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77화 - >
“누구······십니까?”
눈앞의 존재는 불가사의했다. 불가사의하다는 말 외에는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하며, 어른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순. 어울릴 수 없는 상반된 존재가 이렇게까지 잘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아니 상상 속에서만 그려지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나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조금 놀랍다거나 경이로운 정도로 끝났을 뿐, 지금처럼 존재감에 억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존재가······있었다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양이를 마주한 쥐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눈앞의 존재에게 잡아먹힐 거라는 두려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는 압박감. 그러나 가장 미치겠는 건 눈앞의 존재에게 무슨 짓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력감이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강적을 조우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아직 미숙하던 시절, 가을 원정을 떠나 마주한 수많은 몬스터들. 마정석 광산의 건으로 협상을 하려했을 때의 지크 후작. 마지막으로 처음 마주했던, 동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며 땅속에 숨어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한 것에 감사해야했던 드래곤까지.
그 때도 물론 상당한 압박감과 두려움을 받았지만 현재, 눈앞의 존재를 마주하고 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흐음. 고작 이 정도에 그런 반응이라니, 동족이 아님에도 동족의 냄새가 풍기기에 어떤 괘씸한 녀석인가 했더니 운이 좋았을 뿐인 피라미였나?”
다행히 눈앞에서 담담히 제 할 말만 내뱉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파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혹은 그녀가 계속해서 입에 담고 있는 한 마디, 동족.
나에게서 풍긴다는 동족의 냄새. 스승님 수준의 기사나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도주만큼은 할 수 있는 나를 기세만으로 옴짝달싹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감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이런 짓이 가능한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과는 차원이 달라.’
몬스터의 대지에서 일 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한 끝에 마주했던 ‘그 녀석’. 물론 그 녀석도 강력한 적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내가 마주한 적들 중 가장 강력한 적이었으리라. 물론 지금 이 순간 두 번째로 밀려버렸지만.
어쨌든 그 녀석도 드래곤이었다. 내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눈앞의 존재도 드래곤일 것이고. 아니 동족이라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드래곤일 터, 그런데 이 압도적인 차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개라고 해서 다 같은 개가 아닌 것처럼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다 같은 드래곤이 아니라는 말인가. 어쩌면 내가 첫 번째로 만난 드래곤은 반푼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입으로 동족이라고 했으니 같은 종은 맞겠지만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까운 돌연변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리 없었다.
“흐응. 하지만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짙은 냄새를 풍길 정도라니, 우리 동족 중에 그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 있었나?”
다행히 내 마음까지는 읽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간에 제 할 말만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었으니, 그러나 도대체 이 붉은 머리의 드래곤이 무슨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동족의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만약 그 목적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라면 나는 100% 죽는다. 단언할 수 있다.
아마 생채기조차 내기 어렵겠지. 물론 그 이후 어느 때보다 경계가 삼엄한, 제국의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에서 드래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 때, 나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닐 텐데.
킁킁-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성은, 아니 여성인가?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를 그 존재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주변을 빙빙 돌며 눈을 감은 채, 코를 들썩이며 냄새를 맡았다. 그 기묘한 행동에도, 누가 보더라도 방심을 한 상대에서 불의의 일격을 먹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나는 눈동자만을 데굴데굴 굴리며 그 혹은 그녀의 움직임을 간신히 따라갈 뿐이었다.
‘움직여라. 움직여!’
까딱-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부터 서서히 경직이 풀리기 시작했다. 최고의 몸 상태였다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을,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서 맡아본 냄새기는 한데······. 너무 오래 살았나, 이런 건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야. 이봐.”
“······예.”
“내가 누구인지 대충 알아차린 것 같은데, 설명해봐. 어떤 멍청한 녀석이 병신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입을 다물어야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과도 같은 거짓을 꾸며내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당장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또 모르지. 내가 단순히 냄새를 풍기는 수준이 아니라 동족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짓을 벌일지는.
“······.”
그렇게 눈치를 보며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이 마주쳤다. 붉은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은 눈동자. 동시에 깨달았다.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는다면 재미없을 거라고, 거짓말은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을.
“······올해 초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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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아직 살아 있었나?”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뒤,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의 첫 마디는 위와 같았다. 그러나 그 대답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나대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아무도 오지 않지?’
이 압도적인 존재감, 막대한 마력까지. 제국에서 제일 마력을 잘 다루는 이들만이 모이는 이 마탑에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상함을 느끼고 찾아오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도 손발이 저릿저릿할 정도인데.
물론 그들이 와봤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아직까지도 이 존재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널 도와줄 사람이라도 기다리고 있어?”
“!”
“그런 거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적어도 내가 이 곳에 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이 곳을 찾지 못할 테니까.”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어떻게 할까?”
아마도 모종의 수작이 부려져있을 방에 침묵에 빠져들었다. 철저한 을의 입장에 처한 지금, 상황의 주도권을 잃고 갑이 이끄는 대로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을의 서글픔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절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지?”
“동족을 죽였지 않습니까. 그 복수를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그 녀석의 비늘 색도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처처럼 붉었다. 조금 더 검은빛이 섞여있기는 했지만. 만약 지금의 모습이 폴리모프한 모습이라면 같은 동족을 넘어 계열일 확률이 높으니 나를 죽일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둥-
“크윽.”
그러나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몸을 짓누르던 기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무언가 특별한 징조는 보지 못했는데, 단순히 기분이 나빠진 것만으로 이 정도 압박감이라니, 섣불리 나서지 않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따위 반푼이와 나를 똑같이 취급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지만······. 일족의 수치나 다름없는 놈을 지워주었으니 한 번쯤은 아량을 베풀어주지.”
동시에 마치 중력이 강해진 것처럼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도 해소가 되었다. 그나저나 일족의 수치라니. 그러면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차이가 설명이 안 되지.
“감사, 합니다.”
“너는 내가 그 녀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너를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안심해라. 그런 녀석 따위를 일족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원수를 갚을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 오히려 방금 전의 쓸데없는 말만 아니었다면 잘 했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털썩 의자에 앉더니 벌려진 공간 틈 사이로 술병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 입에 들이부었다. 술은 싫어하는 편이지만 은은하게 방 안을 채우는 술 냄새만으로도 그녀가 물 마냥 들이켜고 있는 술이 매우 독하며 그러나 무척이나 좋은 술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녀석은 내가 처리하려고 했었지. 위대한 종족으로 태어난 주제에 마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야, 일족의 수치나 다름없지. 그래도 늙은이들이 같은 일족이랍시고 손을 못 대게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잘했어! 적어도 그 녀석을 죽인 것 때문에 너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지.”
후, 다행이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어서. 동시에 녀석과 그녀의 이질감의 정체까지도 파악할 수 있어서. 왜 마법을 쓰지 않고 육탄전만 고집했는지, 그러면서도 막대한 마력의 홍수나 다름없는 브레스를 왜 뿜어낼 수 있었는지.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한 마디에 너무 일찍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손을 대지 않겠지만 그런 녀석이라도 같은 일족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거든. 오늘 네 냄새를 맡고 온 것이 나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거야. 다른 녀석들이었으면 지금 내뱉는 말 대신에 손이 먼저 나갔을 테니까.”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녀석이 특별히 약한 것처럼 그녀가 특별히 강한 것이 아니라면 이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이 나를 적대시한다는 뜻이 아닌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녀가 나를 특정 짓고 찾아온 것이 아닌 것처럼, 나를 만나기 전까지 녀석이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처럼 들키지만 않는다면 괜찮으리라는 점?
‘말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이군.’
동일 면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냄새를 맡자마자 정확히 나를 찾아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를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모르겠네. 그 녀석이 얼간이에 멍청이, 같은 일족이라는 게 수치스러운 병신 같은 녀석인 건 맞지만 인간 따위에게 죽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자기 할 말만 계속하던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의문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동시에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머물렀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내 책상 위에 올라와있는, 아공간으로부터 뽑아낸 [발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흠, 저거 네 거야?”
“그렇습니다만······.”
“가져와봐.”
강탈하다시피 [발톱]을 나에게서 앗아간 그녀는 한참이나 발톱을 들여다보더니 “과연.” 이라던가 “스읍.” 등 자기 세계에 빠져있더니 이내 나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너, 정체가 뭐야?”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77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