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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55화 (55/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55화 - >

대륙 북부와 중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제국. 그 크기는 대륙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었다. 북쪽으로는 몬스터의 대지를, 서쪽으로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가, 동쪽과 남쪽으로는 광활한 대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국 남서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항구도시 중 한 곳인 오슬론은 수많은 상인, 모험가, 용병들이 모여드는 교역도시이기도 했다.

끼룩끼룩-

촤아- 철썩!

푸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평선 너머까지 푸르기 만한 바다를 보고 있자면 감상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바다로군.”

만약 내게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눈물이라도 흘리며 감동했을 정도로 햇빛에 비치는 바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내게는 그렇게까지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지만.

테라 방벽에는 이미 겨울이 찾아왔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륙 중부의 따뜻한 기후 덕분일까, 짠 내음이 느껴지는 바닷바람은 시원하게만 느껴질 뿐이었고 그렇게 한참동안 바닷바람을 느끼며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이내 몸을 돌렸다.

“쌉니다. 싸요! 한 번씩만 보고 가세요!”

“바다 건너 넘어온 위스키 있어요! 한 잔 마시면 두 잔 마시게 되는 마법의 음료!”

“가볍고 부드러운 프란넬!”

부둣가와 그 근처 거리로 들어서자 수많은 상인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물품들을 팔고자 발품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이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거친 바다를 뚫고 다니는 소규모 상인들이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상인들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물건을 빨리 처분하고 시간을 아끼는 편이 효율적이었으니까.

확실히 제국 제일의 교역도시를 노린다는 말처럼 수도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물론 가장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해산물이었지만.

이 세계에서 해산물은 오슬론과 같이 해안가 주변의 도시가 아니고서야 쉽게 보기 힘든 재료였다. 기본적으로 부패하기 쉽고 내륙에서는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마법을 동원한다면 내륙 한복판으로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 또 귀족들은 그런 식으로 해산물을 먹고 있으나 -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도 해산물을 먹은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수도로 올라온 뒤로는 귀족들의 초대 혹은 스스로 사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 동안의 식습관과 사치를 부린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멀리했고. 그러나 이 곳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해산물이 다른 동물들의 고기보다 저렴했으니. 덕분에 원 없이, 그 동안 못 먹었던 해산물 위주로 식도락을 즐겼다.

“확실히 물류의 중심지라고 할만 해.”

단순한 규모로만 보자면 수도보다도 더 거대하지 않을까. 북적거림과 함께 말이다. 수도도 물론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지만 수도에 살 정도라면 평민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부를 갖춘 평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계급에 상관없이 귀족 한 명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귀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수도는 의외로 조용한 동네라고 할 수 있었다.

타박- 타박- 타박- 턱.

‘언제 이런 곳까지 왔지?’

생각이 너무 깊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는데,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등 온통 새로운 것들뿐이었으니 생각 이상으로 고민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리번-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던 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공간에라도 들어온 것 마냥 어둡고 침침하며 조용했다.

“빛이 밝으면 어둠도 짙은 법이지.”

부유한 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가 있다. 누군가가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면 집도 없이 땅을 바닥으로,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저 쪽 세계나 이 쪽 세계나 그것만큼은 똑같았다.

촤악-

지도(地圖)를 펼치고 길을 찾았다. 도대체 얼마나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인지 주변은 마치 미로와도 같이 얽히고설켜 길을 알지 않는 이상 길을 잃어버리기 딱 좋았다. 그리고 지도를 통해 뒷골목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어두운 거리, 부랑자들이 모여드는 뒷골목 그리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채 홀로 다니는 남성. 어떻게 생각해도 문제가 생기기 딱 좋은 조건들이다. 기껏해야 뒷골목의 문제아들에게 시비가 걸린다고 하여 곤란한 일은 없겠으나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토록 기연을 바라며 여행을 떠난 나에게 기연과 귀찮은 일의 분간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지도 몰랐다.

뒷골목을 빠져나가기 위한 마지막 통로. 그 앞에 보란 듯이 쓰러져있는 신원불명의 남성. 원래대로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그 모습을 쉬이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반짝반짝-

내가 자리한 위치 바로 앞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지도가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는 쓰러져 의식을 잃은, 신원불명의 남성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람 뭐야?’

나와 정체불명의 남성. 지도에 나타난 두 점이 뿜어내는 빛은 그렇게까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

나는 결국 그를 내 숙소로 데려왔다. 그의 정체를 알지는 못했지만 모른 척 넘어간다면 왠지 모르게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만한 마력의 소유자가 길거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숙소로 데려와 살펴보니 외상은 없었다. 얼굴을 살펴보니 나이는 나와 비슷해보였으나 체격은 조금 작았다. 단순히 기운이 없어 쓰러진 것뿐이라면 마법으로 보조를 했으니 머지않아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들썩-

잠시 후, 신원불명의 남성이 눈을 뜨고 일어났다. 낯선 공간의 모습에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눈을 끔뻑이던 그를 향해 정체를 물어보려고 했을 때, 방 안을 가득 울리는 소리.

꼬르륵-

나는 그제야 이 사람이 왜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받았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소지품과 보유 마력으로 보건데 나에게 밀리지 않는 마법사가 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쓰러진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그가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서부터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인가? 제국어가 미숙한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제국어가 미숙한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도 잔향이었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입모양과 내게 들리는 소리가 맞지 않았다.

‘번역 마법이 미숙한 거였군.’

번역 마법은 보통의 마법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다. 수준이 무척 높아서 구사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갓 번역 마법을 익힌 마법사가 제국의 마탑주보다도 더 잘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이 번역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각 뜻에 대응하는 언어를 마법사가 일일이 개선해나가야 했으니까. 물론 마탑에서 새로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본적인 언어에 대한 자료를 남겨두었지만 그 이상으로 깔끔한 번역을 원한다면 개인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마법사는 철저하게 번역 마법의 기본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우선······당신, 마법사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나는 마법사입니다. 당신도 마법사입니까?”

“그러니 당신이 내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이겠죠.”

대화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대화를 하기에 부적합한 것도 사실이었다.

“당신, 어디 출신이에요?”

“저는 태어났습니다. 아우베스 왕국에서.”

아우베스 왕국.

제국 남쪽에 위치한 왕국 중 하나다. 내 번역 마법의 언어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왕국 중 하나고. 애초에 제국의 마탑주를 스승으로 둔 내가 볼 수 없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 중에서 언어에 관련된 것은 없었고.

“말할 기운 있으면 번역 개선을 한 뒤에 이야기하죠.”

이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다. 어차피 해당 국가의 마탑에 소속되어 있다면 제국어에 관한 자료는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오히려 이런 걸로 은혜를 입힐 수 있다면 그게 더 이득이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가 어째서 대륙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제국어에 대해 모를 수가 있나 싶지만 조금 있다가 물어보면 알 일이었다.

“오, 당신은 정말로 친절합니다. 감사합니다. 호의에.”

그리고 눈앞의 마법사가 술식을 고치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대로 복사해서 옮기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

“타지에서 이런 호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별 말을. 이제야 제대로 이야기를 할 환경이 맞춰진 것 같은데······.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평범한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요.”

마력의 양만 놓고 유추해보면 못해도 4서클, 그가 지쳐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더 높을 터였다. 스승님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상당한 양의 마나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제는 비슷한 경지의 마법사와 비교해도 그렇게까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대단한 마력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무례한 질문일 수 있었다. 내가 그를 구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죄인을 취조하듯 물어볼 권리는 없었으니까. 그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밀입국한 것이 아닌 이상에야, 게다가 설령 그가 밀입국했다고 하더라도 눈앞의 남자 정도의 인재라면 제국에서는 두 손 들고 환영할 터였다.

“하하. 은인한테 취조당하는 것 같아 조금 슬픕니다만 그래도 은인의 질문이니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봐도 제 모습이 수상하니까요. 제 이름은 조조. 아우베스 왕국 태생으로 올해로 스물일곱 살. 마지막으로 은인의 말처럼 조금 평범하지 않은 마법사입니다.”

“네 개? 다섯 개?”

“다섯 개입니다.”

그의 대답에 깜작 놀랐다. 스물일곱에 5서클. 언제 경지에 오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승님과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마탑주의 제자로서 대륙의 뛰어난 마법사들의 대한 정보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내게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수준의 마법사가 나타난 것인가. 조조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게다가 조금 평범하지 않다니, 이 정도면 특별함을 넘은 무언가와도 같았다.

“도대체 그런 수준의 마법사가 길거리에는 왜 쓰러져 있던 겁니까?”

“하하. 말하기 조금 쑥스럽긴 합니다만, 만나보고 싶은, 아니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야만 하는 사람?”

“정확히는 마법사입니다만.”

도대체 누구일까. 아우베스 왕국은 제국으로부터 멀지는 않지만 가깝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조라는 이름을 가진 놀라운 실력의 마법사가 쓰러지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만나야만 한다고 하는 마법사가 있다니, 누구일까?

역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있다면 스승님이리라. 제국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마법사였으니까. 조조만한 재능의 소유자라면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스승님을 만나하고 싶어 할 테니까.

그러나 조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내 예상을 가볍게 박살내는 이름이었다.

“음······. 레닐?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인께서도 마법사이시니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알고 계십니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55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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