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60화 - >
“아깝네. 흥이 돋아서 너무 남발했어.”
지금까지 사용한 총알은 보통 총알이 아니다. 갑옷처럼 순수 미스릴까지는 아니더라도 총알 한 발 한 발에 미스릴 가루를 섞고 코팅까지 거친, 소모품이라고 취급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과 품질을 자랑하는 총알이었다.
물론 완전한 소모품은 아니었다. 탄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보여준 놀라운 관통력과 파괴력은 오직 마력을 바탕삼은 각인의 위력이었으니까.
총알의 강도가 그걸 버텨주지 못했다면 제 위력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며 미스릴을 섞어 총알 한 발에 저장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을 늘리지 않았다면 이런 위력을 뽑아낼 수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위력이긴 했다. 그리고 그런 위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총알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을 - 각인을 형성하기 위한 마력과 미스릴이 자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마력까지 - 한순간에 산화시켜 위력으로 전환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화력이었다.
방벽을 내려가 몬스터의 시체를 뒤져 총알을 재활용한다고 하더라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잡철보다도 못한 강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괜찮다. 앞으로는 주의하면 되니까. 애당초 아공간 내에는 방금 전 전투에서 사용한 총알보다는 못해도 어지간한 상위종은 즉살시킬 수 있는 총알들이 한가득 쌓여있는 만큼 중요한 순간에 탄약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겨울, 겨울만 지나가라.’
아무리 나라도 한겨울에 몬스터의 대지로 향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나와 녀석의 전력 차는 좁히기 어려울 만큼의 간격이 벌어져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주변 환경까지 나에게 불리하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털끝만큼의 가능성이라도 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겨울은 피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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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의 교류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곳이 테라 방벽이었다. 제국 그 어느 곳보다도 폐쇄적인 곳이었고. 그렇기에 작은 화젯거리가 하나라도 만들어지는 순간, 메마른 산에 불씨가 바람을 타고 번지는 광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
어쩔 수 없었다. 어제의 일은 나에게는 몇 년의 시간과 어지간히 부유한 귀족들조차 머뭇거릴만한 돈이 투자된 결과였다. 그런 만큼 나에게 있어서 어제의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혹은 살짝 아쉬운 결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타인이 보기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감탄, 경악, 경외 등등의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들이 가라앉을 때쯤이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지에 대해 궁금해질 터,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소한 물건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빨]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두루뭉술하게라도 물어오는 이가 없었으니, 그 동안 내가 쌓아온 위치와 마법사 개인의 연구 성과를 물어보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겹친 결과였다.
“네 녀석은 매 번 나를 놀라게 하는군. 그게 네가 준비한, 녀석의 숨통을 끊어낼 칼이냐?”
“강철조차 베어내는 명검일지, 실 하나 끊지 못하는 녹슨 검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녀석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 뒤로도 테스트는 계속되었다. 예상대로 녀석을 상대하기 위한 특제 총알이 아니더라도 강철로 만들어진 양산형 탄환으로도 상위종을 죽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돈을 아끼지 않고 주머니가 허락하는 대로 투입한 미스릴 덕분일까, 계속되는 마력의 투입과 방출에도 불구하고 총신은 약간의 뒤틀림도 없이 튼튼한 내구도와 높은 신뢰성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두 번의 청색경보와 한 번의 황색경보를 통해 [이빨]을 철저히 갈고닦은 이후, [발톱]을 가다듬는 과정은 지금까지보다도 더 화려하고 인상 깊었으되 더 위험했다.
긴 사거리, 높은 관통력을 가지고 있지만 급소를 노리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파괴력은 부족한 - 총알에 새겨 넣은 각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관통력에 비해 파괴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 [이빨]과 다르게 [발톱]은 짧은 사거리, 보통의 관통력, 높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지금까지 충분한 거리와 안전한 상황, 한 번쯤은 실수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과 달리 [발톱]을 손에 쥔 이상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와 얼굴을 마주하며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들과 같이 근접전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크아아아-
이렇게 가까이에서, 구속되지 않은 채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마주하는 것이 얼마만인가. 전생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납탄이나 자시고 뒈져라, 이 악마야.] 라는 말이.
완벽히 똑같지는 않으나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보고 감탄한 총기를 모티브로 하여 [발톱]을 제작해냈다. 위력 또한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탄환이 파고들면 그 안에 잠들어있는 작은 탄환들이 이차 폭발을 일으키는 구조였으니까.
“납탄이나 자시고 뒈져라, 이 악마야.”
내가 쏘고 있는 탄환이 납탄도 아니었고, 대상이 악마도 아니었지만 악마가 별 거던가. 이미 이 곳의 사람들에게 몬스터는 악마,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쿵-
오래 전,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일격으로도 잠시 몸을 멈칫하게 만드는 것만이 최선이었던, 두 뿔에서 파직거리는 전격이 인상적인 마수, 베히모스.
그 때는 양뿔 사이의 미간에 정확히 총알이 박혔음에도 베히모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지크 후작이 타이밍 좋게 나타나 목을 베지 않았다면 금세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방벽을 무너트리려고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머리도 아닌 무릎. 총열이 두 개라는 이점을 살려 순식간에 화력을 쏟아 붇자 결코 굽히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몸이 무릎을 꿇었다. 부위가 부위인 만큼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나의 눈에는 보였다.
일차적으로 파고든 총알로부터 튀어나간 제 2의 총알들이 화염, 전격, 빙결, 부패 등등 각종 상태 이상들을 녀석의 몸에 적립시키고 있는 모습이.
몬스터 주제에 고통으로 정신줄을 놔버리기라도 한 건지 근육의 잔 떨림만 느껴질 뿐,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숨결이 녀석이 아직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에 화답하여 녀석의 머리에 다시 한 번 탄환을 먹여주자 두개골을 박살냈는지, 뇌수가 흘러나왔다.
“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방벽 위에서도 그랬지만 방벽 아래로 내려온 지금,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잠시만 한눈을 팔더라도 사방팔방으로 몬스터들이 달려들 테니. 그렇기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고 싶었지만 다시 발을 옮겼다. 아직 탄환이 자신들의 몸에 꽂히기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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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위험한 행동이었어.”
“녀석과의 전투는 장기전이 될 겁니다. 적어도 제가 승리하는 시나리오에서는, 누군가가 저를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녀석의 발톱에 찢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입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판단이군.”
내가 테라 방벽에 돌아온 뒤, 나와 지크 후작은 꽤나 많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혹시나 그 동안 그 녀석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것은 없었는지, 내가 혹여나 실패한다면 테라 방벽에 대한 여파는 없을 것인지 등등.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매일 아침, 나를 찾아오도록. 네 판단이 그렇다면 내가 직접 단련시켜주지.”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고, 제 개인적인 일에 각하의 시간을 뺏을 수는······.”
“아니야. 아니야. 다른 이들은 자네의 위명 때문에라도 진심으로 움직이지 않겠지. 게다가 마법사에게 진심으로 손을 쓰기도 부끄러운 일이고. 그런 식으로 해서 훈련이 되겠나? 게다가 개인적인 일이라니, 자네가 복수를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곳에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 거절할 필요 없네.”
“······그러면 아침에 뵙겠습니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안 그래도 아는 이들이 없어서 도움을 청하기 애매했던 상황. 게다가 어중간한 이들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크 후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나서서 도와주겠다면 감지덕지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내 하루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 방 앞에서 안절부절 못 하며 긴장된 발걸음으로 배회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대제자님! 오셨습니까!”
“누구지?”
“앗, 제 이름은 아르민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듣는 이름이다. 추정되는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젊은 정도? 내가 테라 방벽에 도착한 지도 일주일이 넘었지만 그 누구도 사적인 일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공적인 일이라면 지금껏 그랬던 대로 기욤이 오던가 다른 조의 조장들이 왔을 터, 나는 아르민이라는 젊은 마법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셔.”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눈앞의 마법사에게 느껴지는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테라 방벽의 마법사들 중 그 누구를 붙여놔도 아르민이 앞서나가기는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를 찾아왔다.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이들로부터 나를 쉽게 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도. 그럼에도 아르민은 나를 찾아왔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서 종착지라고까지 불리는 테라 방벽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마법사가.
“이걸 봐주십시오.”
꽤 두터운 뭉치의 서류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그러나 서류를 읽기 전, 마력을 흘려보내 검사부터 했다. 수도에 있을 때,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여 이런 방식으로 저주를 걸려는 놈들이 없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서 읽는 것만으로는 내게 해가 될 일은 없을 듯싶었다.
펄럭- 펄럭-
천천히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내 반응이 궁금한지 아르민은 초조해하는 얼굴로 나를 지켜봤고. 꽤나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것인지 연구 자료는 꽤나 탄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몇 서클이라고?”
“3서클입니다.”
“흐음.”
예상은 했다. 아무리 테라 방벽에 오는 이들이 소위 ‘낙오자’라 불리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나 보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최소한 3서클. 그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한 명 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구 내용만 보면 3서클 수준이 아닌데?’
이론만 놓고 보자면 그 이상을 줘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이론으로만 쌓아올렸기에 부족한 점도 많았으며 아르민의 수준에서 괜찮다는 뜻이지. 지금의 나로서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허점이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의 방향성 자체는 박수를 쳐줄만 했다.
“······너 혼자만의 결과야?”
“대,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이 곳에 온 뒤로 다른 선배들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저 혼자서 했습니다.”
계속해서 서류를 읽기 시작하자 내가 흥미를 느꼈다고 생각했는지 아르민이 들뜬 상태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연구만 하고 있었지, 실제로 만들어낼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대제자님의 전투를 보고 제 성과를 알아봐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획기적이지 않습니까? 안정적으로 보급을 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몬스터들은 인류의 적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이름은?”
“예?”
“이 연구의 이름말이야. 가제로라도 정해둔 건 있을 거 아니야?”
“······저는 임시로 타이탄, 타이탄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60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