼에도 연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 가능성과 원리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겠지.

‘조금만 깊게 파고들다보면······.’

골렘이 반드시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 취향과 필요에 따라 평범한 인간 크기일수도,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골렘의 가장 큰 장점인 핵이 부서지지 않으면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다는 점을 살리기 위해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게 되었을 뿐.

‘드래곤도 가능하겠지.’

굳이 모양을 드래곤으로 잡을 필요도 없었다. 내게는 골자가 되어줄 뼈도, 파괴력을 담당할 살도, 방어력을 담당할 비늘도, 핵이 되어줄 심장까지 있었으니까. 전설을 현세에 강림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조금 아깝지.’

그렇게 드래곤 골렘을 만들어봤자 내가 상대했던 녀석의 마이너 버전이 될 뿐이었다. 파괴력은 확실히 봐줄만 하겠지만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보기 좋은 장식물 수준이겠지.

게다가 그 모습을 다른 드래곤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녀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들은 이상, 섣불리 시도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크기를 줄이더라도 마찬가지.

부스스-

불가능한, 시도할 필요가 없는 잡생각을 접어둔 채, 머드 골렘의 외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네모졌던 외형을 거의 인간과 유사하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다.

“대충 나아갈 길이 보이네.”

타이탄을 동작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타이탄 내부에 공간 확장 마법을 걸고 탑승자와 타이탄을 동기화하는 방법. 전생에서 내가 어릴 적 즐겨보았던 ‘슈퍼 그X죠’라는 만화에서 봤던 방식.

두 번째는 제일 단순하게 인형탈을 입듯 팔에 팔을, 다리에 다리를 집어넣는 방법. 이것도 동기화는 해야겠지만 적응하기에는 가장 빠른 방법이리라.

세 번째로 각종 만화에서 나오던 건X처럼 버튼을 조작하면 사전에 정해둔 동작을 실행하는 방식.

실제로 제작 후, 실전에서 테스트를 해봐야 어떤 방식이 제일 효율적인지 알 수 있겠지만 세 갈래나마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

“······이상이 내가 짜놓은 계획이다. 하고 싶은 말은?”

“역시 대제자님이십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그건 이제부터 너와 내가 생각해야지.”

“······둘이서 말입니까?”

“당연하지.”

스승님께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프로젝트가 일정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연구원은 나와 아르민 뿐이었다. 다른 이유들도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라 한다면 역시 보안.

비밀병기는 비밀일 때 가장 효과가 좋고 우리 편만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타이탄의 등장 무대가 될 곳은 몬스터의 대지. 그 사이에 적국이 타이탄을 빼돌리거나 복제해 국경에 배치 혹은 침공을 한다면 내 목표는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러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글쎄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맞는 말이지만,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

정답은 탑승자와 타이탄을 동기화시키는 술식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응용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고 비슷한 방식의 술식들도 꽤나 있으니까. 중요한 건 정확도와 반응 속도. 알겠지?”

“예!”

우리는 인간 크기의 골렘을 상대로 실험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인간과 골렘의 움직임을 동기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예상했던 걸림돌에 부딪쳤다.

“이 이상은 못 따라오네.”

“술식의 문제라기보다는······내부 구조의 문제 같습니다.”

술식을 개량해나가는 도중 어느 시점부터인가 골렘의 움직임이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복잡한 동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속도를 끌어올리니 파손되어 떨어져 내리는 흙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재료를 바꾸면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좋지 않겠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쭉쭉 치고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 생각나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고. 그런 의미에서, 아르민.”

“예?”

“해골 좀 구해와.”

“예?!”

“뭘 그렇게 놀라? 누가 진짜 해골 가져오래? 마탑에 모형 있을 거 아니야. 내 이름 대고 가져와.”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하고 싶다면 내부 구조도 사람과 똑같아야겠지. 완벽하게 똑같을 필요는 없다지만 적어도 관절만큼은 똑같아야했다.

“확실히 저번보다는 괜찮은데? 조금 더 개량할 필요는 있겠지만 움직임이 꽤나 자연스러워졌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서는 동기화되는 기점을 모든 관절에 연결할 필요가 있었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한정지을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만 골렘은 아니었으니까.

“하다보니까 정말 인간을 만드는 것 같네요. 거대한 인간.”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감상하는 건 그쯤하고, 넋을 놓는 건 완제품을 보면서도 충분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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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와 아르민은 술식 짜는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타이탄의 기동에 필요한 술식을 짜올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해가 뜨기 전에 연구소로 출근해 달이 머리 위에 있을 때, 귀가하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그래도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니 쉬이 지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필요한 자료를 챙기기 위해 마탑 내부의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오래 전부터 그 곳에 있었다는 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의 그녀를 확인하고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내가 여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습게 들렸나보지?”

“······그 때부터 몇 달이 흘렀는지 아십니까? 인간이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한 곳에 가만히 있습니까?”

두 번째 만남이라서 그럴까, 첫 번째보다는 훨씬 나았다. 적어도 할 말은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은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듯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서더니 검지로 내 왼쪽 가슴을 툭 건드렸다.

“뭐, 그건 됐고.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일······말입니까?”

“그래. 일.”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81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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