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56화 (56/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56화 - >

“음······. 레닐?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인께서도 마법사이시니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알고 계십니까?”

순간적으로 몸에 긴장감이 휩싸였다.

나? 여기서 내 이름이 나온다고? 어째서, 어째서 내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일까. 아니다. 어쩌면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하늘에 수놓인 수많은 별들 중 가장 높게, 밝게 빛나는 별이 스승님이라면 가장 빠르게 올라가는 별은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근래의 일도 아닌 벌써 사 년 전부터 명성이 퍼지기 시작했으니 외국의 마법사가 내 이름을 알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레닐 드라그닐······. 그런 이름일 겁니다. 맞습니까?”

“아, 아! 맞습니다. 레닐 드라그닐. 역시 알고 계셨군요.”

“······모를 수가 없지요. 제국의 마법사들 중에 가장 뜨거운 이름이니까요.”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평온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최소한 그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후안무치한 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으나 외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인성이 있을지는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역시! 먼 왕국에서까지 이름이 거론되는데 본국이라 할 수 있는 제국에서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지요.”

“그는 왜 만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게 중요하다. 조조라는 범상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가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 그 이유에 따라서 내 허리춤에 메여있는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느냐, 당겨지지 않느냐가 갈릴 테니까. 그러나 이어진 조조의 대답은 여전히 내가 방아쇠를 당겨야 할지, 당기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트리게 만들었다.

“으음. 아무리 은인이시라지만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합니다.”

“······제가 실수한 것이 아니길 빌어야겠군요. 당신이 그를 만나 해를 끼치게 된다면 제 탓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아, 은인께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결코 그를 해하기 위함이 아니니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조조를 보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해하기 위함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은밀함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렇기에 미끼를 던졌다. 그가 물고 싶을 만큼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그런 거라면 저와 동행하시겠습니까?”

“예?”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당신이 그토록 찾는 레닐과는 친분이 조금 있습니다. 레닐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와 함께 그 이유가 레닐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제 여행을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레닐과의 만남을 주선해드릴 수 있습니다.”

오슬론에서부터 제국까지의 거리, 그리고 도착하더라도 마탑 내부에서 움직이지 않는 레닐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까지. 나와 동행했을 때의 이득을 말해주자 그는 고민에 빠진 듯 생각에 잠겼다.

‘선택해라. 선택해!’

조조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큰 상관은 없었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달라지겠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테니까.

동행하자고 한다면 그의 목적을 들은 이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파악하며 여행을 마무리 지으면 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며 동행을 거절한다면 내 권총이 불을 뿜을 터였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혹은 관계자에게 말할 수 없는 껄끄러운 목적이 존재한다는 뜻이니. 엄한 사람을 잡는 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처음 보는 다른 이보다는 내가 더 소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괜한 변수는 미리미리 차단하고 싶었다.

“······왜 그렇게까지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저랑 당신의 인연은 고작해야 몇 시간도 안 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 은인을 위해서지. 당신이 그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상,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함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은······.”

“정말로 해가 되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단호한 내 대답에 조조의 생각이 한층 더 깊어진다. 그러나 곧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은인께 또 한 번 신세를 지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조조 씨를 위한 일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닌 은인의 은인이라는 레닐이라는 자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 하지만 의도치 않았더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게 제가 스승님께 배운 사람을 대하는 방법입니다.”

누가 이 사람을 가르쳤는지는 몰라도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대단한 마법사였을 거라는 점은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은인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동행을 하게 된다면 꽤 긴 시간을 함께 보낼 텐데 언제까지 은인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언트루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다섯. 4서클 마법사입니다.”

#

자기소개 시간은 끝났다. 그리고 내가 조조에게 내건 조건 중 하나는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알려줄 것. 그 이유가 나에게 해가 될 것 같다면 동행은 무슨, 말만 하지 않았지.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부르겠다고 암시한 상황이니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천천히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일단 제가 레닐이라는 마법사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스승님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유언이요?”

“예. 혹시 하멜 에드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만한 제자를 키워냈다면 스승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였을 것이다. 물론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라지만 - 스승님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던가. - 스승이 보지 못한 광경을 제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조가 유언을 따르기 위함이라고 말한 만큼 이미 고인이었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만한 마법사라면 조언 한 마디쯤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절래절래-

“죄송합니다. 제 견식이 짧아 성함만 듣고서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제자 된 도리로 스승님을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나 스승님께서 아직 세상을 등지지 않으셨을 때, 스승님께서는 흔하디흔한 마법사에 불과하셨으니까요.”

흔하디흔한 마법사. 잠깐의 대화를 통해 조조가 최소한의 상식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그의 스승이라고 하는 하멜이라는 어르신의 경지는 3서클에서 4서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터,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청출어람. 오히려 조조의 재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스승님께서는 스스로의 재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셨죠.”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는 스승의 유언이 무엇이었을지 예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예상할 필요는 없었다. 조조의 입은 멈추지 않았으니까.

“결국 스승님께서는 방법을 발견, 아니 만들어내셨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기존의 방법과 달리 심장이 아닌 회로 전체에 마력을 축적시키는 새로운 방법입니다만, 스승님께서는······.”

“······심장이 아닌 회로에 마력을 축적시킨다니.”

나는 손을 들어 조조의 말을 멈추게 했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새로운 방식, 분명 새로워야 했지만 새롭지 않았고 낯설어야 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입에서 나온 방식은 내가 어디선가 한 번은 봤던 방식이었기에.

“혹시 <마력의 분산>이라는 책에 나온······.”

“아, 알고 계셨습니까? 예. 제 스승님께서 집필하신 책입니다.”

<마력의 분산>

분명 읽어본 기억이 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과거에.

고향을 떠나기 전, 아니 조금 더 먼 과거. 아직 내가 마탑에 머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정체되어 있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 손을 거친 수많은 책들 중 하나가 <마력의 분산>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지는 않았다. 만약 그러했다면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바로 알아차렸을 테니까. 그러나 책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듣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내용을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력의 분산>? 멋모르는 마법사가 대충 휘갈겨 쓴 책이죠. 그걸 연구해볼 생각이라면 그만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단순히 시간낭비라면 모를까, 과거에 그걸 연구하던 몇몇 마법사들의 심장에 큰 문제가 생긴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 책이 왜 아직도 마탑에 남아있는지 모르겠군요. 빨리 치워버려야겠습니다. 자라나는 마법사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줄지 모르니.]

이상이 <마력의 분산>에 대한 마법사들의 평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말만을 믿고 넘긴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그 이상으로 필사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딸려오는 연구결과들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그 외에도 다른 서적들은 많았기에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서적은.”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지요. 그렇기에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이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곧 깨달으셨죠. 본인은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줄 이를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렇다면 조조 씨는······.”

“예. 저는 스승님의 이론에 따라 마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연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승님의 유언에 따라 하산한 것입니다.”

놀랍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한 이론을 기어코 완성시켜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니까.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 봐도 딱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레닐을 만나려하는 이유도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습니다. 대륙 전체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유명한 마법사. 그를 꺾을 수 있다면 스승님의 명예를 되찾는 일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테니까요.”

무슨 소리인 줄은 알겠다. 그가 왜 레닐을 만나려 하는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단시간 내에 명성을 떨치기 위한 방법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조조는 분명 내게 해가 갈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게 어딜 봐서 내게 해가 가지 않을 일이라는 것일까.

“제게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56화 -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