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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61화 (6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61화 - >

‘타이탄 프로젝트라······.’

고대에 존재했다고 하는 신화 속의 종족, 타이탄.

만약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타이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힘을 가진 단체가 이 연구를 받아들인다면 이름에 아깝지 않은 연구가 될 터였다. 그 때부터 더 이상 전쟁은 인간들의 싸움이 아닌 거인들의 싸움, 타이탄의 싸움으로 변할 테니까.

누가 더 많은 숫자의 타이탄을 보유하고 있는가, 누가 더 뛰어난 성능의 타이탄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더 실력 있는 파일럿을 보유했는가가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겠지.

‘어떻게 할까.’

지금으로서 이 연구는 그저 망상의 집합체다. 구체적인 계획이라고는 잡혀있지 않은, 오직 이론으로만 쌓아올린 위태로운 탑. 그 과정에서 이론으로만 가능한 과정을 해결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과정들이 많았다.

고작 3서클에 불과한 아르민으로서는 지금껏 해온 연구가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고, 현실에 구현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뒤흔들 만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줄 후원자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단순히 개인 수준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연구였으니까.

하지만 나라면 다르다. 설령 연구가 조금 부족하고 허점이 있더라도 나는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나 이런 시기라면 더더욱.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물이 나오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릴 터, 이 곳에 오기 전 황제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으니······.’

황제의 나이가 예순을 넘긴지 한참이었다. 황제 또한 일선에 나설 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수명은 평범한 이들보다 길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몸에 좋다는 것들은 모조리 챙겨먹는 것은 물론 제국에서 가장 솜씨 좋은 이들이 달라붙어 건강을 챙겼을 테니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황제로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 받아야하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또한 평범한 수준은 아니었다. 자잘한 일들을 황제가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륙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가진 제국이다. 황제가 직접 살펴야 하는 일이 적을 리가 없었고 노년의 황제는 그걸 버텨내지 못했다.

황제를 직접 살펴본 스승님께서 호전시킬 방법이 없다면 몇 년 버티지 못할 거라 하셨으니 틀림없겠지.

‘유력 후보는 세 명.’

다리우스 3세는 슬하에 많은 자식들을 두었다. 처에게서 둔 자식만 하더라도 두 손이 간신히 셀 정도였으며 첩에까지 이르면 두 손 두 발을 모두 동원해도 무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들은 처 소생의 세 아들들이었으나 아직까지도 황제가 후계를 선정하지 않았기에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누구 하나 만인지상의 자리를 포기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을 연명해야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일찌감치 계승권을 포기하고 몸을 의탁하는 것이 아닌 이상 최후에 살아남은 이가 경쟁자들을 살려둘 리 없잖은가.

나에게도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황자들의 요청이 있었던 만큼 현재의 수도는 폭풍전야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나는 그런 황자들을 나는 일개 마법사일 뿐,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말로 돌려보냈지만.

그런 만큼 타이탄 프로젝트는 황자들에게 있어 꽤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일 것이다. 연구가 성공하여 결과물만 뽑아낼 수 있다면 유력 후보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을 더 확실하게 굳히며 경쟁자들을 떨어뜨려낼 수 있는, 몇 걸음 뒤에 있는 이들에게는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물론 아르민 혼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떨거지 마법사의 현실성 없는 공상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겠지만. 눈을 떠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아르민의 얼굴을 마주했다.

“저는 고작해야 이론으로 쌓아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대제자님께서는 벌써 소형화에까지 이르셨다니! 역시 대제자님이십니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예, 예?”

“테라 방벽에서 복무한 지 얼마나 지났냐고.”

“이, 일 년 조금 넘었습니다.”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르민은 대답을 서둘렀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나를 찾아온 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걸 지금까지 나에게만 보여줬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망상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라고 아예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다만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쳤을 뿐.

나조차도 각인이 없었다면 갑옷은 물론이거니와 [이빨]과 [발톱]을 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만큼 마법으로 지금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방향성은 괜찮아. 허점을 보완하고 현실적으로 가다듬어야겠지마는.”

“그, 그 말씀은······!”

“하지만 이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너도 알겠지만 이 연구는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야. 막대한 지원과 더없이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테라 방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이제 일 년이 지났다면 앞으로 구 년이 남은 셈인데, 내가 이 연구를 지원해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네가 테라 방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턱-

읽고 있던 연구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다 좋다. 그러나 정작 연구를 진행할 장본인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물론 내가 이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아르민보다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남의 연구를 뺏는 취미는 없을뿐더러 아르민의 연구 자료 없이도 나는 나만의 ‘타이탄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수 있었기에.

“그, 그건 대제자님께서 조금만 힘을 써주신다면 저 하나쯤은······.”

“어림도 없는 소리.”

아르민은 좋은 마법사였다. 실력은 남들보다 뒤떨어지거나 비슷하더라도 남들이 가지지 못한 시야를 가졌다. 그것이 단순히 연구에 쏟은 시간을 포기하지 못한 어리석은 미련일지, 미래를 내다본 뛰어난 식견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가 그를 테라 방벽으로부터 빼낼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의 시야는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도 있겠지만 자고로 물량 앞에 장사 없는 법. 초반이라면 모를까, 이 연구는 내가 말했듯 개인이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수많은 마법사들이 달라붙게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아르민의 빈자리쯤은 얼마든지 채울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살아남아봐. 공을 세우든, 시간을 다 채우든. 어떤 식으로라도 테라 방벽에서의 복무를 끝내고 온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어차피 지금의 나는 아르민을 도와줄 수 없다. 타이탄이 되었건 기간트가 되었건 내 목표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기에, 내가 수도에 돌아갈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그 때는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

#

훙-

위험했다. 재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면 투구를 착용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큰 타격을 받았을 거다. 진검을 든 것도 아니고 목검을 손에 쥐었음에도 지금껏 내가 상대해온 어떤 기사들보다 눈앞의 지크 후작이 몇 배는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한눈팔지 마라! 한 번 피했다고 끝이 아니야! 그렇게 허겁지겁 피해서 다음 공격을 어떻게 받아내겠다는 거냐! 계속해서 그 따위로 할 거라면 복수는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사전에 예고했던 대로 나와 지크 후작을 매일 아침을 수련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맨 처음, 수련을 갓 시작한 때로 돌아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난 아닌데.’

저런 지적을 받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의 나는 기사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크 후작을 상대로는 달랐다.

단순히 힘과 스피드, 반응속도와 같은 신체적인 능력에서부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험과 같은 요소들까지. 특히나 내가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알고 있다는 듯 다음 동작을 이어가는 것은 경험의 차이도 있겠지만 또 단순히 경험만으로 메울 수 있는 차이 또한 아닌 듯 했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예.”

“어렵지 않지.”

그래서 물어봤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에 대한 대답은 복잡하진 않았다. 다만 말만 복잡하지 않을 뿐이었다.

“목을 돌려보게.”

“예?”

뜬금없는 그의 지시였으나 잠자코 따랐다. 지크 후작이 괜한 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

“더, 더, 더, 더, 더.”

“이 이상은 무립니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라서도 지크 후작은 더 하라는 말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제 아무리 마력을 다루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자부하더라도 결국 인간이었다.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뇨?”

“상대가 인간인 이상, 아니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상 할 수 있는 동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관절을 부러트릴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 한계 내에서, 내 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동작들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눈, 팔, 다리, 몸의 중심 등이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하면 다음 동작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지.”

말이야 쉽지, 그 짧은 시간에 그걸 다 감안하고 판단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그의 말처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면 이제 와서 내가 그에게 자문을 구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애초에 마법사인 자네가 매달릴 분야가 아니야. 규격 외의 적을 상대 하니만큼 하나라도 더 준비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어렵지도 않겠군. 덩치가 큰 만큼 동작을 파악하기도 쉬울 테니 말이야.”

다음 날부터 아침 수련의 내용이 약간은 달라졌다. 지크 후작은 일부러 동작을 크게 가져가며 내가 보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대신해서 동작의 연계는 더 탄탄해졌기에 내가 파고들 틈은 여전히 없었지만 준비 동작을 보고 어떻게 공격이 들어올지 파악하는 것에는 점점 능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날씨가 외부 활동에 문제를 줄만큼 혹독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테라 방벽 내에서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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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잉-

날씨가 제법 풀렸지만 그럼에도 아직 바람이 차가웠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쌓여있던 눈 또한 대부분 녹아내렸으나 반대급부로 땅은 질퍽거려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겨울은 길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금세 겨울이 찾아올 테니 머뭇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개인 활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겠지. 몇 년 사이에 나라도 함부로 건들기 애매한 녀석이 되었으니.”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얌전히 있지만 언젠가 제국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지도 모르기에 너를 보내는 것이다. 반드시 승리해서 돌아와라. 제국의 인재를 몬스터 따위에게 내어줄 수는 없으니.”

복수의 서막이 올랐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61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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